'분류 전체보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 영화 보는 영알못

 국민 일 인당 천 원씩 일주일 안에 1억 원이 모금되지 않으면 아이를 죽이겠다는 유괴범의 메시지가 뉴스를 통해 공개된다. 순경인 지원(하윤경)은 그날 아침 우연히 마주친 여성과 아이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던 중 사회복지사 오순(박하선)이 관리하던 아이 보라(감소현)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지원은 아동학대 부모들의 불의를 참지 못해 경찰서에 오기도 했던 오순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건을 추적해나간다.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박하선이 배우상을 수상했던 영화 <고백>은 천원유괴사건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통해 범죄 수사극과 사회고발물 사이를 오가며 한국의 아동학대 실상에 대한 성찰과 고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원과 오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 전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기에, 범죄 수사극으로써 흥미로운 추리를 선보인다든가 하는 등의 장르적 쾌감은 아쉽다. 하지만 이 영 추리해나가는 것이 단순히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순간 영화의 주제가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는 약 2주가량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지원과 오순이 마주치는 오프닝 시퀀스를 중심으로, 오순과 보라의 이야기가 담긴 오프닝 시퀀스 이전의 일주일 가량과 지원이 천원유괴사건과 보라의 실종을 뒤쫓는 오프닝 시퀀스 이후의 일주일이 영화에 담긴다. 영화는 그 시간을 통해 경찰과 사회복지사라는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두 여성이 제도와 절차적 문제에 가로막혀 눈앞에 있는 소수자 대상의 폭력들, 가령 스토킹이나 아동학대를 막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과 무력함을 보여주고, 그럼에도 자신의 직업윤리와 신념을 쫓아 행동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어진 아동학대를 비롯한 소수자 대상 범죄들은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법과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고백>이 보여주듯, 그것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작동할 뿐 폭력을 예방하는 것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법과 제도는 자신의 신념을 쫓아 행동하는 이들의 적극성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증거를 요구하는 경찰과 사법제도는 아이의 몸에 난 피멍을 중요시하지 그것이 생기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하진 않는다.     

 때문에 <고백>이 택한 2주간의 시간을 오순과 지원의 시점으로 양분하여 전개하는 형식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시간과 사건 이후 피해자가 말하지 못했던 것을 고백할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포괄하는 것이 된다. 때문에 지원이 추적하는 사건의 전말은 보라가 겪은 폭력의 시간을 쫓는 것임과 동시에 보라가 스스로 자신의 말로써 고백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지원의 두 동료 경찰 캐릭터와 오순의 선배 사회복지사인 미연(서영화)은 영화의 두 여성 주인공보다 오랜 시간을 자신의 직업군에서 보낸 인물로서, 극의 긴장을 풀어주거나 조여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결과적으로 폭력을 방치하며 사후적인 처리밖에 하지 못하는 직업적 관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캐릭터들의 앙상블은 소수자를 향하는 폭력의 구조를 드러낸다. 영화의 몇몇 장면의 촬영이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부담스럽다는 인상이 들긴 하지만, 아동학대를 고발하기 위해 학대당하는 아동의 모습을 여과 없이 재현하며 불쾌함을 안겨 주었던 몇몇 영화들에 비해 사려 깊은 만듦새가 영화의 몇몇 아쉬운 부분을 상쇄한다. 그 지점에서 <고백>은 수차례 영화로 다뤄진 주제를 다른 주제보다 사려 깊게 전달한다는 성취를 얻어낸다. 

 전력회사 직원 정은(유다인)은 권고사직을 거부하자 지방의 하청업체로 파견된다. 갑작스레 파견된 정은의 존재에 정은 자신은 물론 하청업체의 소장(김상규)과 세 직원들도 당황스러워한다. 그곳에서 사무직인 정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정은 자신을 해고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하청업체로 보낸 원청에 맞서 현장 일을 배우려 한다. 하지만 송전탑을 기어올라 정비하는 목숨을 건 작업에 갑자기 뛰어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하청업체의 막내 직원 충식(오정세)에게 현장 일을 가르쳐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D라는 낮은 성적의 근무평가 결과다. 정은은 자신을 해고하려는 원청에 맞서기 위해 노동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태겸의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부당하게 파견근무를 하게 된 어느 중년 사무직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이야기다.     

 영화는 정은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바닷가를 낀 시골의 풍경, 내륙과 섬을 잇는 거대한 송전탑, 그 송전탑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는 정은의 심리, 파견 근무지에서 맞닥뜨린 고난과 원청에서의 유리천장이 뒤섞인 스트레스로 인해 발현되는 고소공포증 등이 정은 얼굴을 통해 전달된다. 영화는 부당해고를 막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들의 존재가 무색하게 부당해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한국의 상황을 보여준다. 정은이 찾아간 근로감독관은 진정 결과가 나오는 데 3~5년이 걸린다 말하고, 파견된 정은의 인건비를 떠맡아야 하는 하청업체 소장은 예산이 부족해 실적이 떨어지는 한 사람을 해고해야 한다고 예고한다. 원청은 하청업체에 무엇도 지원해주지 않는다. 예산은커녕 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작업복조차 직원들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사비로 구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원청이 하청에 제공하는 것은 효율성을 명목으로 그들을 압박하는 실적평가뿐이다.      

 유다인이 연기하는 정은의 얼굴과 충식을 비롯한 직원들의 노동하는 신체는 목숨을 담보로 한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이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둘째 치고, 자신의 목숨과 고용상태에 대한 안정성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충실하게 담아낸다. 송전탑을 올려다보는 정은의 시점숏이나, 밧줄에 의지해 송전탑에 오르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낸 촬영은 노동의 숭고함 같은 표현으로 환원하기엔 조금 더 복잡한 감정을 불러온다. 정은이 권고사직을 제안받은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것도 부당해고엔 이유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영화의 어떤 순간과 배우들의 노동(이는 극 중 캐릭터들의 노동과 배우들이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송전탑을 오르는 훈련을 받고 실제로 송전탑에 오르는 배우의 노동과정을 포괄한다)은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충만함을 보여주지만, 그러한 장면들이 보여주는 정서적인 측면 외의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가령 하청업체 직원이자 래퍼를 꿈꾸던 승우(박지홍)는 대사 대부분을 랩처럼 발화하는데,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영화의 톤과 전혀 맞지 않는 캐릭터 설정은 어색하기만 하다. 조직폭력배조차 못 되는 양아치 집단처럼 그려지는 원청 직원들의 모습도 어색하다. 등장할 때마다 눈을 부라리며 정은을 밀치고 폭언을 일삼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가 비판하려던 것의 핵심을 빗겨나간 채 그들을 단순히 악마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주하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당황스럽다. 권고사직, 파견, 해고, 원청과 하청 등 노동자들을 갈라놓는 개념들을 영화에 잔뜩 제시한 후에, 영화가 택하는 것은 그것들을 넘어 파편화된 노동자 개인이 아닌 ‘우리’로 나아가려는 정은의 모습이다. 여기서 정은은 무엇을 통과하고 넘어서는가? 유리천장, 부당해고, 위험한 노동과 노동자의 죽음, 그러한 것을 떠안고 기상악화로 인한 위험함을 무릅쓴 채 송전탑을 오르는 정은의 모습은 다소 당황스럽다. 이런저런 역경을 뚫고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송전탑을 오르는 정은의 동기는 분명 우리를 향하고 있지만, 정작 송전탑에 올라 다시금 전기가 들어오는 섬을 바라보는 정은의 모습은 다시금 정은 개인을 향할 뿐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영화가 보여준 노동의 정서와는 별개로 작동한다. 이 장면은 영화가 착실히 묘사해온 노동의 제스처, 가령 “우리는 빛, 우리는 생명”을 읊는 세 하청업체 직원의 모습, 송전탑에 오르기 전에 신발 바닥을 터는 모습과 같은 제스처들이 소거되고, 저항하는 방법으로서 노동을 수행하는 정은의 모습만 남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 입시를 위해 달려온 몰리(비니 펠드스타인)와 에이미(케이틀린 디버)는 고등학교 내내 놀기만 한 것 같은 다른 친구들도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억울해한다. 두 사람은 졸업식을 앞둔 오늘이 공부와 놀기를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임을 깨닫고, 고등학교 최고의 인싸들이 모인 파티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고등학교 내내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둘에게 아무도 파티 장소를 알려주지 않고, 두 사람은 파티에 가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배우로 다양한 영화와 TV쇼에 출연하던 올리비아 와일드의 장편 연출 데뷔작 <북스마트>는 익숙한 하이틴 코미디처럼 시작한다. 절친인 범생이 둘이 얼떨결에, 충동적으로 파티에 뛰어드는 그런 뻔한 이야기. <북스마트>는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 전혀 새로울 것 없다. 두 주인공은 좌충우돌을 겪고, 누군가를 좋아했다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그러다 또 누군가를 만나고, 10년을 함께 보낸 절친이지만 크게 싸우고, 그럼에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떤 시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밤새워 노는 고등학생들의 하루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멍하고 혼돈스러운>이 떠오른다. 혹은 <조찬클럽>이나 <패리스의 해방>(영화에서 언급되기도 한다)과 같은 존 휴즈의 청춘영화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비니 펠드스타인의 전작 <레이디버드>를 떠올려보는 것도 자연스런 흐름일 것이다. 하지만 <북스마트>는 앞선 작품들의 이야기만을 뼈대로 삼을 뿐, 그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올리비아 와일드는 영화를 제작하며 <버버리 힐즈 캅>이나 <리쎌 웨폰> 같은 버디 무비들을 참고했다고 한다. 이러한 레퍼런스가 드러내듯, 영화는 몰리와 에이미가 고등학교 졸업 직전의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어떤 작전을 벌이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것은 <21 점프 스트리트>나 <나쁜 이웃들> 같은 하이틴 코미디의 방식이 아니라, 전교회장을 맡아 졸업 전날까지 인수인계를 해야겠다며 교장을 피곤하게 하는 몰리와 2년 전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자 열정적인 페미니스트인 에이미의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하이틴 영화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영화의 캐릭터들은 그렇지 않다. 그 흔한 풋볼 선수와 치어리더도, 전형적인 악녀 캐릭터나 유해한 남성성을 뽐내는 마초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는다. 두 범생이 캐릭터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다양한 인종과 성적지향/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타인에 의해 정체성이 규정되거나 모욕받지 않는다. <북스마트>가 그려내는 학교는 왕따, 폭력, 경쟁 등을 지워낸, 어쩌면 유토피아와도 같은 이상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는 영화의 단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영화는 몰리와 에이미가 학교에 마지막으로 등교해 보내는 시간들을 담아내며 두 사람을 둘러싼 인물들을 소개한다. 각자의 개성을 지닌 인물들은 묘한 활력으로 익숙한 미국 고등학교의 풍경을 채운다. 이를테면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복도로 뛰쳐나온 졸업예비자들이 온갖 것을 집어 던지며 난장판을 만드는 장면은 슬로모션을 한껏 끼얹은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되고, 묘하게도 성별구분이 없는 화장실에선 일방적인 모욕과 폭력 대신 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에 대한 공방이 오간다. 물론 화장실 벽에 가득한 더러운 낙서들이 가득하지만, 그것조차 기존의 영화들에서 보던 것과 다르다. 이를테면 두꺼운 점 세 개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젠더 뉴트럴 글로리 홀’이라고 써있다던가 하는 낙서가 슬쩍 지나간다. 이러한 설정은 두 주인공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 준다. 모든 것에 대해 냉소를 품는 대신, 애초에 정체성에 관한 편견이 부재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것을 발받침 삼아 즐겁게 폭주하는 두 주인공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것만으로 <멍하고 혼돈스러운>이나 존 휴즈의 청춘영화를 본 것과 같은 감각을 선사한다. 어쨌거나 관객은 몰리와 에이미, 두 사람의 혼란스러운 고등학생의 마지막 하룻밤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북스마트>는 어떤 영화들이 현실적으로 특정 시기를 담아내기 위해, 혹은 재미를 위해 과장하는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요소들 없이도, 관객이 그 시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북스마트>가 신선하다면, 그것은 이야기나 캐릭터가 아닌 관객이 캐릭터와 함께 경험할 배경과 시간의 문제이다.     

 밈(meme)은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지만, 그가 정의한 것과 지금의 밈은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닌다. 도킨스가 정의한 밈은 “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이다. 그는 밈이 유전자처럼 전달되며, 전이, 경쟁, 자연선택 등의 과정을 거치며 진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문화적 유전자 있음을 상정하고 그것을 다윈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 밈인 셈이다. 지금의 밈은 인터넷 용어에 가깝다. 짧은 텍스트가 붙은 이미지나 몇 초 내외의 짧은 영상, 혹은 특정 문구나 제스처는 일종의 문화적 코드를 구성하며 온라인 상에서 유통된다. 2010년대 전후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한 SNS를 통해 인터넷 밈은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다. 밈은 이제 어디에나 있다. 꼭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타임라인 혹은 유튜브의 영상이 아니더라도, 밈은 TV 프로그램에, 영화와 드라마에, 심지어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개인 간 대화에도 있다. <릭 앤 모티>를 필두로 한 어덜트 스윔의 애니메이션이나 <팜 팀 에픽>처럼 밈 덩어리에 가까운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밈은 단순히 웃기거나 쿨한 이미지가 아니라 어떤 진화과정 중의 놓인 생명체나 다름없다.

 <필스 굿 맨>은 밈의 생애를 다룬다. 2007년 즈음 미국의 인디 작가 맷 퓨리는 [보이즈클럽]이라는 만화를 제작한다. 그 만화는 개구리 등을 의인화한 캐릭터들이 실없는 화장실 유머를 주고받는, 그러니까 대학교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 여느 코미디 영화나 시트콤들과 다를 바 없는 작품이었다. 퓨리는 자신의 만화를 스캔해 마이스페이스에 공유했다. [보이즈클럽]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개구리 페페가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오줌을 눈 뒤, “Feels Good Man”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페페가 “Feels Good Man”이라 말하는 컷이 잘려나가 우리가 아는 개구리 페페 밈이 된다. 처음엔 헬스 마니아들이 운동 이후 “Feels Good Man”이라 덧붙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이 우연히 익명 기반 커뮤니티 사이트인 포챈(4chan)에 흘러들어 가고, 어느새 채색까지 된 개구리 페페의 이미지는 다양하게 변형되어 유통된다. 페페 밈이 생명력을 얻고 진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포챈은 니트족(NEET, 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이다. 이들은 스스로 누가 더 루저인지를 경쟁하듯 자신의 밑바닥 인생을 전시하고, 그 과정에 다양한 밈이 동원된다. 페페는 포챈 유저들을 상징하는 밈에 되었다. 포챈 유저들은 케이티 페리나 니키 미나즈 등의 셀럽들이 페페 밈을 사용한 뒤 인싸(Normie라는 단어로 자막 번역은 ‘일반인’이었지만 ‘인싸’가 조금 더 정확한 맥락을 표현한다고 생각된다)들에게 페페 밈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윽고 “Kill The Normies”는 포챈의 새로운 밈이 되었고, 몇 번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포챈 유저들은 페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페페에 반유대주의, 동성애혐오, 성차별, 반이슬람 등의 상징을 덧붙인다. 그럴 때마다 포챈 유저들은 환호한다. 그 끝에 트럼프의 등장이 있다. 트럼프의 대선출마 연설은 그가 곧 포챈 유저들의 대통령임을 확인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들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행동한다. 미국 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극우매체 인포머스 등 또한 페페 밈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영화에 등장한 트럼프 캠프 관계자는 아예 밈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당당하게 밝히기도 한다. 그렇게 트럼프는 당선되었고, 개구리 페페는 극우주의자의 상징이 되었으며, 혐오기호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다. 이에 맷 퓨리는 [보이즈클럽]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그려 페페를 사망처리한다. 

 <필스 굿 맨>은 이 과정을 쫓는다. 개구리 페페는 어떻게 극우주의, 미국 대안우파의 상징이 되었는가? 왜 맷 퓨리는 페페를 사망처리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 과장에서 드러나는 것은 밈이 변형되고 유통되는 과정이다. SNS 초창기부터 활용되기 시작한 개구리 페페 밈을 인터넷 역사상 가장 오래 유통된 밈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페페는 우연히 포챈 유저들의 상징이 되었고, 우연히 혐오상징이 되었고, 우연히 트럼프의 모습과 겹쳐지게 되었다. 원작자인 맷 퓨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이미 본연의 의미가 사라진 가상의 캐릭터를 사망처리하고 그것을 사용한 대안우파들의 포스터 등의 판매를 막는 소송을 벌이는 것뿐이다.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밈 이용자들의 생각을 빨아들이며 변형되는 원작자가 저작권을 이유로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히토 슈타이얼은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하며]에서 에세이영화나 무빙이미지 작업과 같은 비상업적 영화들이 우부웹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부활하게 되었다며, 그러한 비상업적 영화, 이미지들이 ‘빈곤한 이미지’로 부활하고 유통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슈타이얼은 이렇게 유통되는 저화질의 열화된, 재편집된 이미지들이 “물질을 잃고 속도를 얻으며” 새로운 역량을 획득한다고 보고 있다. 슈타이얼은 글의 말미에서 지가 베르토프의 ‘시각적 유대’를 언급하며 빈곤한 이미지에서 그것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슈타이얼의 분석은 개구리 페페와 같은 밈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논리를 밈에 적용시킬 여지는 충분하다. 게다가 애초에 개구리 페페는 맷 퓨리의 예술품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가. 

 밈은 열화되고 재편집된 빈곤한 판본으로 유통된다. 슈타이얼이 명명한 빈곤한 이미지와 같이 그것은 불법복제되고 도용되며 그것 자체를 유통 과정으로 삼는다. <필스 굿 맨>은 개구리 페페의 수많은 빈곤한 판본을 보여준다. 개중의 어떤 판본들은 재창작되어 새로운 원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개구리 페페가 은근한 미소를 띄며 턱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판본이 그러하다. 누구나 따라 그리기 쉬운 개구리 페페의 모습은 그 자체로 변형 가능성을 지닌다. 그것엔 무엇이든 덧붙여질 수 있으며, 포챈에서 페페의 친구처럼 등장시킨 다른 밈 보잭(Wojak)이 결합되기도, 혹은 하켄크로이츠나 반이슬람적 이미지가 덧붙여지기도 한다. 그 유통과정에서 개구리 페페 밈은 포챈 유저들의, 대안우파들의 시각적 유대를 형성한다. 슈타이얼과 베르토프가 말한 시각적 유대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지만, 그것이 어떤 변화의 역량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밈이 지닌 시각적 유대의 역량은 빈곤한 이미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엄청난 속도와 강도를 지닌 밈의 역량은 물질적인 것에 기반한, 이를테면 현실정치, 시민운동, 인권운동, 예술 창작, 상품 경제 등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그것의 물질적인 결과에 가깝다. 

 <필스 굿 맨>은 밈의 속도를 보여준다. 어느 포챈 유저는 대선 캠페인 중인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 현장에 참석한다. 그는 그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포챈에 올린다. 익명의 포챈 유저들은 그가 “페페~!”라고 소리치길 원한다. 그는 연설을 이어가는 힐러리 앞에서 “페페~!”를 외친다. 그것은 힐러리의 연설을 촬영하는 TV와 포챈 스레드를 통해 생중계된다. 모든 것은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이에 앞서 영화는 어느 총기난사범이 페페와 결합된 밈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싸’들에게 총을 쏜 총기난사범은 그것이 보도됨과, 아니 그것이 뉴스속보로 보도되는 것과 동일하거나 더 빠른 속도로 개구리 페페 밈과 결합된 형태의 밈으로 제작되고 유통된다. 분석과 대응은 그것을 쫓아가지 못한다. 때문에 <필스 굿 맨>은 밈의 속도와 강도가 지닌 역량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음을 무기력하게 시인하는 것과 같다. 맷 퓨리는 인포머스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리하지만 개구리 페페를 혐오기호 데이터베이스에서 내리진 못한다. 그는 페페가 그의 손을 떠난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기력하게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다.

 무기력한 것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보이즈클럽]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사이키델릭한 애니메이션을 동원하고 온라인 상에서 밈이 활동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화려한 편집이 이어지지만, 이 영화는 왜 페페코인이란 암호화폐가 등장해 그것으로 람보르기니를 끌고 다닐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지, 그것이 왜 홍콩에서는 민주주의와 학생운동의 상징이 되었는지 쫓아가지 못한다. 영화가 온전히 쫓아갈 수 있는 것은 사후적인 것, 개구리 페페의 시작부터 맷 퓨리의 몇몇 소송과정까지 뿐이다. 그러니까 <필스 굿 맨>은 개구리 페페를 미국 내 대안우파의 상징으로만 다루며 그것이 수구적이며 반동적인 상징물로 원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용되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고, 맷 퓨리의 시점에서 가능한 경쾌한 톤으로 그 애처로움을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개구리 페페가 왜 암호화폐가 되었는지, 수구적인 상징물이 어떻게 혁명의 상징으로 변모했는지 밝혀낼 수 있는 시각은 이 영화에 없다. 사실 그것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한 밈 연구자들 또한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페페 및 페페와 연관된 밈이 1년 동안 1억 6천만 개가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밝혀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변모할지는 알아낼 수 없다. 

 때문에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인터뷰이로 등장한 오컬트 학자였다. 책장에서 염력으로 책을 꺼내드는(!) 모습을 보여주며 등장한 그는 앞뒤로 등장한 밈 연구자나 심리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건네지만, 심리학이나 통계학적 영역이 아닌 비과학적 영역의 전문가가 발화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블로그 이웃분의 글(https://blog.naver.com/likeacomet/222195206141)에서 “대안 우파 온라인 서브컬처의 ‘영성’에 가까운 정치성”을 언급하는데, 오컬트 학자가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오컬트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가 축적해온, 도킨스적인 의미와 현대의 용례를 포괄하는 밈을 연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개구리 페페와 같은 밈의 생애를 쫓는 과정에서 그것의 진화 과정을, 그것의 역량을 단순히 심리학적 기제나 통계적 수치로만 판단하는 것은 페페 밈의 개수를 하나하나 손으로 세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필스 굿 맨>은 그런 행위를 함과 동시에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밈의 행로를 쫓는 가능한 방법을 찾는 힌트를 슬쩍 보여준다. 

 <오늘, 우리 2>는 단편영화를 주로 배급하는 독립영화 배급사 필름다빈에서 배급하는 단편영화 4편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2019년 조은지, 부은주, 송예진, 곽은미 네 감독의 단편영화를 묶어 <오늘, 우리>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이후 두 번째 사례다. 이전에도 단편영화들을 묶어 옴니버스 영화의 형태로 개봉한 사례는 많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시선> 시리즈나 통일부의 지원으로 제작된 <우리 지금 만나>, <쓰리 몬스터> 혹은 <인류멸망보고서>와 같은 장르영화처럼 대부분의 경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작품들의 묶음이었다. 반면 필름다빈에서 배급한 <오늘, 우리> 시리즈의 경우 영화제의 단편상영 섹션을 고스란히 극장에 개봉시키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우리는 New 노멀 패밀리입니다”라는 포스터의 문구처럼 유사한 테마를 공유하긴 하지만, <오늘, 우리> 시리즈의 영화들은 전혀 다른 목적과 상황 속에서 제작된 별개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들 간의 연결성이나 통일성은 다소 떨어지고, 종종 전혀 다른 영화들을 묶어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 2>에 속한 네 편의 영화를 하나로 묶어 어떤 평을 한다는 것은 꽤나 곤란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제나 소수의 상영회를 통해서만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단편영화들이 극장에 정식개봉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첫 번째 작품인 양재준의 <낙과>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서른 살 아들과 일하던 마트에서 나이를 이유로 퇴직하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다. 일이 없는 아버지는 아들이 공부하는 도서관을 찾는다. 아버지는 도서관의 비치된 컴퓨터로 고스톱을 치거나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아들은 인터넷 강의를 듣고 이런저런 공부를 이어가지면 시험에서 또다시 떨어진다. 아들은 도서관 앞의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주워가는 노인들과 그들을 타박하는 경비원을 목격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 살구 열매들을 주워 온 사실을 보고 아버지를 타박한다. <낙과>는 이혼한 뒤 전 아내 및 딸과의 관계가 소원한 아버지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그런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들의 이야기다. 아들은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 할인 딱지가 붙은 음식을 사 오고 떨어진 살구를 주워오는 아빠를 구질구질하다며 타박한다. 하지만 이내 아들은 아버지의 상황에 동화된다. 두 사람은 어딘가에서 떨어진 이들이다. 열매는 무르익었을 때 땅으로 떨어지지만,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굴러 떨어진 이들이다. 영화는 서로를 못마땅하게만 받아들이던 두 사람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는다. 다만 그 과정의 억척스러움이 영화를 더디게 만든다. 25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그 시간 내내 항상 불만 가득한 표정과 말투로 존재하는 아들의 모습과 어딘가 태평한 (그리고 기주봉 배우의 여유 있어 보이는 이미지와 연기가 겹쳐) 아버지의 모습이 영화 내내 충돌하는 것이 썩 긍정적인 효과를 내진 못한다.

 이나연의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는 정적이다. 아프리카로 떠난 어머니의 집에 김장을 위해 모인 삼 남매를 잡는 카메라는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고 롱테이크로 이들의 대화를 잡아낸다. 이들의 대화는 실없는 농담이나 추억을 이야기하고, 지금의 삶 또한 이야기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던 이들이 모여 김장하는 것은 자연스레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살아온 세 남매가 기억을 꺼내는 장면들은 겨울 내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행위인 김장처럼 오랜 시간 묻어둔, 혹은 묻어둘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같다. 때문에 영화에서 유일하게 동적인 장면인, 때마침 도착한 어머니의 소포 속 아프리카 의상을 입자 음악과 함께 나타난 어머니와 삼 남매가 춤을 추는 장면은 김장김치처럼 묻힐 기억을 위한 춤이다. 사실 영화 자체는 단편영화임에도 느리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다만 이 영화에 조연출 및 촬영으로 참여한 조민재 감독과 이나연 감독이 <작은 빛>과 <실> 등으로 이어나가는 협업의 결과물들과 같은 맥락에 이 영화를 놓는다면, 기억에 대한 두 감독의 흥미로운 입장이 읽힌다. <실>에서 주연을 맡았던 조민재 감독의 어머니 김명선 배우가 이 영화에서도 어머니로 등장한다.

 이준섭의 <갓건담>은 건담을 갖고 싶었던 주인공 준섭이 아버지의 가출(?)로 인해 그것을 얻지 못하고, 대신 어머니의 생일날 생일선물로 홍천에 자리 잡은 아버지를 데려오려 하는 이야기다. 준섭은 그 이름에서부터 감독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며,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는 감독의 실제 아버지다. 가족을 두고 떠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아들의 이야기는 다소 식상하게 느껴진다. ‘갓건담’이라는 소재는 극 중 준섭이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고등학생임을 떠올렸을 때 어딘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다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격언을 고스란히 영화화한 것 같은 이야기와 독특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매끄럽게 엮어가는 것은 <갓건담>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포인트다. 극영화이지만 일하는 어머니를 촬영한 영상이나 준섭이 중고로 구매한 캠코더로 촬영된 영상이 등장하는 등 다큐멘터리적 이미지의 삽입이 영화를 조금 더 풍성하게 해 준다.

 여장천의 <무중력>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차량 뒷좌석에 탄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이고, 이내 화면은 암전 된다. 암전 된 화면 위로 소년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잠자리에 든 소년에게 어머니는 동화책을 읽어준다. 그러자 화면에 하얀 점들이 등장한다. 어머니는 시각장애인이고 아들에게 점자로 된 동화책을 읽어주는 중이다. 영화는 시간을 앞으로 돌려 할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할아버지 집에 다녀오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부재가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 주인공 가족은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금 암전 된 화면 속에서 점자로 된 동화를 읽어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점자 대신 점으로 그려진 동화 속 참새가 등장한다. 영화는 부재하는 것, 비가시적인 것, 그럼에도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점자 동화책의 점자가 암전 된 화면 위에 등장하는 것이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할아버지의 집을 ‘할머니 집’이라 부르는 것 등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반복되며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고,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의 폭에 비해 동어반복적인 장면이 많아 하려던 말을 다 못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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