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2018' 카테고리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모든 팬들이 바라던, 마이클 베이가 연출하지 않는 첫 ‘트랜스포머’ 영화 <범블비>가 개봉했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자 첫 스핀오프인 <범블비>는, 사이버트론 행성에서의 전쟁 중 옵티머스 프라임(피터 쿨렌)의 명령을 받아 지구로 떠난 범블비(딜런 오브라이언)가 우연히 만난 소녀 찰리(헤일리 스테인필드)와 겪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다른 시리즈들보다 앞선 80년대이며, 시리즈 처음으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쿠보와 전설의 악기> 등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명가로 떠오른 라이카 스튜디오의 트래비스 나이트가 연출을 맡았으며, DCEU의 <버즈 오브 프레이>의 각본을 맡은 여성 작가 크리스티나 호드슨이 각본을 썼다. 그동안 자동차와 변신로봇에 대한 남아/남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어져온 시리즈가 드디어 여성 각본가를 통해 쓰이고, 여성이 주연이 된 작품을 내놓았다.



 현재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다. 2007년의 첫 영화는, 빈틈이 많이 보이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관객들의 지지를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작년 개봉한 다섯 번째 영화까지 이어지며 소수의 팬층마저 시리즈를 저버릴 정도가 되었다. 마이클 베이 특유의 규모밖에 남지 않는 연출이 수년간 이어졌기 때문이다. <범블비>는 규모를 줄이는 대신 캐릭터와 이야기에 집중한다. 수많은 로봇들이 쏟아져 나와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던 전작들에 비해 줄어든 로봇의 수는 액션뿐만 아니라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서 이야기에 필요한 정보만 간결하게 전달한다. 특히 모든 로봇이 남성(의 목소리)으로 설정되어 있던 것에 반해, 여성의 목소리를 지닌 디셉티콘 섀터(안젤라 바셋)의 등장은 신선함을 더함과 동시에 로봇들이 뒤엉키는 액션 시퀀스 안에서도 각각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소년 혹은 중년 남성에서 소녀로 바뀌었다는 것이 <범블비>의 핵심이다. 주인공인 찰리는 기존 시리즈의 남성 주인공들처럼 메카닉이며, 아버지를 잃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다. 범블비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범블비와 교감한다. 더욱이 로봇들이 버리는 혼란스러운 액션 시퀀스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적당한 역할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는 성장 서사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이는 기존 시리즈의 남성 주인공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면모인 것은 물론이고, <아이언 자이언트> 등 소년들이 로봇과 교감을 나누던 다른 영화들과도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는 크리스티나 호드슨이라는 걸출한 여성 각본가와 헤일리 스테인필드라는 최고의 스타가 만나 가능해졌다.



 또한 시대 배경을 80년대로 옮기며, 80년대 영화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가져온 것 또한 <범블비>의 장점이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등 80년대의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작품들이 많아지는 지금, <범블비>의 시대 설정은 시류를 따르면서도 찰리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고 범블비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지점이 된다. 가령 범블비가 목소리를 잃은 뒤 라디오를 통해 인간과 대화하는 법을 깨우치는 과정이라던가, 다양한 80년대의 팝과 록음악이 등장해 찰리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지점, 적극적이진 않지만 냉전을 배경으로 이야기에 힘을 싣고 기존 시리즈와의 연결점을 만들어내는 장면 등은 <범블비>가 왜 80년대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로봇들의 디자인이 기존 시리즈처럼 강철의 질감을 강조하는 대신, 영화의 원작이 되는 애니메이션의 모습을 따른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다만 가족으로 회귀하고 마는 결말, 평면적이며 종종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군인 캐릭터 번스(존 시나) 등의 요소는 아쉽게 느껴진다. 특히 번스를 연기하는 존 시나의 연기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드웨인 존슨 사이의 스타일을 오가며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헛웃음을 터트리게 되는 모습 또한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범블비>는 몇몇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관객들이 외계 로봇과 인간 사이의 우정을 그려내는 영화에서 기대하는 대부분의 것을 만족시켜주는 영화다. <E.T.>나 <아이언 자이언트>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으로 가득하고 이 영화들에 미치는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범블비>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엠블린이 이끌었던 80년대 액션 어드벤처 영화들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누구나 만족스럽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E.T.A 호프만의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디즈니의 새 실사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을 조금 뒤늦게 관람했다. <초콜릿>, <개 같은 내 인생> 등으로 알려진 라세 할스트롬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나, 약 한 달 간의 재촬영을 <퍼스트 어벤저>의 조 존스톤 감독이 맡게 되어 크레딧에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디즈니의 실사영화들은 원작이 되는 애니메이션을 숏 바이 숏 수준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했다면,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말레피센트>처럼 새로운 각색을 시도한다. 영화는 주인공을 원작의 마리에서 마리의 딸인 클라라(멕켄지 포이)로 바꾸고, 그에게 발명가라는 설정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영화는 마리가 유품으로 남긴 열쇠를 찾기 위해, 마리가 창조한 4개의 왕국의 세계로 떠난 클라라가 슈가 플럼(키이라 나이틀리)과 마더 진저(헬렌 미렌)의 대립을 막고 그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영화의 각색이나 비주얼의 지향점은 좋다. 작년 개봉한 <미녀와 야수>의 실사영화에서 주인공인 벨에게 발명가 성격을 부여했다고는 했지만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데 급급해 이를 살리지 못한 반면,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변화된 지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지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오프닝 시퀀스가 조금은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멕켄지 포이의 연기는 이를 납득하게 만든다. 여기에 톱니바퀴 등 아날로그적 기계장치들이 주를 이루는 영화의 비주얼은 각색된 클라라의 면모와 적당히 어울린다. 발레로도 유명한 작품이기에, 디즈니의 걸작 중 한편인 <판타지아>를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발레 장면 또한 좋은 선택이라 생각된다. 실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로 활동하는 미스티 코플렌드와 세르게이 폴루닌 등이 출연하여 이 장면을 꾸미는데, 이야기의 전개를 시각적으로 적절하면서도 원작이 지닌 미덕을 잘 간직한 장면이었다.



 다만 감독이 바뀌고 많은 분량을 재촬영하면서 벌어진 일인지, 각색과 비주얼의 방향성은 좋으나 각본 자체에 문제점이 많이 보인다.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이 급작스럽게 이어지고, 이를 설명해주는 적절한 대사나 상황들은 간단하게만 언급되고 지나가버리며, 이러한 각본 속에서 클라라의 발명가 기질이나 동화적인 비주얼은 온전히 기능하지 못한다. 결국 각색과 비주얼은 영화의 첫인상 정도를 만들어낼 뿐, 영화의 마지막까지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이 <미녀와 야수>와 같은 원작의 복사품 밖에 안 되는 작품보다는 흥미롭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디즈니가 기존의 애니메이션들을 줄줄이 실사화 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미녀와 야수>나 <라이온 킹>의 예고편처럼 말 그대로 원작을 고스란히 실사화하는데 그쳐버린다면 디즈니에 대한 기대감은 그만큼 더 낮아질 것이다. 때문에 비록 완성도는 아쉽더라도,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말레피센트>와 함께 디즈니 실사영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흥미를 가지게 한다.




*스포일러 포함


 작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러닝타임 310분의 영화를 봤다. 기나긴 러닝타임 때문에 개봉은 못 한 작품이지만, 5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인터미션도 없이 관람하게 한 것은 그 영화,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피아워>가 가진 힘이다. 그때부터 하마구치 류스케의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렸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공개된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은 다행히도 119분의 러닝타임,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몇몇 영화제나 기획전을 통해 소개되었고 내년 상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다. 상상마당 CINE ICON 기획전을 통해 관람한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아사코 I&II>는 이상한 영화였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3.11 동일본 대지진을 영화 속으로 끌어오고, 멜로드라마의 틀을 통해 재난 이후의 삶을 이야기한다.



 오사카에서 살아가던 아사코(카라타 에리카)는 전시를 관람하다 우연히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라는 남자를 만난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둘은 연애를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쿠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2년 뒤, 도쿄로 거쳐를 옮긴 아사코는 우연히 바쿠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1인 2역)를 만난다. 너무나도 닮은 모습에 화들짝 놀라지만, 계속해서 마주치면서 아사코는 료헤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사코와 료헤이,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사라졌던 바쿠가 다시 나타난다.


 

 <아사코 I&II>는 이상하다. 이 영화를 모노가미적 이성애 규범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완전한 오독에 가깝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이 영화를 통해 붕괴시키는 것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랑’이라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아사코는 료헤이와의 관계를 주저하다가, 3.11 동일본대지진이 있던 날 그와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사라졌던 바쿠는 광고모델이 되어 도시 한복판의 광고판을 통해 재등장한다. 아사코는 료헤이와 친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 바쿠가 나타나 손을 내밀자, 주저하지 않고 그의 손을 잡고 떠난다. 하지만 아사코는 결국 다시 료헤이에게 돌아오고, 료헤이와 아사코는 더 이상 서로를 믿지 못하는 관계가 되었지만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결국 아사코와 료헤이의 (재)결합은 서로에 대한 불신을 신뢰함으로써 성립되는 기묘한 관계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 기묘한 관계를 포스트-재난 시대의 새로운 태도로 제시한다. 이 태도는 포스트 뒤에 자본주의, 물질주의와 같은 말들을 붙여도 어느 정도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자본주의의 세계, 문명이라는 조건이 이제 자연화 되어버린 시대에 지진과 같은 재해는 통제 불가능한 것이다. 영화 초반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무차별 살인/폭행’ 뉴스 또한 통제 불가능한 무엇인가이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뢰는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등장하며 붕괴된다. 지금의 세계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광고하며 통제할 수 없는 외부를 은폐한다. 결국 <아사코 I&II>가 그리는 세계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기에 불신은 이 세계의 필요충분조건이며, 그 조건 하에서 사랑이라는 것 또한 불신 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 안에서 3.11를 통해 제시되는 재난 이후 파괴된 신뢰는 복구될 수 없다. 외부에서 무엇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세상인데, 사랑하는 대상을 온전히 믿는 것 또한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복구될 수 없는 신뢰를 계속 끌어 앉고 사느니, 불신을 믿음으로써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 역설적인 설정은 포스트-재난의 세계에 대해 가장 흥미로운 상상력을 제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사코와 료헤이는 새로운 집에서 같은 강을 바라보며 “아름답다”와 “더럽다”는 전혀 상반되는 반응을 보여준다.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다른 반응을 보이는 둘, 그 사이에는 신뢰가 붕괴되어 단절된 둘 사이의 거리감과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현재가 존재한다. 사실 이러한 장면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국내에는 올해 개봉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산책하는 침략자>의 엔딩에서, 나루미는 외계인에게 몸을 빼앗긴 남편 신지에게 사랑이라는 개념을 가져가라고 요청한다. 신지가 그 개념을 가져가자 침략은 일단락되었지만, 나루미에게 사랑이라는 개념은 남아있지 않다. 영화는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시점에서, 나루미와 신지가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로 진행되는 숏-리버스 숏 구도를 보여주며 끝난다. 기요시 또한 <산책하는 침략자>를 통해 3.11 이후를 이야기하며, 그 이후의 사랑이란 분열되며 절대 쌍방일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재난 이후에도, 쌍방향의 신뢰가 사라진 이후에도 함께하겠다며 다짐하는 이들의 시선이 마주치지 못한 채 끝나는 두 영화는 포스트-재난 시대를 맞이한 현재를 그려낸다.

 70년대 부산으로 원료를 수입해 가공하여 일본에 마약을 수출하던 수출왕이자 마약왕의 실화가 영화로 제작됐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 <마약왕>은 70년대 독재정권 하에 마약을 통해 권력을 얻은 이두삼(송강호)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밀수를 통해 근근이 살아가던 두삼이 우연한 계기로 마약이라는 개척지를 알게 되고, 그가 이를 통해 돈과 권력을 얻은 뒤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문제는 139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제대로 이를 그려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약왕>은 139분의 러닝타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이두삼이 활동한 대략 10여 년 간의 시간을 담아내지만, 생략이 많은 이야기는 종종 뜬금없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두삼을 제외한 그의 주변 인물들은, 조우진, 김대명, 이성민, 조정석, 배두나, 김소진, 유재명, 이희준과 같은 현재 활동하는 정상급 배우들이 무더기로 출연하지만 이두삼을 위한 소모품으로만 사용될 뿐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무엇 하나 제대로 그려내는 것이 없다. ‘시대의 공기를 그려냈다’라고 평해지는 다른 영화들, 가령 송강호 주연의 <JSA 공동경비구역>, <살인의 추억>, <반칙왕>, <괴물>, 심지어는 <택시운전사>와 같은 졸작보다도 시대를 다루는 데 실패한다. 사실 송강호를 얼굴로 내세워 ‘시대의 공기’ 따위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지독하게 진부하다. 범죄자를 통해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보다 못하다. 더욱이 마약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올해 개봉작인 <독전>에 비해 차별화되는 부분도 없으며, <나르코스>나 <브레이킹 배드> 같은 작품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 <마약왕>의 묘사와 이야기는 뻔하고 지겹기만 하다.



 영화를 보는데, 옆에 앉은 남자 관객 둘이 계속 “어, 조우진! 어, 이성민! 어, 조정석! 어, 윤제문!” 이러면서 봤다. 이 것만큼 이 영화 잘 설명해주는 상황이 없을 것 같다. 수많은 (남성) 배우들이 쏟아지지만, 그 진부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품. 결국 <마약왕>은 올해 개봉한 100억 원 대 예산의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실망스러운 작품이 되었다. 영화 자체의 어정쩡한 스탠스는 물론, 여성의 몸을 스펙터클화 시켜 전시하는 장면들, (만주 출신 인물이라지만) 가부장제적인 경상도 중년 남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 80~90년대 성인만화를 연상시키는 연출 등은 그저 실망스럽기만 했다. 아마 <염력>과 더불어 올해 가장 아쉬운 대자본 한국 상업영화로 손꼽히지 않을까?

 <저스티스 리그>의 실패로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거의 유일한 희망으로 남은 <아쿠아맨>을 보고 왔다. <컨저링> 유니버스를 성공시키고 <분노의 질주: 더 세븐>으로 액션 블록버스터 경험까지 쌓은 제임스 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등대지기와 아틀란티스의 여왕 아틀라나(니콜 키드먼) 사이의 아들인 아서 커리(제이슨 모모아)가, 아틀란티스가 왕위에 오른 아서의 이부동생 옴(패트릭 윌슨)의 욕망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는 메라(엠버 허드)의 요청에 따라 바다의 왕이 되는 여정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쿠아맨>의 이야기는 아주 익숙하다. MCU의 <블랙팬서>나 <토르: 천둥의 신>에서 보아온 형제간의 왕권 다툼, 세계를 구할 운명을 타고 난 주인공 등 슈퍼히어로 장르의 클리셰가 이 영화 안에 촘촘히 박혀 있다. <저스티스 리그> 직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아쿠아맨>은 아서 커리가 진정한 바다의 왕으로 거듭나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단순한 이야기를 채우기 위한 수많은 볼거리를 동원한다. 옴의 사주를 받은 블랙 만타(야히아 압둘 마틴 2세)와 아서가 벌이는 격투, 오프닝부터 펼쳐지는 아틀라나의 액션과 물을 조종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한 메라의 액션, 아틀란티스를 비롯해 눈부시게 펼쳐지는 바닷속 왕국들, 재난영화를 방불케 하는 해일, 제임스 완의 장기인 호러적 연출, <인디아나 존스>를 연상시키는 어트랙션 연출과 <반지의 제왕>이나 <레디 플레이어 원>의 거대한 전투를 연상시키는 전쟁 장면, <고질라>를 보는 것만 같은 거대괴수의 출현까지, 한 편의 블록버스터가 담을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143분의 러닝타임 안에 빼곡히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아쿠아맨>은 조금 산만해지기도 한다. 특히 바다를 벗어나 사하라 사막이나 시칠리아 섬 등의 지역으로 아서와 메라가 옮겨가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뜬금없는 음악들은 제임스 완의 전작인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연상시킨다. 갑작스러우면서 유치하게도 느껴지는 이러한 연출은 영화의 흐름을 깬다. 또한 아무리 아서 커리의 성격이 불 같고 직선적이라고 해도, 영화의 전개를 위해 막무가내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실패작이었던 <저스티스 리그>와는 다르게 안정적인 촬영과 직선적인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덜 지루하게 전달하려는 교차편집 등이 등장하지만, 몇몇 불안정한 요소들은 <아쿠아맨>을 평작의 위치에 머물게 한다.



 다만 DC와 워너의 입장에서는 <아쿠아맨>이 평작의 위치에 서기만 해도 다행일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에서의 흥행이 이들에겐 매우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지금 DC에게 필요한 것은 평작의 흥행이다. <아쿠아맨>이 모두의 지지를 받는 작품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누군가에겐 유치하게 다가오고, 누군가에겐 산만하게 볼거리만 늘어놓는 영화일 수도 있다. 동시에 또 누군가에겐 볼거리로 가득한 놀이동산 같은 영화일 수도 있다. <아쿠아맨>의 위치는 익숙한 평작, 딱 거기까지다. DC의 그다음 발걸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