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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된 영화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빌런이 좋은 영화는 무엇일까

 슈퍼히어로장르의 빌런을 생각하면 어떤 캐릭터들이 떠오르는가? <다크 나이트>(2008)의 조커(히스 레저)?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2018)의 타노스(조쉬 브롤린)? 혹은 시대를 더 앞질러서, <배트맨>(1989)의 조커(잭 니콜슨), <슈퍼맨>(1978)의 렉스 루터(진 헤크먼)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들 영화 속 빌런이라는 존재들은 히어로의 안티테제로 존재해왔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타크 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이 된 이후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늘어났고, 세상을 위협하는 사건도 비례해서 늘어났죠라는 비전(폴 베타니)의 대사는 이를 증명하듯 등장한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는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에게 네가 나를 완성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언브레이커블>(2000)에서 <글래스>(2019)까지 이어진 M. 나이트 샤말란의 3부작은 슈퍼히어로 코믹스에서부터 이어진 슈퍼히어로-빌런의 상관관계를 괴상하게 재구성한 작품이기도 했다. 결국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슈퍼히어로의 존재는 빌런의 존재를 보장한다. ‘빌런 없는 슈퍼히어로 영화는 불가능한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빌런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진부함을 가져온다. 이미 상상 가능한 빌런의 종류는 모두 쏟아져 나온 것만 같다. ‘절대 악혹은 순수 광기에 가까운 조커부터 전쟁이나 정치를 형상화한 <원더우먼>(2016)의 아레스(데이빗 튤리스)<퍼스트 어벤저>(2009)의 레드 스컬(휴고 위빙), 프롤레타리아 빌런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의 벌처(마이클 키튼), 인종이나 젠더 등의 영역 속 소수자를 대변 혹은 은유하는 <블랙 팬서>(2018)의 킬몽거(마이클 B. 조던)<엑스맨>(2000)의 매그니토(이언 맥켈런), 심지어는 우주적 존재인 <닥터 스트레인지>(2016)의 도르마무(베네딕트 컴버배치-목소리)까지 수많은 종류의 빌런들이 쏟아졌다. 실사영화의 영역을 넘어, MCU TV드라마나 <인크레더블>(2004)와 같은 애니메이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와 같은 유사-슈퍼히어로 영화까지 영역을 넓히면, ‘슈퍼히어로 장르 속 빌런의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영화들은 빌런을 통해 영화의 정체성이 규정된다.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 두 편이 그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또한 그러하며,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는 오롯이 빌런 타노스를 위한 영화였다.

 

 그렇기에 남초 커뮤니티와 팬보이들로 인해 과잉대표된 강력한 빌런혹은 좋은 빌런이 좋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기반이라는 의견은 종종 오해를 낳게 된다. MCUDCFU의 몇몇 영화들, 혹은 <엑스맨: 아포칼립스>(2016)와 같은 영화들이 마주한 비판이 그러하다. “빌런이 약하다는 평은 어느새 슈퍼히어로 영화의 만듦새를 결정짓는 문장이 되어버렸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3>(2007)부터 <아이언맨2>(2009), <토르: 다크 월드>(2013),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등의 영화들이 이러한 비판에 직면했다. 물론 이 영화들이 잘 만든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빌런이 약하다라는 평이 슈퍼히어로 영화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느껴지는 지겨움이 있다. ‘빌런이 약하다라는 평은 영화의 만듦새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원더우먼>이나 <데드풀>(2016),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와 같은 작품들도 빌런이 강한영화는 아니지 않나? <아쿠아맨>(2018)에서 옴(패트릭 윌슨)이나 블랙 만타(야히아 압둘 마틴 2)의 존재감이 부족하다고 이 영화를 혹평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빌런의 존재감에 영화의 완성도를 떠맡기는 일은 지금까지 나온, 그리고 앞으로도 쏟아져 나올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설명하거나, 그들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강력한 빌런에만 집착하는 경향은 히스 레저의 조커와 같은 사례에 과몰입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의 조커(자레드 레토)가 이러한 집착적 경향의 가장 나쁜 예시를 보여준다. 영화 속 조커의 모습과 영화 밖 자레드 레토의 모습은 그저 광인처럼 느껴질 뿐이다. 게다가 강력한 빌런에 집착하게 된 몇몇 팬보이들은 이제 빌런을 추앙하고 있다. 이제 조커와 타노스는 팬보이들의 형님으로 자리잡았다. 강력한 빌런 담론을 통해 빌런에 대한 과몰입과 추종이 한국의 알탕영화들 속 악역(가령 <신세계>(2013)이나 <베테랑>(2015), <범죄도시>(2017)과 같은 영화 속 악역들)에 대한 추종과 유사하다고 슬쩍 주장해보고 싶기도 하다.

 


 빌런 없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등장

 개인적으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의 개봉 이후 슈퍼히어로 영화 속 빌런과 강력한 빌런이 좋은 영화의 기본전제라는 담론이 지겨워지고 있었다. 전쟁, 욕망, 정치, 환경오염, 광기, 빈곤, 절대 악이 개별자로 형상화된 빌런을 그만 보고 싶어졌다. <캡틴 마블>은 이러한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다.

 

 나는 <캡틴 마블>빌런 없는 슈퍼히어로의 등장이라고 평하고 싶다. 물론 형식적인 빌런은 존재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스크럴 족의 탈로스(벤 맨델슨)이 빌런으로 제시되고,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의 과거가 밝혀진 이후부터 욘-로그(주드 로)와 크리 스타포스팀이 빌런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캡틴 마블>의 빌런이 아니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컨벤션으로써 형식적으로 삽입된 캐릭터일 뿐, 빌런이라 불리던 다른 영화 속 캐릭터들과는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가 전개되며 두 캐릭터가 갖게 되는 변화, -로그는 조력자에서 빌런으로, 탈로스는 빌런에서 조력자로의 변화는 특정한 캐릭터로 형상화되지 않은 <캡틴 마블>의 진짜 빌런을 자연스럽게 폭로한다.

 


 그렇다. <캡틴 마블>의 빌런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조력자를 빌런으로, 빌런을 조력자로 변화시킨다. 아니, 조력자의 위치에 선 캐릭터가 빌런이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빌런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조력자, 친구, 동료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은폐 과정은 슈프림 인텔리전스(아네트 베닝)에 의해 지워진 기억을 되찾는 캐럴 댄버스의 여정을 통해 영화 전반에 걸쳐 폭로된다. 슈프림 인텔리전스의 명령에 의해 지워진 기억은 욘-로그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지속된다. “감정을 배제해라”,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욘-로그의 말은 가장된 조력자가 건네는 은폐의 속삭임이다. -로그의 가스라이팅은 되찾은 기억의 파편 속에서 등장하는 캐럴의 아버지나 공군 남성 조종사의 대사와 공명한다. “위험하니까 타지 말랬지”, “여자는 조종석에 앉을 수 없어라는 말들은 욘-로그의 대사들이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로그, 아버지, 남성 조종사의 연쇄적 가스라이팅은 은폐를 통해 작동되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현실의 가부장제, 제국주의, 자본주의 등으로 읽어낼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젠더, 인종, 경제적 계급을 만들어내고, 하위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착취함으로써 지속된다. 흩어진 퍼즐처럼 제시되는 캐럴의 기억은 이러한 시스템()의 존재를 드러내는 단서이자 징후이고, 이들이 하나의 기억으로 통합되었을 때 캐럴은 각성하게 된다.

 

 캐럴의 각성을 만들어내는 존재는 그의 절친이자 싱글맘이며 전투기 조종사인 마리아 램보(라샤냐 린치)이다. 그는 등장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위치가 변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캐럴의 조력자, 동료, 친구, 가족이다. 불변하는 그의 위치는 캐럴의 기억을 짜맞추는 마지막 퍼즐이다. 동시에, 조력자의 위치로 옮겨간 탈로스 또한 캐럴의 각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가 크리족의 침략으로 인해 우주난민 신세가 된 스크럴 종족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 역시 시스템의 피해자인 셈이기 때문이다. 유사한 작동원리를 지닌, 그리고 거의 모든 경유에서 함께 작동하는 가부장제와 제국주의는 캐럴 댄버스가 조종사가 되는데 방해물을 만들었고(이것은 마리아 램보 또한 마찬가지이다), 탈로스를 난민으로 만들었다. 이들에게 직접적인 장애물이 되는 욘-로그와 크리 스타포스는 진짜 빌런인 시스템의 하수인이다. 그 시스템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르마무처럼 하수인을 내세운 개별적인 존재이거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제모(다니엘 브륄)처럼 악의를 품은 배후의 인물이 아니다.

 


모습을 바꾸는 빌런-시스템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캡틴 마블>에서 시스템은 슈프림 인텔리전스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심지어 어떤 형태를 띄고 의인화된 존재로 영화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 질문은 굉장히 쉽게 해소될 수밖에 없다. 영화 상에서 슈프림 인텔리전스는 크리 종족의 운명을 관장하는 인공지능이다. (크리족의 컴퓨터 체계가 인간과 비슷하다면) 무수히 많은 선택지를 지닌 알고리즘의 한 종류인, 가상적인 존재이다. 그는 오프라인에서는 존재를 드러낼 수 없다. 그는 헬라 행성의 특정 접속 장소 내지는 크리족 함선의 기계장치를 통해서만 접속 가능하다. 분명 존재하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만 어디까지나 가상적으로 가정된 존재이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은 시스템에 접속한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모습을 모방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것은 신성하고, 남에게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슈프림 인텔리전스는 비어스, 캐럴 댄버스에게는 마-(아네트 베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비어스는 캐럴 댄버스가 마-벨을 존경했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슈프림 인텔리전스는 마-벨의 모습으로 캐럴 댄버스에게 가스라이팅을 가해, 그를 고귀한 크리족 전사 비어스인 상태에 머물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시스템은 더더욱 배후에 머물게 된다. 시스템은 특정 인물로 지목되지도, 지목될 수도 없다. 그것은 그냥 가정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구조를 직조하고, -로그, 캐럴의 아버지, 캐럴을 비웃는 남성 조종사 같은 인물들을 생산해 구조를 유지한다. 다소 결정론적인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결국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로난(리 페이스)의 모습 또한 가부장제-제국주의 구조를 등에 업고 나타난 것 아닌가? 동시에 마-벨의 형상으로 나타남으로써 적이 아닌 적을 상정하도록 한다. 마치 난민인 탈로스가 전쟁의 원흉인 것으로 가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습을 바꾼다라는 것은 <캡틴 마블>에서 꽤나 중요한 소재이기도 하다. 캐럴 댄버스를 고귀한 크리족 전사 비어스의 정체성으로 고정시키려고 한 것처럼, 시스템은 언제나 개인들을 특정한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고정하려 한다. 하지만 개인은 절대 고정적인 하나의 정체성만을 가지지 않는다. 슈프림 인텔리전스가 침략자로 고정시키려 했던 스크럴이 형태변환자라는 것은 이를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소재다. 시스템은 모든 사람을 특정한 정체성으로 고정시키려 하고,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 하지만 <캡틴 마블> 속 인물들은 어떠한가? 당장 마리아는 캐럴이 자신을 절친으로써, 엄마로써, 조종사로써 지지해주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캐럴 또한 여성이기에 받은 차별적 경험, 미 공군 소속 전투기 조종사라는 직업, 크리족 전사라는 정체성, 슈퍼히어로로 각성한 정체성이 뒤섞인 총체로서 존재하는 인물이다. 결국 모든 개인은 라는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수많은 정체성의 스펙트럼을 오가는 트랜스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시스템은 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여성이기에 OO를 할 수 없어”, “너는 침략자/빌런일 뿐이야라는 낙인을 찍고, 그 낙인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고정시킨다.

 


교차성으로 빌런의 부재-시스템의 존재를 드러내기

 배후의 배후의 배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공작은 부재로써 존재하는 시스템에 의해 행해진다. 깊숙이 숨은 시스템을 드러내려면 그에 맞는 도구가 필요하다. <캡틴 마블>은 페미니즘을 그 도구로 꺼내 든다. ‘캡틴 마블로 각성하는 순간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쓰려 졌다 다시 일어나는 캐럴의 모습을 담은 몽타주로 대표되는 <캡틴 마블>의 임파워링은 가부장제-제국주의 시스템에 그대로 돌진하여 균열을 낸다. 큰 상황을 보자면 당장 지구에 닥친 위기를 구했을 뿐이지만, 우주 난민이 된 스크럴족의 새 고향을 찾아주러 함께 떠나는 모습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노바 콥스가 큰 희생을 치르며 격퇴한 로난의 함선을 맨주먹으로 물리치는 힘은 영화가 끝난 이후 펼쳐질 이야기의 거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성차별이라는 낙인에 기반한 가스라이팅, ‘증명할 것을 요구받는 일상에서 해방된 여성은 무한한 가능성을 얻게 된다. <캡틴 마블>은 이것을 캐럴과  마리아, 모니카(아키라 아크바), -벨 등 여성 간의 여성연대, 소수자의 위치에 놓인 탈로스와의 연대, 동료의식에 기반한 닉 퓨리(사무엘 L. 잭슨)과의 연대를 통해 가능케한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컨벤션 하에서 사이드킥의 지위를 가진 마리아 또한 딸 모니카의 지지를 통해 우주에 진출하고 (캐럴과 웬디 로슨으로서의 마-벨은 실패했던) 처음 보는 외계 우주선의 격퇴에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연대의 기반에는 교차성이 있다. <캡틴 마블>에서 가장 부각되는 것은 당연히 여성연대지만, 이것은 인종과 젠더를 포괄하는 연대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들의 연대는 심지어 고양이(인 줄 알았던 외계생물 플러큰)마저도 포괄하지 않는가.

 

 이러한 교차적 연대는 시스템이 규정하는 정체성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캐럴은 마리아와 탈로스를 통해 기억을 되찾은 뒤 캡틴 마블로 각성하고, 마리아는 다시 조종석에 올라가며 탈로스는 침략자라는 누명을 벗게 된다. 탈로스가 자신의 녹색 피부를 본모습이라고 칭하지만, 다른 외형으로 형태를 변환했을 때도 탈로스이듯, 개인은 언제나 를 중심으로 늘어선 다양한 스펙트럼 사이를 오간다. ‘라는 구심점은 내가 타인이 아닌 존재임을 증명할 뿐, 나의 정체성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캐럴과 연대관계에 속하는 캐릭터 중, 후에 쉴드라는 조직의 국장이 되는 닉 퓨리만이 별다른 정체성 변화를 겪지 않는 것은 조직/구조/시스템 안에 완전히 편입되고 고정된 정체성을 지니게 된 존재임을 드러난다. 생각해보면 닉 퓨리는 <캡틴 마블>의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신분증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시스템을 벗어난, 혹은 벗어날 수 있는 연대는 부재한 것처럼 은폐된 시스템을 드러내고, 그것을 타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캡틴 마블>은 그것의 주요한 도구로 교차성 페미니즘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가부장제-제국주의 시스템의 성차별적 구조를 드러내고, 이들이 여성과 난민 등의 소수자를 착취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빌런 없는 슈퍼히어로 영화는 이를 통해 가능해진다. 아니, <캡틴 마블>은 기존의 슈퍼히어로 장르가 빌런이라 지칭하는 특정한 캐릭터군 대신 시스템을 빌런으로 한 작품이다. 조커나 타노스와 같은 강력한 빌런은 가시적인 존재이다. 물론 그런 악은 여전히 남아있다. 슈프림 인텔리전스가 그러하듯,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가장된 모습으로 여기저기서 등장할 뿐이다. 그것이 조커이고, 타노스이고, -로그였던 것뿐이다. 결국 슈퍼히어로 장르에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캡틴 마블>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이것이다.

 

빌런 없는 슈퍼히어로 영화로 진짜 빌런을 드러내기. 그리고 교차성 페미니즘으로 이를 가능케 하기



 


 개인적으로 2018년 해외영화들을 일일이 다 챙겨보기도 어려웠다. 영화제를 통해서만 소개된 작품들도 많았던 데다가, 미쳐 참석하지 못한 영화제 상영작들의 소규모 개봉으로 인해 관람을 놓친 작품 등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2018년 한해엔 좋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는 여전히 MCU의 영화들이 흥행한 한 해였고, <보헤미안 랩소디>가 의외의 대박을 터트리며 다른 한국영화들을 흥행으로 누르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앞서 포스팅한 국내영화와 유사하게, 올해엔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 등 극영화 밖의 형식을 지닌 영화들에 관심이 갔던 한 해였다.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아직 관람하지 못했지만) 장 뤽 고다르의 <이미지 북>, 넷플릭스를 통해 드디어 공개된 오손 웰즈의 유작 <바람의 저편> 등이 이러한 영화였다. 동시에 여전히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중화권 영화들을 많이 놓치게 된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오손 웰즈 등 거장들의 마지막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서 행복한 한 해였고, <유전>, <콰이어트 플레이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등 큰 재미를 준 장르영화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등의 블록버스터들도 존재했다. 아래 리스트는 올해 영화제, 넷플릭스, 극장 개봉 등을 통해 관람한 영화들 중 가장 관심이 갔거나 흥미로웠던 작품들이다. 



Best 10.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우에다 신이치로 2018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먼저 소개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단연 올해의 장르영화로 불러도 손색없는 작품이다. 세 번이나 극장에서 관람했는데도, 세 차례 모두 박장대소하며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는 정말 손에 꼽을만할 것이다. 37분간의 원테이크 좀비영화와 이를 제작하는 비하인드를 순서대로 보여주는 이 영화를 보고 박장대소하지 않을 관객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영화를 만들어봤거나, 더 나아가 무엇인가를 창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놀라운 코미디와 형식, 이를 통해 쌓은 페이소스가 주는 엔딩의 감동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Best 9. <씨네필> 마리아 알바레즈 2017

 아르헨티나에서 영화를 즐기는 은퇴여성들의 모습을 기록한 마리아 알바레즈의 다큐멘터리 <씨네필>은 굉장히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이 영화 속 씨네필들은 영화제를 돌아다니고, 씨네마테크를 다녀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영화제 카탈로그를 기록용과 보관용으로 나누어 챙기고, 시간표에 밑줄을 그어가며 어떤 영화를 관람할지 신중히 선택하는 영화 속 씨네필들의 모습은 매번 영화제를 갈 때마다 반복되는 내 모습과도 유사하다. 심지어 워커나 지팡이를 끌며 상영시간에 맞춰 이동하는 은퇴여성들의 모습에서 어떤 감동을 느끼지 못할 관객이 있을까? 



Best 8.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피터 램지, 밥 퍼시케티, 로드니 로스먼 2018

 올해에도 다양한 세계관 속의 슈퍼히어로들이 스크린에 등장했지만, 이 영화는 올해, 아니 슈퍼히어로 영화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레고 무비>의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가 제작과 각본에 참여하고, <가디언즈>, <어린왕자> 등 다양한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연출했던 피터 램지, 밥 퍼시케티, 로드니 로스먼 세 감독이 공동연출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오직 애니메이션만이 해낼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끌어 낸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 심지어 극장용 영화를 통해서는 처음 소개되는 마일즈 모랄레스를 비롯해 다양한 스파이더맨들을 등장시키는 방식이나, MCU나 DCFU 등의 실사영화들에선 불가능한 방식으로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마일즈 모랄레스의 오리진 스토리인 이 영화는 이러한 요소들을 활용하여 최고의 슈퍼히어로 오리진 영화이자 최고의 스파이더맨 영화를 만들어 냈다. 



Best 7.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유아사 마사아키 2017

 조금 과장해서, 시사회를 통해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를 처음 관람했을 때의 느낌은 어릴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를 처음 봤을 때와 유사했다. 어느 섬마을에서 사는 소년과 전설 속의 인어라는 설정은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유아사 마사아키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진부한 이야기를 놀랍도록 즐겁게 탈바꿈시킨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일본영화계의 젊은 감독들과 유사한 경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Best 6. <통행증> 크리스티안 팻졸드 2018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통행증>은 괴이한 작품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나치를 피해 파리에서 마르세유로 도망친 유대인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하지만 영화에 담기는 풍경은 현대의 프랑스이다. 나치의 비밀경찰은 프랑스 경찰의 전투복을 입고 있고, CCTV 화면이 등장하기도 하며, 네온사인 가득한 간판이나 현대의 자동차가 배경 속에 등장하기까지 한다. 현재를 배경으로 이러한 영화를 촬영한 것은 자연스럽게 유럽의 난민 문제를 연상시킨다. 전쟁, 이데올로기 등의 폭력이 발생시킨 난민은 70년 정도의 세월을 통과하여 현재에 도달한다. 크리스티안 팻졸드는 괴이하면서도 우아한 선택을 통해 <통행증>을 만들어냈고, 현재진행형의 문제를 그 자체로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Best 5. <녹색 안개> 가이 매딘, 갈렌 존슨, 에반 존슨 2017

 가이 매딘과 존슨 형제의 신작 <녹색 안개>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중심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외 TV쇼들의 푸티지를 통해 샌프란시스코라는 지역을 되돌아보는 작품이다. <현기증>의 서사를 중심축으로 삼아, 40년대의 영화와 TV쇼부터 <고질라>나 <산 안드레아스> 등 최근의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다양한 재료의 푸티지가 <녹색 안개>에 사용된다. <현기증> 속 장면과 유사한 장면들을 모아 샌프란시스코의 지역성을 대담하게 재구성하려는 이 시도는, 카메라를 통해 한 지역이 어떻게 담기는지, 이들 푸티지들이 한 지역의 역사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담아내는지를 보여준다. 



Best 4. <24 프레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7

 작년 전주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집으로 데려다 주오>에 이어 다시 한 번 전주를 통해 소개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유작 <24 프레임>은 무빙 이미지에 대한 그의 마지막 열정이 녹아잇는 작품이다. 제목처럼 24개의 프레임, 24개의 4분 짜리 쇼트로 구성된 이 영화는 영화의 가장 기본이 되는 쇼트 속의 운동을 천천히 응시한다. 실제 촬영과 CG를 교묘히 뒤섞어 분간하기 어려운 <24 프레임>의 쇼트들은 방식을 가리지 않고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운동을 주목한다. 영화에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24 프레임>은 올해 가장 순수한 시네마의 체험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Best 3. <더 포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2017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는 언제나 대단했다. 그가 블록버스터를 만들던, 작가주의적 영화를 만들던, 그의 영화는 언제나 영화적인 체험 자체에 주목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베트남전 문서 폭로를 소재삼은 <더 포스트>는 언론의 역할, 페미니즘, 연대 등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에 대해 논한다. 관객은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의 상황과 행동을 통해 필요한 가치들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과정에서 따라오는,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쇼트의 연쇄는 그저 두손두발 다 들고 이 거장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다. 



Best 2. <얼굴들, 장소들> 아녜스 바르다, JR 2018

 국내에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이는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공동연출자 JR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기에 원제인 <얼굴들, 장소들>로 표기했다. 올해로 90세가 된 아녜스 바르다의 새 작품은 JR과 함께하는 여행 중 만나게 되는 지역 주민들의 얼굴을 거대하게 프린트하여 공간에 붙이는 작업을 담고 있다. 프랑스의 여러 지역들을 거쳐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누벨바그 세대 감독인 아녜스 바르다 개인의 역사 까지 훑는 이 영화는 여전한 거장의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이다. 바르다와 JR, 두 인물이 떠나는 여행은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Best 1. <아사코 I&II> 하마구치 류스케 2018

 310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하마구치 류스케의 전작 <해피 아워>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그가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아사코 I&II> 또한 그만큼 놀라운 작품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아사코, 바쿠, 료헤이라는 세 인물을 통해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다시 말해 포스트-재난과 포스트-자본주의 사회를 맞이한 현재에 지녀야 할 태도를 이야기한다. 서로를 어느 정도는 불신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불신을 신뢰함으로써 시작되는 관계'를 새로운 태도로 제시하는 것은 충격과 납득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아직 정식개봉을 한 작품은 아니지만, 올해 관람한 작품 중 이 영화만큼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밖에 언급하고 싶은 작품들 

<바람의 저편> 오손 웰즈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프레드릭 와이즈먼 

<120 BPM> 로빈 캉필로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티븐 스필버그 

<팬텀 스레드> 폴 토마스 앤더슨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하라 카즈오 

<콜럼버스> 코코나다 

<유전> 아리 에스터 

<블랙 팬서> 라이언 쿠글러

 2018년의 한국 상업영화는 처참했다. <신과 함께> 프랜차이즈의 두 편이 쌍천만을 달성했으나 영화 내적인 평가는 최악에 가깝고, 심지어 이 영화들을 제외하면 제대로 흥행조차 한 적이 없다. 설날, 추석, 연말 등의 대목을 노린 100억원대 영화들은 한 주에 서너편씩 개봉 일정이 겹치며 공멸했고, <골든 슬럼버>, <인랑>, <안시성>, <창궐>, <협상>, <마약왕> 등 많은 영화들이 혹평과 함께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리틀 포레스트>나 <공작> 정도를 제외하면, 올해 한국 상업영화의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찍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반면 독립영화 씬에서는 언제나처럼 흥미로운 작품들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특히 올해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약진이 두드러졌다. 극장 대신 온라인 개봉을 택한 김응수 감독의 작품들, 작년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된 <버블 패밀리>나 <집의 시간들> 등의 개봉,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소개된 <라스트 씬>, <공사의 희로애락>, <야광> 등의 작품 등 일일이 다 챙겨보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작품들이 계속 등장했다. <살아남은 아이>, <죄많은 소녀>, <영주> 등 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들이 개봉하여 각각 1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또한 작년에 이어 두 편의 신작을 개봉시킨 홍상수는 언제나처럼 놀라운 영화들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올해 각종 영화제에서 관람한 영화, 극장 개봉작, VOD 등을 통해 온라인 개봉한 작품 중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던 작품 10편을 골라보았다. 



Best 10. <당신의 부탁> 이동은 2017 

 이동은 감독이 <환절기>에 이어 선보인 작품 <당신의 부탁>은 '어머니'를 그려냄에 있어 올해 관람한 작품 중 가장 급진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모성애만을 강조하지 않는 태도, 결국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집이라는 공간 안에 공존하는 존재인 어머니, 연령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곳에 존재하는 어머니의 모습 등이 주인공 효진을 비롯한 여러 캐릭터들에게 분산되어 그려진다. <당신의 부탁> 속 어머니는 자식 혹은 남편 등의 주변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희생적인 지위라는 통념과는 다르게, <당신의 부탁>이 보여주는 다양한 어머니의 모습은 생활, 삶, 욕망, 의지, 직업 등을 지닌 다층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많은 영화 속에서 무성적이면서 동시에 모성적인 존재로만 그려지는 평면적인 모습과는 다른 어머니를 <당신의 부탁>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Best 9. <겨울밤에> 장우진 2018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장우진 감독의 신작 <겨울밤에>는 전작인 <춘천, 춘천>과 궤를 같이 한다. 단순히 춘천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것 외에도, 중년 커플과 청년 커플을 유사한 타임라인 위에서 공존시키며 영화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유사하기 때문이다. <춘천, 춘천>이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어떤 순환적인 이야기었다면 <겨울밤에>는 타임라인을 자유롭게 조작하며 벌어지는 양상들로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다. 영화의 이러한 모습은 홍상수가 <북촌방향>과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시간과 공간의 순환구조를 가장 흥미롭게 차용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Best 8. <소공녀> 전고운 2017 

 작년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관람했지만, 개봉은 지난 3월이었던 <소공녀>는 <족구왕>, <범죄의 여왕> 등의 영화를 제작했던 독립영화 제작사 '광화문 씨네마'의 가장 최신작이다. 전고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더 이상 공간을 점유할 수 없는 청년세대가 지닐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태도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애인, 담배, 위스키만 있으면 된다는 미소의 노마드적인 삶은 언뜻 현실불가능해 보이는 판타지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는 동시에 과거와 노마드적 삶의 방식을 통해 연결되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Best 7. <피의 연대기> 김보람 2017 

 생리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그리는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김보람 감독은 생리가 역사적으로 여성을 어떻게 억압해왔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는 대신, '더 잘 피흘리는 방법'을 주제로 삼아 생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제목처럼 생리의 연대기를 그리고, 생리를 통해 발생하는 여성 간의 연대를 그리며, '더 잘 피흘리는 방법'을 위한 노력들을 보여준다. 생리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길지 않은 러닝타임 안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 영화는 앞으로 전국민을 위한 성교육 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적절히 배치된 음악과 애니메이션 등의 효과들과 생리에 대한 중요한 포인트들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피의 연대기>는 그야말로 모두를 위한 지식을 담고 있다. 



Best 6. <공사의 희로애락> 장윤미 2018 

 <콘크리트의 불안> 등 단편영화 작업을 주로 해오던 장윤미 감독의 첫 장편영화, <공사의 희로애락>은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를 통해 기억의 기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물질적인 건축물을 손으로 만지며 노동하는 건설 노동자의 기억은, 문서화, 데이터화되며 비물질화 되는 사무 노동자들의 기억과는 다르게 건축물이라는 물질을 통해 존재한다. <공사의 희로애락>은 건설 노동자의 물질화된 기억을 영화 내에서 (재)건축하려는 시도이다. 



Best 5. <우경> 김응수 2017

 최근 김응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극장에 개봉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최근작들은 작은 상영회나 영화제를 통해 극장에서 상영되고, VOD를 통한 온라인 개봉을 한다. <우경> 또한 이러한 방식을 통해 공개된 작품이다. 2017년 인디스페이스 월례비행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었고, 올해 <오, 사랑>, <초현실> 등의 작품과 함께 VOD 공개되었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관람한 <우경>은 김응수 감독이 자신의 마사지사를 촬영한 작품이다. 우경이라는 인물의 생활을 쫓아가는 이 작품은, 어찌 보면 빈곤한 삶을 풍요롭게 담아내는 작품이다. 



Best 4. <클레어의 카메라> 2017

 홍상수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 작품을 내놓은 홍상수는 여전히 흥미로운 영화들을 만들었다. 칸 영화제 기간 동안 김민희,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촬영한 <클레어의 카메라>는, 카메라라는 기계장치를 통해 정진영과 장미희의 두 캐릭터가 김민희의 캐릭터의 시간을 짜맞추고 이를 '정직성'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려 한다. 홍상수의 다른 최근작들인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나 <그 후> 보다는 조금 거친 소품이지만, <클레어의 카메라>는 카메라를 통한 시공간의 탐구에 홍상수가 여전히 매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Best 3. <김군> 강상우 2018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촬영된 한 청년의 사진이 있다. 보수논객 지만원은 그를 북한에서 내려온 군인이라 지목한다. 강상우 감독은 위의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역사 속에서 이름이 사라진 인물들을 스크린 위에서 호명한다. <김군>은 이 과정을 통해 (특히 보수주의자들이 중시하는) 팩트주의의 모순점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소위 '팩트'라고 불리며 사람들에게 주입되는 것들은 과연 사실인가. 영화는 결국 김군을 찾지 못했다는 잠정적인 결말을 맺지만, 이를 통해 역사를 다시 써보려는 시도 자체와 새로운 역사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김군>은 놀라운 작품이다. 



Best 2. <공동정범> 김일란, 이혁상 2016

 <두개의 문>의 후속작인 <공동정범>은 전작과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두개의 문>이 용산참사 당시의 상황을 다층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작품이었다면, <공동정범>은 사건 이후 남은 사람들과의 연대에 주목한다. 사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주요 출연자인 5명 사이의 연대가 "과연 온전한가?"라는 물음을 가지게 한다. <공동정범>이 주목하는 것은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올려 연대를 재봉합하는 것에 있지 않다. <공동정범>이 담고자 하는 것은 '그럼에도 우리가 연대해야 함'을 드러내는 것에 있다. 다시는 모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연대 대신 연대 가능성을 회복하기, 김일란과 이혁상 두 감독은 <공동정범>을 통해 연대에 대한 태도를 재고하게 한다. 



Best 1. <풀잎들> 홍상수 2018 

 <북촌방향>으로 홍상수가 한번 분기점을 가졌었다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부터 이번 <풀잎들>까지 이어지는 김민희와의 협업은 그야말로 새로운 분기점이자 홍상수의 새로운 단계를 보여준다. <풀잎들>은 그 정점에 서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 사이에서 대화를 나누는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김민희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관음적 시선을 통해 제시되며, 이러한 김민희의 두리번거리기는 어떤 통찰을 이끌어내는 대신 어느 곳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현재를 드러낸다. 벗어날 수 없는 폐곡선 안에서 자신의 공간을 측정하고 넓혀보려는 영화 속 인물들의 시도가 <풀잎들>을 보는 관객들과 일치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아직 관람하지 못해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한 영화 
<살아남은 아이> 신동석 
<오, 사랑> <초현실> <신나리> 김응수 
<야광> 임철민 
<벌새> 김보라



  제19회 제주여성영화제에 다녀왔다. 다른 해 같았으면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있었겠지만, 올해는 애인의 단편 다큐멘터리가 제주여성영화제에 초청되어 제주도에 다녀왔다. 그 동안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인권영화제 등 서울에서 열리는 여성영화제에는 관객으로 참여해왔지만, 서울 밖에서 열리는 여성영화제는 처음 찾는 거라 여러모로 기대가 컸다. 게다가 제주도에서 하는 영화제라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영화제 일정과 태풍 '콩레이'의 영향이 딱 겹쳐 하마터면 제주도에 가지도 못할 뻔했다. 원래 5~6일에 제주도에 머물면서 영화제에 참석하고, 6일 저녁에 부산으로 떠나 부산국제영화제에 잠시 들르려 했으나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되고 뱃길도 끊겨 제주도에 주말 내내 머무르게 되었다. 5일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도 40분 가량 지연되었기에, 미리 부산행 비행기를 취소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제주여성영화제는 제주시에 위치한 제주 메가박스에서 진행된다. 오래된 극장이지만, 오래된 극장에서 진행되는 영화제에 가게 되면 느낄 수 있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극장 입구에서부터 영화제를 알리는 입간판과 시간표가 걸려 있었다. 영화제가 진행되는 7층 로비에는 그 날 상영되는 작품들에 대한 소개가 있다. 이 날은 영화제 경쟁부문인 '요망진 당선작' 섹션의 작품들이 상영되는 날이었기에, 애인의 작품인 <다른, 사람> 등의 스틸컷과 영화의 키워드가 소개되어 있었다. 


 여느 영화제처럼 포토존도 있고, 영화제마다 있는 프로그램 북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영화제와는 다르게, 프로그램 북 뒷쪽에 상영되는 영화들의 모든 감독들의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영화제의 참가한 감독들의 얼굴들을 모아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제주여성영화제가 감독들에게 지닌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일요일 다시 찾은 극장에는 폐막작인 아녜스 바르다와 JR의 <얼굴들, 장소들>(국내 개봉제목 보단 원제가 훨씬 좋다...)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 걸려있었다. 영화제 자원봉사자가 수채화로 그린 작품인데, 영화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영화제에서 단편 7편, 장편 1편을 관람했다. 각 영화들에 대한 짧은 리뷰를 아래 쪽에 적어본다.



 <다른, 사람> 김세영 2017 

 이번에 영화제를 찾게 된 이유인 애인의 연출작이다. 이 영화는 강화길 작가의 단편소설 『호수-다른 사람』을 여러 인터뷰이에게 읽게 한 뒤, 그에 대한 각각의 다른 반응들을 담은 작품이다. 소설은 한 여성이 남성과 함께 다니게 된 상황에서 겪는 불안감을 그린 작품인데,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은 소설 속 주인공에 공감하며 같이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고, 반대로 주인공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인공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여성이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크게 가시화된 여성 대상 범죄와 그러한 폭력에 평소에도 불안감을 가져야 하는 여성의 삶에 주목한다.


 <골목길> 오수연 2017

 영화가 시작하면 고등학생인 문영이 어느 골목길에서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성추행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후 영화는 문영과 그녀의 절친인 은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문영은 사건 이후 항상 지나가던 골목길을 돌아서 가게 되는 은채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문영은 은채에게 계속해서 좋아하는 감정을 품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초반의 성추행 장면과 후반부의 고백이 한 영화 안에서 유기적인 서사를 이루지 못하고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주지만,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청소년 퀴어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두 배우의 연기와 감정선 또한 좋았다. 11월에 열릴 서울프라이드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옆길> 김주혜, 이수빈 2018

 체대를 같이 나온 주혜와 수빈은 이제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어딘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낀 둘은 걸어서 서울을 여행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 여행에는 무조건 걸어서만 이동할 것, 축구와 리코더 연주가 함께 할 것, 집에 들어가지 않고 모텔이나 찜질방을 이용할 것 등의 세 가지 규칙이 있다. 이들은 결국 이 여행을 통해 행복을 찾거나 정의내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들의 유쾌한 여정을 보는 즐거움과, 그 동안 <잉여들의 히치하이킹>과 같은 남성들의 셀프-다큐멘터리를 통해 이야기된 여정을 여성의 시선으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자유연기> 김도영 2018

 최근 김도영 감독이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판 연출을 맡게 되며 다시 한 번 화제가 된 작품이다.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많은 관객들에게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제 막 육아를 시작한 전직 배우 지연을 주인공으로 한다. 남편은 여전히 연극일을 하고 있지만, 지연은 아이의 탄생과 함께 연기는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남편은 자신의 일을 핑계로 육아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고, 지연에게 공감해주지도 못한다. 그러던 중 지연에게 유명 감독의 영화 오디션 메일이 온다. 건조한 톤으로 묘사되는 지연의 고된 일상과, 이러한 고통이 자유연기로 승화되는 후반부는 김도영 감독이 왜 <82년생 김지영>의 연출자로 적합한지 알려주는 것만 같다. 비록 후반부에 펼쳐지는 배우의 열연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는 인상이 짙지만, 육아하는 여성의 일상을 극사실주의로 담아낸 영화의 힘은 놀랍다.


 <학교 가기 싫은 날> 김수정 2017

 몇 년 전, '깔창 생리대'를 다룬 기사를 통해 가시화된 저소득층 청소년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주인공인 은정은 아버지 몰래 학교를 결석하는데, 그것은 생리대가 없는 상황에서 생리가 터져 학우들에게 놀림 받았던 기억 때문이다. 영화는 덤덤한 태도로 은정이 겪는 현실을 담아낸다. 다만 영화는 이미 관객들이 접했을 기사의 내용을 영상으로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기만 하다. 재현 그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아역배우 박웅비> 김슬기 2018

 제목대로 아역배우인 박웅비의 이야기이다. 웅비는 같이 연기하는 친구들처럼 우는 연기를 잘 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대사도 척척 외우고, 엄마가 주는 대본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가며 연습하는 모습은 이미 프로 배우이지만, 우는 연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항상 아쉬워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기학원에도 가보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웅비의 생활은 여느 배우의 삶과 다르지 않다. 영화는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해 좌절하고 실패하는 웅비의 모습을 그린다기 보단,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포기 한 뒤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그려낸다. 웅비의 압도적인 연기(영화 속 아역배우들은 모두 본명으로 출연한다)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영화 속 캐릭터의 모습과 실제 배우의 모습을 겹쳐보이게 해 영화의 다양한 결을 불어 넣는다.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이 작품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증언> 우경희 2018

 혜인은 경력증명서를 받기 위해 퇴사한 회사를 오랜만에 찾는다. 찾는 김에 간식값을 떼어 먹은 과장에게 돈을 받아낼 결심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회사에 아직 재직 중인 이 대리에게 성추행 피해에 대한 증언을 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는다. 혜인은 재취업을 위한 면접에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아 고민하지만, 남성 호모소셜로 구성되고 이것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다른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이 대리에게 연대하기로 결심한다. <증언> 또한 <학교 가기 싫은 날>처럼 사건의 재현을 다루는 수준에 그친다. 다면 여성간 연대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 그 것을 드러내는 방식과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를 좀 더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파도 위의 여성들> 다이애나 휘튼 2014

 영화는 낙태가 금지되어 낙태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단체 '우먼 온 웨이브'(Women On Wave)의 활동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단체의 설립자인 레베카 곰퍼츠는 낙태가 금지된 국가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낙태를 돕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낸다. 바로 국경 밖 지역인 국제수역에서 낙태가 합법인 네달란드 국적의 배를 타고 여성들에게 낙태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여성들의 낙태를 돕는 것을 넘어, 낙태를 금지하는 남성 권력자들의 무논리한 논리를 지적하고, 낙태가 불법인 국가들의 여성운동과 전반적인 사회적 의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효과를 낳게 된다. 이들의 활동은 낙태가 불법인 국가들의 여성들을 돕는 웹사이트 '우먼 온 웹'(https://www.womenonweb.org/)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화가 담아내는 이들의 활동은 용기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보여주고,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용기와 연대를 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작년 처음 다녀오고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방문일뿐인 전주영화제 초짜이지만, 전역과 복학 사이 가장 여유로운 시기이기에 7박 8일의 일정을 짜고 28편의 영화를 예매했다. 오랜 기간 머물다 보니 체력적인 문제도 발생하고, 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거리에 약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일정이었다. 5월 4일 출발해 여러 만족스러운 영화들을 즐기며 중간중간 맛집들을 찾으며 쉬었지만, 여러모로 피곤하여 마지막 날 3편의 영화(<네이팜>, <과부 마녀>, <세 마리의 슬픈 호랑이>)는 취소하고 5월 11일 오전 일찍 서울로 올라왔다. 그럼에도 최근의 영화제들 중 가장 안정적인 라인업을 선보인 회차이기에 소위 '지뢰'작은 많지 않았다.(남들은 하나도 없었다는데 나는 왜 지뢰가 3개나 있었을까) 이래저래 즐겁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던 영화제였기에, 다음부터는 전주영화제 일정을 5일 이상 계획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번 영화제에서 관람한 작품들의 간단한 후기를 남긴다.


1일차: 5월 4일 

<스탈린의 죽음> 아르만도 이아누치 2017 

 한 남자가 뇌출혈로 쓰러진다.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은 의사를 부르는 대신 가식적인 슬픔을 보이며 앞으로 각자의 거취를 걱정한다. 쓰러진 사람의 이름은 스탈린, 소련의 독재자이다. 영화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쓰러지고 사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탈린의 사망 이후 그의 최측근들이 벌이는 권력투쟁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아르만도 이아누치는 이를 날이 선 정치 스릴러로 그려내는 대신 블랙코미디를 택한다. 온갖 육두문자와 황당한 상황들, 웃지 않을 수 없는 슬랩스틱이 107분의 러닝타임 동안 펼쳐진다. 우스운 만큼 살벌하며, 살벌한 만큼 비웃음이 나오는 영화 속 광경은 스탈린 체제 하의 소련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으며 그렇기에 공포스러웠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스티브 부세미, 사이먼 러셀 빌, 제프리 탬버, 제이슨 아이삭스, 올가 쿠렐린코 등의 코미디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 


<24 프레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7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유작인 <24 프레임>은 그가 무빙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로서의 열망을 담은 4분 30초짜리 단편 24편을 연작 형식으로 묶은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회화 작가는 단일 프레임 안에 이야기를 담지만, 영화 작가는 24 프레임의 무빙 이미지를 열망한다”라는 자막이 뜬다. 영화의 첫 파트는 어느 겨울 산골 마을을 담은 그림으로 시작한다. 멈춰있는 그림 속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순간 관객은 영화 프레임 속 움직임에 주목하게 된다. 뒤이어 강아지, 까마귀 등이 움직이고 눈이 내리고 소리가 난다. 여기서 관객은 카메라도 움직이지 않는 아주 단순한 무빙 이미지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내러티브를 구성해낸다. 이어지는 영화의 다른 프레임들도 마찬가지다. 관객은 고정된 카메라가 담아내는 무빙 이미지들 속 운동성을 관찰하면서 그 안에서 내러티브를 도출해낸다. 최초의 영화(뤼미에르)를 연상시키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마지막 작품은 무빙 이미지 그 자체에 대한 그의 열망으로 가득하다. 


<프로토타입> 블레이크 윌리엄스 2017 

 1990년 텍사스를 강타한 허리케인이 남긴 사진과 영상 등의 잔해를 3D로 컨버팅하고 그걸 SF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인데 3D로 펼쳐지는 오래된 영상들과 플리커의 향연, 전송되는 신호를 영상화한 것 같은 일렁이는 이미지들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2일차: 5월 5일 

<낯선 자들의 땅> 오원재 2017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철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귀휴를 나오게 된다. 다시 돌아온 고향은 원전이 폭발하여 제한구역이 되어 있고, 형인 찬은 피폭 구역 안에서 식량 등을 구해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원전이라는 소재에 홀려 예매한 작품이지만, 정작 작품이 중요시하는 것은 누명을 쓰게 된 철이 직접 범죄를 저질러 넣고 종교인이 된 나성을 대면하는 것이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원전 사건은 그들에게 절박한 상황을 부여하는 장치로만 기능할 뿐이다. 때문에 <낯선 자들의 땅>은 익숙하고도 지겨운 종교적 속죄에 관한, 조악한 또 한 편의 이야기일 뿐이다. 


<누가 총을 쐈는지 궁금해?> 트래비스 윌커슨 2017 

 트래비스 윌커슨은 자신의 증조부가 저질렀던 인종차별적 범죄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것의 계기는 흑인 소년을 살해한 경찰 조지 짐머맨의 무죄 선고였다. 증조부의 범죄를 파고들던 그의 조사는 인종차별 범죄, 성차별적 범죄들이 어떻게 벌어졌으며, 백인 남성인 자신의 증조부와 흑인 남성/여성인 피해자들과 그가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영화는 영화 <앵무새 죽이기>, 감독 증조부의 홈 무비, 감독이 직접 촬영한 푸티지와 인터뷰, 다양한 자료영상, 어느 인권운동가를 기리는 포크송 등 다양한 영상과 사운드를 동원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감독 본인의 내레이션은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며 1940년대에서 60년대에 이르는 인종차별, 그리고 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성적 폭력에 대해 서술한다. 너무 많은 내레이션이 조금은 버겁기도, 지루하기도 하지만 관객은 트래비스 윌커슨과 함께 그의 증조부가 저지를 차별괴 폭력의 역사를 파헤친다는 영화의 설정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더 큐어드> 데이빗 프레인 2017 

 메이즈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고, 감염되어 좀비로 변함 사람들이 도시를 초토화시킨다. 시간이 흘러 치료제가 개발되고 감염자의 75%가 회복된다. 하지만 감염 당시의 기억은 지울 수 없다. <더 큐어드>는 익숙한 좀비 영화의 서사를 벗어나, 좀비 세상 그 이후를 그리려고 한다. 영국 드라마 <인 더 플레쉬> 등에서 앞서 시도된 바 있는 이야기다. 영화는 꽤나 현실적인 톤으로 사건에 접근한다. 치료된 사람들은 사회로 복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비감염자들은 그들을 살인마라 부르며 차별한다. 결국 코너라는 감염자가 테러를 감행하기에 이른다. <더 큐어드>의 이야기는 다양한 현실 속 차별에 기반을 둔다. 난민, 인종, 성 소수자(메이즈 바이러스 그 이루를 다루는 몇몇 모습은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상시키고, 등장인물 중 몇이 퀴어로 등장하기도 한다) 등에 대한 차별이 이야기 속에서 연상된다. 좀비 영화의 장르적인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한 클라이맥스로 서사가 돌진하기만 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특히 엔딩의 허망함이 그렇게 다가온다), 현실에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벌어질 사건들이 나열되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어떤 상상력을 제시하고 일정 부분 성공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이며 좀비 영화의 팬이라면 즐겁게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 아닐까? 


<한나> 안드레아 팔라오로 2017 

 체력 문제로 초반부를 조금 졸았지만, 이 영화로 베니스 여자연기상을 수상한 샬롯 램플링의 놀라운 연기가 돋보인 작품이다. 그가 연기한 한나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남편이 감옥으로 수감되고 외로운 생활을 이어가는 인물이다. 그가 연기수업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자식과 불화가 있는 모습, 가정부로 일하는 모습, 홀로 남은 집에서 말없이(종종 <한나>는 샬롯 램플링의 표정과 육체로만 이루어진 무성영화 같다는 느낌을 준다) 생활하는 모습 등을 보여준다. 외로움과 무력함 속에서 살아가는 노년 여성의 육체와 표정이 안드레아 팔라오르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가 아닐까? 관객은 한나를 쫓아가는 카메라를 통해 삶 속에서 벌어지는 불가항력적인 사건과 시간을 경험하고, 끝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나이 든 육체를 직시하게 된다. 러닝타임 내내 관찰의 장소였던 지하철이 프레임 속으로 광폭하게 침투하여 한나의 육체를 싣고 사라지는 순간의 강렬한 무력감은 <한나>가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를 단박에 설명하는 듯하다.


3일차: 5월 6일

<겨울밤에> 장우진 2018 

 <춘천, 춘천>에 이어 장우진 감독이 자신의 고향인 춘천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겉으로 보이는 틀은 전작과 유사하다. 영화는 춘천을 배경으로 중년의 커플과 20대 커플이 어떤 공간을 공유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려낸다. 묘하게 홍상수의 향기가 나는 이 작품은 중년의 커플을 분열시키고 20대 커플을 그들의 과거인 것처럼 설정함으로써 시공간의 연속성을 만들어낸다. 분열된 중년의 커플 중 남자는 옛 추억(사랑)이라는 유령을 쫓아다니고, 여자는 20대 커플과 장소를 공유하며 자신을 회복한다. 기묘하게 접착된 두 커플의 시간은 봉합인지 분열의 유지인지 알 수 없는 중년 커플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판타지아> 제임스 알가 외 10명 1940 

 디즈니의 <판타지아>는 개봉 당시 난해하다는 혹평과 함께 흥행에 실패했던 작품이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지휘 아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8개의 프로그램에 맞춰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콘서트처럼 펼쳐지는 작품이기에 그러한 평이 일부 이해는 가지만,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보고 있자면 시청각적인 황홀경에 이르러 그저 스크린을 볼 수밖에 없다. 바흐 ‘토카타와 푸카 D단조’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조곡’ 등 익숙한 클래식 음악들과 어우러지는 애니메이션들은 때로는 추상적이고 때로는 이야기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음악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쇼가 이제는 익숙할지도 모르겠지만, 초기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운동(행군과도 같은 캐릭터들의 행렬)과 사운드트랙을 시각적으로 등장시키는 유머 등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는 디즈니의 걸작은 그저 감동적일 뿐이다. 


<사라와 살림에 관한 보고서> 무아야드 알라얀 2018 

 사라는 이스라엘 여자고 살림은 팔레스타인 남자다. 둘은 각자 가정이 있지만 둘은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건으로 인해 살림이 체포되고, 위기가 찾아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라와 살림에 관한 보고서>는 제목 그대로 보고서를 읽는 것만 같은 작품이다. 동/서 예루살렘으로 갈라져 있는 두 민족은 단순한 치정극으로 끝날 이야기에 독특한 결을 부여한다. 살림의 체포로 인해 사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에 얽힌 문제로 확장되고, 사라와 살림 그리고 사라의 남편인 이스라엘 육군 대령 다비드와 임신한 살임의 아내 비산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사건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붙잡으려 행동한다. 치정극이기에 굉장히 감정적인 작품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무덤덤하게 느껴질 정도로 네 인물을 쫓으며 이를 기록한다. 네 인물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초반부(특히나 지역적인 관계를 잘 모르는 관객에게는 더더욱)는 살짝 지루하긴 하지만, 각자의 인물이 주어진 상황 안에서 무엇이 최선인가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후반부는 답답한 그곳의 현실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4일차: 5월 7일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 극장판> 구로사와 기요시 2017 

 <산책하는 침략자>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드라마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를 극장판으로 재편집한 작품이다. 독특하게도 드라마의 전체 분량보다 조금 긴 140분의 러닝타임을 지닌 작품이 되었다. 이는 몇몇 장면이 추가되었기 때문인데, 몇 캐릭터의 꿈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특유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연출이 어떤 정점에 달한 이 작품은 기존의 영화판 <산책하는 침략자> 보다 더욱 기요시의 정점에 선 작품으로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개념의 공유 가능성과 불안감을 동시에 드러내며 마무리된 영화판과 유사하면서도 조금 더 비관적으로 보이는 <예조>의 엔딩은 공포스럽다. 


<덤보> 사무엘 암스트롱, 노만 퍼거슨 1941 

아주 어렸을 때 봤던 기억만을 가진 채로 디즈니의 고전들을 다시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경험이다. 그때는 몰랐던, 혹은 잊어버렸던 영화 속 요소들이 새롭게 다가오며 더더욱 열광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아마 유치원 때 이후 처음 보는 것만 같은 <덤보>는 후자에 가까웠다.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 직전에 개봉한 <덤보>는 동물학대, 인종차별, 장애 등의 요소들을 담은 착한 애니메이션의 겉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서커스단 안에 머무는 온건한 엔딩과, 그것과 함께 제시되는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덤보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보고 있자면 디즈니가 2차 대전 당시 수많은 선전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밖에 없다. 


<녹색 안개> 가이 매딘, 에반 존슨, 게일런 존슨 2017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는 이후 등장한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가이 매딘과 존슨 형제의 신작 <녹색 안개>는 <현기증>과 같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 및 TV 프로그램들의 푸티지를 모아 <현기증>을 재구성한다. 다양한 푸티지들의 장면들을 모아 <현기증>의 시퀀스를 유사하게 재현하고, <현기증>의 유명한 녹색과 샌프란시스코의 안개를 결합하여 시공간을 묘하게 뒤트는 이미지들로 <현기증>을 재해석한다. <녹색 안개>에는 히치콕의 <현기증>과 <새>를 비롯한 고전영화부터 <더 록>, <고질라>(2014), <샌 안드레아스> 등 현대 블록버스터를 아우르는 다양한 영화들의 푸티지가 등장한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 다른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시공간의 결합은 영화를 통해 한 지역 자체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로 읽히기까지 한다. 동시에 <현기증>이라는 맥락만 파악한다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매우 시네필리한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스틸컷의 장면은 영화 속의 장면이 아닌, 영화 상영과 연주가 동시에 진행된 <녹색 안개> 상영회의 사진이다. 


<추방자들의 대화> 라울 루이즈 1975 

 이번 전주영화제 특별전을 통해 라울 루이즈의 영화를 처음으로 관람하게 되었다. 처음 접한 라울 루이즈의 <추방자들의 대화>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파리로 망명 온 칠레 좌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와 극의 경계에 서있다. 촬영자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등장인물들은 종종 카메라를 쳐다보며 촬영자에게 말을 걸거나 인터뷰를 하고, 촬영자가 인물들에게로 손을 뻗기도 한다) 이 작품은 라울 루이즈 본인이 칠레에서 파리로 넘어오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영화가 제작된 당시 칠레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더욱 풍부하게 다가올 영화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5일차: 5월 8일 

<비스비 1917> 로버트 그린 2017 

 1917년 7월 12일, 멕시코 국경에서 고작 11km 남짓 떨어진 마을 비스비에서 대규모 추방이 일어난다. 비스비 추방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1차 세계대전 당시 구리를 텅해 큰 수익을 올리던 광산회사가 인금인상, 안전 노동 등을 주장하며 파업한 노동자들을 국경지대의 사막으로 추방시켜 버린 사건이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파업 지지자 등 2천여 명의 남성이 추방되었고, 지방정부가 관여하고 보안관 대행이 주도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이민자였기에 비스비 추방은 일종의 인종청소이기도 했다. 로버트 그린은 비스비 추방 100년을 맞아 이를 기억하고자 하는 비스비 마을 주민들의 활동을 따라간다. 주민들은 사건을 2017년의 비스비에서 재연함으로써 사건을 기억하고, 연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다. 사건 당시 마을에 남았던 이민자의 후손과 사건 이후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재연에 동참하고, 자세히 알지 못했던 역사를 기억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더욱이 재연에 참여하는 주민 중에는 어린이와 청소년도 눈에 띄어, 이들의 경험이 앞으로 어떤 미래의 비스비를 만들게 될지 궁금해진다. 재연은 노동자와 회사가 각각 파업과 추방을 준비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마을 곳곳에서 벌어진 체포와 추방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총 6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영화는 이것의 준비과정과 재연된 사건, 비스비 추방에 대한 기존의 기억과 재연 이후 달라진 주민들의 생각을 담아낸다. 여기서 재연을 담는 방식이 흥미롭다. 주민들이 재연하는 비스비 추방은 마치 극영화 같은 모습인데, 주민들은 마을 전체를 무대로 고용된 배우들처럼 연기하며 여러 대의 카메라가 이들을 쫓으며 촬영한다. 카메라에는 연기하는 주민들과 다른 방향에서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1917년과는 다른 2017년의 마을 풍경(자동차나 상점의 물건 등)이 프리임 속에 모두 담기게 된다. 때문에 이러한 재연이 극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기획한 사건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상기된다. 이를 통해 <비스비 1917>은 잊히도록 의도된 역사를 다시 기억하고, 공유하고, 교육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하이파 알 만수르 2017 

 최근 몇 년 간 가장 흥미로운 필모그래피를 지닌 배우를 꼽으라면 엘르 패닝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거장부터 신예까지 다양한 감독들의 영화에서 활약해온 엘르 패닝은 이번에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를 연기했다. <매리 셸리>는 엘르 패닝에 필모 그래피에서 ‘그래, 이런 작품 하나 없으면 섭섭하지’를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19세 영국의 여성 작가라는, 시대적으로 척박한 상황에 놓인 인물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이번 영화는 익숙한 전기영화의 서사를 따르며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메리가 집을 떠났을 때부터 [프랑켄슈타인]을 내기까지의 2년이다. 시인 퍼시와 사랑에 빠져 집을 떠난 메리는 2년 동안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하며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버려진 개인으로서 보낸 시간이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냈으며, 메리는 이것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후회는 없으며 자신의 재능의 결과물이 타인의 이익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후반부는 점점 성장하는 엘르 패닝의 연기와 서사가 주는 메시지가 맞물려 꽤나 폭발적인 감정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 러닝타임에 비해 조금은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전기영화의 전형성을 정직하게 따라가는 방식을 택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레모네이드> 이오아나 유리카루 2018

 루마니아에서 미국으로 취업 온 마라는 미국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영주권을 취득하려 한다. 그러나 이민국의 담당자는 마라와 남편의 사랑이 진정성이 없으며, 영주권을 받고 싶다면 성관계를 하라 요구하고, 경찰은 루마니아에서 건너온 아들을 잠시 홀로 두었다는 이유로 아동 유기죄를 적용하려 한다. <레모네이드>는 언뜻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연출한 션 베이커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비가시화된 인물을 조명하고, 그들의 시점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지역과 미국이라는 국가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션 베이커에 비해 착취적으로 느껴지는 몇몇 장면, 필요한 정보량에 비해 늘어지는 몇몇 장면은 아쉽게 느껴진다. 


<블루벨벳 돌아보기> 피터 브라츠 2016

 데이빗 린치의 <블루벨벳>을 촬영 당시의 비하인드 푸티지와 스틸컷, 감독이 직접 린치와 나눈 대화 등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린치적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이 영화는 여러모로 실패적이다. <블루벨벳>을 재구성하거나 재해석하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고, 린치스럽다라기엔 겉핡기 식으로 몇몇 사운드트랙의 활용과 편집에만 린치스러움이 방점을 찍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블루벨벳>의 DVD 부가영상을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앞서 린치적 다큐멘터리 만들기를 표방하며 <이레이저 헤드> 이전의 데이빗 린치를 그려낸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에 비해서도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린치의 팬이 만든 습작 같다는 느낌을 도저히 지우기가 힘들다. 



6일차: 5월 9일 

<황금 보트> 라울 루이즈 1990

 영화를 30분 정도보다 나왔다. 영화가 안 좋아서가 아니라 어제 밤새 마신 맥주 때문인지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숙소에 가서 쉬었다. 앞부분 30분 정도만 본 <황금 보트>는 상당한 괴작이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괴상한 강박증을 가진 노숙자이자 흉악범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아낸다. 하지만 사건이라기엔 30분 동안에도 일관되게 이어지는 내용도 없고, 노숙자가 이스라엘을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헛소리들을 늘어놓는다는 것이 전부다. 라울 루이즈는 자신이 뉴욕에 가지고 있는 어떤 경멸감을 담아내려 했던 것일까? 여러모로 미국과 프랑스의 범죄영화들을 연상시키는 패러디 작품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통행증> 크리스티안 팻졸트 2018

 파리로 망명 온 독일인들은 점점 다가오는 나치를 피해 마르세유로 도피한다. 그러나 그곳에도 나치가 도착하기에도 얼마 남지 않자, 비자와 통행증을 발급받아 해외로 떠나려 한다. 나치라는 언급 때문에 <통행증>이 2차 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놀랍게도 영화는 현대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삼는다. 나치들은 현대의 전투경찰 제복을 입고 등장하고, CCTV 화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통행증>이 나치가 패망하지 않은 대체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나치의 얘기를 현대의 배경에서 할 뿐이다. 이러한 방식 때문에 현재의 난민 문제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공명하며 <통행증>만의 독특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대범함을 우아함으로 승화시키는 크리스티안 팻졸트의 연출이 놀랍기만 하다. 동시에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희망의 건너편>과 같은 과도한 휴머니즘 등으로 빠지지 않고(물론 나는 <희망의 건너편>도 좋아한다), 오롯이 필요한 이야기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통행증>이 더더욱 흥미롭다. 


<노나> 카밀라 호세 도노소 2018

 과거의 연인의 집에 화염병을 던짐으로써 복수한 63세의 여성 노나는 작은 해안가 마을에 내려와 살아간다. 그가 내려온 이후 마을에는 원인불명의 연쇄방화가 일어나고, 주민들은 그를 의심하지만 노나는 재창조라는 신념에만 충실할 뿐이다. 이와 같은 시놉시스를 보고 생각되는 영화와는 여러모로 다은 작품이었다. 노나의 재창조가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없고, 8mm 홈비디오와 같은 촬영과 와이드 비율의 촬영이 번갈아 등장하는 형식은 산만하기만 하다. (그 와중에 타이틀 시퀀스는 비스타 비율이다) 역시 전주영화제를 찾았던 카밀라 호세 도노소 감독의 전작 <클럽 로셸>은 퀴어 다큐멘터리로서 호평받았지만, 극영화인 이번 작품은 아쉽게 느껴진다. 



7일차: 5월 10일 

<가상의 기억> 라울 루이즈 1986

 주인공은 친구와 극장을 찾는다. 극장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주인공의 모습과 상영되는 영화 속 영화가 번갈아가며 <가상의 기억>이라는 영화를 채운다. 영화는 주인공이 관람하는 SF, 시대극, 범죄영화 등을 계속해서 삽입한다. 영화 속 영화들은 주인공의 영화 경험 및 감정과 동화되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화 속 영화와 극장에 있는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사건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극장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조차 영화적이다. 극장 안에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자전거를 탄 사람이 돌아다니고, 이상한 헤드폰을 쓴 사람이 객석에 앉아있으며, 스크린 뒤편에는 경찰서가 있고 심지어 객석에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페드로 칼데론의 희곡 <인생은 꿈>을 느슨하게 각색한 이 작품은 희곡의 내용을 영화 속 영화로 삽입시키고, 주인공은 희곡 전체를 암기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희곡의 내용과 유사한 사건들이 주인공에게 이어지면서, 그는 정해진 운명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가 취한 독특한 방식은 영화적 장치를 통해 원작이 품은 자유의지를 보여준다. 꽤나 복잡하고 난해한 방식이지만, 그것이 영화적으로 매력적인 것임은 틀림없다. 


<바로네사> 훌리아나 안투네스 2017

 주인공은 브라질의 슬럼가에서 살고 있다. 남편이 투옥되어 홀로 아이를 기르는 여성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생활과 섹스에 대한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주변엔 마약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갱단들이 있다.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진 않지만, 대사와 마약의 존재, 외화면 사운드 등을 통해 갱단의 존재는 계속해서 가시화된다. 무덤덤할 정도로 그들의 일상을 쫓는 카메라는 딱 한 번 거칠게 흔들린다. 아마도 촬영 중 예기치 않게 들여온 실제 총소리 때문일 것이다. 영화 내내 간접적으로 드러나던 갱들의 전쟁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관객에게 가시화되는 순간이다. 영화의 마지막 슬럼가를 떠나 한적한 바로네사에서 집을 짓고 있는 주인공이 고단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시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감정적으로 다가온다. 


<항해사의 3 크로네> 라울 루이즈 1983

 <항해사의 세 개의 왕관>이라는 번역제는 틀렸다. 영화 속에서 왕관은 등장하지 않고, 극의 화자인 항해사가 언급하는 3 덴마크 크로네(crown)가 등장할 뿐이다. 영화는 살인을 저지른 학생이 우연히 항해사를 만나 3 크로네에 그가 항해하며 겪은 이야기를 밤새 듣는다는 것이 그 줄거리이다. 항해사의 여정은 천일야화처럼 느껴지는데, 범죄영화에서 볼 법한 익숙한 이야기부터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영적인 사건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항해사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흑백으로 진행되는 대학생&항해사의 장면과 컬러로 진행되는 항해사의 이야기 장면의 대비는 이야기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누아르 영화부터 바로크 양식까지 다채로운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항해사의 3 크로네>는 스토리텔링의 유희적이면서도 우아한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혼란스러운 항해사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미지들을 보고 있자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유예된 소명> 라울 루이즈 1978 

 1942년과 1960년에 각각 만들어진 <유예된 소명>이라는 작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엮은 영화다. 때문에 같은 이름의 인물, 유사한 배경, 같은 이야기가 다른 배우의 연기와 흑백 및 컬러 화면으로 나뉘어 이어진다. 영화는 종종 두 영화의 같은 장면을 연달아 붙이거나, 흑백에서 패닝 하여 컬러의 같은 장면으로 이어 붙이는 등의 방식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두 영화 속에 평행하는 두 세계가 하나로 봉합되는 듯하지만, 끝내 봉합될 수 없는 두 세계의 모습이 라울 루이즈의 <유예된 소명> 안에서 그려진다. 이는 1942년과 1960년의 영화가 애초에 다른 목적을 지니고 만들어진 같은 내용의 작품이라는 오프닝 자막에서부터 예견된 게 아닌가 싶다. 교회와 수도원의 미로 같은 건축 속을 돌아다니는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그 미로들을 봉합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며 라울 루이즈는 이러한 불가능성을 포착하려 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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