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스 굿 맨> 아서 존스 2020 :: 영화 보는 영알못

 밈(meme)은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지만, 그가 정의한 것과 지금의 밈은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닌다. 도킨스가 정의한 밈은 “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이다. 그는 밈이 유전자처럼 전달되며, 전이, 경쟁, 자연선택 등의 과정을 거치며 진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문화적 유전자 있음을 상정하고 그것을 다윈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 밈인 셈이다. 지금의 밈은 인터넷 용어에 가깝다. 짧은 텍스트가 붙은 이미지나 몇 초 내외의 짧은 영상, 혹은 특정 문구나 제스처는 일종의 문화적 코드를 구성하며 온라인 상에서 유통된다. 2010년대 전후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한 SNS를 통해 인터넷 밈은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다. 밈은 이제 어디에나 있다. 꼭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타임라인 혹은 유튜브의 영상이 아니더라도, 밈은 TV 프로그램에, 영화와 드라마에, 심지어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개인 간 대화에도 있다. <릭 앤 모티>를 필두로 한 어덜트 스윔의 애니메이션이나 <팜 팀 에픽>처럼 밈 덩어리에 가까운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밈은 단순히 웃기거나 쿨한 이미지가 아니라 어떤 진화과정 중의 놓인 생명체나 다름없다.

 <필스 굿 맨>은 밈의 생애를 다룬다. 2007년 즈음 미국의 인디 작가 맷 퓨리는 [보이즈클럽]이라는 만화를 제작한다. 그 만화는 개구리 등을 의인화한 캐릭터들이 실없는 화장실 유머를 주고받는, 그러니까 대학교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 여느 코미디 영화나 시트콤들과 다를 바 없는 작품이었다. 퓨리는 자신의 만화를 스캔해 마이스페이스에 공유했다. [보이즈클럽]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개구리 페페가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오줌을 눈 뒤, “Feels Good Man”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페페가 “Feels Good Man”이라 말하는 컷이 잘려나가 우리가 아는 개구리 페페 밈이 된다. 처음엔 헬스 마니아들이 운동 이후 “Feels Good Man”이라 덧붙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이 우연히 익명 기반 커뮤니티 사이트인 포챈(4chan)에 흘러들어 가고, 어느새 채색까지 된 개구리 페페의 이미지는 다양하게 변형되어 유통된다. 페페 밈이 생명력을 얻고 진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포챈은 니트족(NEET, 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이다. 이들은 스스로 누가 더 루저인지를 경쟁하듯 자신의 밑바닥 인생을 전시하고, 그 과정에 다양한 밈이 동원된다. 페페는 포챈 유저들을 상징하는 밈에 되었다. 포챈 유저들은 케이티 페리나 니키 미나즈 등의 셀럽들이 페페 밈을 사용한 뒤 인싸(Normie라는 단어로 자막 번역은 ‘일반인’이었지만 ‘인싸’가 조금 더 정확한 맥락을 표현한다고 생각된다)들에게 페페 밈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윽고 “Kill The Normies”는 포챈의 새로운 밈이 되었고, 몇 번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포챈 유저들은 페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페페에 반유대주의, 동성애혐오, 성차별, 반이슬람 등의 상징을 덧붙인다. 그럴 때마다 포챈 유저들은 환호한다. 그 끝에 트럼프의 등장이 있다. 트럼프의 대선출마 연설은 그가 곧 포챈 유저들의 대통령임을 확인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들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행동한다. 미국 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극우매체 인포머스 등 또한 페페 밈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영화에 등장한 트럼프 캠프 관계자는 아예 밈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당당하게 밝히기도 한다. 그렇게 트럼프는 당선되었고, 개구리 페페는 극우주의자의 상징이 되었으며, 혐오기호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다. 이에 맷 퓨리는 [보이즈클럽]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그려 페페를 사망처리한다. 

 <필스 굿 맨>은 이 과정을 쫓는다. 개구리 페페는 어떻게 극우주의, 미국 대안우파의 상징이 되었는가? 왜 맷 퓨리는 페페를 사망처리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 과장에서 드러나는 것은 밈이 변형되고 유통되는 과정이다. SNS 초창기부터 활용되기 시작한 개구리 페페 밈을 인터넷 역사상 가장 오래 유통된 밈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페페는 우연히 포챈 유저들의 상징이 되었고, 우연히 혐오상징이 되었고, 우연히 트럼프의 모습과 겹쳐지게 되었다. 원작자인 맷 퓨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이미 본연의 의미가 사라진 가상의 캐릭터를 사망처리하고 그것을 사용한 대안우파들의 포스터 등의 판매를 막는 소송을 벌이는 것뿐이다.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밈 이용자들의 생각을 빨아들이며 변형되는 원작자가 저작권을 이유로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히토 슈타이얼은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하며]에서 에세이영화나 무빙이미지 작업과 같은 비상업적 영화들이 우부웹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부활하게 되었다며, 그러한 비상업적 영화, 이미지들이 ‘빈곤한 이미지’로 부활하고 유통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슈타이얼은 이렇게 유통되는 저화질의 열화된, 재편집된 이미지들이 “물질을 잃고 속도를 얻으며” 새로운 역량을 획득한다고 보고 있다. 슈타이얼은 글의 말미에서 지가 베르토프의 ‘시각적 유대’를 언급하며 빈곤한 이미지에서 그것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슈타이얼의 분석은 개구리 페페와 같은 밈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논리를 밈에 적용시킬 여지는 충분하다. 게다가 애초에 개구리 페페는 맷 퓨리의 예술품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가. 

 밈은 열화되고 재편집된 빈곤한 판본으로 유통된다. 슈타이얼이 명명한 빈곤한 이미지와 같이 그것은 불법복제되고 도용되며 그것 자체를 유통 과정으로 삼는다. <필스 굿 맨>은 개구리 페페의 수많은 빈곤한 판본을 보여준다. 개중의 어떤 판본들은 재창작되어 새로운 원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개구리 페페가 은근한 미소를 띄며 턱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판본이 그러하다. 누구나 따라 그리기 쉬운 개구리 페페의 모습은 그 자체로 변형 가능성을 지닌다. 그것엔 무엇이든 덧붙여질 수 있으며, 포챈에서 페페의 친구처럼 등장시킨 다른 밈 보잭(Wojak)이 결합되기도, 혹은 하켄크로이츠나 반이슬람적 이미지가 덧붙여지기도 한다. 그 유통과정에서 개구리 페페 밈은 포챈 유저들의, 대안우파들의 시각적 유대를 형성한다. 슈타이얼과 베르토프가 말한 시각적 유대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지만, 그것이 어떤 변화의 역량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밈이 지닌 시각적 유대의 역량은 빈곤한 이미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엄청난 속도와 강도를 지닌 밈의 역량은 물질적인 것에 기반한, 이를테면 현실정치, 시민운동, 인권운동, 예술 창작, 상품 경제 등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그것의 물질적인 결과에 가깝다. 

 <필스 굿 맨>은 밈의 속도를 보여준다. 어느 포챈 유저는 대선 캠페인 중인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 현장에 참석한다. 그는 그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포챈에 올린다. 익명의 포챈 유저들은 그가 “페페~!”라고 소리치길 원한다. 그는 연설을 이어가는 힐러리 앞에서 “페페~!”를 외친다. 그것은 힐러리의 연설을 촬영하는 TV와 포챈 스레드를 통해 생중계된다. 모든 것은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이에 앞서 영화는 어느 총기난사범이 페페와 결합된 밈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싸’들에게 총을 쏜 총기난사범은 그것이 보도됨과, 아니 그것이 뉴스속보로 보도되는 것과 동일하거나 더 빠른 속도로 개구리 페페 밈과 결합된 형태의 밈으로 제작되고 유통된다. 분석과 대응은 그것을 쫓아가지 못한다. 때문에 <필스 굿 맨>은 밈의 속도와 강도가 지닌 역량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음을 무기력하게 시인하는 것과 같다. 맷 퓨리는 인포머스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리하지만 개구리 페페를 혐오기호 데이터베이스에서 내리진 못한다. 그는 페페가 그의 손을 떠난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기력하게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다.

 무기력한 것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보이즈클럽]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사이키델릭한 애니메이션을 동원하고 온라인 상에서 밈이 활동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화려한 편집이 이어지지만, 이 영화는 왜 페페코인이란 암호화폐가 등장해 그것으로 람보르기니를 끌고 다닐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지, 그것이 왜 홍콩에서는 민주주의와 학생운동의 상징이 되었는지 쫓아가지 못한다. 영화가 온전히 쫓아갈 수 있는 것은 사후적인 것, 개구리 페페의 시작부터 맷 퓨리의 몇몇 소송과정까지 뿐이다. 그러니까 <필스 굿 맨>은 개구리 페페를 미국 내 대안우파의 상징으로만 다루며 그것이 수구적이며 반동적인 상징물로 원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용되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고, 맷 퓨리의 시점에서 가능한 경쾌한 톤으로 그 애처로움을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개구리 페페가 왜 암호화폐가 되었는지, 수구적인 상징물이 어떻게 혁명의 상징으로 변모했는지 밝혀낼 수 있는 시각은 이 영화에 없다. 사실 그것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한 밈 연구자들 또한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페페 및 페페와 연관된 밈이 1년 동안 1억 6천만 개가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밝혀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변모할지는 알아낼 수 없다. 

 때문에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인터뷰이로 등장한 오컬트 학자였다. 책장에서 염력으로 책을 꺼내드는(!) 모습을 보여주며 등장한 그는 앞뒤로 등장한 밈 연구자나 심리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건네지만, 심리학이나 통계학적 영역이 아닌 비과학적 영역의 전문가가 발화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블로그 이웃분의 글(https://blog.naver.com/likeacomet/222195206141)에서 “대안 우파 온라인 서브컬처의 ‘영성’에 가까운 정치성”을 언급하는데, 오컬트 학자가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오컬트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가 축적해온, 도킨스적인 의미와 현대의 용례를 포괄하는 밈을 연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개구리 페페와 같은 밈의 생애를 쫓는 과정에서 그것의 진화 과정을, 그것의 역량을 단순히 심리학적 기제나 통계적 수치로만 판단하는 것은 페페 밈의 개수를 하나하나 손으로 세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필스 굿 맨>은 그런 행위를 함과 동시에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밈의 행로를 쫓는 가능한 방법을 찾는 힌트를 슬쩍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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