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우리2> 양재준,이나연,이준섭,여장천 2020 :: 영화 보는 영알못

 <오늘, 우리 2>는 단편영화를 주로 배급하는 독립영화 배급사 필름다빈에서 배급하는 단편영화 4편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2019년 조은지, 부은주, 송예진, 곽은미 네 감독의 단편영화를 묶어 <오늘, 우리>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이후 두 번째 사례다. 이전에도 단편영화들을 묶어 옴니버스 영화의 형태로 개봉한 사례는 많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시선> 시리즈나 통일부의 지원으로 제작된 <우리 지금 만나>, <쓰리 몬스터> 혹은 <인류멸망보고서>와 같은 장르영화처럼 대부분의 경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작품들의 묶음이었다. 반면 필름다빈에서 배급한 <오늘, 우리> 시리즈의 경우 영화제의 단편상영 섹션을 고스란히 극장에 개봉시키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우리는 New 노멀 패밀리입니다”라는 포스터의 문구처럼 유사한 테마를 공유하긴 하지만, <오늘, 우리> 시리즈의 영화들은 전혀 다른 목적과 상황 속에서 제작된 별개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들 간의 연결성이나 통일성은 다소 떨어지고, 종종 전혀 다른 영화들을 묶어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 2>에 속한 네 편의 영화를 하나로 묶어 어떤 평을 한다는 것은 꽤나 곤란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제나 소수의 상영회를 통해서만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단편영화들이 극장에 정식개봉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첫 번째 작품인 양재준의 <낙과>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서른 살 아들과 일하던 마트에서 나이를 이유로 퇴직하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다. 일이 없는 아버지는 아들이 공부하는 도서관을 찾는다. 아버지는 도서관의 비치된 컴퓨터로 고스톱을 치거나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아들은 인터넷 강의를 듣고 이런저런 공부를 이어가지면 시험에서 또다시 떨어진다. 아들은 도서관 앞의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주워가는 노인들과 그들을 타박하는 경비원을 목격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 살구 열매들을 주워 온 사실을 보고 아버지를 타박한다. <낙과>는 이혼한 뒤 전 아내 및 딸과의 관계가 소원한 아버지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그런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들의 이야기다. 아들은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 할인 딱지가 붙은 음식을 사 오고 떨어진 살구를 주워오는 아빠를 구질구질하다며 타박한다. 하지만 이내 아들은 아버지의 상황에 동화된다. 두 사람은 어딘가에서 떨어진 이들이다. 열매는 무르익었을 때 땅으로 떨어지지만,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굴러 떨어진 이들이다. 영화는 서로를 못마땅하게만 받아들이던 두 사람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는다. 다만 그 과정의 억척스러움이 영화를 더디게 만든다. 25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그 시간 내내 항상 불만 가득한 표정과 말투로 존재하는 아들의 모습과 어딘가 태평한 (그리고 기주봉 배우의 여유 있어 보이는 이미지와 연기가 겹쳐) 아버지의 모습이 영화 내내 충돌하는 것이 썩 긍정적인 효과를 내진 못한다.

 이나연의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는 정적이다. 아프리카로 떠난 어머니의 집에 김장을 위해 모인 삼 남매를 잡는 카메라는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고 롱테이크로 이들의 대화를 잡아낸다. 이들의 대화는 실없는 농담이나 추억을 이야기하고, 지금의 삶 또한 이야기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던 이들이 모여 김장하는 것은 자연스레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살아온 세 남매가 기억을 꺼내는 장면들은 겨울 내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행위인 김장처럼 오랜 시간 묻어둔, 혹은 묻어둘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같다. 때문에 영화에서 유일하게 동적인 장면인, 때마침 도착한 어머니의 소포 속 아프리카 의상을 입자 음악과 함께 나타난 어머니와 삼 남매가 춤을 추는 장면은 김장김치처럼 묻힐 기억을 위한 춤이다. 사실 영화 자체는 단편영화임에도 느리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다만 이 영화에 조연출 및 촬영으로 참여한 조민재 감독과 이나연 감독이 <작은 빛>과 <실> 등으로 이어나가는 협업의 결과물들과 같은 맥락에 이 영화를 놓는다면, 기억에 대한 두 감독의 흥미로운 입장이 읽힌다. <실>에서 주연을 맡았던 조민재 감독의 어머니 김명선 배우가 이 영화에서도 어머니로 등장한다.

 이준섭의 <갓건담>은 건담을 갖고 싶었던 주인공 준섭이 아버지의 가출(?)로 인해 그것을 얻지 못하고, 대신 어머니의 생일날 생일선물로 홍천에 자리 잡은 아버지를 데려오려 하는 이야기다. 준섭은 그 이름에서부터 감독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며,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는 감독의 실제 아버지다. 가족을 두고 떠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아들의 이야기는 다소 식상하게 느껴진다. ‘갓건담’이라는 소재는 극 중 준섭이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고등학생임을 떠올렸을 때 어딘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다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격언을 고스란히 영화화한 것 같은 이야기와 독특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매끄럽게 엮어가는 것은 <갓건담>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포인트다. 극영화이지만 일하는 어머니를 촬영한 영상이나 준섭이 중고로 구매한 캠코더로 촬영된 영상이 등장하는 등 다큐멘터리적 이미지의 삽입이 영화를 조금 더 풍성하게 해 준다.

 여장천의 <무중력>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차량 뒷좌석에 탄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이고, 이내 화면은 암전 된다. 암전 된 화면 위로 소년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잠자리에 든 소년에게 어머니는 동화책을 읽어준다. 그러자 화면에 하얀 점들이 등장한다. 어머니는 시각장애인이고 아들에게 점자로 된 동화책을 읽어주는 중이다. 영화는 시간을 앞으로 돌려 할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할아버지 집에 다녀오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부재가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 주인공 가족은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금 암전 된 화면 속에서 점자로 된 동화를 읽어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점자 대신 점으로 그려진 동화 속 참새가 등장한다. 영화는 부재하는 것, 비가시적인 것, 그럼에도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점자 동화책의 점자가 암전 된 화면 위에 등장하는 것이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할아버지의 집을 ‘할머니 집’이라 부르는 것 등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반복되며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고,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의 폭에 비해 동어반복적인 장면이 많아 하려던 말을 다 못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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