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마트> 올리비아 와일드 2019 :: 영화 보는 영알못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 입시를 위해 달려온 몰리(비니 펠드스타인)와 에이미(케이틀린 디버)는 고등학교 내내 놀기만 한 것 같은 다른 친구들도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억울해한다. 두 사람은 졸업식을 앞둔 오늘이 공부와 놀기를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임을 깨닫고, 고등학교 최고의 인싸들이 모인 파티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고등학교 내내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둘에게 아무도 파티 장소를 알려주지 않고, 두 사람은 파티에 가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배우로 다양한 영화와 TV쇼에 출연하던 올리비아 와일드의 장편 연출 데뷔작 <북스마트>는 익숙한 하이틴 코미디처럼 시작한다. 절친인 범생이 둘이 얼떨결에, 충동적으로 파티에 뛰어드는 그런 뻔한 이야기. <북스마트>는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 전혀 새로울 것 없다. 두 주인공은 좌충우돌을 겪고, 누군가를 좋아했다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그러다 또 누군가를 만나고, 10년을 함께 보낸 절친이지만 크게 싸우고, 그럼에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떤 시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밤새워 노는 고등학생들의 하루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멍하고 혼돈스러운>이 떠오른다. 혹은 <조찬클럽>이나 <패리스의 해방>(영화에서 언급되기도 한다)과 같은 존 휴즈의 청춘영화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비니 펠드스타인의 전작 <레이디버드>를 떠올려보는 것도 자연스런 흐름일 것이다. 하지만 <북스마트>는 앞선 작품들의 이야기만을 뼈대로 삼을 뿐, 그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올리비아 와일드는 영화를 제작하며 <버버리 힐즈 캅>이나 <리쎌 웨폰> 같은 버디 무비들을 참고했다고 한다. 이러한 레퍼런스가 드러내듯, 영화는 몰리와 에이미가 고등학교 졸업 직전의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어떤 작전을 벌이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것은 <21 점프 스트리트>나 <나쁜 이웃들> 같은 하이틴 코미디의 방식이 아니라, 전교회장을 맡아 졸업 전날까지 인수인계를 해야겠다며 교장을 피곤하게 하는 몰리와 2년 전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자 열정적인 페미니스트인 에이미의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하이틴 영화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영화의 캐릭터들은 그렇지 않다. 그 흔한 풋볼 선수와 치어리더도, 전형적인 악녀 캐릭터나 유해한 남성성을 뽐내는 마초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는다. 두 범생이 캐릭터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다양한 인종과 성적지향/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타인에 의해 정체성이 규정되거나 모욕받지 않는다. <북스마트>가 그려내는 학교는 왕따, 폭력, 경쟁 등을 지워낸, 어쩌면 유토피아와도 같은 이상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는 영화의 단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영화는 몰리와 에이미가 학교에 마지막으로 등교해 보내는 시간들을 담아내며 두 사람을 둘러싼 인물들을 소개한다. 각자의 개성을 지닌 인물들은 묘한 활력으로 익숙한 미국 고등학교의 풍경을 채운다. 이를테면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복도로 뛰쳐나온 졸업예비자들이 온갖 것을 집어 던지며 난장판을 만드는 장면은 슬로모션을 한껏 끼얹은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되고, 묘하게도 성별구분이 없는 화장실에선 일방적인 모욕과 폭력 대신 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에 대한 공방이 오간다. 물론 화장실 벽에 가득한 더러운 낙서들이 가득하지만, 그것조차 기존의 영화들에서 보던 것과 다르다. 이를테면 두꺼운 점 세 개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젠더 뉴트럴 글로리 홀’이라고 써있다던가 하는 낙서가 슬쩍 지나간다. 이러한 설정은 두 주인공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 준다. 모든 것에 대해 냉소를 품는 대신, 애초에 정체성에 관한 편견이 부재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것을 발받침 삼아 즐겁게 폭주하는 두 주인공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것만으로 <멍하고 혼돈스러운>이나 존 휴즈의 청춘영화를 본 것과 같은 감각을 선사한다. 어쨌거나 관객은 몰리와 에이미, 두 사람의 혼란스러운 고등학생의 마지막 하룻밤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북스마트>는 어떤 영화들이 현실적으로 특정 시기를 담아내기 위해, 혹은 재미를 위해 과장하는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요소들 없이도, 관객이 그 시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북스마트>가 신선하다면, 그것은 이야기나 캐릭터가 아닌 관객이 캐릭터와 함께 경험할 배경과 시간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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