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리키> 켄 로치 2019 :: 영화 보는 영알못

 건설노동자였던 리키(크리스 히친)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뒤 직장을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PDF라는 배송업체의 배달부로 취직하게 된다. 리키의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는 방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아들 세브(리스 스톤)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이고, 딸인 라이자 제인(케이티 프록터)은 바쁜 부모님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 3년 만에 제작된 켄 로치의 신작 <미안해요, 리키> 또한 그가 계속해서 다뤄오던 노동과 인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가 집중해서 다루는 것은 더욱 세분화된 하청구조를 지닌 배달 노동과 그와 유사한 고용형태를 지닌 방문 요양보호사, 그리고 그러한 고용구조를 통해 붕괴되는 가정이다.

 

 영화는 리키가 PDF의 지부장과 면접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암전 된 화면에서 들려오는 대사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생하던 리키의 앞에 마치 구원자의 음성이 나타난 것처럼 느껴진다. PDF의 지부장은 리키가 회사에 고용되는 것이 아닌 자영업의 형태로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며, 그렇기에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이러한 고용형태는 우버나 배달의 민족과 같은 서비스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회사가 직접 고용하는 것이 아닌, 각 개인이 직접 사업자가 되어 근로계약이 아닌 다른 형태의 계약을 맺게 되는 고용. 리키는 애비의 차를 팔아 배달용 밴을 사고, PDF를 소개해준 친구의 조언을 받아가며 일을 시작한다. 회사가 그에게 지급하는 것은 PDF 유니폼과 분실 및 파손 시 위약금을 내야 하는 단말기, 그리고 배송해야 할 화물들뿐이다. 영화는 리키가 노동하는 과정들을 관찰하듯 보여준다. 주 6일 14시간 가까이 일하는 그는 회사와 근로계약이 된 것이 아니기에 유급휴가를 받지 못한다. 사고로 인해 화물을 분실하거나 파손한 경우를 대비해 들어 두는 보험금이나 차량 보험금도 그가 직접 부담한다. 다치거나 이런저런 가정사 등 때문에 일을 쉬어야 하는 경우 대체기사를 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 100파운드와 벌점이라는 페널티가 부여된다. 자영업자 내지는 프리랜서로 존재하는 그는 회사에 소속된 상태가 아님에도 지부장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리키의 동선은 회사가 지급한 단말기에 모두 기록되며, 회사, 지부장, 고객에 의해 감시된다. 그럼에도 리키는 PDF의 고용인이 아니다.

 

 애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비는 요양보호사이지만, 특정 기관이나 시설에 소속되어 상주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관이나 시설에서 각 가정으로 파견하는 형태의 일을 하지도 않는다. 애비 역시 리키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서비스를 제공한 고객의 숫자만큼 돈을 번다. 그의 회사는 중개인이지, 요양보호사들을 관리하는 시설이 아니다. 때문에 애비 또한 리키처럼 하루의 대부분을 노동으로 보낸다. 리키의 밴을 구입하기 위해 차를 판 이후 버스를 갈아타고 다니며 일하는 애비는 오전 7시 반에 출근하여 오후 9시 반에야 집에 돌아온다. 아침에만 5명의 노인 또는 장애인에게 아침식사를 해주고 돌봄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그의 노동강도는 극악에 가깝다. 게다가 돌봄 이외에 작성해야 하는 서류라던가, 이동하는 시간 내내 핸드폰을 붙잡고 세브와 라이자 제인의 일과를 도와주며, 고객과 문제사항이 발생했을 때 회사에 전화하여 그것을 조율하는 것 또한 그의 업무이다. 하지만 그의 이동시간은 업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애비는 서비스를 제공한 ‘건수’에 따라 돈을 받는 것이지, 시급이나 월급의 개념으로 돈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리키>는 배달 노동부터 요양보호사의 돌봄 노동까지, 각종 어플을 통해 중계되고 제공되는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최근 인수를 통해 ‘스타트업 성공신화’를 써 내려가는 모 업체라던가, 오랜 시간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그에 비에 턱없이 낮은 임금에 문제제기를 하며 투쟁해온 택배 노조 등을 생각하면 영화의 이야기가 머나먼 영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플랫폼 노동은 노동의 판도를 바꾸었다. 사람들이 경제활동인구로 손쉽게 진입할 수 있는 창구가 되었으며, 몇 가지 조항만 지키면 일을 할 수 있고, 성실히 일한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동시에 이는 노동의 분업화를 넘어선 세분화를 가능케 한다. 이른바 ‘하청의 하청’이라 불리는 구조의 맨 아래에, 이제는 소규모 기업이 아닌 자영업자 혹은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개인들이 놓이게 된다. 회사의 유리잔에서 넘쳐흘러 밑으로 내려오는 것은 돈뿐만이 아니다. 이들이 개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파트너십보단 리스크를 떠안을 것이다. 세분화, 파편화된 노동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순간에만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는 고객들로 하여금 노동현장을 상상할 수 없게 한다. 고객의 스마트폰과 회사의 단말기, 두 기기의 소유자 외의 그것을 중계하는 노동자들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영화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리키와 세브 사이의 트러블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세브가 학교에서 정학당하자 리키는 세브의 스마트폰을 압수하고, 세브는 집을 뛰쳐나간다. 그날 밤, 애비는 리키에게 스마트폰은 곧 세상이라는 말을 건넨다. 정말로 그렇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우리는 친구와 약속을 잡을 수도 없고, 대화도 할 수 없다. 스마트폰이 없다면 공부도 할 수 없고, 세브처럼 그래피티를 준비할 수도 없다. 심지어 리키는 앱을 통해 주문된 화물들을 배송하며, 리키의 노동은 스마트폰 단말기에 기록된다. 노동이 비가시적인 형태로 변화하는 동시에, 당장 눈 앞에 놓여 있는 것들을 볼 시간은 사라진다. 리키와 애비를 대면하는 일이 적어진 세브는 학교에 부적응하고, 라이자 제인은 리키와 세브 사이의 갈등 속에서 불안해한다. 어쩌면 세브는 리키와 애비가 왜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는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리키와 애비가 믿어오던 노동의 전제들이 해체되고 있음을 세브는 체화했을 것이다. 세브의 반항은 단순히 사춘기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리키와 애비의 대사처럼, 절대적인 양의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 세대 간의 간극과 전혀 다른 전제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시간을 들인다 해도 좁혀지지 않는 격차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세브는 그 격차를 드러낼 수 있는 행동력이 있는 반면, 라이자 제인은 이를 갖추지 못한 상황이기에 그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관료제와 문서주의, 탁상공론의 제도 사이에서 탈락하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반면 <미안해요, 리키>가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이들은 현장에서 뛰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배달하러 갔다가 프리미어 리그 이야기로 시비가 붙기도 하고, 서로 가족사진을 보여주면서 고객과 정을 쌓기도 하는 노동자들. 켄 로치는 이번 영화를 통해 노동현장에서 점점 더 인간성을 갖출 수 없게 되는 노동자들을 이야기한다.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에서 드러난 개인으로 흩어지는 노동자들의 군집은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처럼 허울 좋은 이름의 개인들로 해체된다. 물론 <미안해요, 리키>가 플랫폼 노동이나 IoT 서비스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비판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아무래도 켄 로치의 영역은 아니다. 대신 켄 로치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자신이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이들을 담으려 한다. 그 지점에서 <미안해요, 리키>의 목적은 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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