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영원의 문에서> 줄리안 슈나벨 2018 :: 영화 보는 영알못

 <잠수종과 나비> 등으로 관객들에게 알려진 줄리안 슈나벨의 신작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제목 그대로 고흐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고흐의 생애 중 정신이상과 흐려진 시각 때문에 고초를 겪던 말년을 담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고흐(윌렘 대포)가 우연히 만난 친구 폴 고갱(오스카 아이작)의 조언에 따라 프랑스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인 아를로 떠날 때부터, 정신이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생 레미에서 보내던 마지막 나날까지의 시점이 영화에 담겼다. 영화의 줄거리는 크게 설명할 것이 없다. 반 고흐의 생애에 대한 책이나 글을 읽어봤거나, 학교에서 서양현대미술사와 관련된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고흐의 불행한 말년이 그대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아트딜러인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 반 고흐(루퍼트 프렌드)가 고흐의 생활과 작품활동을 지원하지만 그의 생전에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고갱 등의 동료들 대부분도 고흐의 강렬하고 붓자국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화풍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정신이상을 보이며 과음을 일삼는 반 고흐를 광인 취급하고, 아이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반 고흐는 점점 더 자신만에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줄리안 슈나벨은 이 과정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담아낸다. 세잔, 드가, 모네 등 기존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른 자신의 화풍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화가들과 평단, 신체적 이상과 폭음, 경제적 어려움 등의 악조건 속에서 찾아온 혼란, 그러한 와중에 아를에서 발견한 생생한 자연의 빛과 그것을 캔버스에 담고자 한 작가적 고집 모두가 끊임없이 흔들리는 카메라에 담긴다. 영화의 후반부, 반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만난 신부(매즈 미켈슨)과 대화를 나누며 당시엔 추하고 불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자신의 그림과 그것을 그리는 자신을 예수에 빗대 설명한다. 화가가 되기 이전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신학공부를 했었던 만큼, 그의 그림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줄리안 슈나벨은 반 고흐의 말년에서 예수의 고행과 유사한 과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담아낸다. 반 고흐는 “예수가 죽었을 때는 아무도 그를 몰랐지만, 30~40년 정도 후엔 모두가 그를 알았다”고 이야기한다. 반 고흐는 1890년 사망한 이후에야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고,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된다. 20세기가 시작되고 야수파나 표현주의 등의 화풍에 영향을 주게 된 그의 그림은 현대 회화의 어떤 분기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영화는 반 고흐가 죽은 뒤 그의 장례식에서야 그의 작품들을 알아보고 작품들을 사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된다. ‘영원의 문에서’라는 영화의 제목은 이 장면에 와서야 실현된다. 고흐는 왜곡된 색과 상을 보는 자신의 시야에 담긴 자연과 주변사람들을 그리려 했다. 인상주의자들이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빛과 색을 고스란히 포착해왔다면, 반 고흐는 자신의 주관적인 시각과 기억을 작품에 더한다. 영화 속에서 고갱이 “캔버스에 진흙을 바른 것 같다”고 비판하는 반 고흐의 화풍은 그가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의 촉감까지 담아내며, 그것은 작품을 통해 어떤 영원의 것으로 남게 된다. 영화 속에서 반 고흐는 “내가 본 것을 남들도 보게 하고 싶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자신의 동기를 설명한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그러한 그림을 그리려 했던 그의 말년을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다. 다만 끊임없는 핸드헬드 촬영의 산만함, 잠깐 등장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흑백 화면으로의 전환, 고흐의 말년을 충실하게 옮기기만 하며 다소 산만하게 전개되는 서사 등은 다소 아쉽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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