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이해준, 김병서 2019 :: 영화 보는 영알못

 백두산이 폭발한다. 그 여파로 7.8의 지진이 발생해 북한은 물론 서울까지 초토화된다. 영화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자연재해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것도 남한, 북한, 미국이 핵 무장해제에 대해 극적인 타협을 이룬 상황에서, 백두산의 추가 폭발을 막기 위해 핵폭탄이 필요한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전역을 앞둔 군인이자 폭발물 제거 부대의 지휘관인 인창(하정우)은 청와대 민정수석인 유경(전혜진)을 통해 섭외된 화산 전문가 봉래(마동석)가 세운 백두산 추가폭발을 막을 계획의 지휘를 얼떨결에 맡게 된다. 만삭의 아내인 지영(배수지)을 서울에 두고 북한으로 향하는 작전을 실행하는 그는 북한이 숨겨둔 핵탄두의 위치를 알고 있는 국정원의 북측 정보원 리준평(이병헌)을 찾고, 그와 협력해서 백두산까지 핵탄두를 옮긴 뒤 터트려야 한다. 핵 무장해제 국면에서 미군이 이에 개입하고, 핵탄두를 노리는 중국 측의 움직임 또한 더해진다.

 

 이러한 설정 때문에 <백두산>은 재난영화라기 보단 하정우의 전작인 <PMC: 더 벙커>와 조금 더 유사하다. 핵을 중심으로 한 남한과 북한, 그리고 주변국들의 반응을 다루는 지점은 <강철비>를, 지진 등의 재난은 <판도라>나 <해운대> 같은 국산 재난영화들을 연상시킨다. 김용화 감독이 이끄는 스튜디오 덱스터가 제작한 만큼, 백두산 폭발 등의 비주얼은 <신과 함께> 시리즈 속 지옥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무엇 하나로 정의되기 어려운 <백두산>은 스스로의 혼란스러운 장르적 정체성 속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다. 화산 폭발의 여파로 발생한 지진으로 초토화되는 서울 강남의 풍경은 롤랜드 에머리히가 <2012>에서 LA를 박살 내는 장면의 열화 버전에 불과하며, 팔당댐이 무너져 한강에 쏟아지는 거대한 담수 해일은 <해운대>의 쓰나미 장면만 못하다. 북한에서 핵탄두를 두고 벌어지는 인창의 부대와 북한 군인 또는 미군과의 총격전은 영화의 공동감독 중 한 명인 김병서가 촬영감독으로 참여했던 <PMC: 더 벙커>의 총격전만큼의 만족감도 주지 못한다. 철 지난 인터넷 유머 같은 대사들을 주고받는 인창과 리준평의 브로맨스는 수없이 이어져온 남-북 브로맨스의 연장선상이자, <강철비> 같은 영화들에 비해 어설프기만 하다. 다양한 장르와 상황이 뒤섞이다 보니 백두산 추가폭발이라는 시간제한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긴장감이 생기지도 않으며, 아무런 긴장감을 갖지 못한 인물들은 나열된 사건들 속에서 제대로 기능하지도 못하는 코미디와 신파 코드들만 쫓아가고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문제들은 수많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에서 발견되는 문제들이다. 성공한 과거의 작품이나 유명한 (그리고 낡은) 할리우드 영화의 요소들을 뽑아다가 천만 관객을 노릴 멀티캐스팅과 함께 제시하는 것은 <해운대>나 <도득들> 등의 성공과 함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때문에 <백두산>에 기대한 것은 딱 한 가지였다. 백두산 폭발이라는 재난상황을 얼마나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백두산>은 최소한의 기대치마저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단순히 재난상황을 보여주는 기술력의 부족과 열악하고 천박한 각본 때문만이 아니다. 260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라고 생각되지 않는 자잘한 기술적 문제들이 영화 전체에 뿌려져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영화 초반부의 여러 대사들은 당연하게도 후시녹음을 통해 영화에 담겼는데, 각 대사들과 배우들의 입모양조차 제대로 맞지 않는 장면들이 여럿 보인다. 몇몇 장면은 더빙된 외화를 보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거대 예산이 투입된 이 작품은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들도 해결하지 않았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편집이다. <백두산>에 제대로 숏들이 붙는 장면들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공간이나 시간의 연속성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물론, 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인물을 상황에 몰아넣은 뒤 위기를 보여주기는커녕 그 이후로 점프해버리는 몇몇 장면들에선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이다. 이는 재난상황의 긴박함이나 긴장감을 주는 대신 편집을 통해 재난을 삭제해버리는 수준에 가깝다. 재난영화를 표방하지만, <백두산>의 진정한 재난은 연말 시즌을 노리고 엉성하게 대충 마무리만 지은 영화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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