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2018' 카테고리의 글 목록 (6 Page) :: 영화 보는 영알못

*스포일러 주의


 <공조>를 통해 예상외의 흥행성적을 거둔 김성훈 감독이 현빈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촬영했다. <창궐>은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을 배경으로, 조선에 야귀(좀비)떼가 창궐한다는 소재를 담고 있다. 영화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따르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따라간다. 왕(김의성)을 죽이고 왕위에 오를 음모를 꾸미던 김자준(장동건)이 야귀떼를 통해 계획을 실현하고, 때마침 청나라에서 돌아온 강림대군(현빈)이 이를 저지하려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때문에 <창궐>은 독특한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익숙한 이야기만을 답습하며 마무리될 뿐이다. 이러한 조선시대 배경 충무로 사극들의 관습이야 말로 야귀떼보다 무서운 고질병이 아닐까 싶다.



 매해 여러 편의 조선시대 배경 사극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자본이 들어간 영화들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대역배우를 데려다 왕을 연기하도록 시키던, 관상을 보거나 풍수지리를 끌어오던, 전쟁을 치르던, 괴물이나 야귀떼가 궁궐까지 쳐들어오던 모든 이야기는 왕권 다툼을 그려내는 것에 그치고 만다. 아무리 참신한 소재를 들고 와도 조선, 특히 한양 도성이라는 배경 안에서 모든 이야기는 왕권 다툼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어떤 영화를 봐도, 어떤 소재를 봐도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창궐>은 바로 한 달 전에 개봉한 <물괴>와 거의 동일한 시대, 유사한 소재, 궁궐이라는 배경을 공유한다. 때문에 두 영화의 이야기는 거의 동일하게 느껴진다. 이들은 거의 모든 소재를 왕권 다툼을 통한 사회비판에의 비유에 소비해버리는데, 때문에 장르적 쾌감은 대부분 희석되어버리고 지겨움 만이 남게 된다. <창궐>의 경우 <물괴>보다 영화적 완성도는 나은 편이나, <부산행>과 별반 다르지 않은 좀비들의 움직임과 디자인, 영화 스스로도 하질(저질)이라 평하는 유머 코드, 불필요한 플래시백으로 점철된 한국 상업영화 특유의 편집까지 대부분의 면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또한 이러한 영화들이 참된 왕의 상을 담아내려 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아마도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퍼진 경향으로 생각되는데, <대립군>, <물괴>, <명당> 등 최근 개봉한 조선시대 배경 사극들 또한 이러한 경향을 공유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저 추상적인 리더상을 그려낼 뿐이지만, <창궐>은 꽤나 직접적으로 현재의 정권을 연상시킨다. 영화 거의 마지막 장면, 궁궐의 야귀떼를 물리치고 김자준을 해치운 강림대군은 근정전 지붕 위에 앉아 횃불을 들고 몰려온 민초들을 바라본다. 이 모습은 마치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를 광화문 위 혹은 청와대에서 바라본 구도를 연상시킨다. 이 장면에서 강림대군은 “늦어서 미안하네”(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이러한 내용의 대사)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명백히 왕권 국가인 조선을 배경으로 현재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으로 올바른 리더의 모습을 치켜세우는 것은 일종의 우상화일 뿐이다. <물괴>는 적폐 정권을 갈아치우기 위해 벌어졌던 촛불집회가 마치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 벌어진 것처럼 그려낸다. 늦게 왔다는 강림대군의 대사는 이미 왕이 될 사람이 결국 왕이 되었고, 이를 당연하게 촛불집회의 이미지와 연관시킬 수밖에 없는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지금의 대통령을 떠올린다. 어설픈 프로파간다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때문에 <창궐>이라는 영화의 정치적 태도는 유사한 이야기를 지닌 다른 영화들보다도 구차하게 느껴진다. 


p.s. 영화의 엔드크레딧에 작년 세상을 떠난 김주혁의 이름이 특별출연으로 올라온다. 김주혁은 강림대군의 형인 세자 역할을 맡았으나, 촬영을 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 역할은 김태우가 다시 촬영하여 영화가 완성되었다. 비록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창궐>은 김주혁 배우의 정말 마지막 작품이 되는 셈이다.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데미언 셔젤의 네 번째 장편 <퍼스트 맨>이 개봉했다. 앞선 영화들은 모두 재즈를 기반으로 한 음악영화였지만, <퍼스트 맨>은 닐 암스트롱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전기영화에 가깝다. 영화는 제임스 R. 한센의 책 『퍼스트 맨: 닐 암스트롱의 일생』을 바탕으로 한다. 1961년, 달착륙을 위한 실험인 제미니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1968년 달착륙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다.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와 같은 우주 배경의 하드 SF들과는 전혀 다른 결의, 우주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기보다는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이라는 개인의 심리를 담아내는데 주력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X-15을 타고 대기권 밖으로 나가보는 실험을 하는 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35mm 필름의 거친 질감(아이맥스로 관람할 시 이러한 질감이 극대화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정신없이 이어지고 흔들리는 시점 숏과 기체 내부나 닐의 얼굴을 잡는 클로즈업 숏들은 관객에게 일종의 체험을 제공하려 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닐 암스트롱과 관객을 동기화시키려는 것이다. 닐이 훈련을 받거나 비행을 하는 장면들 모두가 이런 방식으로 촬영되어 관객은 손쉽게 닐의 입장에 몰입할 수 있다. 때문에 닐이 아닌 영화의 등장인물들, 가령 닐의 아내인 재닛(클레어 포이)과 둘의 자식들, 에드(제이슨 클락), 데이브(크리스토퍼 애봇), 엘리엇(패트릭 후짓) 등의 주변 인물들은 닐의 심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한다. 그나마 재닛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달 착륙 장면 직전부터 사라져 버린다. 달 착륙 장면에서의 플래시백은 닐의 모든 주변 인물들을 병으로 죽은 딸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한 거대 프로젝트의 수단으로 환원시킨다. <라라랜드>의 8mm 홈비디오 플래시백에 이은 16mm 홈비디오 플래시백(심지어 아이맥스 비율의 시퀀스에서 등장한다)은 그 투명한 의도 때문에 도리어 거부감이 든다.



 <퍼스트 맨>은 분명 닐 암스트롱이라는 한 사람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주변 인물 모두를 수단화시키는 것은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고독감이라는 감정이 원래 홀로 있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이라지만, <퍼스트 맨>의 묘사는 닐 암스트롱이 스스로 고독 안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결과적으로 가족을 비롯한 닐의 주변 인물, 영화 속에서 짧게 등장하는 냉전시대와 베트남 전쟁이라는 시대적 맥락 등은 영화 안에서 대부분 배제된다. 대부분의 맥락은 닐에게 중압감을 더하는 방향으로 소비되고, 닐의 행적에서 이런저런 맥락들을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퍼스트 맨>은 닐이 지녔을 중압감과 고독감을 알아달라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며, 로켓 발사 때 우주비행사가 느끼는 감각을 충실히 재현한 것 외에 뚜렷한 성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도리어 닐의 심리보다 재닛의 상황과 감정, 희생에 더욱 공감하게 될 지경이다. <위플래시>와 <라라랜드>에서 보여준 응집력이나 능수능란함을 <퍼스트 맨>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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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지사로 일하고 있는 백상아(한지민)는 추운 겨울날 우연히 골목길에서 혼자 떨고 있는 김지은(김시아)을 발견한다. 상아는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던 지은에게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사주지만, 이내 지은의 보호자라는 주미경(권소현)이 나타나 지은을 데려간다. 지은의 몸에 난 상처와 멍을 보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상아는 미경과 지은의 친부인 백수장(김일곤)의 폭력에서 지은을 구하고자 한다.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은 가정폭력, 아동학대의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다. 성인인 사람이 아동을 구출한다는 점에서 <아저씨> 같은 부류의 영화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영화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익숙한 사서를 지녔지만,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을 만들어 낸 것은 <미쓰백>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영화 전체가 한국영화의 클리셰 안에서 작동하고 있지만, 그 주체가 여성으로 변화했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움을 자아낸다. 특히 백상아를 연기하는 한지민의 모습은 <밀정>, <역린>, <플랜맨> 등의 최근작에서 볼 수 없었던 면모를 보여준다. 그동안 남성 감독의 영화에서 타입화 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면, 여성 감독의 영화인 <미쓰백>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연기를 펼쳐 보인다. 때문에 <미쓰백>은 그녀의 가장 다양한 연기를 만나 볼 수 있으며, 앞으로 한지민의 대표작으로 이 영화가 꼽히지 않을까 싶다. <미쓰백>은 분명 그간 쏟아져 나온 <아저씨>류의 한국영화들, 혹은 남성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들에 비해 취하고 있는 장점이 많다.



 하지만 한국 상업영화 대부분이 공유하는 단점 또한 공유하고 있다. 가령 과도하게 남성적이며 폭력적인 경찰문화와 이를 대변하는 장섭(이희준) 캐릭터, 모성애의 강조, 성노동자의 악마화, 불필요하게 적나라한 폭력 등이 <미쓰백>에도 존재한다. 특히 지은이 폭행당하는 장면들이 굉장히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도가니>나 <귀향> 같은 작품들이 비판받았던 것과 같은 지점에서, 피해사실을 전시한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미쓰백>이 이러한 폭력이나 수난을 전시하려는 태도의 영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은 분명한 단점이다. 장섭 캐릭터의 존재도 아쉽다. 이렇게 남성성을 과시하며, 보조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구원자 자리를 넘보는 캐릭터가 이 서사에 필요한지 의문이다. 여기에 지은의 친부에 대해 더욱 간편하게 악마화 되는 미경의 캐릭터나, 상아가 너무나도 쉽게 용서해버리고 마는 아동폭력의 가해자 상아의 어머니 정명숙(장영남) 캐릭터는 영화가 주제로 삼은 여성 간의 연대를 동정과 연민의 수준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미쓰백>은 분명 완성도가 아쉽고, 영화 자체를 지지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여성 감독, 여성 주연, 여성 서사를 다루고 있는 영화 자체가 희소하기 때문이다. <비밀은 없다>를 비롯한 이경미 감독의 영화나, <마녀>, <악녀>처럼 여성 주연 액션 영화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각자의 이유로 폄하당하거나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미쓰백> 역시 한계점을 가득 안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배우 한지민의 재발견(이라고 쓰지만 이제야 능력을 드러낼 장을 얻은 것이기도 하다)과 백상아라는 캐릭터는 <비밀은 없다>의 연홍이나 <암살>의 안옥윤과 궤를 같이 하며 흥미를 가지고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이런 캐릭터들이 더욱 많이 등장하고 더 많은 영화가 나와야 한국영화의 클리셰라는 지겨운 틀을 깨고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미쓰백>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했으면 좋겠고, 영화 자체를 지지하지는 못해도 영화의 흥행을 응원한다.

 1937년 윌리엄 A. 윌먼의 <스타 탄생> 이후 세 번째 리메이크 작품인 <스타 이즈 본>이 개봉했다. 원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을 맡고 비욘세를 주연으로 추진되었던 이 프로젝트는 결국 브래들리 쿠퍼의 연출 데뷔작으로 제작되었다. 주연은 쿠퍼와 함께 레이디 가가가 함께 하게 되었다. 이번 영화는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조연 혹은 카메오로 출연해온 레이디 가가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다. 브래들리 쿠퍼의 <스타 이즈 본>은 할리우드 스타가 아닌 팝스타를 주인공으로 한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웨이트리스 일을 하며 바에서 간간히 공연하는 앨리(레이디 가가)는 우연히 바를 찾은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을 만나게 된다. 앨리의 목소리에 반한 잭슨은 자신의 공연에 앨리를 초대하고, 앨리의 자작곡을 함께 부른다. 공연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자 앨리는 한순간에 스타가 되고, 앨리는 잭슨의 투어에 함께하며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중 앨리의 가능성을 알아본 음반 제작자 레즈(라피 가브론)가 음반 계약을 제안하고, 앨리는 팝스타가 된다.


 할리우드에서 음악계로 무대를 옮긴 선택은 효과적이다. 아마 톱스타의 의해 성공하게 되는 스타의 이야기는 현재의 할리우드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때문에 레이디 가가라는 캐스팅과 의외로 준수한 노래 실력을 보여주는 브래들리 쿠퍼의 조합은 상당한 즐거움을 준다. 게다가 이번이 연출 데뷔작인 브래들리 쿠퍼의 깔끔한 연출은 <스타 이즈 본>이 지닌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를 고전적 영화의 분위기로 담아낸다. 그렇기에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결말을 알아챌 수 있는 뻔한 이야기를 즐겁게 감상하게 된다. 특히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는 장면, 퇴근한 앨리가 노래를 부르며 공연하러 가는 길을 담는 롱테이크 장면은 노련한 고전영화감독의 작품을 보는 것만 같다. 골목길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앨리의 뒤로 등장하는 고전적인 서체의 붉은 ‘A Star Is Born’ 타이틀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번 영화에서 가장 좋은 장면이 아닐까 싶다. 앨리가 공연하는 곳이 드랙 바(드랙 퀸들이 공연하는 공간)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곳곳에서 잭슨을 촬영하는 스마트폰 카메라, 앨리의 공연이 담긴 유튜브와 함께 2018년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앨리가 잭슨과 함께 투어를 돌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드러나는 전반부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잭슨의 불우한 과거사와 알코올 및 약물 중독, 서로 달라지는 음악 성향 등의 문제로 둘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는 후반부는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 느낌이다. 두 배우의 연기는 감정선을 탄탄하게 잡아주지만, 앨리와 잭슨이라는 캐릭터는 기계적으로 갈등과 봉합을 반복할 뿐이다. ‘The Shallows’를 비롯한 영화의 훌륭한 음악들이 없었더라면 굉장히 심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알코올과 약물 중독에 빠진 남성 묘사에 빈번히 등장하는 폭력적인 장면이 배제되었다는 것은 눈여겨볼만한 지점이다. 물론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영화는 아니지만, 타인 혹은 약자를 향한 폭력을 최대한 배제시켰다는 점이 좋았다. 이러한 지점들은 이번 영화를 앞선 영화와의 차별점이 된다. 브래들리 쿠퍼는 이를 통해 영화에 현대적인 감각을 부여하고, 동시에 고전적인 스타일을 놓치지 않으며 기존 <스타 탄생> 영화들의 형식을 따라간다. 영화의 후반부가 썩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두 배우의 연기와 노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스파이더맨이 MCU에 합류한 이후 소니에서 나온 첫 스파이더맨 캐릭터의 영화 <베놈>이 개봉했다. R등급에서 PG-13으로 등급이 조정됐다느니, 30분가량의 삭제 장면이 존재한다느니 여러 논란이 있었기에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던 작품이다. 영화는 <베놈>이라는 캐릭터의 기원을 다룬다.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에디 브룩(톰 하디)은 변호사인 애인 애니(미셸 윌리엄스)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던 중 거대 제약회사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창립자인 칼튼 드레이크(리즈 아메드)의 비인간적인 행보를 폭로하려다 일자리를 잃게 되고, 덩달아 애니 또한 해고당해 둘은 결별하게 된다. 6개월 뒤 다시 칼튼의 비밀을 폭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에디는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실험실에 잠입했다 외계에서 온 물질 심비오트에 숙주가 된다. ‘베놈’이라는 이름을 가진 심비오트는 그에게 공생을 제안하고, 둘은 함께 베놈이 되어 심비오트를 되찾으려는 칼튼의 계획에 맞서게 된다.



 <베놈>은 아쉽게도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다. R등급의 화끈한 액션과 잔인한 면모를 기대했을 관객에겐 너무 아쉬울 것이고, MCU의 세련됨을 생각한 관객에겐 너무 투박한 작품일 것이다. 그도 그럴게, 이번 작품은 의외로 코미디적인 요소가 많다. 연출자인 루벤 플레셔의 영화 데뷔작이 R등급 좀비 코미디인 <좀비랜드>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톤은 기대와는 다르지만 의외의 재미를 준다. 에디 브룩이 베놈과 결합하기 전까지의 40여분이 조금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둘이 한 몸에서 공생하기 시작한 이후에 펼쳐지는 다양한 액션과 적절한 코미디는 정말 의외의 즐거움이다. 에디와 베놈의 관계는 로맨틱 코미디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인데, 관객이 기대하던 톤은 아닐지라도 (최근 코믹스 속 묘사는 이것에 가깝다고 한다) 당장의 즐거움을 주긴 한다. 에디 브룩-베놈-칼튼 드레이크의 <디스 민즈 워>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놀리는 것 같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충분히 동의할만한 내용이며 꽤나 재미있기까지 하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이나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아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같은 분위기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액션 시퀀스들은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준다. 에디 브룩과 베놈이 공생을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액션들은 근접 격투부터 카체이싱, 촉수를 이용한 활공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10여분 간의 카체이싱 액션에 주목할만하다. 이미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모습 만으로도 이번 영화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장면이었다. 공중에 뜬 베놈이 촉수를 사용해 다시 오토바이에 탑승하는 장면, 오토바이로 달리는 중에 촉수로 적의 차를 충돌시키는 장면 등은 꽤나 완성도 높은 액션을 보여준다. 특히 카체이싱 장면은 샌프란시스코라는 배경 때문에 <앤트맨과 와스프>의 카체이싱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고, 80~90년대 액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투박함이 베놈이라는 캐릭터 혹은 톰 하디라는 배우와 썩 잘 어울린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CG 액션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 대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기에 큰 단점이라 생각되진 않는다.



 <베놈>의 촬영 현장에서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가 목격됐다는 소식 때문에 MCU와 이번 영화가 연계된다는 루머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스파이더맨’ 속 인물이나 회사의 이름 등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인 세계관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MCU보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때의 세계관을 계승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2편으로 마무리된 게 아쉽기만 할 뿐이다. 로튼토마토 등에서의 끔찍한 평가와는 다르게, <베놈>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정도의 재미는 보장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어느 쪽도 실현될 수 어렵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쿠키 영상에서의 의외의 등장인물(그리고 의외의 배우)은 충분히 속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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