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2018' 카테고리의 글 목록 (7 Page) :: 영화 보는 영알못

 <신데렐라>와 <정글북>으로 인해 본격화된 디즈니의 라이브-액션 필름 프로젝트의 신작,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을 관람했다. 어렸을 적 <곰돌이 푸>는 물론, 스핀오프 격의 작품인 <곰돌이 푸: 티거 무비>를 문자 그대로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반복했던 기억이 있기에, 그 기억을 국내 개봉명처럼 행복하게 다시 불러올 수 있을지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원제인 <크리스토퍼 로빈>이 더욱 적절하게 영화의 내용과 주제를 설명하는 것 같다. 어릴 적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서 곰돌이 푸(짐 커밍스), 티거(짐 커밍스, 1인 2역), 이요르(브래드 거렛), 피글렛(닉 모하메드) 등과 함께 놀던 크리스토퍼 로빈(유완 맥그리거)은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에블린(헤일리 앳웰)과 결혼하여 딸 매들린(브론테 카마이클)을 낳고 살고 있는 로빈은 어느새 가장이 되고, 한 회사의 팀장이 되었다. 하지만 끝없는 업무에 가족도 자신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로빈. 어느 날 그의 앞에 푸가 다시 나타나면서 어릴 적의 모험이 다시 시작된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최근까지도 장편 혹은 TV용 애니메이션으로 명맥을 이어왔던 <곰돌이 푸> 시리즈의 첫 실사화이자, 나이 든 크리스토퍼 로빈을 다루는 시퀄 격의 작품이다. 디즈니에서 처음 <곰돌이 푸>의 장편이 제작된 게 1977년이니, 현재의 20대부터 50대까지의 폭넓은 세대가 <곰돌이 푸>를 어릴 때의 추억으로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디즈니는 <월드워 Z>나 <스트레인저 댄 픽션> 등을 연출한 마크 포스터 감독을 고용하여, 기존의 이야기를 새롭게 짜는 방법 대신 무난하고 안전한 영화로 만들어냈다. 성인층 관객들의 추억을 자극하고, 그들의 손에 이끌려 극장을 찾을 어린 관객에게 ‘곰돌이 푸’라는 히트상품을 각인시키는 전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전략은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다. 어느 정도 추억을 지닌 성인 관객층의 욕구는 곰돌이 푸와 친구들을 다시 스크린에 불러옴으로써 성공했을지 몰라도, 이 영화를 보고 새롭게 캐릭터에 빠져들 관객은 많지 않아 보인다.



 우선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비주얼과 관련한 측면부터 살펴보자.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캐릭터들은 실제 배우의 모습으로 대체되거나(<말레피센트>, <신데렐라>), CG의 힘을 빌려 애니메이션과 유사한 외양을 보여주거나(<미녀와 야수>), 도리어 리얼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정글북>).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의 경우 로빈을 제외한 캐릭터들은 동물이다. 특히 로빈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주요 캐릭터 넷은 봉제인형이다. 이들의 외양이 CG로 구현되는 순간 관객들은 기억하던 캐릭터들의 모습과의 괴리감을 느낀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러한 문제가 바로 드러나는데, 기숙학교로 떠나는 로빈을 배웅하는 동물 친구들이 티파티를 벌이는 장면은 머펫 쇼와 CG 캐릭터 중간에 있는 어중간한 모습으로 그려져 흡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괴상한 티파티 장면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영화 전체의 우중충한 톤은 괴상함을 더해준다. 영화의 스틸컷을 보고 <살인의 추억>이 떠오른다는 어느 트위터리안의 이야기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더욱 납득하게 된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고, 캐릭터의 외양에 익숙해지면서 괴리감은 줄어들지만, 아무래도 기존 애니메이션 속 외양을 상상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의 캐릭터 외양 묘사는 아쉽기만 하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이야기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쉽게 예측 가능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푸가 아닌 크리스토퍼 로빈이라는 점에서 이미 예견됐던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나이 들고 업무에 찌든 크리스토퍼 로빈이 곰돌이 푸와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에서 어떤 새로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가부장’ 크리스토퍼 로빈의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영화들에서 봐온 것이고, 동물 친구들과의 재회가 주는 감흥은 지루할 정도로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쉽게 휘발되어 버린다. 특히 업무에 치여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가부장을 다독여주는 서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너무나도 지겹게 봐온 이야기다. 차라리 로빈이 동물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딸에게 해주고, 우연히 동물친구들을 만난 딸이 새로운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웠을 것이다. 뻔하디 뻔한 결말, 즉 가부장의 지위를 회복하고 정상가족의 완전한 형태를 이야기하는 결말로 치닫는 후반부는 (안 좋은 의미로) 80~90년대 디즈니 가족영화들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가 그만큼 낡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포장하고 재생한 해낸 것이 불과하다. 똑같이 익숙한 이야기지만 화려한 영상으로 스크린에 복귀한 <정글북>이나 <미녀와 야수>, 이야기를 비틀어 새로움을 추구한 <말레피센트> 등이 쌓은 디즈니 라이브-액션 필름에서 이 영화는 진부한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어렸을 때 봤던 <곰돌이 푸>의 추억이 떠오르긴 했지만, 어디선가 <곰돌이 푸>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면 이번 영화 대신 차라리 그곳을 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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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한 기자가 납치된다. 청와대, 국정원, 경찰, 공군 등으로 구성된 특별팀이 꾸려지고, 경찰 위기협상팀의 하채윤(손예진)이 협상가로 급하게 선발된다. 그녀가 상대해야 될 대상은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의 무기를 밀매하는 밈태구(현빈). 하채윤은 고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협상을 그만두려 하지만, 인질로 잡힌 위기협상팀의 정 팀장(이문식)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추석 연휴를 노리고 개봉한 <협상>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깊게 다뤄지지 않은 협상가의 역할을 영화의 전면에 내세운다. 협상이라는 소재에서 F. 게리 그레이의 <네고시에이터>나 조엘 슈마허의 <폰 부스> 같은 할리우드 영화가, 상대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대사로 대부분의 상황을 진행시킨 다는 점에서 <더 테러 라이브> 등의 한국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영화가 협상과정을 통한 치열한 심리전이라던가, 대사가 살아있는 배우들 간의 충돌 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협상>은 납치와 협상이라는 소재를 통해 출발하지만, 결국 사회비판적인 스릴러 내지는 드라마의 형식으로 선회하며 <내부자들>이나 <베테랑> 같은 영화와 궤를 같이 한다. 이 과정에서 협상이라는 영화의 소재는 사라지고, (기존의 JK필름 작품만큼은 아니지만) 부패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개인 혹은 가족의 모습이 신파적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노년 남성들로 구성된 소위 고위층 인사들이 대거 등장해 소리만 질러대는 장면이 이어지며, 이러한 장면들은 제대로 된 협상과정이 그려지는 것을 방해한다. 결국 소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익숙하고 지겨운 이야기에 영화가 전도된다. 때문에 협상과정으로부터 오는 긴장감과 부패권력을 처벌할 때의 쾌감 두 가지를 모두 놓쳐버린다. 어느 곳 하나에도 똑바로 집중하지 못한 결과물이랄까?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협상가를 연기한 손예진과 인질 협박범을 연기한 현빈의 연기는 만족스럽고, 한 과장을 연기한 장영남이 등장하는 어떤 장면에서의 배우들은 꽤나 인상적이기도 하다. 김상호, 이주영, 장광, 최병모 등의 조연들도 종종 여러 작품에서 겹치는 이미지 때문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결국 <협상>의 문제는 안일한 기획과 각본이다. 어떠한 소재를 가져와도 신파 내지는 부패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희석시켜버리는 기획은,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가 싶을 정도로 지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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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완의 <컨저링>으로 시작된 ‘컨저링 유니버스’의 신작 <더 넌>이 개봉했다. <컨저링> 시리즈의 메인 악령으로 등장했던 수녀 악마(보니 아론스)의 기원을 다루는 작품이다. 영화는 한 수녀가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톨릭적인 초자연현상을 조사하는 버크 신부(데미안 비쉬어)는 바티칸 교황청의 명령에 따라 아이린 수녀(타이사 파미가)와 함께 사건이 벌어진 루마니아의 수녀원으로 향한다. 프렌치(조나스 블로켓)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에 도착한 그들은 무언가 사악한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낀다. ‘컨저링 유니버스’의 모든 작품들이 무섭진 않았다. 대표적으로 첫 스핀오프 영화였던 <애나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가장 최근작인 <애나벨: 인형의 주인>은 어느 정도 공포스러움과 그것에 따른 재미를 주었던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컨저링>의 메인 악령이었던 수녀 악마를 주인공으로 한 <더 넌>은 어떨까?



 아쉽게도 <더 넌>은 ‘컨저링 유니버스’는 물론, 제임스 완이 관여한 호러영화 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영화로 손꼽히게 될 것 같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어느 정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부실한 연출과 불필요하게 붙여진 이야기들 때문에 엉성해지기만 한다. 영화의 가장 무서워야 할 장면들에서 관객들이 피식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트릴 정도다. 기대했던 강력한 악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가톨릭을 배경으로 함에도 기도의 힘 보다 총알에 의해 처리되는 악령들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이블데드> 같은 막장 호러 코미디로 장르를 뒤트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성물을 눈앞에 두고 던지는 농담(“holy shit!”)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긴 수준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며, 오프닝 시퀀스에서 품은 짧은 기대감은 러닝타임이 흘러갈수록 짜증남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액션 등의 장면들이 <애나벨>의 끔찍한 지루함보다 낫다는 점에서 조금 낫게 느껴지기는 한다.



 <더 넌>은 이미 <더 넌: 크루키드 맨>(가제)이라는 속편의 제작이 예정되어 있다. 영화에 쏟아지는 혹평과는 다르게, 북미에서 ‘컨저링 유니버스’의 작품 중 가장 빠르고 큰 흥행을 기록하고 있기에 속편의 제작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속편의 완성도도 이번 영화 같다면, 흥행을 장담하긴 어렵지 않을까? ‘컨저링 유니버스’의 다음 작품이 <더 넌>의 속편이 될지, <컨저링>의 속편이 될지, 혹은 또 다른 스핀오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영화보다는 괜찮은 작품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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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말기, 당나라 20만 대군의 공격에 맞서 싸워 승리한 안시성 전투를 다룬 첫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는 안시성 전투 직전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물(남주혁)이 반역자인 양만춘(조인성)을 암살하라는 연개소문(유오성)의 명령을 받고 안시성으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사물이 목격한 양만춘은 안시성 백성들의 말처럼 “안시성 그 자체”인 인물이었다. 당 태종 이세종(박성웅)의 공격에 맞서 추수지(배성우), 파소(엄태구), 백하(김설현), 풍(박병은), 활보(오대환) 등의 용맹한 부하들과 함께 뛰어난 전략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을 목격한 사물은 연개소문의 명령과는 달리 양만춘을 돕게 된다. 사실 안시성 전투를 영상화한 작품이 <안시성>이 처음은 아니다. <삼국기>나 <연개소문> 등의 드라마에서 등장한 적이 있으며,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의 초반부에도 안시성 전투가 등장한다. <안시성>의 안시성 전투는 <대조영> 속의 묘사와 유사하다. 아니, 전투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영화의 감성이 유사하게 느껴진다.



 때문에 <안시성>은 영화의 드라마적인 부분은 관객들이 익숙하게 느낄 서사와 감성에 맡기고, 안시성 전투에 스펙터클을 재현하는데 주력한다. 문제는 영화의 연출자가 액션 연출에 그다지 능하지 않은, <내 깡패 같은 애인>과 <찌라시: 위험한 소문>의 김광식 감독이라는 점이다. 다행히도 액션 시퀀스들이 같은 시기 개봉작인 <물괴>처럼 초라하다던가, 올해 다른 한국영화들처럼 엉성하지는 않다. 다만 액션에 딱히 기술을 갖지 못한 연출자인 만큼 다른 영화들에서 가져온 레퍼런스들의 나열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다. 영화를 보면서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의 헬름협곡 전투를 연상시키는 공성전, 마이클 베이 스타일의 슬로우 모션, 오우삼의 <적벽대전> 장예모의 <그레이트 월>, 잭 스나이더의 <300>,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 등 수많은 영화들의 공성전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영화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적절하게 레퍼런스를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영화 고유의 포인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한국의 다른 사극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거대한 스케일을 선보였다는 것 외에 별다른 의의는 찾기 힘들다. 또한 당나라가 쌓아 올린 토성이 무너지는 장면의 스케일은 재난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 거대하지만, <대조영>의 같은 장면만큼 감정적인 울림을 주지는 못한다.



 <안시성>의 주요한 문제는 이야기를 제대로 쌓아 올리지 못한 것에 있다. 백성의 위치에서 그들의 삶을 돌보는 성주 묘사는 진부하고,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캐릭터 소비(특히 정은채가 연기한 신녀 캐릭터는 오로지 감정의 고조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짜증을 유발하며, 억지로 감정을 끌어올리려는 후반부의 플래시백은 여전한 한국영화의 고질병이다. 사실 영화의 감정선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는 것은 미스캐스팅의 영향이 크기도 하다. 물론 조인성의 잘못은 아니다. 조인성이 양만춘을 연기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지만, <대조영>의 최수종 같은 연기를 요구하니 배우 본연의 톤과 연출가가 요구하는 캐릭터의 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영화의 지향점에 맞지 않는 배우를 캐스팅하니, 감정선이 제대로 쌓일 리가 없다. 때문에 <안시성>은 <대조영> 속 안시성 전투를 거대한 스케일로 확장한 수준에 그치고 만다. 다만 이러한 규모의 사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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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는 한 곳을 응시한다. 3분 동안 움직이지 않던 카메라는 풀밭인지,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를 곳으로 줌인 한다. 그 곳은 그저 어두운, 카메라 위에서 비치는 빛 덕분에 볼 수 있는 몇몇 풀벌레의 스쳐 지나감 말고는 볼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이다. 다시 3분 동안 그 곳을 응시하고, 쇼트가 바뀐다. 카메라는 다시 한 곳을 응시한다. 다시 몇 분 동안 풀밭을 응시하다가, 이번에는 줌아웃 한다. 풀밭에서 줌아웃 한 카메라에는 동굴의 입구가 잡힌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촬영되던 어두움은 동굴 안의 어두움이었으며, 후반부 동굴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동굴의 입구가 드러난다. 카메라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카메라 앞을 지나 동굴 밖으로 나가고, 카메라는 계속 동굴 입구를 비추다 영화가 끝난다.

 


 장은주 감독의 <안과 밖>은 동굴의 안과 밖을 양쪽에서 번갈아 촬영하며 카메라 앞뒤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지된 카메라는 응시하고 있는 대상과 카메라 뒤의 촬영자 사이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카메라의 시선에 들어온 동굴의 입구는 동굴의 안과 밖을 가르는 또 하나의 경계가 된다. 때문에 풀밭에서 동굴의 안으로 줌인 하는 것은 촬영자-카메라-동굴 입구 사이의 두 경계를 과격하게 뒤튼다. 후반부의 줌아웃도 마찬가지다. <안과 밖>은 두 개의 경계를 설정하고 이를 뒤틀면서 영화적 체험을 실험한다. 풀밭 뒤에 숨겨진 어둠으로의 줌인은 그 속의 있을지 모를 무한한 공간을 상상케 하고, 동굴의 입구만을 프레임 내부에 두는 줌아웃은 외부의 빛을 통해서는 모두 알 수 없는 동굴 속 공간을 상상케 한다. 더욱이 카메라 뒤에서 걸어 나와 동굴 밖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통해 카메라 뒤의 공간을 인식하게 된다.


 


 <안과 밖>은 줌인/줌아웃을 통해 경계를 밀고 당기며 카메라와 카메라에 담긴 공간의 무한한 확장을 드러내는 영화적 체험이다. 평면의 스크린/디스플레이 속에서 무한한 공간을 인식하고 그 공간을 탐구하는 것은 초기 영화에서도 이루어졌던 것이다. <기차의 도착>을 보던 관객은 기차가 달려온 넓은 들판을 상상했고,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에선 노동자들이 나오는 문 뒤의 보이지 않는 공장의 모습을 상상했다. 스크린의 평면을 넘어 카메라 앞에 담긴 공간을 상상하는 것은 영화의 기본적인 성질이다. <안과 밖>은 상상된 평면 위의 무한한 공간을 카메라 뒤의 공간으로까지 확장하고, 카메라의 앞과 뒤를 뒤섞으며 다시 한 번 확장한다. 이렇게 22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은 영화 속 공간의 확장성을 그야말로 체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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