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 1984> 패티 젠킨스 2020 :: 영화 보는 영알못

 전편 이후 다이애나(갤 가돗)은 정체를 숨기고 고고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일하는 그는 이제 막 새로 입사한 바바라(크리스틴 위그)와 친밀해진다. 그러던 중 FBI가 감정을 부탁한 유물들이 들어오고, 그 중엔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무언가를 가져가는 능력을 지닌 ‘드림스톤’이 섞여 있다. 그 스톤을 노린 사업가 맥스 로드(페드로 파스칼)은 바바라에게 접근한다. 얼떨결에 드림스톤에 소원을 빌어 죽은 스티브(크리스 파인)을 되살린 다이애나는, 드림스톤을 차지한 뒤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 맥스와 다이애나처럼 되길 욕망하는 바바라에게 맞서게 된다. 코로나 19로 인해 몇 차례 개봉이 연기됐던 <원더우먼 1984>는 제목처럼 1984년을 배경으로 한다. 얼떨결에 MCU 영화가 한 편도 개봉하지 못한 2020년에 DCFU는 <버즈 오브 프레이: 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과 이 영화 두 편을 개봉하게 되었다.

 <원더우먼>은 DCFU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다른 영화들을 떠올려보자. <맨 오브 스틸>부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수어사이드 스쿼드>, <버즈 오브 프레이>는 현실을 비튼 평행우주를(메트로폴리스, 고담), <아쿠아맨>은 신화적 소재를(아틀란티스), <샤잠!>은 슈퍼히어로들이 존재하는 일종의 대체역사를 택했다. 반면 <원더우먼>의 배경은 (물론 신화적 공간인 데미스키라가 등장하지만) 언제나 현실의 역사에 속한 공간이었다. 전편의 배경은 세계 1차대전 당시의 유럽이고, 이번에는 1984년 냉전시기의 세계 곳곳이다. 이러한 기조는 DCFU뿐 아니라 애로우버스(혹은 CW버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원더우먼> 시리즈만이 여기서 벗어나 있다. 전작은 주제적인 측면에서 이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나치가 등장했던 2차대전이 아닌 1차대전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역사적으로 ‘악’으로 판명난 집단에게 단순하게 응징을 가하는 것이 아닌, 언제든지 악해질 수 있는 것이 인간임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이 때문에 영화가 다소 납작해지긴 했지만, ‘No Man’s Land’ 등의 인상적인 장면을 담아내었고 잭 스나이더가 구축한 DCFU 특유의 비주얼과 액션 스타일을 가져오며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다시 말해, <원더우먼> 1편이 현실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갈 당위는 영화 내에서 충분히 설명되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배경이 1984년인지 당최 알 수 없었다. 팝컬처가 부흥하고 이미지 소비의 극한을 달리던 1984년 미국의 소비문화를 보여주는 초반부는 얼핏 그 시기가 얼마나 거품으로 가득했는지를, 잔뜩 부풀려진 껍데기와 포장의 시대였는지를 보여준다. 적어도 그 장면들을 볼 때만큼은 그러했다. <기묘한 이야기>의 대성공 이후 쏟아지는 80년대 배경의 영화, 혹은 그 시기의 창작물을 활용하는 일련의 작품들처럼 느껴지지만, <원더우먼 1984>의 초반부는 그 작품들이 묘사하는 80년대의 이미가 팝컬처와 미디어가 과장하고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을 착취함으로써 얻어지는 이미지들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과장이라 여겨질 정도로 그 당시의 방식대로 쇼핑몰, 패션, 노출이 심한 운동복 등을 재현하고, 그 속에서 스포츠카를 타고 폭주하는 젊은 남성들이나, 길거리의 여성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성들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스티브의 복귀 이후 이 영화가 80년대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특히 (아마도) 석유파동 이후 망한 사업가처럼 보이는 맥스 로드의 존재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있다는 것과, 냉전시대와 핵무기를 바로 연결 짓는 단순함은 도리어 영화의 배경이 1984년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계속 상기하게끔 한다.

 캐릭터의 서사를 현실 역사와 밀착시켜온 엑스맨 프랜차이즈의 사례를 떠올려보자. 매그니토는 아우슈비츠를 탈출한 유대인이고 울버린은 남북전쟁부터 베트남전까지 참전해온 군인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냉전시기를 관통하며 쿠바 핵전쟁 위기를 비롯한 여러 역사적 사건들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는 엑스맨 캐릭터의 기원 자체가 서구권의 여러 인종적, 페미니즘적, 퀴어적 민권운동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반면 DCFU의 캐릭터들 대부분 신화적 기원을 갖추고 있다. 신적인 존재에 가까운 외계인이거나, 자본주의 신화가 만들어낸 재벌이라거나, 아니면 아예 신화와 마법 속에서 튀어나온 존재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뉴욕 등의 실제 도시가 아닌 가상의 도시에서 활동한다. 어쩌면 <원더우먼 1984>가 실패한 것은 여기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패티 젠킨스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80년대 영화처럼 촬영했다고 이야기했다. 여러 액션 시퀀스에서 CG대신 와이어를 활용하였고, 빌런을 묘사하는 방식 또한 80년대 SF 액션 영화의 것과 유사하게 연출되었다. 맥스 로드가 전세계인을 향해 생방송을 진행하는 시퀀스에서 푸른 불빛 안에 놓인 얼굴 클로즈업은 그 당시의 SF영화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것이 1984년을 영화가 활용하는 것에 대한 당위를 제공하진 않는다. TV 시리즈 <원더우먼>의 린다 카터가 카메오출연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TV 시리즈처럼 냉전시기라는 배경을 적극적으로 끌어오지도 않는다. 진실을 강조하고 탐욕을 멈춰야 한다는 다소 뻔한 교훈적 메시지는 직설적으로, 그것도 대부분 연설조의 대사로만 구성되어 이렇다할 감흥을 주지 못하며, 미디어가 부풀린 이미지의 거품에 대한 이야기도 진부하게만 언급된다. 이 과정에서 80년대는 다시 한번 껍데기로만 존재한다. 예고편에 등장한 뉴 오더의 “Blue Monday '88 Dub”은 어디로 갔는가? 1984년이 배경이기에 1986년에 발매된 노래는 예고편에서만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라면, <원더우먼 1984> 또한 80년대의 껍데기가 남긴 부스러기만을 주워담는 또 하나의 영화일 뿐이다. 

 

p.s. 여담이지만 DC의 여러 실사화 프로젝트 중 가장 성공한 것은 애로우버스라 생각한다. MCU <스파이더맨 3>에 이전 스파이더맨들이 출연한다는 루머가 도는 와중에 2019년 말 공개된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 크로스오버는 이를 썩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슈퍼걸>에서 대통령으로 출연하던 린다 카터가 원더우먼으로 출연하는 것이 불발되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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