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아니다, 별로아니다, 가끔그렇다, 항상그렇다> 엘리자 하트먼 2019 :: 영화 보는 영알못

 어텀(시드니 플래너건)은 펜실베니아 시골 지역에 사는 가수 지망생이다. 그는 학교를 다니며 사촌 스카일라(탈리아 라이더)와 함께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 날, 그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펜실베니아는 임신중절이 불법이다. 집 인근의 클리닉에서는 임신중절에 대한 도움 대신 낙태 반대 비디오를 보여줄 뿐이다. 그는 모아둔 돈을 털어 스카일라와 함께 의학적 도움을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라는 긴 제목(원제는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을 지닌 이 영화는 어텀과 스카일라의 짧은 여정을 담아낸다. 임신중절에 대해 어떤 운동을 보여준다거나, 두 사람의 여정이 대단한 모험을 동반한다든가, 어텀이 가족과 대치하고 도망간다거나, 임신중절을 위한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든가 하는 등의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시티즌 루스>와 같은 영화가 아니다. 두 사람은 그저 임신중절이 합법인 도시에 가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돌아올 뿐이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의 제목은 설문조사의 응답 항목이다. 뉴욕의 임신중절 클리닉을 찾은 어텀은 수술을 받기 전 구두로 진행되는 설문조사 과정을 거친다. 이는 17살 미성년자인 어텀의 임신이 폭력에 의한 것인지, 혹은 다른 사연에 의한 것인지 등을 조사한다. 다분히 사무적이지만 점점 격해지는 어텀의 감정에 따라 천천히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하는 상담가의 말은 어텀이 펜실베니아에서 듣지 못했던 종류의 말이다. 이는 그와 동행한 스카일라 또한 해내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그러한 종류의 말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라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무적인 단어들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암컷 반려견을 ‘Bitch’라 부르는 가부장의 언어로 가득한 펜실베니아에서 접할 수 없었던 종류의 언어다. 때문에 뉴욕을 찍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오는 어텀의 여정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신의 상황을 헤아려 줄 최소한의 언어와 만나는 여정이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만약 이 여정이 어텀의 이야기만으로 끝나는 것이었다면 스카일라는 등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스카일라는 다소 소심한 어텀과 다르다. 그가 마트 점장을 상대하는 모습은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삭제되는 직장 내 성희롱을 견뎌내는 모습이다. 그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으며, 필요할 때는 그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스카일라가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한다고 하여 그에게 가해지는 성착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어텀이 뉴욕으로 떠날 용기와 지지에 스카일라가 필요했듯이, 스카일라 또한 어텀의 손길과 연대가 필요한 존재다. 버스를 타고 뉴욕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재스퍼라는 남자를 만난다. 두 사람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는 두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등의 호의를 베푼 대가로 스카일라의 전화번호를 얻는다. 여정의 마지막, 펜실베니아로 돌아가야 하는 두 사람은 어텀의 수술로 인해 돈이 떨어진 상황이다. 스카일라는 어쩔 수 없이 재스퍼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는 두 사람과 함께 볼링을 치고 가라오케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 어텀이 없는 사이 스카일라에게 키스한다. 두 사람을 찾아 버스터미널을 헤매던 어텀은 기둥 뒤에서 키스하는 스카일라의 손을 잡는다. 어텀의 여정에 스카일라가 동행했듯, 어텀은 스카일라에게 손을 내민다. 자신에게 필요한 언어와 의료적 조치를 위해 떠난 어텀의 여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어줄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펜실베니아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밖에서 들어오는 햇볕을 받으며 한층 불안이 가신 어텀의 표정에서 환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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