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 라이언 머피 2020 :: 영화 보는 영알못

 엘리너 루스벨트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어 성공하길 바랬으나 평단의 혹평만을 듣고 좌절한 브로드웨이 스타 디디 앨런(메릴 스트립)과 베리 글릭먼(제임스 코든)은 스스로를 홍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들을 돕기로 한다. 뮤지컬 [시카고]에서 매번 코러스만 하는 배우 앤지(니콜 키드먼)가 트위터에서 인디애나 주의 시골 마을에 사는 레즈비언 소녀 에마(조 엘런 펠먼)의 사연을 발견하고, 왕년의 시트콤 스타 트렌트(앤드류 라넬스)까지 합세해 인디애나로 향한다. 에마는 자신의 여자친구 알리사(아리나아 데보스)와 함께 프롬에 가는 것이 꿈이었으나, 교장 톰(키건 마이클 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는 프롬에 올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프롬 자체를 취소해버린 그린 부인(케리 워싱턴)의 학부모회에 의해 가로막힌다. 학부모회, 학생회, 에마와 교장 톰이 참석한 회의장에 난입한 디디의 일행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뉴욕 셀럽인 자신들이 이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글리>부터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포즈>, <래치드>, <더 폴리티션> 등 수많은 TV쇼의 쇼러너로 활약한 라이언 머피의 연출작 <더 프롬>은 매끈하고 안전한 상업적 감각 속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설파하는 뮤지컬 영화다. 커밍아웃한 게이인 라이언 머피의 고향인 인디애나를 배경으로 삼은 이 영화는 라이언 머피 자신의 고향과 유년시절에 메시지를 보내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도 자신을 투영한 듯한 게이 캐릭터 베리와 게이 아이콘 메릴 스트립, 그리고 니콜 키드먼과 키건 마이클 키, 케리 워싱턴과 같은 스타들을 대동한 채 뉴욕과 할리우드에서 한없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올린 뒤 금의환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초반 네 명의 브로드웨이 배우들은 뉴욕의 셀럽인 자신들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노래하며 인디애나 촌놈들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알려주고 촌놈들 사이에 둘러 쌓인 소녀를 위험에서 구해내겠다고 말한다. 나는 지극히 시혜적인 시각에서 시작한 이 영화가 후반부에 다가갈수록 그러한 입장을 내려놓을 것이라 기대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이루어진다. 베리는 고향을 마주하고 디디는 스타로서의 자신을 일정 부분 내려놓으며, 트렌트는 새로운 길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는 나르시시스트라 비판받았던 이들의 시혜적인 태도를 뒤바꾸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더욱 견고한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이들의 난입은 어쨌든 성공으로 향했으며, 자신의 방식을 찾고자 했던 에마의 길은 이들의 자기 계발을 돕는 밑거름이 될 뿐이다. 이들의 활약은 화려해 보이지만 무색무취의 영화 속 뮤지컬 시퀀스들과 다른 바 없다.

 

 이러한 방향은 메릴 스트립과 같은 대형 스타이자 아이콘을 활용하기 위한 것에 그칠 뿐이다. 브로드웨이 스타와 인디애나 소도시에 레즈비언 소녀 사이의 유대는 뻔하고 도식적이며, 이들의 난입은 에마가 톰과 같은 지지자들의 도움과 노력을 통해 스스로 얻어낼 수 있었던 성취를 약탈한다. 차라리 브로드웨이 스타들이 등장하는 파트가 모조리 빠진, 온전히 에마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뮤지컬 영화였다면 더욱 깔끔하고 집중력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131분의 러닝타임 내내 에마는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디디와 베리는 주인공의 위치에서 내려올 것이라 선언하지만, 영화의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그들이다. 때문에 <더 프롬>은 아이콘으로서 배우들이 지닌 이미지를 안전하게 끌어와 설교하고 훈계하는, 공익적인 이야기를 가장 비-공익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재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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