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러브> 미이케 다카시 2019 :: 영화 보는 영알못

*스포일러 포함

 

 쇠락해가는 야쿠자 조직의 멤버 카세(소메타니 쇼타)는 부패경찰 오토모(오모리 나오)와 손잡고 마약을 빼돌릴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이란 조직의 마약 운반책이 감금하고 있는 모니카(코니시 사쿠라코)가 마약을 훔쳐 도망간 것으로 위장하는 것. 한편 권투선수인 레오(쿠보타 마사타카)는 시합에서 다운된 이후 진행된 병원 검사에서 뇌종양 판정을 받고 밤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레오는 우연히 오토모에게 쫓기던 모니카를 구해주고 함께 도주하게 되며, 카세가 세운 계획에 휘말리게 된다. 끔찍했던 <테라포마스>를 포함해 <악의 교전>, <신이 말하는 대로>, <죠죠의 기묘한 모험> 등 원작 기반의 영화를 꾸준히 연출해온 미이케 다카시의 신작 <퍼스트 러브>는 그가 <도쿄 아포칼립스> 이후 5년 만에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제작한 작품이다. <도쿄 아포칼립스> 이후로 오랜만에 야쿠자물을 내놓았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사실 미이케 다카시의 최근작들은 거의 보질 않았다. <악의 교전>과 <신이 말하는 대로> 정도만 챙겨봤는데, 두 작품 모두 원작 소설/만화보다 못한 작품이고, 전형적인 양산형 일본영화에 가까웠기 때문에 꽤나 실망했었다. 물론 2010년대 이전의 미이케 다카시도 <크로우즈 제로>나 <용과 같이>, <착신아리>처럼 만화나 게임, 소설 등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꾸준히 연출해왔고, 김지운의 <조용한 가족>을 리메이크한 <카타쿠리가의 행복> 같은 작품도 있었다. 다만 앞선 영화들은 V시네마로 데뷔한 감독의 취향에 맞춰져 있는, 일본 B급 영화들의 계보를 충실히 이어가는 작품들에 대부분이었다. <이치 더 킬러>나 <오디션> 등의 대표작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다만 2010년대 들어 그가 연출한 원작 기반 영화들은 조악한 CG와 특수분장 등을 통해 원작(주로 만화나 아니메)을 실사로 옮겨왔을 뿐, 과거의 작품들과 같은 재미를 주진 못했다. 

 미이케 다카시의 커리어에 대해서 좀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퍼스트 러브>가 미이케 다카시의 필모그래피라는 맥락 안에서 나름대로 흥미로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퍼스트 러브>는 <후도>, <신주쿠 흑사회>, <풀 메탈 야쿠자> 등 그가 V시네마 시절이나 데뷔 초에 연출해온 장르 혼종적 B급 야쿠자물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이는 야쿠자물이 몰락을 맞이했음에도 그것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아웃레이지>를 3편까지 만들어낸 기타노 다케시의 근작들과도 구분된다. <퍼스트 러브>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부터 소노 시온, 구로사와 기요시, 그리고 미이케 다카시 본인까지 꾸준히 언급하고 있는 일본영화의 몰락에 대한 나름의 (뒤늦은) 답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레에다는 프랑스와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소노 시온은 아마존 프라임을 비롯한 미국의 자본으로, 기요시는 NHK와의 합작으로, 즉 일본의 ‘거장’이라 불릴 만한 최근의 감독들이 모두 일본의 3대 스튜디오(토호, 닛카츠, 토에이)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미이케 다카시는 필름 그레인이 자글자글한 토에이 파도 로고와 함께 시작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내내 언급되는 것은 무력으로 세력을 유지하는 야쿠자 조직의 문제다. 카세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은 스스로가 몰락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다른 조직들이 국외로 진출하여 살길을 찾거나, 중국 조직이 야쿠자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이 그려진다. 극에 등장하는 카세의 조직 또한, 상부조직이 있다고 언급되긴 하지만 6~7명 정도가 조직원의 전부다. 극 후반부 조직의 보스 곤노(우치노 세이요)가 레오에게 “야쿠자가 되면 바로 넘버3가 될 수 있어”라 말하는 것은 정말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카세의 계획은 야쿠자로써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기보단, 조직을 등쳐먹고 자신 혼자 살겠다는 것에 가깝다. 중국 조직의 멤버가 “야쿠자들이 맹자의 ‘인의’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왔다가 실망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이상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카세의 계획은 레오의 갑작스러운 개입으로 실패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굳이 레오의 개입 없이도 카세의 계획은 높은 확률로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약과 트라우마로 인한 모니카의 환각, 주리(베키)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움직임, 카세의 바보 같은 실수들 등이 수차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은 당연하게도 파국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퍼스트 러브>의 이야기는 카세가 속한 야쿠자 조직의 (완전한) 몰락 과정이자, 이들의 대척점에 놓인 중국 조직의 몰락이며, 야쿠자라는 폭력조직이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시대적 조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상징적 아버지들이 죽는 것들로 이어진다. 모니카는 자신을 쫓아오던 착취자 아버지의 환영에 대고 그것의 고간을 발로 차 버리며, 두 조직의 보스는 서로의 몸에 칼을 꽂아 넣어 죽음을 맞이한다. 그중에서 곤노가 죽음을 맞는 방식이 독특하다. 모든 것이 끝나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경찰에 쫓기던 그는 레오와 모니카를 내려주고 차를 운전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죽기 전 “야쿠자에게 아침해는 어울리지 않아”라고 말한다. 밤새 혈투를 벌이다 온몸이 피를 바르고 뜨는 해를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언뜻 뱀파이어의 죽음을 묘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뱀파이어는 어떤 괴물인가? 그것은 영속적이지만 햇빛에 의해 죽을 수 있는 존재이고, 목을 물어 후계자를 만들어내는 세습 과정을 거치며, 이곳저곳을 방랑하기보단 (물론 그렇게 묘사된 뱀파이어 캐릭터도 있지만) 한 곳에 정착하여 그 일대를 자신의 영토로 삼는 존재다. 즉 뱀파이어는 귀족의 속성을 지닌다. 그것은 손가락을 자르고, 세습 과정을 거치고, 활동영역을 지니는 야쿠자의 생태와 유사하다. 

그 생태계를 최종적으로 교란하는 레오와 모니카의 존재는 뱀파이어의 존재적 지위와 반대에 위치해 있다. 우선 이들은 집 없이 떠돌며 살아간다. 모니카는 아버지가 그를 팔아버렸으며, 감금상태에 놓여 있다. 레오는 집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 숏에서나 등장한다. 레오가 모니카를 만나기 전까지 관객은 방랑하는 그를 볼 수 있을 뿐이다. 더불어 두 사람은 병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모니카는 마약중독과 트라우마로 인한 환각을, 레오는 뇌종양으로 인한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갈 곳 없이 본능적으로 떠도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얼핏 의식 있는 좀비와 같이 보인다. 둘 모두는 영화의 마지막, 즉 뱀파이어적 존재인 야쿠자들의 괴멸 이후에 이를 극복한다. 아니, 뱀파이어적 존재의 괴멸 과정 자체가 이들이 지닌 질병의 극복 과정이다. 

 <퍼스트 러브>가 그려내는 인물 구성을 이렇게 재편하고 바라볼 때, 카세는 뱀파이어적 존재의 몰락을 가져온 하나의 극단이자, 그 스스로 몰락을 체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모든 계획이 들통나고 야쿠자 및 중국 조직 모두에게서 도주하던 그는 총상을 입는데, 그 과정에서 주머니에 숨겨둔 필로폰이 상처로 들어가게 된다. 강렬한 마약 흡입 상태가 된 카세는 한 상점 안에서 벌어지는 혈투 속에서 총격이나 팔이 잘리는 상황에서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주리에 의해 목이 잘린 그의 모습은 오토모의 대사처럼 어딘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즉 폭력에 무뎌진 채 야쿠자들의 의리나 인의를 이야기하는 일련의 영화와의 단절을 카세의 죽음으로 드러낸다. 특히 특정한 상황에서만 튀어나오는 카세의 과장된 야쿠자 말투는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임과 동시에 몰락한 야쿠자들을 놀리는 블랙코미디로 기능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야쿠자들의 뱀파이어적 속성과 일본영화의 현재의 연결을 가능케 한다. 일본 영화들은 원작(만화, 아니메, 소설, 게임)의 실사화라는 미명 하에 서사의 세습을 반복하며 고착화되고 있다. 고레에다의 말처럼 “갈라파고스화 되고 있”으며, 미이케 다카시 스스로도 다년간 줄기차게 실사화 영화들을 연출하며 염증을 얻었을 법한 상황이다. 때문에 “국산차를 믿어봐”라며 상가 주차장에서 도로 바닥으로 차를 몰도록 시키는 곤노의 대사와, (아마도 예산 문제 때문이겠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대체된 국산차의 비행 장면은 영화를 믿지 못한 채 상품화에 매진하는 상황을 다소 당황스럽게 드러낸다. 이것이 당황스러운 이유는 장면 연출 자체가 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용 감독으로서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낸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에서 이러한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노 시온이 뱀파이어를 전면에 내세우며 <도쿄 뱀파이어 호텔>이라는 거대한 폐허를 만들어내고 있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유럽과 일본이 아닌 동아시아 곳곳을 떠돌고 있을 때, 미이케 다카시는 자신의 자리에 남아 무언가 해볼 여력이 아직은 남아 있음을 소심하게나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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