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 조 루소, 안소니 루소 2019 :: 영화 보는 영알못

*스포일러 포함

 

 드디어 끝났다. 2008년 <아이언맨>으로 시작해 11년 동안 22편의 영화를 통해 이어지던 MCU의 첫 마무리, ‘인피니티 사가’가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개봉일 영화를 보고 나오니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과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느낌이 공존한다. 국내에서만 해도 사전예매량이 200만이 넘고, 개봉일 오전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그야말로 ‘엔드게임 광풍’이 불고 있지만, 막상 본 영화는 조금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영화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핑거스냅’ 직후에서 시작한다. 캡탄 마블(브리 라슨)의 도움으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네뷸라(카렌 길런)가 지구에 도착하고,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블랙위도우(스칼렛 요한슨), 헐크(마크 러팔로) 등 살아남은 히어로들은 타노스(조쉬 브롤린)를 추적한다. 이들은 인피니티 스톤의 사용으로 쇠약해진 타노스를 처치하는데 성공하지만, 타노스는 이미 스톤의 힘으로 스톤들을 제거해버렸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시간, 어벤져스는 패배감과 죄책감을 간직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양자영역에서 돌아온 앤트맨(폴 러드)이 양자영역을 통한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마지막 희망을 받아들인 어벤져스는 시간여행을 통해 스톤들을 모아 죽은 이들을 살려내려 하고, 타노스와 최후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엔드게임>은 시종일관 마지막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어벤져스> 때부터 이어진 최종빌런 타노스와의 이야기, 첫 <어벤져스>부터 출연해온 원년멤버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때문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캡틴 마블 등을 비롯한 뒤늦게 ‘인피니티 사가’에 참여한 캐릭터들의 분량은 매우 적다(이들 대부분이 <인피니티 워>에서 먼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엔드게임>은 과연 적절한 마무리인가?”라는 질문이 <엔드게임>에 대한 만족도를 결정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밌게는 봤지만 아쉬웠다. 181분의 러닝타임 동안 아쉬운 지점들이 여럿 드러났다. 

 

 재밌는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시간여행 설정을 통해 과거의 MCU 영화들에 등장했던 여러 사건과 장소들이 다시 등장하는 부분이다. 살아남은 어벤져스 멤버들은 스톤을 찾기 위해 세 팀으로 나누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앤트맨은 <어벤져스> 뉴욕 침공으로, 토르와 로켓(브래들리 쿠퍼)은 <토르: 다크 월드> 시기의 아스가르드로, 네뷸라와 워머신(돈 치들)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모라그 행성으로, 블랙위도우와 호크아이(제레미 레너)는 <인피니티 워>에 등장한 보르미르로 떠난다. 이들의 여정에서 그간 등장했던 수많은 캐릭터와 사건들이 다시 등장한다. 더욱이 이 장면들의 많은 부분이 코믹스에서 따온 장면들이기에, 팬들에게 더욱 인상 깊을 장면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기 전, ‘핑거스냅’으로부터 5년이 지난 시점의 묘사도 만족스럽다. 마치 <나는 전설이다>와 같은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의 황량한 도시의 풍경을 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아쉬운 지점 또한 좋았던 부분들과 거의 동일하다. 어벤져스 멤버들은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의 사건, 그리고 인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과거를 직접 찾아가 MCU의 11년을 되돌아보는 컨셉은 도리어 <백 투 더 퓨처> 보다는 <나의 마지막 액션 히어로>와 같은 영화 속으로 주인공이 들어가는 영화를 연상시킨다. 문제는 캐릭터들이 과거에서 만나는 인물들이 자신 혹은 자신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가령, 아이언맨은 1970년의 쉴드 기지에서 아버지인 하워드 스타크(존 슬래터리)를 만나고, 토르는 어머니 브리가(르네 루소)를 만난다. 이들은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 패배감, 죄책감을 풀어놓는다. 러닝타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과정은 ‘팬서비스’ 그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조언해주는 토니나 어머니에게 조언을 받은 토르의 이야기는 현재로 돌아온 이후 어떠한 변화의 지점도 만들어주지 못한다. 아주 짧게 치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팬서비스’라는 명목으로 길게 늘여 놓은 것 밖에 되지 못한 장면들이다. 

 

가장 아쉬운 지점은 시간여행 설정이 전개되는 방식이다. <엔드게임>은 헐크나 네뷸라 등의 대사를 통해 영화 속 시간여행이 <백 투 더 퓨처>나 <터미네이트> 등의 시간여행 영화라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영화는 어느 정도 그 설정을 맞춰 따라가는 듯하다. 에이션트 원(틸다 스윈튼)은 ‘타임 스톤’을 얻기 위해 자신을 찾은 헐크에게 시간여행에 따른 평행우주들이 생겨날 것이라 설명하지만, 헐크는 스톤들을 다시 과거로 돌려놓을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설정은 얼추 들어맞는 것 같다. 영화의 엔딩 직전까지 이 설정은 큰 결함이 없다. 하지만 엔딩 부분에서 스톤을 반납하기 위해 다시 한번 시간여행을 떠난 캡틴 아메리카가 그대로 과거에 머무르고, 노인이 되어 팔콘(안소니 마키)과 재회하는 장면은 영화가 내세운 시간여행의 논리를 붕괴시킨다. 그 장면의 감동보다 영화 스스로 무너트린 설정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이 더 컸다. 

 

 어벤져스 ‘원년 멤버’의 은퇴식에 가까운 이 영화가 특정 캐릭터를 대우하는 방식 또한 불만족스럽다. 토니 스타크는 죽었고, 캡틴 아메리카는 시간여행을 통해 새 인생을 살았으며, 호크아이는 가족과 함께 하고 있고, 토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블랙위도우와 헐크의 이야기는 없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심지어 호크아이에게도 주어진 에필로그가 헐크에겐 없다. 특히 블랙위도우에 대한 대우는 최악에 가깝다. 호크아이와 함께 소울스톤을 구하러 과거의 보르미르 행성으로 간 둘은, 서로가 각자를 희생해서 소울 스톤을 얻고자 한다. 결국 블랙위도우가 죽게 되고, 호크아이가 소울 스톤을 얻어 귀환한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는 절벽에서 추락해 죽은 블랙위도우의 모습을 <인피니티 워> 속 가모라의 최후와 같은 구도로 촬영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블랙위도우는 ‘어벤져스’라는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 그리고 모두를 위해 희생하는 성녀로 간단하게 치환되어 버린다. 심지어 생존한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모이는 토니 스타크의 성대한 장례식 장면과는 달리, 블랙위도우의 장례식은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사실 <캡틴 마블>이나 <블랙팬서>, <앤트맨과 와스프> 정도를 제외하면 MCU 영화들 속 여성캐릭터의 대우는 언제나 좋지 않았다. <엔드게임>은 그 전통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원년멤버인 블랙위도우의 퇴장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분명 비판받을 지점이다. 아마도 많은 팬들이 이 부분에서 분노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당장 내년 블랙위도우의 첫 솔로영화가 예정되어 있는 와중에 이러한 방식으로 퇴장시키는 것에서, 제작진이나 팬보이들이 그토록 부르짖던 ‘캐릭터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캡틴마블을 비롯한 여성캐릭터들이 팁업하는 장면은 (그 장면 자체로는 괜찮지만) <엔드게임>, 더 나아가 MCU의 많은 영화들이 여성캐릭터를 다뤄온 방식에 대한 인식개선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알라바이이다. 네뷸라가 조금 더 입체적인 캐릭터성과 서사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미약한 위로가 뿐이다.

 

 <엔드게임>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원년멤버의 은퇴’에 있다. 중년 백인 남성 셋과 젊은 백인 남성 둘, 백인 여성 하나로 구성된 이 팀의 인종적, 젠더적 구성은 계속해서 비판받아온 지점이다. <엔드게임>은 3시간의 긴 러닝타임을 할애해 이들의 마지막을 보여준다. 어쩌면 <엔드게임>은 이것만으로 충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추억팔이로만 가득한 영화이지만, 어쨌든 타노스를 대적하는 기나긴 ‘인피니티 사가’는 끝났다. 백인 중년 남성 위주의 이야기는 저물었고, 블랙팬서, 캡틴 마블, 발키리, 와스프, 스파이더맨 등의 비백인, 여성, 청소년 캐릭터들이 앞으로의 MCU를 이끌어 갈 것이다. <블랙팬서2>나 <캡틴마블2> 이외에도 <상치>, <미즈마블> 등 동양인 남성, 무슬림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제작 중이라는 루머들이 흘러나오는 것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당장 캡틴 아메리카가 버키가 아닌 팔콘에게 방패를 물려준 것만 봐도, 이러한 변화의 조짐이 드러난다. 아직 MCU에 데뷔하지 않은 코믹스의 캐릭터들을 생각하면, 마블은 지금까지의 단점을 (물론 느린 변화겠지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엔드게임> 자체는 지난 10년 동안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극대화한 아쉬운 결과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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