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지구> 곽범 2019 :: 영화 보는 영알못

 중화권 SF 소설의 거장 류츠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유랑지구>가 개봉했다. 원래 중화권 외의 배급권을 넷플릭스가 챙겨가 아쉬웠는데, 결국 국내엔 개봉하게 되었다(넷플릭스에는 4월 30일 공개된다). <유랑지구>는 <아마겟돈>을 비롯해 수도 없어 쏟아져 나온 ‘전지구적 위기에서 미국이 지구를 구하는 영화’에서 미국을 중국으로 변경한 느낌의 작품이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가까운 미래, 태양의 팽창으로 지구가 사라질 위기해 처한다. 지구인들은 연합정부를 구성해 대응책을 내놓는다. 그것은 지구 곳곳에 ‘지구엔진’을 건설하여 지구를 통째로 다른 태양계로 옮기는 것이다. 무려 2500년이 걸리는 이 계획의 첫 관문은 태양계 행성 중 중력이 가장 강력한 목성을 지나치는 것이다. 하지만 목성의 중력이 예상에 비해 커지자, 지구는 목성과 충돌할 위기에 처한다. 우주정거장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류배강(오경), 지구에 있는 그의 아들 류치(굴초소)와 송이(조금맥) 등은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쳐 지구를 구하려 한다.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해 다소 스케일이 거대하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익숙한 할리우드 서사 그 자체이다. 가족을 부각하는 신파,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거대한 스케일의 비주얼, 적당히 배치되어 있는 소소한 반전 등 진부하다면 진부하고, 무난하다면 무난한 이야기가 <유랑지구>의 플롯이다. <유랑지구>가 할리우드 영화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당연하게도 제작국가가 중국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지구의 중심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이는 사소한 포인트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와 주요 캐릭터들의 인종, 심지어는 음악까지도 달라진다. 또한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CNN이나 BBC 위주로 등장했을 뉴스 장면에서 NHK와 KBS, 그리고 러시아와 동남아의 방송이 나오는 장면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공전궤도를 벗어난 지구가 꽁꽁 얼어붙었기에 우리가 익히 아는 중국 대도시들의 모습이 제대로 등장하진 않지만,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의 지명과 술라웨시,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의 지명이 영화의 주된 무대로 등장한다는 점 또한 약간의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또한 이를 구현하는 CG기술력은 이미 할리우드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매끈한 스펙터클을 보기 위해 더 이상 할리우드 영화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증거 중 하나이다. 더군다나 영화에서 분량이 있다고 할만한 백인은 류배강의 동료인 러시아 우주비행사 한 명뿐이다. 게다가 ‘미국뽕’ 대신 들어간 ‘중국뽕’을 ‘인류애’로 적당히 포장하는 솜씨 또한 할리우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쉬운 지점은 분명 존재한다. 우선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전세계적인 스타 배우의 부재이다. 주연을 맡은 오경은 중화권에선 대형스타이지만, 전세계적으로는 아직 인지도가 부족하다. 거대한 블록버스터를 이끌어 갈 스타 배우의 부재는 조금 아쉽게만 느껴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각본에서의 구멍이나, CG 기술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널뛰는 편집 등은 계속해서 몰입을 방해한다. 이는 <신과 함께>시리즈에서 느꼈던 것과 유사하다. 기술력은 준비되었지만, 이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연출가를 비롯한 헤드스텝들이 없는 것이다. 종종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잡한 편집은 확실히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유랑지구>는 중국의 블록버스터가 보여줄 수 있는 새로움, ‘굳이 할리우드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자연스럽게 지구의 중심을 동아시아로 재편해버리는 영화를 중국이 아니면 또 어디가 만들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랑지구>를 보는 2시간가량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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