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김윤석 2018 :: 영화 보는 영알못

*스포일러 포함

 대원(김윤석)과 미희(김소진)는 불륜관계이다. 대원의 딸 주리(김혜준)와 미희의 딸 윤아(박세진)는 이를 알고 있다. 남편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미희는 대원의 아이를 임신했다. 어느 날 윤아가 주리의 엄마 영주(염정아)에게 그 사실을 알려버린다. 불륜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면서 주리와 윤아의 생활은 복잡해진다. <미성년>은 김윤석이 2014년 우연히 본 창작연극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자 이보람 작가와 함께 공동으로 각본을 각색하고,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영화 <미성년>의 시놉시스는 어딘가 익숙한 막장드라마의 느낌이 난다. 하지만 영화는 자극적인 요소에 몰두하지 않는다. 대신 기괴하게 다섯 사람의 삶을 따라간다.

 <미성년>은 아이러니의 영화이다. 불륜관계에 있는 각자의 아빠와 엄마의 딸인 주리와 윤아는 서로 관계 맺을 수 없는 관계이지만 단짝과 유사한 관계가 된다. 아빠인 대원은 주리를 피해 도망가지만, 주리와 윤아는 원을 그리며 다시 마주한다. “우리 또 보지 말자”라는 대사가 반복되지만 주리와 윤아는 계속 보게 된다. 영화 속에서 성인인 영주와 미희는 눈물을 보이지만 미성년인 주리와 윤아는 울지 않는다. 나이와 몸은 성인이지만 누가 정말 ‘어른’인지, ‘성년’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성년’들은 사건을 벌이고, ‘미성년’들은 사건을 수습하려 한다. <미성년>의 아이러니들을 만들어내는 인물은 대원이다. 대원은 모든 일의 발단이지만 극 밖으로 도망쳐버린다.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남성인 대원은 아이러니를 생산한다. 나머지 네 명의 여성들은 그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간다. <미성년>은 아이러니로 추동될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들, 특히나 여성들의 이야기이기에 주어진 삶의 ‘설정’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아이러니는 사후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아니다. 영화는 외부적 힘에 의해서 삶에 설정된 아이러니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감독 김윤석은 자신이 출연했던 수많은 영화들, 가령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남쪽으로 튀어>, <완득이>, <극비수사> 등의 작품들 속 좋은 쇼트들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연출 데뷔작에 활용한다. 때문에 종종 연출이 튀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잘 짜인 장면들로 영화가 이어진다. 사실 촬영과 미장센의 측면보다 각본과 연기의 측면이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는 작품이다. 김혜준, 박세진, 염정아, 김소진의 연기는 아이러니를 상대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반대로 (아무도 역할을 선택하지 않아 직접 대원 역을 맡게 되었다는) 김윤석의 연기는 자신을 완벽하게 내려놓았다. 연출자이자 배우인 김윤석은 스스로를 극 밖으로 몰고 간다. <미성년>의 이야기 속에서 가장 ‘미성년’인 중년 남성은 아이러니를 마주 대하고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도 모르게 삶의 아이러니를 생성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를 통해 작동하는 세상에서, ‘성년’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추상적인 목적지이다. 나이라던가 삶의 궤적 따위는 ‘성년’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미성년’의 삶을 산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미성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대원과 미희 사이의 아이는 미숙아인 상태로 태어나서 그 상태로 죽는다. 미숙아인 아이는 존재 자체가 아이러니이다. 대원과 미희 사이의 아이이지만, 영주가 미희를 밀침으로써 태어났고, 주리와 윤아라는 두 누나를 가진 존재, 그 자체로 아이러니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존재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주리와 윤아는 죽은 동생의 뼛가루를 들고 대원과 미희가 사진을 찍은 놀이동산에 찾아간다. 이들은 폐장된 놀이동산에 3명 분의 입장료를 내고 움직이지 않는 놀이기구에서 신나게 논다. 주리와 윤아는 그곳에서 죽은 동생의 뼛가루를 우유에 타서 나눠 마신다. 많은 관객들이 언급하는 이 충격의 엔딩은 아이러니로 가득한 삶, 그 순간들을 거친 두 사람이 지닌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또 보지 말자”라고 반복해서 말해도 계속해서 마주해야만 하는 삶에서 주리와 윤아는 극복될 수 없는 아이러니 자체를 받아들여야 함을 체화한다. 뼛가루를 나눠 마시는 둘의 선택은 이를 직접적으로 은유한다. 이 세계에서 성년은 절대 당도할 수 없는 추상적인 목적지이고, 거기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죽어서도 미성년일 수밖에 없다. <미성년>은 그렇게 ‘미성년’으로서의 삶을 직시한다. 영화 속 성년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미성년들은 순간과 상대방을 끝까지 응시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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