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2017' 카테고리의 글 목록 (15 Page) :: 영화 보는 영알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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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촌방향>과 <다른나라에서>를 시작으로 영화 속 시간에 대한 실험을 이어온 홍상수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통해 이야기 자체의 변화까지 보여줬다. 그러한 변화는 홍상수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를 통해 드러난다. (홍상수 본인을 포함한 것으로 확실시되는) 영화 속 찌질한 남성들의 구애를 받아내는 위치였던 영화 속 여성에게 솔직함을 드러내고(<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그들을 존대하기 시작했다(<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현실 속 여러 논란과 겹치는 이야기를 담은 그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다른나라에서>의 이자벨 위페르가 있지만) 홍상수 영화의 첫 여성 원 톱 주연 영화이다. 홍상수의 페르소나로 느껴진 전작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밤의 해변에서의 혼자>의 주인공 영희(김민희)는 영화 내외적으로 홍상수의 페르소나가 아닌 그의 영화 세계 안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인물이다. 그렇기에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가 조금씩 보여오던 변화가 비로소 완성되고, 새로운 단계의 홍상수를 만날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는 홍상수 영화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손글씨 오프닝 크레딧을 버리면서 시작한다. 타자기로 적당히 친 것 같은 폰트의 오프닝 크레딧은 그의 전작들을 볼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을 주며 영화의 문을 연다. 2부로 구성된 영화의 1부는 영희와 지영(서영화)이 함부르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영희는 함부르크로 찾아올지 아닌지도 모를 불륜관계에 있던 영화감독이자 유부남 상원(문성근)을 기다린다. 영희는 공원에 있는 다리를 건너기 전, 절을 하며 소원을 빈다. 그의 소원은 상원이 오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앞길을 바라는 소원이다. 2부에서는 영희가 준희(송선미)를 만나기 위해 강릉을 찾고, 선배인 천우(권해효)와 명수(정재영) 등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천우, 명수, 준희, 명수의 애인인 도희(박예주)와 함께 하는 술자리와, 우연히 만나게 된 조감독 승희(안재홍)를 통해 만난 상원과 영화 스태프들과의 술자리, 총 두 번의 술자리가 등장한다. 사랑, 관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영희의 대사는, 때로는 현실의 논란이 생각나 실소가 터지기도 하지만, 자리의 다른 인물들을 찍어 누르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의 자기파괴적인 영화이다. 2부의 세 남자 상원, 천우, 명수는 그간 홍상수 영화에 여러 차례 등장했던 배우들을 기용하고, 전작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을 다시 소환해낸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두 차례의 술자리 장면에서 괴력의 연기를 선보이는 김민희의 영희는 홍상수의 남자들을 대사로, 표정으로 찍어 누르고 압도하며 영화를 장악해나간다. 다시 말하자면, 영희는 홍상수의 남자들을 영화 속에서 부수어버린다.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 속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김민희의 연기를 빌어 파괴한다. 손글씨를 버린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원경에서 인물을 잡은 쇼트나 풍경을 잡은 쇼트 등 홍상수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장면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시간을 탐구해온 작가는 조금씩 자신의 변화를 영화 속에 반영시켰고, 이번 영화를 통해 (그리고 현실의 사건을 빌어) 자신을 파괴한 뒤, 그 내면을 영화로 담아낸다. 김민희의 몸을 빌어 진행되는 홍상수의 자기파괴는 김민희에겐 자기 반영으로 느껴진다.



 1부와 2부엔 각각 검은 옷을 입은 의문의 남자가 등장한다. 1부의 남자는 공원에서 난데없이 영희와 지영에게 시간을 묻는다. 모른다는 둘에게 “핸드폰 그런 것도 없어요?”라고 되묻는다. 그리고 1부의 마지막, 남자는 해변에서 김민희를 둘러업고 저 멀리 달려간다. 2부의 남자는 영희의 숙소 베란다 창문을 닦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 방에 있는 영희, 준희, 천우 모두 남자의 존재를 그가 마치 유령인 것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남자는 창문을 닦지만, 깨끗해지기는커녕 여전히 더럽기만 하다. 어느샌가 그는 닦는 것을 포기하고 바다를 바라본다. 박홍열 촬영감독이 연기한 이 남자는 홍상수가 영화 속에 등장한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준다. 누군가의 시간 안에 들어오고, 그를 데려가며, 투명해지려 계속 창을 닦지만 깨끗해지지 못하는 사람. 자기파괴적인 그의 영화에 등장한 (그의 영화 세계에서) 전대미문의 캐릭터는 그의 분신으로써 영화에 끼어든다. 이야기 자체에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지만, 유령으로써 영화 안에 등장하고 다가온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지금까지 조금씩 변화를 보이던 그의 영화가 만든 하나의 결과물이다. 현실과 영화가 뒤섞인 감상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그의 신작은,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보이며 본인의 영화 세계의 새 단계를 연다. 그의 영화를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초기작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만든 영화가 아닐까? 이자벨 위페르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고, 그의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정진영, 어김없이 다시 출연하는 김민희가 뭉친 홍상수의 차기작 <클레어의 카메라>가 기대된다.6/220967125879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중국의 차오 할머니,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 세 분의 공통점은 과거 일본군에게 납치된 ‘위안부’라는 것이다. 티파니 슝 감독이 연출한 <어폴로지>는 세 분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이다. 6년이라는 촬영 기간 동안 담아낸 세 할머니의 모습은 인간의 위엄을 보여주면서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숭고와 용기가 돋보이다가도 슬프다. 105분의 러닝타임 동안 눈물을 쏟다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영화는 2010년부터 2016년 최근까지의 세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조금은 다르게 살아가는 세 분의 모습을 보여준다. 길원옥 할머니는 수요시위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일본에 가셔서 시위를 한다. 고향이 평양인 할머니는 중국에서 열리는 남북여성공동회의에 참석해 과거 청산과 자주통일에 대한 연설을 이어간다. 한 명의 인간이 가지는 어떤 위엄과 삶이 할머니에게서 보인다.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는 과거의 이야기를 묻어두려 한다. 자신의 과거로 인해 가족이 파탄 나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아델라 할머니, 일본군에 의해 겪은 피해 때문에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딸을 입양한 차오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고 듣다 보면 어느새 얼굴이 눈물로 가득하다. 가족에게 오랜 기간 품어온 비밀을 고백하고, 그 세월을 함께 받아내려는 할머니와 가족의 모습에서 애정의 크기가 느껴진다.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어폴로지>는 최근 제작된 위안부 소재의 극영화들과는 확실한 차별점을 보여준다.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귀향>과 <눈길>과는 다르다. 할머니들의 입으로 직접 듣는 이야기는 사건의 폭력적인 재현 없이도 그 고통이 충분히 전해진다. 그분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 그분들의 삶이 어떤지 보여주는 방식은 관객의 의식을 즉각적으로 변화시킨다. <어폴로지>는 과거에 머물러 있던 두 영화와는 다르다. 잊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한국의 수요시위를 영상으로 접한 아델라 할머니가 한국의 꼭 오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결국 건강 악화로 돌아가시는 모습 역시 보여준다. 80~90세의 나이가 된 할머니들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길원옥 할머니도 이제 해외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건강 상태가 되었다. 영화의 후반부, 2014년 길원옥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며 UN에 천오백만 명이 서명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해결된 것은 없다.



 영화의 초반부에 1000번째 수요집회 영상이 등장한다. 60대에 수요집회를 시작한 할머니의 나이가 어느새 90을 바라보게 되었다. 1000번째 집회, 1000주 동안 이어진 집회, 그 기간 동안 쌓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 그 장면에서부터 눈물이 흘렀다. 리뷰를 쓰는 오늘(2017년 3월 8일)은 1273차 수요집회가 열리는 날이다. 고령의 할머니들이 더 이상 거리로, 일본 대사관 앞으로 나오지 않아도 될 때를 꿈꾼다.

*스포일러 포함


 여태까지 슈퍼히어로 영화가 제대로 마무리를 한 적이 있었나? <스파이더맨>은 언제나 스튜디오의 야심에 무너졌고, <아이언맨>은 MCU의 흐름 속에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으며, <슈퍼맨>의 감독들은 능력 부족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가 있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놀란의 단점이 두드러진 평작이었다. 17년의 세월, 남북전쟁부터 2029년을 아우르는 울버린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로건>은 슈퍼히어로 영화 장르의 첫 마무리와도 같다. 2000년 개봉한 첫 영화에서부터 <엑스맨> 프랜차이즈는 곧 울버린의 여정이었다. <퍼스트 클래스>와 <아포칼립스>를 제외하면, <엑스맨> 이야기의 중심은 항상 울버린이었고, 관객은 그의 클로 뒤에서 여정을 함께 했다. <로건>은 이번 영화까지 총 9편(<데드풀>을 제외한 모든 <엑스맨> 영화)의 영화에 출연한 울버린, 그를 연기한 휴 잭맨에게 보내는 가장 강렬한 작별이다.



 영화는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6년이 지난 미래를 그린다. 뮤턴트는 더 이상 태어나지 않고, 뮤턴트를 사냥하는 사람들에 의해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울버린, 그러니까 로건은 멕시코 국경 인접지역에서 리무진 기사로 일하며 치매에 걸린 찰스(패트릭 스튜어트)를 돌보고 있다. 그러던 중 의문의 소녀 로라(다프네 킨)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로건은 로라를 쫓는 피어스(보이드 홀드록) 일당을 피해 노스다코다로 떠난다. 이 여정은 찰스가 로건에게 바라던 가족의 구성이며, 엑스맨의 한 세대를 마무리 짓는 순간이고, 트럼프 미국의 미래를 그리는 현대 서부극이다.


 <로건>의 여정은 울버린이 가지지 못했던 가족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서 진 그레이를 떠나보낸 그에게, 9편의 영화에서 언제나 혼자였던 그에게 처음으로 가족적인 순간이 다가온다. 치매에 걸린 찰스를 돌보는 로건은 나이 든 아버지를 돌보는 효자의 모습이며, 그의 (유전적) 딸로 밝혀지는 로라와는 직접적인 부녀관계로 그려진다. 로건은 여정 중간에 만난 흑인 가족에게서 엑스-맨션에서 잠시 느꼈던 가족의 모습을 발견한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로건은 찰스와 로라, 자신을 3대로 구성된 가족으로 소개한다. 가난과 질병 속에서 일종의 대안 가족을 구성하는 모습, 찰스의 죽음에 분노하고 로라를 지키며 함께 싸우는 모습은 분노한 가장의 그것이다. 앞서 등장한 흑인 가족의 모습과 겹쳐 보이며 로건의 분노가 극대화된다.



 <로건>은 또한 <엑스맨> 시리즈 의한 세대를 보내는 일종의 결산이다. <아포칼립스>에등장한 ‘뉴 뮤턴트’와 로라 등에게 바통을 넘기고, 울버린으로 대표되는 기존 엑스맨의 세대를 영화 속에서 확실히 마무리 짓는다. 단순히 새로운 뮤턴트의 등장과 그의 능력을 선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울버린의 분노, 그의 야수 같은 면을 분리해 만든듯한 X-24가 찰스를 죽이는 설정, 로건이 언젠가 스스로 죽기 위해 간직하던 아다만티움 탄환으로 X-24를 죽이는 장면은 로건에서 로라로 넘어가는 완벽한 세대교체의 모습이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인용한 <셰인>의 대사와 겹치는 로건의 모습은 울버린이 가지고 있던 폭력에 대한 속죄이다. 동시에 휴 잭맨이 본인의 페르소나를 떠나보내는 방식이고, 부침을 겪은 시리즈(특히 울버린 솔로 영화들)에 대한 결산이기도 하다. 로건의 무덤 앞에 세워진 십자가를 옆으로 뉘어 X모양으로 바꾸는 로라의 모습은 관객의 눈물을 빼앗아가는 명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엑스맨 코믹스를 직접적으로 등장시켜버리는 메타-코믹스 영화로써, 이보다 완벽한 엔딩은 없다.


 서부극, 특히 수정주의 서부극은 언제나 미국의 현재를 드러냈다. <로스트인 더스트>(헬 오어 하이 워터)에서 트럼프 시대로 이어지는 것은 이것의 확실한 증거이다. <로건>은 슈퍼히어로 장르이자 서부극이고, 2029년의 배경은 트럼프 미국의 미래를 보여준다. 멕시코 국경 인접지역에서 생활하는 로건의 모습과,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야 하는 로라와 아이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이민자 문제를 연상시킨다. 코믹스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던 엑스맨이 가난, 질병, 박해의 삼중고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가난하지만 멍청하진 않다.”라고 절규하는 가브리엘라(엘리자베스 로드리게즈)의 모습은 미국에 대응에 대한 그들의 반응처럼 보인다. 국경을 넘나들고 자신의 폭력성과 과거, 현재의 박해와 싸우는 로건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영웅처럼 느껴진다.



 <로건>은 <셰인>을 두 번 인용한다. 한 번은 직접적으로 호텔에서 <셰인>을 보는 찰스와 로라, 또 한 번은 로건의 무덤에서 영화의 대사를 읊는 로라의 모습에서 등장한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해. 어쩔 수 없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더군. (…) 여기선 살인을 저지른 뒤 살 수 없어. 옳든 그르든, 그건 낙인이야. 돌이킬 수 없어. 이제 가서 엄마에게 말하렴. 모든 게 잘될 거라고. 이제 이 계곡에 총은 더 이상 없다고.” 남북전쟁부터 2029년까지, <엑스맨>부터 <로건>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함축하는 완벽한 인용이다. ‘Old man die, Young woman live.’ <로건>은 슈퍼히어로 장르에 처음 있는 완벽한 마무리이자 미래에 대한 바람과 희망까지 품은 걸작이다.

존 윅이 돌아왔다. 2014년 키아누 리브스의 부활을 알린 작품 <존 윅>이 스케일과 세계관을 확장한 속편 <존 윅: 리로드>를 내놓았다. 전편에서 화끈한 복수를 선보였던 존 윅이 이번 속편에서는 자신이 은퇴하기 전에 맺었던 피의 맹세 때문에 다시 복귀하게 되는 모습을 그린다. 단순한 이야기, 단단하고 디테일한 세계관, ‘이렇게까지 해준다고?’싶을 정도의 액션, 키아누 리브스를 비롯해 루비 로즈, 커먼, 로렌스 피시번 등 적절하고 매력적인 캐스팅, 뜻밖의 코믹한 장면까지 순수 오락영화로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아직 2월이지만 올해 최고의 팝콘무비가 이미 나와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영화가 시작한 지 15분이 지나면 킬 카운트를 세는 것이 무의미해진다”라는 어느 매체의 평만큼 <존 윅: 리로드>를 잘 설명하는 평은 없는 것 같다. 반강제로 은퇴한 세계에 복귀하게 된 존 윅이 미션을 수행하고 복수를 이어가는 장면은 그야말로 학살에 가깝다. 권총과 단검은 물론, 각종 라이플에 이어 샷건까지 등장하는 이번 영화의 액션은 전편에서 보여준 총기 액션의 제대로 된 확장판이다. 여러 명의 적과 싸우다가 샷건의 총탄이 떨어지자 총신으로 적의 가슴팍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뒤 장전하고 그대로 격발 하는 장면처럼 이렇게까지 밀고 나가도 되나 싶은 액션이 계속 이어진다. 전편에 이어 등장하는 차를 무기로 이용하는 카체이싱, 존 윅과 카시안(커먼)의 둔탁한 근접 격투, <용쟁호투>의 거울의 방 장면을 존 윅 스타일로 완벽하게 변용한 후반부 장면 등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액션이다.


 <존 윅: 리로드>에는 전편과 다르게 코믹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로마에 도착한 존 윅이 ‘소믈리에’를 찾아가 메인부터 디저트까지 각종 총기류를 시음하는 장면은 계속해서 키득거리게 만든다. 어딘가 진지하게 시음을 이어나가지만 묘하게 터지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등에서의 비슷한 장면들이 연상되지만 이번 영화에서 무기를 고르는 장면은 어딘가 매력적이었다. 존 윅과 카시안의 싸움은 투박하면서 묵직한 맨몸 격투와 건 발레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첫 격돌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은 격투 도중 폭력이 금지된 콘티넨탈 호텔로 들어가게 된 둘이 얼떨결에 싸움을 멈추고 술을 마시는 장면과 소음기 총을 이용한 재치 넘치는 장면이었다. 영화 속 킬러들의 프로페셔널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생각으로 작동하는 것인지 그 룰을 관객에게 확실히 납득시켰기에 가능한 장면이다. 소음기 장면은 심지어 둘이 사랑싸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고강도의 무술과 총격, 운전 훈련을 통해 존 윅으로 거듭난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에 대한 설명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것 갔다. 전편에 이어 이번에도 “I’m Back!”을외치는 그의 모습은 존 윅 그 자체이다. 뜻밖의 신스틸러였던 커먼의 액션과 연기 역시 만족스러웠다. 액션 영화 장르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가는 그의 커리어가 꽤 흥미롭다. 2003년 <매트릭스: 레볼루션> 이후 14년 만에 한 영화 안에서 키아누와 재회한 로렌스 피시번이 등장하는 장면은 <매트릭스>의 팬으로서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 모피어스와 네오가 오랜 세월이 지나 재회하는 느낌이 들었다. 짧고 굵은 로렌스 피시번의 연기 역시 만족스러웠다. 복수의 대상 산티노(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의 부하 아레스로 등장한 루비 로즈는 매력적인 여성 액션 스타의 탄생을 알린다. 수화를 사용한다는 설정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레이드 2>의 장도리 장면을 연상시키는 빠른 액션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차기작이 <피치 퍼펙트 3>라는 것이 루비 로즈라는 배우에게 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


 <존 윅: 리로드>는 오락영화로써 더 바랄 게 없는 수작이었다. 기대했던 액션과 세계관에 이어 예상치 못한 코미디까지 최고의 팝콘무비였다.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가 어느 빌딩 외벽에 영사되는 것을 비추며 시작하는 영화는 순수한 액션이 주는 오락이 <존 윅>의 정체성이라고 선언한다. 속편을 암시함과 동시에 영화 속 이야기를 깔끔히 마무리하는 엔딩은 3편의 대한 기대감을 무한대에 가깝게 증폭시킨다

 존 싱글톤의 <보이즈 앤 후드>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 왕가위와 토드 헤인즈의 <캐롤> 사이에 있는듯한 촬영과 조명, 미술이 조화롭게 뒤섞여있는 영화가 등장했다. 마이애미의 흑인 거리에 사는 샤이론의 유소년기(알렉스 R. 히버트), 청소년기(에쉬튼 샌더스), 청년기(트레반데 로테스)의 이야기를 각각 리틀, 샤이론, 블랙이라는 제목의 3부작 연대기로 담아낸 영화 <문라이트>가 그 주인공이다. 흑인이자 게이인 샤이론의 이야기를 통해 샤이론 개인의 성장기와 감정은 물론, 다른 흑인 주연의 성장영화들처럼 현재 미국 안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흑인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다루어진다. 부시 대통령 시대부터 오바마까지 12년을 이어오며 진행된 <보이후드>처럼,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넘어가는 시대에 등장한 <문라이트>가 가지는 시의성 역시 흥미롭다.



 샤이론 인생의 세 부분을 보여주는 3부 구성 속에서, 샤이론은 각각 세 번의 정체화 과정을 거친다. 리틀이라는 제목의 1부에서 샤이론은 마약중독자인 어머니(나오미 해리스) 대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마약상 후안(메허샬레 알리)과 테레사(자넬 모네)의 따듯함 속에서 일종의 대안가족을 이루며 누군가의 아들로 자신을 정체화한다. 샤이론이라는 본명을 내세운 2부에서는 유소년기 때부터 절친한, 그리고 그의 유일한 친구인 케빈(자렐 제롬)과의 관계 속에서 게이로 자신을 다시 한번 정체화한다. 케빈이 붙여준 별명인 블랙이라는 제목의 3부에서는 근육질의 몸매와 금빛의 장신구들로 거리에서 살아가는 흑인으로 자신을 정체화한다. 물론 각 챕터에서 해당 과정만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1부와 3부에서도 샤이론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며, 거리에 사는 흑인으로써 강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 중 하나이다. 각 챕터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샤이론의 겹들이 있고, 그것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각각 다른 배우가 연기한 세 시간대가 통일성을 갖는다. 



 샤이론을 말이 많지 않은 캐릭터로 설정하고 그의 표정과 화면의 이미지로만 감정을 이어가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베리 젠킨스 감독은 세 편의 시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표현한 연작을 만들었다. 이는 배리 젠킨스 감독이 왕가위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그답게 영화 곳곳에서 왕가위적인 조명과 촬영이 느껴진다. 가령 어린 샤이론에게 소리치는 엄마를 슬로 모션으로 담아내는 구도와 색감, 식당에서 대화를 나누는 케빈과 샤이론을 잡는 카메라 등의 장면이 <문라이트> 속 왕가위적 순간이다. 이런 잠깐의 장면들은 샤이론의 감정을 대사가 아닌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베리 젠킨스가 <화양연화>에했던 이야기인 “감정을 어떤 아이디어를 통해 영상(이미지)으로 번역하는 작업”이라는 말은 <문라이트>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많은 장면을 단초점으로 담아낸 촬영은 111분의 러닝타임 동안 샤이론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방식이지만, 샤이론 한 명에게 집중되는 이미지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영화에 빠져들 수 있다.


 <문라이트>의 뛰어난 캐스팅을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샤이론을 연기한 3명의 배우-알렉스 R. 히버트, 에쉬튼 샌더스, 트레반데 로테스-는 얼굴은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눈빛으로 한 명의 인물을 이어간다. 각 챕터 사이에 생략된 시간은 세 배우의 연기로 메워진다. 어디서 이렇게 같은 눈빛을 가진 배우를 캐스팅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캐스팅과 연기를 보여준다. 샤이론과 함께 3부 내내 등장하는 케빈 역시 3명의 배우-제이든 파이너, 자렐 제롬, 안드레 홀랜드-역시 일관된 외모의 유사성 덕분에 각 챕터가 끊겨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극의 흐름에 부합하는 외모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문라이트>가 다시 보여준다. 나오미 해리스가 연기한 마약중독자 어머니는 전형적이지만 적절한, 각본에 적힌 그대로의 훌륭한 연기였고, 적은 분량이지만 인상적이었던 자넬 모네는 더 많은 영화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안을 연기했고,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있는 메허샬레 알리의 연기는 <문라이트>의 화룡점정과도 같다. 1부에 등장하는 그의 연기를 보면, ‘이 사람이라면 한 사람의 인생에 무언가 변화를 줄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생긴다. 마약상이 가득한 마이애미의 흑인 거리, 그 거리로 들어서는 차량 한 대를 원형으로 카메라를 돌리며 담아내는 <문라이트> 오프닝은 데이빗 맥켄지 감독의 <로스트 인 더스트>의 오프닝을 닮았다. 두 영화 속에서 대비되는 공간과 공간을 채우는 공기는 사뭇 다르다. 마이애미와 텍사스, 흑인과 백인, 퀴어와 퀴어포빅한 성향의 사람, 마약상과 은행강도, 거리와 은행……<로스트 인 더스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질병과도 같은 가난의 대물림, 약탈자와 피약탈자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극 중 인물들과 같은 현실의 사람들이 왜 트럼프에 투표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반대로 <문라이트>는 레이건 시대부터의 만들어진 흑인 계층의 경제적,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자연스레 퀴어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faggot’이라고 놀림받는 어린샤이론에게 “그것은 놀림거리가 아니라 네가 언젠가 알게 될 스스로의 모습”이라고 말해주는 후안과 테레사의 모습은 오바마 시대 속 사람들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넘어가는 격변의 상황에서 <문라이트>와 <로스트 인 더스트>가 같은 해에 등장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후안은 샤이론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쿠바에서 살던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달빛을 받아 푸르게 보이던 자신의 검은 피부 때문에 ‘블루’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이야기한다. 바닷가와 달빛을 받아 푸르게 보이는 주인공의 검은 피부는 영화의 중요한 이미지이다. 마치 세례를 받듯 후안에게 바다에서 떠있는 법을 배우는 샤이론, 샤이론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밤 바닷가의 풍경, 그 추억을 떠올리는 청년의 샤이론,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는 소년 샤이론의 모습이 담긴 영화의 마지막 장면. <문라이트>는 푸르고 검은 이미지들을 통해 샤이론이라는 개인의 삶과 정체성을 관통하여 보여준다. 푸르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풍부하고 진한 감정이 <문라이트> 속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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