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빛, 좋은 공기> 임흥순 2020 :: 영화 보는 영알못

 광주(光州)의 뜻은 ‘좋은 빛’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의 뜻은 ‘좋은 공기’다. 임흥순 감독의 다섯 번째 극장용 장편인 <좋은 빛, 좋은 공기>는 1980년 전후로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두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는 지금껏 제주 4.3 항쟁(<비념>), 공단 여성노동자(<위로공단>), 탈북 여성(<려행>), 베트남전과 빨치산 사건의 피해자(<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등을 통해 국가폭력, 이데올로기 싸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죽고 다치고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의 모습을 담아왔다. 그의 <좋은 빛, 좋은 공기>는 비슷한 시기에 국가폭력을 겪은 두 도시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생존자와 유가족, 행방불명자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비춘다.

 1980년 5월의 광주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사건인 것과 마찬가지로, 1976~83년 동안 벌어진 납치, 감금, 살해 등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에 대한 군부의 탄압은 그들에게도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광주에 남은 생존자와 유가족 등은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옛 전남도청 건물을 복원할 것을 요청하며 농성 중에 있다. 이들은 자신과 이미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기억이 사라지길 원치 않는다. 광주에 남아 있는, 여전히 핏자국과 총탄 자국이 남이 있는 건물들은 그 자체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에 다름 아니다. 희생자 및 행방불명자의 어머니들은 ‘광주오월어머니회’를 결성하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매년 5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행진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희생된 자녀가 마무리하지 못한 투쟁을 이어가는 어머니들이 있다. 이들은 ‘5월 어머니회’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광장에 나서 집회를 주도했다. 어머니들이 결성한 두 단체는 (영화에는 등장하진 않지만) 서로의 도시에 방문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두 단체가 영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축이라면, 또 다른 축은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해 과거를 기록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수감소에 묻힌 유해와 여러 물건들을 발굴하는 것은, 단순히 희생된 이들을 기리고 당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 생존자 혹은 유가족의 기억을 다시 쓸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광주에서도 희생자들이 암매장되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장소에서의 발굴작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발굴이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발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신을 한 구라도 더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은 영화가 촬영된 2018~19년에서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요원하다. 대신 임흥순 감독은 당시의 생존자 및 죽음의 문턱에 있던 그를 수술한 의사와 함께 광주 국군병원을 찾는다. 이미 폐허가 된 그곳에서 이들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유령이 되어 사라져버린 이들을 찾지는 못해도, 이들의 기억은 명확한 형체를 지닌 채 보존되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의 장편영화 작업들은 대부분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먼저 거친 뒤, 그곳에서 공개된 영상설치작업의 재편집본이었다. <좋은 빛, 좋은 공기> 또한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제작되었다. 이번 영화는 2019년 있었던 그의 개인전 [고스트가이드]에서 2채널 영상작업으로 상영되었다. 해당 작품에 더해 전시 당시의 영상을 비롯, 전시와 동명의 작품인 <고스트가이드>의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 등이 포함되어 재편집되었다. 전시 때와는 다르게 흑백으로 변환된 이미지 속에서 챕터가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그린 스크린과 광주 및 부에노스아이레스 청소년들의 활동을 담은 컬러 영상이 <고스트가이드>의 제작과정이다. 전시에서 보여준 것을 극장의 스크린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 당시 전시장을 찾은 이들은 자유로운 동선 속에서 전시장에 배치된 작품들을 관람했을 것이다. 특히 전시 당시의 <좋은 빛, 좋은 공기>는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촬영된 영상을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스크린에 각각 상영하는 형태였다. 때문에 전시를 이루던 각 작품은 관객이라는 매개자를 통해 맥락을 형성한다. 하지만 극장 버전의 <좋은 빛, 좋은 공기>는 전시장의 작품들을 분해/재조립한 결과물이다. 재편집의 과정에서 작품 사이의 맥락을 매개하는 관객, 즉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사이를 이어 줄 관객의 자리는 뒤로 물러나게 된다. 영화가 담아낸 이야기들의 무게감과는 별개로, <위로공단>에서 보았던 형식적 측면의 훌륭함은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그리고 2021년 3월 미얀마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고, 미얀마 국민들은 군부에 의해 탄압받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두 도시의 청소년들이 참여한 영상 위로 ‘#SaveMyanma’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미얀마, 홍콩, 알레포, 태국 등의 이름들이 있음을, 항상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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