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샤카 킹 2020 :: 영화 보는 영알못

 1968년, FBI 국장 J. 에드가 후버는 당시 기세를 넓혀가고 있던 흑표당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FBI 요원 미첼(제시 플레먼스)은 FBI를 사칭한 자동차 절도범 빌(키스 스탠필드)을 흑표당에 잠입시키고자 한다. 미첼의 요구를 수락하지 않으면 몇 년 간의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빌은 흑표당에 잠입한다. 목표는 흑표당 일리노이 지부장 프레드 햄프턴(다니엘 칼루야)에게 접근하는 것. 하지만 빌은 점차 민중의 힘을 믿는 프레드의 활동에 감화되어 가며 갈등하기 시작한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블랙 팬서> 등 최근 메이저 시장에서 블랙-시네마의 경향을 주도하고 있는 라이언 쿠글러가 제작자로 참여했고, 여러 TV쇼 및 흑인 커뮤니티에 대한 단편영화들을 연출했던 샤카 킹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참고로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 최초로 흑인 제작자들만이 참여한 작품상 후보이기도 하다.

 영화는 실제 인물인 빌 오닐이 1989년 증언한 내용을 담은, 1990년 TV를 통해 방영된 다큐멘터리 <아이즈 온 더 프라이즈 2>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해당 다큐멘터리에 삽입될 인터뷰를 진행하는 빌의 모습을 보여주고, 영화의 마지막에 실제 다큐멘터리 속 푸티지가 등장한다. 영화 전체가 빌의 플래시백인 것 마냥 진행된다. 영화 자체는 잠입요원이 등장하는 수많은 범죄, 누아르, 액션 영화의 전형을 따라간다. 흑표당에 잠입한 이가 등장하다는 점에서 스파이크 리의 <블랙클랜스맨>이 연상되는 지점도 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익숙한 틀에서 출발하여 익숙한 문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체 게바라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언변을 지닌 프레드, 그런 그에게 접근하며 흑표당이 조직해낸 민중의 활동을 지켜보고 그것에 점차 마음이 움직이는 빌. 영화는 흑표당의 지도자들을 비롯해 60년대 미국 내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들을 ‘블랙 메시아’라 부른 J. 에드가 후버의 말을 차용해, 영화 내내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빌을 신약성서 속 가롯 유다로 위치시킨다. 가롯 유다는 은화 30냥에 예수를 배신한 인물이다. 그는 예수의 죽음 이후 자살을 택한다. 빌은 미첼이 제공하는 경제적 보상에 프레드를 배신한다. 엔드크레딧 전에 등장하는 자막은 그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는 날 자살했음을 알린다.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는 거친 성경의 비유는 얼핏 당시 흑표당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 같다. 극 중에서 감옥에 갇힐 위기에 처한 프레드는 자신이 해외로 도주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으로 차라리 흑인들을 위한 병원을 세워줄 것을 부탁한다. 그가 생각하는 반-자본주의, 마오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국가는 민중에 대한 것이지 한 명의 지도자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듯이 125분의 러닝타임에 모두 담아내기엔 벅찰 정도로 다양한 시사점을 쏟아낸다. 가령 프레드의 연인인 데보라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블랙 페미니즘, 프레드가 자경단의 성격을 띤 갱 ‘크라운’, ‘백인 쓰레기(White Trash)’라 불리는 ‘젊은 애국자’나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들의 그룹인 ‘젊은 영주’ 등의 다른 빈민 및 소수인종과 연대하여 ‘무지개 연합’을 구성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소수자 연대, 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마틴 루터 킹과 말콤X는 물론 유럽 68혁명의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내는 많은 대사. 생존을 위해 흑표당에 반강제로 잠입하게 된 빌의 눈 앞에 들어온 것은 이들이 투쟁 대상이 단순히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것뿐만이 아닌, 굉장히 복잡한 상황과 맥락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프레드가 어처구니없는 혐의로 투옥되었다 돌아온 이후 진행된 연설회 장면은 이러한 복잡한 맥락 속에 빌의 생존이라는 맥락이 강력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FBI가 씌운 ‘블랙 메시아’라는 프레임이 거짓된 것임을, 그러한 프레임만으로 빌의 행동을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가 그간 수없이 제작되어 온 흑인 민권운동에 대한 영화들에 비해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고 말하기는 망설여진다. 소위 ‘웰-메이드’라 불리는 작품들이 대게 그러하듯, 이 영화도 잠입요원이 등장하는 영화들의 특성을 따르며 말끔한 완성도를 선보일 뿐이다. 영화가 다루는 내용상의 무게감이나 영화가 BLM 운동과 ‘Stop Asian Hate’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지금의 시점에 제시하는 시사점이 여럿 존재하지만, 이는 영화 내의 맥락을 벗어난 이야기이지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위의 문단에서 언급한 연설회 장면을 제외하면, 너무나 매끄럽게 잘 만들어져 이렇다 할 이야기를 보탤 것이 없다. <라이온 킹>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왕위 다툼 이야기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현대적 우화로 각색해낸 라이언 쿠글러의 매끄러운 솜씨와 이 영화의 만듦새가 유사하달까? 그러고 보니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도 <블랙 팬서>가 보여준 영화에 삽입되지 않을 유명 흑인음악 뮤지션들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함께 제작했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전략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대단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다니엘 칼루야, 흑표당과 FBI 사이에서 갈등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해낸 키스 스탠필드의 빼어난 연기들이 이 영화를 다른 영화들과 구분 짓는 몇 안 되는 차별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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