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1952년 한국전쟁 당시, 8명의 북한 청춘이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로 영화 유학을 떠난다. 민족의 꿈을 품고 간 그들은 새로운 정치적 상황과 맞닥뜨린다. 스탈린의 독재와 개인숭배를 비판하는 후르시초프의 연설을 보기도 하고, 고려인을 비롯한 소련 내 소수민족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시키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김일성의 1인 독재를 비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중앙아시아를 떠돌게 되기도 한다. 평론가이자 영화감독인 김소영의 <굿바이 마이 러브 NK: 붉은 청춘>은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과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를 잇는 ‘망명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영화는 영화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모스크바로 떠난 최국인, 한대용, 한진, 허웅배, 김종훈 등의 ‘모스크바 8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한국계’라는 범위가 포괄하는 이들은 아시아 곳곳에 퍼져있다. ‘조선족’으로 불리는 중국 동포나, ‘고려인’으로 불리는 중앙아시아의 사람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김소영의 ‘망명 3부작’은 그중에서도 ‘고려인’이 지닌 디아스포라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의 디아스포라를 살펴보는 작업은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을 중심으로 쓰인 ‘한국인’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다루는 ‘모스크바 8진’의 삶은 한국 현대사와 한국계 디아스포라의 역사이다. 이들은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워 유학을 떠나게 되었지만, 결국 북한의 1인 독재 체제 공산주의의 모순점을 깨닫게 되고, 조국을 위해 조국을 비판하며 망명길에 오른 이들이다. 김소영은 이들이 남긴 영화를 비롯해, 희곡, 사진, 일기, 서신 등을 통해 이들의 삶을 재구성한다. 최근 복원된 최국인 감독의 <용의 해>는 조국을 떠나 중앙아시아 전역을 유랑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굿바이 마이 러브 NK: 붉은 청춘>은 미학적으로도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들이 남긴 서신과 사진 등을 바탕으로 이들의 삶의 궤적을 재구성하고, 이들의 활동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특히 고려인 출신의 러시아 가수인 빅토르 최의 음악과, 거울을 사용한 조형물 앞에 선 생존한 ‘모스크바 8진’의 인물을 촬영한 영상이 함께 담기는 순간은 이들이 마주해야 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개인적으로 중앙아시아로 떠나게 된 한국계 사람들의 디아스포라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때문에 배경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굿바이 마이 러브 NK: 붉은 청춘>의 이야기를 온전히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이 잊고 있었던, 혹은 알 기회조차 없었던 역사를 보여준다. 때문에 이 영화와 마주하는 것은, 단선적인 역사 쓰기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식의 역사 쓰기, 혹은 잊히거나 은폐된 역사를 발견하는 순간과 유사하다.

 마담 B는 생계를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떠난 그는 탈북 이후 산동의 어느 남성의 집에 팔려간다. 적당히 돈을 벌다 돌아가려던 생각은 했으나 이미 10년이 지나가 버렸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탈북 브로커로 일했고, 북한에 남은 세 명의 가족을 모두 남한으로 이주시키는 데 성공한다. 다만 지난 세월 동안 중국의 남편에게 정이 들었고, 그는 마담 B의 처지에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공감을 보여주었다. 마담 B는 탈북이민자를 대하는 한국의 태도에 넌더리가 나고, 한국 국적과 여권을 취득해 중국의 남편과 정식으로 결혼신고를 하고 싶어 한다. 윤재호 감독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뷰티풀 데이즈>에 대한 리서치를 하다가 우연히 마담 B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그의 이야기를 개별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다. 그는 마담 B의 탈북 루트에 동행하면서 <마담 B>를 촬영했다.



 <마담 B>의 이야기는 굉장히 신파적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엔 신파적으로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은 많지 않다. 대신 탈북 이후 마담 B의 삶, 그가 선택한 삶의 방향, 가족과 사랑에 대한 선택 등이 분명하게 그려진다. 탈북 브로커에 의해 매매혼으로 팔려왔지만 본인도 탈북 브로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 팔려왔지만 북한의 남편보다 중국의 남편과 살기를 소망하게 되는 아이러니, 중국의 남편과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와서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만 하는 아이러니가 마담 B가 겪은 10여 년의 세월 안에 들어있다. 결국 마담 B의 디아스포라적 삶 속에 분단 이후 발생한 역사적 아이러니가 총체적으로 녹아들어 있는 셈이다. 동시에 <마담 B>의 이야기는 한 여성의 경험을 온전히 주목한 작품이기도 하다.



 마담 B의 삶에선 탈북이민자라는 정체성과 함께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또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한다. 그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매매혼의 방식으로 팔려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경험은 생존의 여성화, 돌봄노동의 전 지구적 연쇄의 한 사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마담 B의 삶은 탈북이민자의 디아스포라임과 동시에 여성화된 생존의 디아스포라로 읽어낼 수도 있다. 그가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게 생계비를 지속적으로 보내주고, 그들을 탈북시켜 남한으로 데려온 것은 이러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때문에 마담 B의 삶을 신파적으로 그려 내기보단, 그가 살아온 삶을 그냥 보여주기만 하려 노력한 이 다큐는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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