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사 파미가'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최근 연출작들은 어딘가 기묘하다. <15:17 파리행 열차>는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을 배우로 기용하였고, 현실과 픽션의 세계가 충돌하는 모양새로 마무리되었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어딘가 스필버그적인 터치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결국 브래들리 쿠퍼가 연출했지만, <스타 이즈 본>을 연출하려 했다는 점 또한 (물론 뮤지컬 영화인 <저지 보이즈>가 있지만) 흥미롭다. <그랜 토리노> 이후 오랜만에 연출과 주연을 겸한 그의 신작 <라스트 미션>도 이러한 기묘함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는 우연히 마약 배달을 시작한 원예 사업가이자 실패한 가장인 얼 스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의 다른 최근작들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두 인물을 축으로 따라간다. 하나는 마약 배달을 맡게 된 얼이다. 그는 아내 메리(다이앤 위스트), 딸 아이리스(앨리슨 이스트우드), 손녀 지니(타이사 파미가)를 차례로 실망시킨 실패한 가장이며, 인터넷의 속도에 패배한 원예업자이다. 평생 딱지 한번 뗀 적 없는 그는 안전운전과 백인 남성 노인이라는 위치를 통해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가고, 점점 더 카르텔의 신뢰를 받게 된다. 다른 한 축은 마약단속국 요원인 콜린(브래들리 쿠퍼)이다. 그는 상관(로렌스 피시번)의 명령에 따라 트레비노(마이클 페냐)와 함께 ‘할배’라고 불리는 마약 배달원을 체포하려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마약단속국과 카르텔, 두 조직은 어딘가 이상하게 묘사된다. 상관은 몇 달째 허탕인 콜린에게 별다른 논쟁도 없이 작전 허가를 내주며, 카르텔의 보스는 얼을 너무나도 쉽게 과신한다. 마약 배달부 얼은 두 조직 사이를 오가며(얼은 모텔 등에서 콜린과 마주치곤 한다) 11번의 배달에 성공한다. 그는 배달을 통해 번 돈으로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참전용사회 건물을 재개장한다. 이상한 두 조직 사이의 기묘한 공생관계가 끝나는 것을 계속해서 지연시키는 늙은 보수주의자, 스스로가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임을 알고 있음에도 고칠 생각이 없는 꼰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굉장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바꾸려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몸으로 연기하는 얼을 통해 미국의 지금, 다양한 차별과 억압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의 종식을 끝없이 지연시키는 지금을 체현한다. “돈으로 모든 걸 살 수 있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아”라는 얼의 대사는 그러한 지연의 시간이 끝나간다는, 혹은 끝나갈 시간이 됐다는 것을 은연중에 말하려는 것 같다.

제임스 완의 <컨저링>으로 시작된 ‘컨저링 유니버스’의 신작 <더 넌>이 개봉했다. <컨저링> 시리즈의 메인 악령으로 등장했던 수녀 악마(보니 아론스)의 기원을 다루는 작품이다. 영화는 한 수녀가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톨릭적인 초자연현상을 조사하는 버크 신부(데미안 비쉬어)는 바티칸 교황청의 명령에 따라 아이린 수녀(타이사 파미가)와 함께 사건이 벌어진 루마니아의 수녀원으로 향한다. 프렌치(조나스 블로켓)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에 도착한 그들은 무언가 사악한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낀다. ‘컨저링 유니버스’의 모든 작품들이 무섭진 않았다. 대표적으로 첫 스핀오프 영화였던 <애나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가장 최근작인 <애나벨: 인형의 주인>은 어느 정도 공포스러움과 그것에 따른 재미를 주었던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컨저링>의 메인 악령이었던 수녀 악마를 주인공으로 한 <더 넌>은 어떨까?



 아쉽게도 <더 넌>은 ‘컨저링 유니버스’는 물론, 제임스 완이 관여한 호러영화 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영화로 손꼽히게 될 것 같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어느 정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부실한 연출과 불필요하게 붙여진 이야기들 때문에 엉성해지기만 한다. 영화의 가장 무서워야 할 장면들에서 관객들이 피식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트릴 정도다. 기대했던 강력한 악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가톨릭을 배경으로 함에도 기도의 힘 보다 총알에 의해 처리되는 악령들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이블데드> 같은 막장 호러 코미디로 장르를 뒤트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성물을 눈앞에 두고 던지는 농담(“holy shit!”)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긴 수준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며, 오프닝 시퀀스에서 품은 짧은 기대감은 러닝타임이 흘러갈수록 짜증남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액션 등의 장면들이 <애나벨>의 끔찍한 지루함보다 낫다는 점에서 조금 낫게 느껴지기는 한다.



 <더 넌>은 이미 <더 넌: 크루키드 맨>(가제)이라는 속편의 제작이 예정되어 있다. 영화에 쏟아지는 혹평과는 다르게, 북미에서 ‘컨저링 유니버스’의 작품 중 가장 빠르고 큰 흥행을 기록하고 있기에 속편의 제작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속편의 완성도도 이번 영화 같다면, 흥행을 장담하긴 어렵지 않을까? ‘컨저링 유니버스’의 다음 작품이 <더 넌>의 속편이 될지, <컨저링>의 속편이 될지, 혹은 또 다른 스핀오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영화보다는 괜찮은 작품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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