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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리와 유착으로도 모자라 직접 범죄를 사주하기까지 하는 악질경찰 조필호(이선균). 목돈이 필요해진 그는 경찰 압수창고를 털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조필호의 사주를 받은 한기철(정가람)이 창고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창고가 폭발한다. 어안이 벙벙해진 조필호는 한기철이 마지막으로 보낸 동영상이 장미나(전소니)라는 소녀에게 갔음을 알게 된다. 한편, 압류창고에 있던 문서들이 타버려 증거를 잃어버린 남검사(박병은)은 그 동영상을 새로운 증거로 지목하고 이를 추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리범죄에 지목된 태성그룹의 권태주 실장(박해준)이 동영상을 없애기 위해 조필호와 장미나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제목이 <악질경찰>이긴 하지만, 조필호는 등장부터 악질의 수준을 넘어선 인물이다. 그는 악질이라기보단 사회악이다. 그는 등장부터 이미 용서받지 못할 인물이다. 이정범 감독은 <악질경찰>에 직접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등장시킨다. 안산단원서에서 재직 중인 조필호는 사건의 자장 안에 놓여 있는 인물이며, 사건 당시 유가족과 언론들을 직접 상대한 인물로 묘사된다. 반면 장미나는 학교 밖 청소년이기에 참사를 피한, 그리고 참사로 절친을 잃은 인물이다. 영화는 둘을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동행하게 한다. 두 인물이 동행하며 사회악인 조필호보다 더 한 사회악이 등장하고, 조필호는 참사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를 옆에서 지켜보며 나름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악질경찰>은 이정범 감독이 기존에 만들던 영화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주인공 남성은 입에 욕설을 달고 살며, 굉장히 폭력적이고, 여성혐오를 비롯한 각종 혐오를 서슴없이 드러내며, 여성 주인공을 구한다. 이번 영화가 <아저씨>, <우는 남자>와 다른 지점은구해내는 것보단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 울분을 터트리는 것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지켜내지 못한 것, 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 그리고 해소될 수 없는 울분을 터트리며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것.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악질경찰>의 방법론은 울분과 통쾌함에 있다. 물론 이것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울분을 터트리는 주체는 소시민도, 동년배의 학생도, 자신의 역할을 최소한이나마 수행한 공직자도 아닌 사회악 그 자체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이 피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해봐야, 공감 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먼저 밀려온다. 더욱이 여학생만 희생자로 등장한다는 지점 또한 미심쩍기만 하다. 물론 조필호의 울분에 공감할 수 있는 관객들도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좋은 부분도 있다. 장미나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가 등장하는 장면과, 유가족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특히 장미나가 쓴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남은 사람의 무기력한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묘사가 등장한다. <악질경찰>이 지닌 무수한 아쉬움 가운데 유일하게 마음이 가는 장면이다. 어쩌면 이런 무기력함을 악질을 바탕으로 한 울분이 아닌 방식으로 표현했다면 조금 더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넘긴 했지만, 2018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좀비가 등장하는 콘텐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산행> 이전에도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는 있었지만, 그 규모와 화제성 면에서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소규모였다. 2018년 <창궐>이나 2019년 초 공개된 넷플릭스의 <킹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한국적인’ 좀비를 보여주기도 했고(물론 한 편은 실패했고 한 편은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테마파크에서 좀비를 테마로 한 호러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민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기묘한 가족>은 좀비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다. 좀비 영화의 하위 장르로써 좀비 코미디는 <좀비 랜드>와 같은 대형 히트작부터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데드 스노우> 시리즈, 최근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까지 인디 장르영화 씬에서도 종종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기존의 좀비 코미디들이 고어의 수위를 높이고 적당한 사회비판이나 좀비라는 틀을 코미디에 사용하는 등에 모습을 보였다면, <기묘한 가족>은 충청도의 어느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지역 특화적인 면모를 선보인다.


 영화는 어느 제약회사의 실험으로 가사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는 뉴스 보도로 시작한다. 시골 마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다 폐업한 만덕(박인환)은 렉카를 운영하는 장남 준걸(정재영)과 며느리 남주(엄지원),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해 돌아온 민걸(김남길), 늦둥이 막내딸 해걸(이수경)과 살고 있다.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좀비(정가람)에게 물린 만덕은 밤 사이 회춘하게 되고, 돈이 궁하던 가족은 좀비에게 ‘쫑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마을의 노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한다. 장사 수단은 쫑비에게 물리면 회춘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쫑비는 언제까지나 좀비, 예정된 혼란이 기묘한 가족에게 닥쳐온다.



 한국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 좀비 코미디에서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기묘한 가족>은 정력에 좋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민간요법적 광기를 중심적인 소재로 차용한다. 또한 전국적인 사건이었던 <부산행>과는 다르게 고립된 시골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는 점, 친구나 가족이 좀비로 변한다는 클리셰를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을 알고 지낼 수밖에 없는 시골이라는 공간으로 확장한다는 점, <시체들의 새벽>에서부터 좀비 영화의 주요한 테마였던 자본주의 비판을 신자유주의 세계관에 걸맞은 방식의 이야기(특히 엔딩)로 드러낸다는 점은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좀비 코미디 사이에서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를 다시 한번 재고하게 한다. <기묘한 가족>이 보여주는 쇠락한 한국 농촌 공동체는 <리틀 포레스트> 등 최근의 한국영화들이 묘사한 ‘그것’들 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민걸이 가족들에게 좀비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유튜브로 <부산행>의 클립을 찾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스스로 <부산행>의 성공으로 인해 제작된 작품임을 감추지 않는다. 도리어 ‘한국적인’ 좀비 영화를 표방하고 나왔음에도, 익숙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신파 서사에서 좀비라는 소재만 차용했을 뿐인 <부산행>보다 더욱 ‘한국적임’을 표방하고 있음을 자신 있게 표현한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 하지만 <기묘한 가족>이 취하고 있는 것들, 가령 좀비에 물린 아버지를 대하는 자식들의 태도, 정력에 대한 중노년 남성들의 광적인 집착, 농촌 노년 남성의 황혼 재혼 등의 요소들은, 비록 표면적으로만 소재를 다룰 뿐이더라도, 한국과 한국 농촌과 한국 농촌의 남성성을 돌아보게 하는 흥미로운 텍스트를 제공한다. 



 물론 아쉬운 지점도 존재한다. <웜 바디스>를 어설프게 따라한 (물론 <웜 바디스>가 좋은 영화인 것도 아니다) 해걸과 쫑비의 러브라인은 따분하고, 코믹한 효과음이나 몇몇 슬랩스틱은 과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초반부 전개를 느릿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후반부에서도 종종 등장하여 극의 진행을 지지부진하게 만든다. 조금 더 깔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등장하는 엔딩은 앞선 아쉬움들을 잊게 만들어준다. 분명 <기묘한 가족>은 영화의 템포라던가 코미디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작품이지만, 엔딩 장면에서의 새로움에는 대부분의 관객이 동의할 것이다. 후반부에서 길을 잃고 무너지는 많은 한국영화들과도 다르게, 예고된 난장판이 펼쳐지는 후반부가 주는 즐거움(특히 12세 관람가라는 한계를 적절하게 활용한 요소들)은 굉장히 즐겁다. 



 어쩌면 <기묘한 가족>이야말로 첫 한국적인 좀비 영화가 아닐까 싶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이라는 틀에 좀비라는 소재를 끼워 넣은 <부산행>과 <창궐>의 아쉬움을 <기묘한 가족>이 일정 부분 해소해준다. 물론 규모의 측면에서 아쉽긴 하지만, 저예산 영화라고 무시하기엔 <기묘한 가족>의 후반부가 제공하는 나름대로의 스펙터클은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창궐>의 야귀들이 스펙터클의 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생각하면, <기묘한 가족>의 좀비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다양한 모습의 좀비들이 등장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기묘한 가족>이 지닌 성취는 한국 장르영화 안에서도 꽤나 기억될만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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