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재중동포 출신으로 <두만강> 등의 작품에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내면서, <경주>, <춘몽> 등에 작품을 통해 한국의 지역색을 영화에 담아온 장률 감독이 신작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내놓았다. 이번 작품은 제목처럼 군산에서 촬영된 작품이다. 송현(문소리)이 남편과 이혼하자 윤영(박해일)은 그에게 갑작스러운 군산 여행을 제안하고, 둘은 군산에 도착한다. 둘은 어느 민박집에 묵게 되고 송현은 그곳의 사장(정진영)에 대해, 윤영은 사장의 딸인 주은(박소담)에게 묘한 호기심을 품게 된다.



 영화는 크게 군산을 담은 1부와 윤영이 사는 연희동과 신촌을 담은 2부로 크게 나뉜다. 영화의 제목이 뜨는 시점을 기준으로 나뉘는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우로보로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시간선을 그린다. 후반부가 전반부보다 앞선 시간대에서 발생한 것임을 알려주는 장치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예전에 어디선가 만나지 않았나요?”라며 묻는 윤영의 대사는 뒤섞인 시간을 그대로 뒤섞이게 방치한다. 마치 우리가 존재하는 순간은 결국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교차점이기에 굳이 시간선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윤영과 송현이 군산에 갔을 때 묵는 민박 사장은 재일교포이다. 자폐증이 있는 그의 딸 주은은 일본어로 이런저런 말들을 중얼거린다. 군산에는 여전히 일본식 주택들이 남아있고, 그들이 묵은 민박도 그러한 주택이다. 그곳은 사각형으로 순환하는 듯한 닫힌 구조를 지닌 공간이다. 인물들은 그 사이를 계속해서 돌아다닌다. 백현진이 연기한 조선족 인권운동가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울부짖지만, 그는 조선족의 말투를 모방하는 조선족이 아닌 사람이다. 그는 역사를 아는 것일까, 아니면 역사를 이용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가 역사가 교차하는 어느 지점에 존재하기에 저러한 언행이 가능한 것일 것이다. 장률은 군산과 신촌을 배경으로 한중일의 역사가 교차하는 공간과 인물들 배열한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지닌 시간 구조는 교차와 순환을 만들어내며 인물들의 행동과 역사를 살포시 겹쳐 놓는다.



 결국 장률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도달하는 지점은 그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의 순환, 교차성, 역사, 재중동포라는 정체성 등이 어지럽게 겹치고, 그 위에 인물들이 다시 한번 겹치면서 장률의 작품이 탄생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윤영은 자신의 서울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아주머니(김희정)의 큰할아버지가 자신이 흠모하는 시인 윤동주의 사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장률은 흐트러진 시간의 순환선 안에 우연들을 툭 하니 던져 놓는다. 역사, 지역, 민족 정체성은 결국 우연의 총체일 뿐임을,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뿐이다.

 박찬경 감독은 김금화 만신의 자서전 『만신 김금화』와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 『김금화의 무가집』 등을 읽고 영화 <만신>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한 사람의 자서전이지만 한국 현대사가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 끌렸다.”라고 제작 동기를 밝힌 박찬경의 말처럼, <만신>이 담아내고 그려낸 김금화 만신의 일생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독재정권을 아우르는 한국 현대사가 녹아있다. 현실의 삶은 물론, 영화나 TV 드라마, 소설 등의 대중매체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 가장 힘든 시기에 한국인들은 무당을 찾아가고 무속신앙에 의지했다. 만신의 굿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종의 쇼로써 한국 현대사에 존재해왔다.



 박찬경 감독이 <만신>을 통해 무당과 무속신앙의 쇼 비즈니스적인 성격을 부각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화 속 김금화 만신이 굿을 준비하기 위해 가사를 외우고, 소품을 준비하고, 굿의 동선을 맞춰보는 장면들은 콘서트를 앞둔 엔터테이너의 모습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시대에 따라 빨갱이로, 불온한 것으로 여겨지며 탄압당하던 모습도 시대를 거쳐온 대중예술인의 모습과 겹쳐진다. 지금껏 무당이 굿을 준비하며 노래 가사를 외우는 모습을 보여준 매체가 있었을까? 그 모습을 <만신>을통해 처음 목격한 관객은 만신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무속 신앙에 묶여있는 존재가 아닌, 예술과 노동의 관점에서 만신이라는 존재와 굿이라는 퍼포먼스를 생각하게 된다.



 <만신>이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 세 배우를 캐스팅해 김금화 만신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풀어낸 것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흥미롭다. 자료화면과 인터뷰 등으로 채워 넣을 수 있었던 이야기를 세 배우의 몸을 통해 재연하고, 종종 실제 김금화 만신이 본인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기도 한다. 김금화 만신의 삶은 신내림 받는 장면을 연기하는 류현경과 굿판을 재연하는 문소리, 쇠걸립을 하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김새론의 모습으로 스크린에 재현된다. 이를 통해 김금화 만신의 삶과 퍼포먼스는 다시 한번 쇼로써 재현된다. 김금화의 퍼포먼스를 배우들이 다시 공연하고, 이것을 다시 바라보는 김금화의 시선은 무당과 굿이라는 존재 위에 덮인 겹을 관통한다.



 7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버텨 온 김금화 만신은 계속해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동시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 사람이었다. 그는 깊은 산속부터 DMZ와 같은 지역, 연평해전이 벌어진 서해바다까지 자신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만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굿이라는 퍼포먼스는 위로와 치유의 쇼가 된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김금화 만신의 쇼는 역사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을 보듬어준다. 때문에 쇠걸립하러 다니는 어린 김금화, 김새론을 따라가던 카메라가 하늘로 날아올라 마을과 산을 굽어 살피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김금화 만신의 일생을 고스란히 담은, 한국인의 기저에 깔린 정서를 보듬어 주는 시선으로 느껴진다.

“문소리 감독 각본 주연” 어떤 영화의 홍보 카피로 이것만큼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 문구가 있을까? <여배우는 오늘도>는 문소리가 그간 연출했던 단편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그리고 <최고의 감독>세 편을 1, 2, 3막으로 삼아 장편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영화제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그의 세 영화를 이번 개봉을 통해 한번에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문소리는 문소리로 등장한다. 문소리로 등장한 문소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또 다른 여성 배우의 이야기를,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영화를 수렴시켜 영화인 문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71분의 러닝타임 동안 풀어간다.



 1막 <여배우>는 제목대로 여배우라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소리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북한산에 등산을 간다. 그는 등산로에서 우연히 제작사 대표와 그 일행을 만난다. 하산하여 들른 막걸리 집에서 다시 마주친 제작사 대표 일행과 술자리에 합석하게 된다. 제작사 대표의 남자 후배들이 쏟아내는 온갖 헛소리와 응원하려 했던 말이지만 결국 상처로 돌아오는 친구들의 말에 문소리는 화가 난다. 영화는 여배우라는 스테레오 타입을 반복하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어 버리는 언행을 진득하게 그려낸다. “실물이 더 예쁘시네”, “여배우와 술을 다 먹다니~”, “그 영화 뭐였지? 아 맞다 그 병신으로 나오는 그 영화!”와 같은 발언을 쏟아내는중년 남성의 모습과 그 말을 들으며 똥 씹은 것 같은 표정을 보여주는 문소리의 친구들, 그 사이에서 제작사 대표의 지인들이기에 눈 밖에 날 수 없어 분위기를 맞춰주는 문소리, 영화의 카메라는 바쁘게 이들 사이를 오가면서 여배우라는 타이틀에 질식해가는 문소리의 모습을 그려낸다. “너도 메릴 스트립처럼 <맘마미아>도 찍고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영화도 찍어봐. 너 연기 잘하잖아.”라는 친구의 말은 작품이 들어오지 않아 웬 요상한 시나리오 하나 받는데도 기뻐하는 문소리의 사정과 너무나도멀리 떨어져 있다. 잔뜩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 문소리가 자신이 원하던 감독이 보낸 시나리오(앞서 제작사 대표가 이야기한 황당한 설정의 시나리오)를 매니저를 통해 전달받고 기뻐하는 문소리의 모습은, 한국 영화판에서 제대로 된 작품도 거의 들어오지 않으면서 동시에‘여배우’이기에 당연히 들어야 할 말로 취급되는 온갖 언행들을 받아내야 하는 현실을 가감 없이 통렬하게 그려낸다.



 2막 <여배우는 오늘도>는 문소리의 하루를 보여준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우는 딸, 자신이 다니는 치과 원장의 부탁이라며 가서 사진 한 번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어머니, 유명 배우이지만 돈이 없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러 은행에 가게 되는 현실, 요양병원에 머물면서 문소리를 괴롭히기만 하는 시어머니,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특별출연 문제 등이 문소리의 24시간 하루를 빼곡하게 채운다. 다음 날 아침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딸을 달래고 매니저와 함께 출근하는 문소리는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차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소리 지르며 달려 나가는 문소리의 모습은 2막의 처음과 마지막 두 번에 걸쳐 제시된다.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GV에서 문소리와 전도연이 이야기했듯) 상황만 조금씩 바꿔 ‘워킹맘은 오늘도’, ‘간호사는 오늘도’, ‘아나운서는 오늘도’라는 제목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일과 육아, 가족의 일, 가정의 일 등으로 빼곡히 채워진 문소리의 하루는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한국 여성들의 삶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과 같다. 배우라는 직업은 문소리의 직업이 배우이기에 선택된 껍데기일 뿐, 2막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어떤 직업을 집어넣어도 영화가 그려내는 여성의 삶은 수많은 일로 빼곡하여 빈틈이 없다. 업무 미팅을 핑계로 잔뜩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문소리의 모습은 애잔하다. 그렇기에 2막은 딸의 대사처럼 “그만두고 쉬고 싶으면 그만둬야지”라고 말하고 쉬고 싶은 모든 여성들에게 문소리가 보내는 공감과 연대의 메시지다.



 3막 <최고의 감독>은 배우이자 감독인 문소리가 영화인으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문소리는 자신과 십여 년 전에 영화 한 편을 함께했던 감독의 부고를 빈소를 찾는다. 그 영화 이후 십 년이 넘게 새 작품을 내놓지 못한 감독의 빈소엔 그의 가족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던 문소리는 그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던 남자 배우를 만난다. 빈소 옆에서 육개장에 소주를 마시며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근황, 죽은 감독에 대한 이야기, 예술, 연기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그러던 중 또 한 사람이 빈소를 찾는다. 감독과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신인배우이다. 그는 감독이 예술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다. 문소리는 그 감독의 작품은 예술이 아니었다고 쏘아붙인다. 죽은 감독의 아내는 그 신인 배우가 남편과 바람피우던 상대였음을 알고 그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간다. 문소리는 감독의 아들이 있는 방으로 찾아가고, 감독이 생전에 찍었던 홈비디오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아침이 되자 문소리와 남자 배우, 신인 배우는 해장국을 먹으러 간다. <최고의 감독>은 애증의 관계인 감독과 배우, 예술이면서 동시에 예술이 아니기도 한 영화에 대한 태도, 그럼에도 영화와 연기는 문소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또 연기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앞선 1, 2막에서 문소리는 문소리 개인에 국한되지 않은 공감과 연대의 서사를 펼쳐 보였다면, 3막에서 다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며 영화 전체를 문소리라는 이름으로 수렴시킨다. 이러한 구성은 <여배우는 오늘도>가 단순히 세 편의 단편영화를 묶어 상영하는 영화가 아닌, 한편의 장편영화로써 기능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때문에 영화는 문소리의 영화이면서,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한국에서 직업을 가지고 일하며 살아가는 모든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1막 <여배우>로 시작해 2막에서 여성의 이야기로 서사를 확장시키고, 3막을 통해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영화의 서사를 묶어내는 연출 솜씨는 감독 문소리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든다. GV를 통해 아직은 다음 연출작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는 하지만,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보여준 발군의 코미디 감각을 비롯한 그의 연출력을 보고 있자면 감독 문소리가 만들어낼 다른 연출작들이 어떤 즐거움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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