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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THE DEAD SPEAK!” <스타워즈> 시리즈 특유의 오프닝 크레딧의 첫 문장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망했구나. <깨어난 포스> 이후 다시 한번 연출자로 돌아온 J.J. 에이브람스의 새 <스타워즈> 영화이자, 1977년부터 9편의 영화로 이어진 기나긴 시리즈의 끝이 망했구나. 예고편 마지막에 등장한 팰퍼틴(이언 맥디미어드)의 웃음소리가 등장했을 때 예감한 이야기 그대로 흘러가던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주먹구구식으로 이야기를 덧붙여 나가며 산만한 지루함 속에 침몰했다. 맨 처음에 쓴 문장은 팰퍼틴의 귀환을 알린다. 예고편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그의 웃음소리가 붙은 것처럼, 그는 오프닝 크래딧의 세 문장을 통해 간단하게 되살아난다. 팰퍼틴이 귀환하자 레아 장군(캐리 피셔)은 핀(존 보예가), 포(오스카 아이작), 츄바카(요나스 수오타모)를 보내 그를 찾고자 한다. 한편 스노크의 죽음 이후 다크사이드의 최강자가 되고자 한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은 팰퍼틴을 꺾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서고, 레이(데이지 리들리)는 거대한 적에 앞서 훈련을 계속한다. 각자의 여정은 라이트사이드와 다크사이드의 대립이라는, 제다이와 시스 사이의 케케묵은 대립의 끝에 놓인 전쟁을 향해 합쳐진다. 

 

 <깨어난 포스>가 <새로운 희망>과 <제국의 역습>을 뒤섞은 리메이크였다면,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제국의 역습>과 <제다이의 귀환>의 리메이크이다. 그 사이에 끼인 <라스트 제다이>는 스카이워커 가문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의 서사에서 탈피하려 부단히 노력한 작품이다, 시퀄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기존의 서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켰으며, 오리지널 삼부작 캐릭터들에겐 그들의 역사에 걸맞은 재해석과 결말을 부여했고, 로즈(켈리 마리 트랜)나 홀도(로라 던)와 같은 새로운 캐릭터를 출연시켜 새로운 방향과 메시지를 모색했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라스트 제다이>의 새로운 방향성을 거부하고 오리지널 삼부작의 ‘스카이워커 사가’를 고스란히 반복하길 바라는 팬보이들의 징징거림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결과물이다. 이미 재해석된 캐릭터들을 과거로 복귀시키려다 보니 루크(마크 해밀)의 캐릭터는 그 자신이 회피했던 길로 되돌아오고, 팰퍼틴은 별 이유도 없이 시리즈에 복귀한다. 이 태도가 가장 극명히 드러나는 지점이 로즈의 활용일 것이다. 전작에서 새로운 주연으로 자리 잡은 로즈는 이번 영화에서 수많은 저항군 엑스트라 중 하나로 전락한다. 핀과 로즈 사이의 관계성은 갑자기 붕괴하고, 두 캐릭터 모두 이야기에서 붕 떠버린다. 게다가 이 영화는 핀과 포에게 각각 새로운 여성 캐릭터들을 붙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포는 오래된 동료인 조리(케리 러셀)를 만나게 되고, 핀은 자신처럼 탈주한 스톰트루퍼인 잰나(나오미 애키)를 만난다. 각각의 캐릭터로서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이들의 활동은 각각의 파트너인 포/핀과의 관계성 안으로 한정된다. <라스트 제다이>에서 새로이 등장해 팬보이들의 타깃이 된 캐릭터를 다르게 활용하기보단, 아예 극에서 배제하고 새로운 캐릭터(그중 한 캐릭터는 파트너 캐릭터와 인종을 같게 해 버리는 이상한 선택)를 굳이 만들어내어 이야기를 산만하게 하고 있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라스트 제다이>의 재해석을 배제하기 위해 선택한 길은 <제국의 역습>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그 만전, “I’m Your Father”를 또다시 재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전작의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을 그대로 사용하진 않는다. 이번 영화에서 레이의 정체는 카일로 렌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레이는 ‘레이 팰퍼틴’이다. 레이의 조부가 갑작스럽게 귀환한 팰퍼틴인 것으로 밝혀진다. 이토록 하찮고 쓸모없는 반전이라니. <깨어난 포스>와 <라스트 제다이>에서 레이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누구의 딸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레이의 부모는 단지 딸을 자쿠 행성에 버리고 간 하찮은 누군가였을 뿐이다. 프리퀄 삼부작에 따르면 체내 미디클로리언 수치가 높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다이가 될 수 있다. 레이는 그 누구나에 속한 누군가였을 뿐, 프리퀄이나 오리지널 삼부작의 누군가와 굳이 혈연관계일 필요가 없다. <라스트 제다이>의 마지막 장면이 왜 굳이 칸토 바이트 행성의 노예 소년이 포스를 사용해 빗자루를 움직이는 장면이었을까? <로그 원>의 마지막 장면에서 <라스트 제다이>까지 레아 공주/장군이 줄곧 이야기해온 ‘희망’은 정의나 용기를 지닌 불특정다수의 은하계 인민과 생존한 저항군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J.J. 에이브람스는 레이를 굳이 강력한 포스를 지닌 누군가의 혈통으로 설정하며 레아가 이야기해오던 희망을 한 명의 구원자 서사로 한정한다. 영화 후반부 팰퍼틴이 시스의 부활을 위해 비밀리에 칩거하던 엑세골 행성에서 벌어지는 저항군과 다크사이드의 전투 도중 랜도(빌리 디 윌리암스)의 요청을 받은 수많은 민간인들이 우주선을 끌고 전투에 합류한다. 하지만 이미 이야기는 레이 팰퍼틴이 자신의 조부와 맞서 싸우는, 동시에 스카이워커의 혈통인 카일로 렌이 마침내 ‘벤 오르가나 솔로’로 거듭나 팰퍼틴에 대적하는 구원자 서사로 흘러가버렸다. 레아가 말하던 희망을 그대로 시각화한 각양각색의 민간 전투기들의 모임은 레이가 팰퍼틴의 혈통을 거부하고 포스를 통해 스카이워커의 혈통을 선택하기 위한 제물로 사용된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이렇다 보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141분의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라스트 제다이>를 부정하기 위한 설정들만을 보여주는 장면과 프리퀄 시리즈부터 <깨어난 포스>까지를 아우르는 팬서비스만을 담아내고 있다. 사실 레이와 벤 솔로가 맞이하는 결말은 <라스트 제다이>의 재해석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 레이는 어떤 희망의 상징으로 존재하며 다크사이드의 유혹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계로 향해야 했다. 벤 솔로는 카일로 렌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던 것들이 시스의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본래 이름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과정들은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도 얼추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방향만 얼추 맞을 뿐, J.J. 에이브람스가 택한 길은 완전한 지뢰밭이다. 혈통을 서사의 중심으로 삼아 메시지는 물론 여러 캐릭터들마저 붕괴시키고, ‘순수성’을 지키고자 한 팬보이들의 징징거림을 수용해 과거를 다시 끌어오며 시리즈의 미래를 침몰시켰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한 설정뿐인 장면들로 영화를 빼곡히 채워 놓았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매끈하게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단 8 에피소드 분량 드라마의 주요 클립을 팬서비스와 함께 적당히 이어지게 붙여 놓은 것만 같다. J.J. 에이브람스는 팬보이들이 거부반응을 보인 전작의 설정들을 기계적으로 배제/거부하고, 팬보이들이 <라스트 제다이>에 바랬던 ‘순수성’을 기계적으로 되살리려 한다. 그 결과 완성된 것은 맹목적인 전작의 반복, 어처구니없는 ‘다크 레이’ 장면이나 데스스타의 폐허 위에서 펼쳐지는 레이와 카일로 렌의 조악한 라이트세이버 대결, <해리포터> 시리즈의 디멘터를 연상시키는 팰퍼틴, 어떻게든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 갑자기 등장한 갖가지 설정들뿐이다. 

 

 다크사이드/시스와의 결전을 끝마친 레이는 루크 스카이워커가 어린 시절을 보낸 타투인 행성을 찾는다. 그는 레아와 루크의 라이트세이버를 루크가 살던 집 앞에 묻는다. 그런 레이를 발견한 노인이 “당신은 누군가요?”라고 물어온다. 잠시 머뭇거리던 레이의 뒤에 포스의 영이 된 루크와 레아가 나타난다. 레이는 “레이… 레이 스카이워커”라고 대답하고, 타투인 행성에 뜬 두 개의 태양을 바라보며 영화가 끝난다. 그 유명한 <아내의 유혹>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포스의 영 장면이 지나가고 소환되는 것은 <스타워즈>의 시작을 알렸던, <새로운 희망>에서 루크가 두 개의 태양을 바라보던 그 장면이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마지막 장면은 과거로 회귀한 영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비웃고 있다. <로그 원>과 <라스트 제다이>의 서사, 그리고 <솔로>의 실패가 증명한 것은, 과거를 리메이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리부트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스타워즈> 이외에 수없이 리메이크되고 있는 작품들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말 그대로 다시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단순히 반복만을 할 뿐이다. <스타워즈>에는 광활한 세계가 있다. 새로운 영화가 제작될 때마다 수많은 행성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시리즈에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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