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현상> 고두현 2019 :: 영화 보는 영알못

 90년대 말부터 0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요요 붐이 일었다. 당시 학생이던 문현웅, 곽동건, 윤종기, 이대열, 이동훈은 함께 길거리 요요 공연을 진행하고, 요요 콘테스트에 출전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이들은 어느새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 졸업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이들은 ‘요요현상’이라는 이름의 팀으로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영화 <요요현상>은 여기서 출발한다. 해외 공연을 통해 요요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본 이들이 마주한 것은 요요로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요요에 열정을 불태워 왔다. 영국에서 돌아온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요요에 쏟았던 열정을 이어간다. <요요현상>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열정을 전환하는 방식을 담아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니퍼 M. 실바의 책 [커밍 업 쇼트]가 떠올랐다. 이 책은 사회학자인 저자가 100명의 미국 노동계급 청년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청년들의 이야기는 얼핏 개인의 자유와 능력에 따른 성공을 보장하는 듯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실은 젠더적, 인종적, 계급적, 지역적 맥락 안에서 수많은 선을 긋고 있으며, 그렇게 격자처럼 갈라진 사회 속에서 무드 경제와 같은 개념을 통해 ‘리스크 관리’라는 함정에 빠지게 됨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 이야기를 <요요현상>의 다섯 주인공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 또한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좇으라는 신자유주의적 강령 속에서 열정을 불태우다가, 그것에 동반되는 리스크 관리의 요구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맥락을 공유한다.      

 <요요현상>이 담아내는 것은 2011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부터 2017년까지의 시간이다. 모두가 함께한 영국에서의 시간 이후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동건과 동훈은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취업해 취미활동을 즐길 시간조차 사라져 버린다. 현웅과 대열은 길거리를 비롯한 공간에서 요요 공연을 계속 이어나가기도 한다. 같은 팀이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에든버러에 가지 못했던 종기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아이들에게 요요를 가르치고 판매하는 등의 엔터테인먼트-완구 사업에 뛰어든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요요를 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요요를 통한 꿈을 꾸기도 한다. 각기 다른 삶의 모습과 방향을 선택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요요를 향한 열정을 그대로 유지하던 다른 방향으로 돌리던, 그것을 항상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든버러에서의 공연 이후 이들에게 들이닥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후에 찾아오는 어떤 허탈감은 이들을 흩어지게 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방향성을 지닌 각자의 선택을 믿는다. 각자의 길 앞에 놓인 생계라는 거대한 리스크를,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고 영화는 그것을 묵묵히 따라간다.    

 <요요현상>의 영어 제목은 ‘Loop Dreams’다. 이 제목은 스티브 제임스의 걸작 다큐멘터리 <Hoop Dreams>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는 NBA 스타를 꿈꾸던 두 흑인 학생과 그들의 가정을 쫓는다. 이들의 꿈은 다양한 이유 앞에서 가로막힌다. 3시간의 러닝타임 속에서 이들은 실패하지만, 그 이유는 단지 이들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두 사람과 가정을 쫓는 과정에서 영화가 드러내는 것은 이들의 꿈이 가로막히게 된 구조다. <요요현상>이 보여주는 것 또한 그와 유사하다. 무엇이든 꿈꿀 수 있다는 환상은 어느 순간 장애물로 되돌아온다. 누군가는 그 꿈을 계속 좇고, 누군가는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꿈을 좇는 이들 우상으로 그리지도, 꿈을 포기한 이들을 패배자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그저 어떤 열정을 품었던 이들이 이제 각기 다른 방향으로 그 열정을 옮겨가는 과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담아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열정이 다른 누군가의 열정으로 전이될 수 있음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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