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룸> 크리스티안 볼크만 2019 :: 영화 보는 영알못

*스포일러 포함

 

 올해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크리스티안 볼크만의 판타지 스릴러 <더 룸>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방에 관한 이야기이다. 외딴 지역의 집으로 이사 온 부부 케이트(올가 쿠릴렌코)와 맷(케빈 얀센트)은 이삿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비밀스러운 방을 발견한다. 그 방은 원하는 것을 말하면 무엇이든 제공한다. 최고급 캐비어와 샴페인 같은 먹거리는 물론, 온갖 값비싼 옷과 보석, 가구, 악기, 현찰, 심지어는 <모나리자>나 반 고흐의 초상화와 같은 걸작 예술작품까지 제공해준다. 방이 제공하는 향락 속에 빠져 살던 둘은 어느 순간 허무함에 빠지고, 두 차례 유산한 경험이 있는 부부는 아기를 원하게 된다. 방은 아기까지 제공하게 되고, 아기에 존재로 인해 둘의 관계는 복잡하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맷은 방이 제공한 물건들은 방 밖으로 나가게 되면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는 것과, 과거에 이 집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해 알게 된다.

 

 영화의 초반부는 익숙한 ‘유령 들린 집’ 클리셰처럼 흘러간다. 오래전 그 집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 집에 숨겨져 있던 의문스러운 방 등의 미스터리는 수많은 호러, 스릴러 영화들에서 시도된 구도를 따라간다. 이 영화가 변화하는 지점은 아기가 등장하면서이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따라간다.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등장한 아이 쉐인은 집 밖으로 나가면 빠르게 노화한다. 그가 사람의 몸을 통해 태어난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려면 자신을 만들어낸 이, <더 룸>의 경우엔 방에 아이를 요청한 케이트를 죽여야 한다.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던 영화는 쉐인의 등장부터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따라간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욕망을 물건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등의 방식으로 해소하던 쉐인은 케이트와 맷의 잠자리를 엿본 이후 어머니에 대한 성욕을 드러내게 된다. 방의 작동방식을 알고 있는 쉐인은 그 방을 활용해 맷을 죽이고 케이트와 그 안에서 평생을 보내기를 욕망한다. 다시 말해 쉐인은 아버지에 의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억눌러지고, 그럼으로써 성장하는 오이디푸스적 순환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 존재인 셈이다. 

 

 문제는 영화가 이 과정을 압축시켜 그리기 위해 쉐인의 여러 시기들을 단편적으로만 제시한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되길 거부하는 맷의 서사와 어떻게든 쉐인을 양육해보려는 케이트의 시도는 완전히 단절된 두 개의 서사(이들은 공간적으로도 분리되어 있다)로 제시된다. 후반부에 이르러 둘의 서사는 폭주하는 쉐인의 리비도에 대항하기 위해 합쳐지게 되는데, 이 부분의 교차편집이 허술해 마치 둘이 한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아진다. 더군다나 ‘판도라의 상자’ 모티프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야기를 욱여넣으려다 보니, 영화는 관객에게 충격을 줄 수 있을 법한 부분들만을 취하여 단편적으로 제시한다. 가령 쉐인이 케이트를 강간하려 하는 장면과 같은 것들만이 부각된다. 앞서 언급한 살인사건의 범인인 존 도(존 플렌더스)는 그 존재만으로 케이트와 맷, 쉐인에게 벌어질 모든 일을 짐작하게 한다. 그의 조언은 사건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클리셰의 직접적인 등장을 암시하며 영화를 지루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더 룸>은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극단적은 사례를 만들어보려는 미약한 시도에 그치고 만다. 여기서 남은 것은 하우스 호러와 코스믹 호러의 요소를 뒤섞은 어색하고 기이한 집의 이미지뿐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