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의 인터뷰>와 <푸줏간 소년> 등의 장르영화로 알려진 닐 조던 감독의 신작 <마담 싸이코>(원제는 <그레타>)를 관람했다. 그동안 꾸준히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해왔지만 국내에 제대로 개봉한 영화가 몇 편 되지 않는 감독이었는데, 쇼박스가 <마담 싸이코>의 투자로 참여하여 국내에도 수월하게 개봉하게 되었다. 영화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뉴요커 프랜시스(클로이 모레츠)가 우연히 지하철에서 고급 가방을 습득하면서 시작한다. 프랜시스는 가방 속 신분증의 주소를 보고 가방의 주인인 그레타(이자벨 위페르)의 집으로 찾아간다. 가방을 돌려주러 온 그레타는 프랜시스를 친절하게 맞아준다. 얼마 전 엄마를 떠나보낸 프랜시스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딸마저 멀리 유학을 간 외로운 처지의 그레타와 급속도로 친해진다. 하지만 프랜시스의 룸메이트 에리카(마이카 먼로)는 그레타를 의심스럽게 여긴다. 그러던 중 프랜시스는 그레타의 집에서 자신이 습득했던 것과 똑같은 가방들을 발견하고, 가방들에 자신의 이름을 포함한 여러 이름들이 라벨링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소름이 돋은 프랜시스는 그레타를 멀리하기 시작하고, 그레타는 프랜시스에 대한 집착을 시작하며 그를 스토킹 한다.
“함부로 친절하지 말 것”이라는 포스터의 문구가 영화의 내용을 요약한다. 하지만 영화에는 이러한 문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결들이 숨어 있다. 엄마를 잃은 프랜시스의 상황과, 남편을 잃고 자식을 멀리 떠나보낸 그레타의 상황은 순식간에 친밀해지는 둘의 관계를 납득시킨다. 프랜시스가 연락을 끊은 이후 그레타가 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이러한 상황을 전제하기에, 물론 끔찍하지만, 관객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다. 닐 조던은 여기에 섹슈얼한 긴장감을 집어넣어 영화의 결을 조금 더 다양하게 만들어낸다. 그레타는 단순히 딸을 상실한 것에 대한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젊은 여성들을 유인하지 않는다. 동시에 프랜시스 또한 엄마를 잃은 상실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상실이 제공하는 외로움은 관계의 시발점이 되지만, 그레타의 가학적인 욕구는 비뚤어진 모성 그 이상의 결을 요구한다. 계속해서 프랜시스의 손을 잡는 그레타의 모습은 그레타의 ‘외로움’이 단순히 가족에 연관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사실 <마담 싸이코>를 ‘현실 공포’라고 부르기엔 어폐가 있어 보인다. 여기 한국이나 영화의 배경인 미국이나 스토킹 범죄의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담 싸이코>의 가해자는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하는 그레타이다. 동시에 영화의 주된 등장인물 또한 대부분 여성이다. 그레타, 프랜시스, 에리카, 영화에 남성 인물은 프랜시스의 아빠나 프랜시스가 일하는 레스토랑의 매니저 정도의 존재감 없는 인물들이다. 그레타를 여성으로 설정하여 현실의 스토킹 범죄와 (조금이라도) 분리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장르적 재미를 더욱 강화하는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한다. 동시에 프랜시스의 신고를 무시하는 경찰의 행동을 통해 어느 정도 현실적인 감각을 유지하면서 긴장감을 지속시킨다. 이러한 전략은 여러 장르영화를 연출한 경험을 바탕으로 능수능란하게 장면들을 구성해내는 닐 조던의 실력과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그레타가 에리카의 뒤를 쫓아가는 장면은 마이카 먼로의 출세작 <팔로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비록 <마담 싸이코>가 놀라운 영화는 아닐지라도, 98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은 장르 영화임이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언제나 놀라운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와, <아미타빌 호러>부터 <캐리>와 <서스페리아>까지 여러 호러영화에 출연했던 클로이 모레츠의 연기는 영화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종종 너무 과장된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즐길만한 장르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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