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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우>부터 <인시디어스> 시리즈까지 꾸준히 공포영화들에 출연해오다 <인시디어스3>를 통해 연출자로 데뷔한 리 워넬의 두 번째 연출작 <업그레이드>가 개봉했다. 영화의 설정은 언뜻 익숙하게 느껴진다. 사고로 아내 애샤(멜라니 밸레조)를 잃고 사지가 마비된 그레이(로건 마샬 그린)는 자신의 고객인 반도체 기업의 창립자 에론(해리슨 길벗슨)에게 어떤 제안을 받는다. 스템(STEM)이라는 칩을 척추에 이식하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제안. 모든 게 자동화된 세상에서 아날로그를 고집하던 그레이는 결국 에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중 스템이 그레이에게 말을 걸어오고, 그가 당한 사고 뒤에 음모가 있었음을 알려주며 그가 복수하기를 종용한다. 그렇게 그레이는 스템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시작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음모가 더욱 거대했음이 드러난다.



 <업그레이드>는 드라마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문명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그려내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결국 기술에 인간이 굴복하거나 지배당하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그러나 <업그레이드>는 세계관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블랙미러>를 비롯한 여러 SF영화에서 그려진 미래적 이미지와 설정들을 가져오고, 그것을 이용해 액션을 선보이려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예고편에서도 드러난 독특한 카메라 워크와, 스템에게 자신의 몸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그레이(의 몸을 사용하는 스템)의 액션이 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액션 시퀀스의 카메라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거나 단순히 액션의 동선을 담아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를 빌린 기계가 액션을 선보이는 만큼, 카메라는 그레이의 상체에 고정된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액션의 합 자체는 인간의 신체를 기계가 움직이는, 혹은 기계화된 신체가 움직이는 영화들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것이지만, <업그레이드>의 카메라는 약간의 변화를 줌으로써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이는 기계-인간, 아날로그-디지털의 결합이라는 주제를 적절하게 반영하기도 한다. 가령 스템의 작동이 중지되는 상황에서 시점 쇼트가 아님에도 카메라가 그레이의 움직임에 고정되어 있는 장면 등이 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 내내 반복되다 보니 산만해지는 경향도 있다. 중후반부 몇몇 액션 장면에서의 카메라는 과도하게 그레이를 쫓아가 액션을 제대로 담지 못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업그레이드>는 영화의 세계관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점점 산만해지는 액션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 영화가 설정한 세계관일 텐데, <업그레이드>는 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그레이가 보여주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부딪힘 혹은 융합이나, 엔딩에서 벌어지는 사건 등을 더욱 섬세하게 다뤘다면 수작이 나오지 않았을까? 물론 리 워넬이라는 연출자의 기존 출연작 또는 제작한 영화들을 보면 그가 SF를 통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폭력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거기에 블룸하우스라는, 최소비용 최고효율을 추구하는 제작사가 함께하여 탄생한 작품이 <업그레이드>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많지만, 킬링타임용 100분짜리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들의 목표니까 말이다.

*스포일러 포함


 70년대 말~90년대 초에 인기를 끌었던, 지금은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캐릭터들은 왜 자꾸 21세기의 스크린에 소환되는 것일까? <스타 트렉>의 레너드 니모이, <트론>의 제프 브리지스,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워제네거. <익스펜더블>의 브루스 윌리스와 실버스타 스탤론을 비롯한 하드 보디 액션 배우들…… 그중 해리슨 포드는 그 흐름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는 <레이더스>, <스타워즈>, <블레이드 러너>의 인디아나 존스, 한 솔로, 데커드 형사를 30~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기하고 있다. 그는 과거의, 혹은 현재까지도 아이콘으로 존재하는 캐릭터들을 다시 스크린 위로 소환하고 있다. 나이 든 노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는 이제 아버지가 된 아이콘의 초상으로 그려진다. <인디아나 존스:크리스털 해골의 왕국>의 인디아나 존스는 자신의 모험을 아들인 머트에게 물려주려 하고(모두가 알고 있듯이 영화 자체가 실패해버려 인디아나 존스의 대물림은 성공하지 못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한 솔로는 <스타워즈>라는 거대한 세계관의 이야기를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며 캐릭터에 대한 결산을 선보인다. 그렇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어떠할까? 감정을 지닌 레플리컨트(인조인간), 인간의 감정은 무엇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그 구성 요소는 기억인가, 기억과 감정을 지닌 레플리컨트는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존재인 것일까, 여기서 상정되는 인간성의 기준은 무엇일까?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으며, 데커드 형사는 레플리컨트와 인간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하며 영화의 여백을 온갖 질문으로 채우는 캐릭터였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러한 정체성의 방황을 차단하고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극의 주인공인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이 레플리컨트임이 밝혀진다. K는 전작의 레플리컨트와는 다르게 인간에게 복종하는 월레스(자레드 레토)의 기업이 만들어낸 신형 모델이다. 그는 구형 레플리컨트 중 한 명의 시신을 발견하고, 유골에 남은 흔적을 통해 그녀가 출산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63분의 기나긴 러닝타임 중 대부분의 시간은 이 흔적을 통해 레플리컨트가 출산한 아이는 어디에 있는지 추적하는데 할애된다. 꽤나 당연하게도 이 유골은 전작에서 타이렐(조 터켈)이 자신의 조카의 기억을 주입해 만들어낸 감정을 지닌 레플리컨트인 레이첼(숀 영)이며, 그녀가 출산한 아이는 데커드와의 관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K는 이를 추적하던 중 자신에게 주입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떠올린다. 여정의 어느 순간 K는 자신에게 심어진 기억이 심어진 것이 아닌 실재했던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K는 자신이 레이첼과 데커드의 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렇게 전작이 질문을 던진 테마 중 기억에 집중하며 극을 전개한다. K는 목각인형을 소각로에 숨긴 기억이 주입된 것이라고 굳게 믿지만, 직접 소각로에 찾아가 그곳에 숨겨진 목각인형을 손으로 만지는 순간 그 기억의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는 자신에게 실재했던 일로 기억하는 행위의 매개로 촉각을 이용한다. 레플리컨트에게 심어진 기억은 아나 스텔라인(카를라 주리)와 같은 사람에 의해 무균실에서 상상력을 동원에 만들어진 기억이다. 이러한 기억은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K의 기억처럼 그저 환영으로 존재한다. 이 환영을 촉각으로써 느끼는 순간 K는 기억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촉각을 통해 환영을 실제로 만들어내려는 욕망은 K의 홀로그램 A.I. 애인인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를 통해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홀로그램이기에 K를 만질 수 없는 조이는 끝임 없이 K가 존재하는 세계와 자신을 동기화시키려고 한다. K가 조이를 휴대용 콘솔을 통해 집 밖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한 직후, 조이는 K를 따라 테라스로 나가 비를 맞는다. 물론 조이는 홀로그램이기에 비는 그녀의 몸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촉감을 느끼려 한다. 그러기 위해 그녀는 자신을 구성하는 홀로그램의 영상을 육체를 지닌 존재 위에 빗방울이 떨어진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빗방울은 조이의 손을 뚫고 지나가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이라는 영상에 빗방울을 추가한다. 결국 조이와 K는 같은 욕망을 지니고 있다. 촉감을 통해 자신이 혹은 자신의 기억이 실재함을 증명하려 한다. K는 기억을 추적하는 여정을 통해 욕망을 내비쳤다면, 조이는 K의 세계에 끝임 없이 자신의 영상을 동기화시키며 욕망을 실현하려 한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섹스신은 이러한 욕망을 가장 괴상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조이는 길거리의 매춘부 레플리컨트인 마리에트(맥켄지 데이비스)를 데려와 그녀의 몸의 자신의 영상을 동기화한다. 마치 <그녀>의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이 매춘부를 불러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와 육체적인 관계를 꾀한 것처럼 말이다. (<그녀> 이야기가 나왔으니덧붙이자면, 세세한 설정에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빅데이터에 연결된 A.I. 애인이라는 점에서 둘은 거의 유사하다. 때문에 성적으로, 여성이라는 틀 안으로 대상화되는 조이의 캐릭터는 인간을 상대할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된 초월적인차원으로 나아가는 사만다의 캐릭터에 비해 심각하게 퇴행적이다. 물론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제가 그것은 아니었지만) 조이는 이러한 동기화를 통해 자신의 물성을 증명하려 시도하고, 이를 증명하는 것이 자신이 K와 같은 세계에 실재함을 증명하는 것이라 믿는다.



 조이와 K의 믿음은 산산이 박살 난다. 외부 콘솔과의 연결을 끊은 채 K의 휴대용 콘솔에만 남길 선택한 조이는 월레스의 수하인 레플리컨트 러브(실비아 획스)에 의해 파괴되고, K의 기억은 데커드의 딸 아나 스텔라인의 실재했던 기억이 복제되어 주입된 것이다. 동기화를 통한 실존에 대한 조이의 욕망은 짓밟혔고, K가 촉각을 통해 느꼈던 기억은 그에게 실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기어이 데커드를 발견하고 그와 주먹을 주고받으며 그의 존재를 자신의 기억 속 어느 부분으로 받아들이려던 K의 욕망은 헛수고가 되었다. 러브에 의해 조이가 파괴되고 데커드가 끌려간 시점에서 K는 레플리컨트 저항 운동의 지도자 프레이자(히암 압바스)에게 구조된다. 프레이자는 K에게 데커드가 어떠한 말도 월레스에게 발설할 수 없도록 그를 죽일 것을 요청한다. 다시 데커드를 찾아 길을 떠나던 K는 조이를 판매한다는 광고를 만난다. 누드 상태의 거대한 홀로그램인 조이는 길거리의 매춘부처럼 K를 불러 세운다. 광고의 조이는 당연히 K의 조이가 아니지만, K를 그녀를 통해 어떤 위안을 받고 결심을 지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K는 러브에 의해 이송되고 있던 데커드를 찾아내고, 러브를 죽인 뒤 데커드를 죽이지 않고 구출한다. 그리고 데커드와 함께 그의 딸인 아나 스텔라인이 있는 무균실을 찾아간다. K는 건물의 계단 앞에서 숨을 거두(는 것으로 추정되)고 데커드는 딸과 재회한다.



 여기서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촉각 하는 것을 통해 실재함과 기억에 접근하던 영화는 그것을 철저히 붕괴시킨 뒤, 딸에 대한 데커드의 부정(父情)을내세우며 K의 인간성을 드러낸다. 드니 빌뇌브는 이러한 K의 선택을 인간성이라 부르려 한다. 드니 빌뇌브는 <어라이벌> 속 플래시포워드의 활용처럼,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할애하며 캐릭터가 쌓아온 논리를 붕괴시키면서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때문에 K의 캐릭터가 방황하는 것은 데커드의 방황과 차이가 느껴진다. 데커드가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를 방황하며 남긴 여백들은 필립 K. 딕의 원작이 제시한 질문들로 채워졌다면, K가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방황하며 남긴 여백은 그저 비어 있다. 로저 디킨스의 놀라운 촬영과 한스 짐머의 공격적이면서 동시에 차분하기도 한 음악은 이러한 여백을 은폐한다. 결국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영화가 100여분의 러닝타임을 할애하며 그려낸 기억이라는 테마는 붕괴된 채, 전작에서도, 그리고 영화 안팎으로 절대 결론지어질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한 질문만을 답습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결말에서 <그을린 사랑>부터 <어라이벌>까지 이어지는 드니 빌뇌브의 캐릭터에 대한 착취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착취 끝에 얻은 결론이 딸에 대한 데커드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에 비해 진보는커녕 퇴보한 결과물이다. 이는 어쩌면 과거의 아이콘을 현재의 스크린으로 다시 소환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수많은 시퀄들의 운명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과거의 아이콘인 남자들은 나이 들어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고(아버지에 머무는 상상력은 또 얼마나 진부한지), 이러한 아버지들은 자식 세대를 위해 퇴장하거나 부성을 강조하며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그렇기에 <블레이드 러너 2049>(와 세계관을 이어가는 연출가/작가의 상상력)는 태생부터 전작에 비해 진보할 수없다. 그렇기에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드니 빌뇌브 특유의 착취적인 캐릭터 활용 방식과 과거의 아이콘을 끌어 쓰는 시퀄의 한계점이 맞물려 탄생한 괴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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