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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30년 전쯤 과거로 돌아가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나오는 영화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나오는 영화보다 훨씬 성공했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모 트친분이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남긴 말이다. 1966년 처음으로 배트맨이, 1979년 슈퍼맨이 영화화될 때만 해도, 아니 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이 각각의 배트맨 영화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만 해도 <저스티스 리그>라는 빅 이벤트가 이렇게 처참한 기록을 남길 줄 누가 알았을까? 엄청난 물량공세와 흥행으로 다른 프랜차이즈들을 압도하는 MCU와 <로건>, <데드풀> 등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엑스맨 유니버스와 비교하면, 후발주자인 DCEU의 모습은 아쉽기만 했다. 앞선 세 영화의 (흥행은 성공했지만) 실패 끝에 등장한 <원더우먼>의 성공 이후, 팬들은 다시금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드디어 실현된, 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과 조지 밀러 등의 이름들이 오간 빅 이벤트인 <저스티스 리그>는 다시 살아난 희망마저 앗아간다.



 “<저스티스 리그>가 그렇게까지 재미없는 영화인가?”라고 물어보면 러닝타임 120분 정도는 금방 지나간다고 답할 수 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처럼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루하지는 않다. 플래시(에즈라 밀러)나 사이보그(레이 피셔)처럼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나름 괜찮게 선보이고, 슈퍼맨(헨리 카빌)의 예견된 부활까지 영화가 담아내야 될 이야기는 모두 담아낸다. 문제는 영화의 속도와 톤이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맞혀진 것 같다는 인상이다. 이러한 지적은 MCU에서부터 이야기가 나왔다. MCU는 ‘어벤저스’라는 이벤트를 향해 개별 영화들이 드라마의 각 에피소드처럼 진행된다. 각각의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진행되지만, 모두가 모이는 이벤트를 위해 떡밥을 뿌리는 소모적인 행태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MCU의 작품들은 캐릭터 쇼라는 기본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개별 작품의 매력을 유지한다. <저스티스 리그>는 온전히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처럼 느껴진다. <저스티스 리그>에서는 배트맨(벤 애플렉)이 원더우먼(갤 가돗),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 등의 메타휴먼들을 모아 저스티스 리그를 결성하고, 스테판 울프(시아란 힌즈)를 격퇴하는 메인 플롯과 동시에 플래시, 사이보그, 아쿠아맨, 슈퍼맨 등 각각의 이야기가 서브플롯으로 함께 제시된다. 12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다 욱여넣을 수없는 플롯들은 스쳐 지나가는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처럼 완전히 분절된 각각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MCU가 페이즈 단위로 진행되는 거대한 드라마이면서 개별 작품의 속성을 유지한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그냥 큰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 수준에 머문다.



 이렇게 된 원인으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잭 스나이더가 하차하고 조스 웨던이 빈자리를 채웠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절대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맨 오브 스틸>과 <배트맨 대 슈퍼맨>은 DCEU가 나아갈 (비주얼적인) 지향점을 확실히 잡아두었다. 때문에 DCEU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지향점을 살릴 각본과 허튼 방향으로 엇나가지 않도록 제작진을 붙잡아 줄 기획자이다. <저스티스 리그>를 보면 여전히 잭 스나이더의 장점들이 살아있다.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등장하는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의 몽타주라던가 원더우먼이 박물관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하는 장면 등은 시퀀스 단위로는 괜찮은 비주얼을 선보이는 잭 스나이더의 장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조스 웨던이 투입되어 재촬영된 장면들은 영화를 보면서 잭 스나이더와 조스 웨던이 촬영한 장면들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톤이 일정하지 않다. 특히 슈퍼맨이 부활한 뒤 멤버들과 첫 대면하는 장면의 톤은 조스 웨던이 <배트맨 대 슈퍼맨>을 보긴 했을까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잭 스나이더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예고편 속 많은 푸티지들이 본편에서 잘려나간 것 또한 이러한 어색함에 크게 한몫한다. 결국 <저스티스 리그>는 조스 웨던이 <어벤저스>에서 보여준 유기성은커녕,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보여준 정리될 수 없는 플롯과 시퀀스들의 난장만을 이어간다.



 <저스티스 리그>는 한 편의 영화로 보면 형편없이 짝이 없지만, DCEU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일부로 본다면 DC 팬들에게는 수많은 떡밥들을 남겨준다. 잠깐 등장하는 메라(엠버 허드)와 아틀란티스의 모습이라던가, 수감된 플래시의 아버지 헨리 앨런(빌리 크루덥), 전지전능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슈퍼맨의 모습, 잠시 등장하는 그린랜턴 군단 등은 팬들이 바라던 몇몇 모습이다. 쿠키영상 두 개의 내용 역시 그러한 부분에서 팬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동시에 현재 CW 채널에서 방영 중인 DC 드라마들과 DCEU의 작품들을 비교하게 되기도 한다. 가령 플래시의 능력 묘사는 분명 이번 영화보다 드라마 속의 묘사를 더욱 선호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혹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속 퀵실버와 비교하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할 것이다. 종종 등장하는 ‘백인 시스젠더 남성 너드’식 조크는 벤 애플렉이나 제이슨 모모아라는 영화 밖의 배우 개인이 야기한 논란과 맞물려 재미없고 짜증만 유발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저스티스 리그>는 각 캐릭터를 소개하고 슈퍼맨을 부활시키기 위한 하나의 에피소드 수준에 머문다. 조드 장군(마이클 섀넌)의 함선에서 플래시가 일으키는 전기와 마더박스를 통해 슈퍼맨을 부활시키는 장면은 뭐랄까,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3분 요리를 연상시킨다. 어쨌거나 잘 때려 부시는 액션들과 (배우의 매력인지 캐릭터의 매력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매력 있는 캐릭터들을 보는 것은 맛있지만, 썩잘 어울리지도 않는 편의점 음식들을 잔뜩 사다가 돌려 먹는 기분이다. 다른 잘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상품들을 봤을 때의 포만감보다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블랙핑크의 ‘마지막처럼’ 같은, 맛은 있지만 어색한 인스턴트로 배를 채웠다는 생각만 든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의 트리니티가 등장하는 영화가, 슈퍼맨과 플래시의 속도 대결이 등장하는 영화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듣보잡 히어로들이 모인 영화보다 지루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DCEU의 마지막 희망, 여성 감독이 연출한 첫 블록버스터이자 첫 여성 슈퍼히어로 단독 주연 작품.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슈퍼맨(헨리 카빌)과 배트맨(벤 애플렉)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시시껄렁한 마무리를 맞았을 때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간 것은 다름 아닌 원더우먼(갤 가돗)이었다. 많은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받으며 제작된 DCEU의 두 번째 솔로 영화 <원더우먼>은 결과적으로 성공이다. 전작에서 원더우먼이 보여준 에너지가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지며, 이세계에서 인간들의 세계로 넘어온 인물의 천진난만한 정의로움은 영화의 톤을 경쾌하게 만들어준다. MCU의 <퍼스트 어벤저>를 연상시키는 시대 배경과 플롯이지만 훨씬 더 매끄럽고, 폴 페이그의 <고스트버스터즈>만큼 과감하진 못하지만 성역할을 뒤집는 장면들은 즐겁다. 온통 CG로 범벅된 <닥터 스트레인지>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의 가벼운 액션과는 다른 양상의 슈퍼히어로 액션은 ‘초인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지’하는 느낌을 되살려준다. 슈퍼히어로와 다른 장르를 뒤섞는 최근의 트렌드와는 다르게 정공법으로 만들어진 <원더우먼>은 정직한 재미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악평을 남기긴 했지만 저평가된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이 MCU와는 다른 결의 모습으로 기대감을 안겨주었다면, <원더우먼>은 그것과 또 다른 모습으로 MCU와, 그리고 엑스맨 유니버스와 DCEU의 차이점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원더우먼>은 MCU에서 나오기 어려운 작품이다.



 <원더우먼>과 같은 영화가 MCU에서 나오기 힘든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성 캐릭터를 대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사실 첫 여성 슈퍼히어로의 단독 영화라는 점에서부터 (<캣우먼>이나 <엘렉트라> 같은 괴작들은 빼자) 어느 정도 차별화된다. 대부분의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메인을 맡은 인물은 남성이고, 간혹 등장한 여성 캐릭터들(스칼렛 위치, 블랙 위도우, 스톰, 진 그레이 등)은 사이드킥 혹은 연인관계의 상대역이 되기 위해 등장한 느낌을 풍겼다. 물론 실제로도 그랬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킥애스>의 힛걸이나 <엑스맨> 프리퀄 트릴로지의 미스틱 같은 인물도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서사의 중심으로 나서지 못했다. 반면 <원더우먼>은 여성 중심의 슈퍼히어로 영화로써 그 역할에 충실하다. 여성들로만 구성된 데미스키라의 다인종 구성과 안티오페 장군(로빈 라이트)과 여왕 히폴리타(코니 닐슨) 등 그들이 보여주는 액션, 메인 빌런은 아니지만 신 스틸러 서브 빌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닥터 포이즌(엘레나 아나야) 등 원더우먼의 활약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은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 속 여성관을 깨는 부분이다.



 전통적인 성역할을 뒤집는 지점들도 흥미롭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과감하진 못하지만 눈에 띄게 이러한 지점들을 보여준 것은 <원더우먼>만의 장점이다. 남성 캐릭터인 스티븐 트레버(크리스 파인)를 그리는 모습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트레버는 사이드킥이자 인간 세계에 원더우먼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여성/여신의 목욕 장면을 우연하게 목격하는 남성의 이미지는 반대의 모습으로 영화 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동시에 원더우먼이 각성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는 등 여성 캐릭터들이, 가령 <아이언맨 3>의 페퍼나 <다크 나이트>의 레이첼과 같은 캐릭터가 주로 맡아온 역할을 대신한다. 무엇보다 <아이언맨 2>의 블랙 위도우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캣 우먼과 같은 아이캔디 역할이 남성 캐릭터에게 돌아갔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지점에서 <원더우먼>은 철저히 여성 중심의 서사로 구축되었음이 드러나고, <고스트버스터즈>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전장의 여성이 영웅이 되어가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상당하다. 올해도 몇몇 전쟁영화가 개봉했지만, 모두 남성이 전장에서 영웅이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세계대전의 전장 속 여성을 그리는 흔치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원더우먼>만의 차별성이 드러난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짧게 등장한 원더우먼의 액션을 좀 더 많고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원더우먼>의 장점이다. 전장에서의 첫 액션 시퀀스는 평이해 보이기도 하지만, DCEU 속 초인 액션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에서 즐거움을 준다. 팔찌와 방패로 소총과 기관총을 비롯해 박격포까지 튕겨내며 돌진하는 원더우먼의 모습은 멋있다. 마을을 점령하는 반군을 소탕한 아이언맨의 첫 출격만큼이나 멋지다. 이 장면에서 원더우먼을 서포트해주는 트레버와 트레버의 팀은 원더우먼을 띄워주는 역할에 충실하다. 종종 슬로모션이 남용되는 듯 하지만, 심하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원더우먼 하면 가장 처음 떠오르는 무기인 진실의 올가미를 활용한 액션들은 기대 이상이다. 전작에서 맛보기로 짧게 등장한 올가미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원더우먼은 자신만의 액션 트레이드 마크를 획득한다. 다만 후반부 메인 빌런이 모습을 드러낸 뒤의 액션은 타셈 싱의 <신들의 전쟁>처럼 피상적인 화려함만을 그려낼 뿐 아쉽게 느껴진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전통적인 서사를 따라가는 이야기도 만족스럽다. 슈퍼히어로 장르 서사 자체의 고질적인 단점들이 따라붙지만, 140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성공에 가깝다. 이세계에서 인간 세계로 넘어온 원더우먼의 천진난만함이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가운데, 그가 가진 정의의 가치관과 각성 과정이 순차적으로 전개된다. 영웅과 그의 조력자가 이끄는 오합지졸 같은 팀이 승리하는 서사는 수많은 전쟁영화를 비롯해 반복된 이야기지만, 여성 캐릭터가 홍일점이 아닌 리더가 될 때의 새로움이 <원더우먼>에존재한다. 영화 속 대사들은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영화의 구심점이 여성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준다. 런던에 처음 도착한 원더우먼이 “싸워야 한다”라고 이야기하자 트레버의 비서인 에타(루시 데이비스)가 “참정권이요?”라고 묻는 부분 같은 디테일이 존재한다. 페미니스트였던 원더우먼의 원작자 윌리엄 몰턴 마스턴이 원작에 담았던 의도가 적극 반영된 결과물로 느껴진다. 잠자리와 관련된 트레버와의 대화에서 원더우먼은 “12권짜리 쾌락론을 읽었어”라며 “출산을 위해서는 남자가 필요하다지만 쾌락을 위해서는 아니라고 하더군”이라고 대사를 날린다. 넷플릭스 영화가 아닌 1억 2천만 달러 블록버스터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도 드디어 이런 대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통상적인 슈퍼 히어로 장르의 단점을 제외하면 <원더우먼>은 잘 만든 슈퍼히어로 영화이면서 동시에 그냥 잘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 <원더우먼>의 가장 큰 단점은 영화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비롯된다. 원더우먼을 연기한 갤 가돗이 강경한 시오니스트라는 것이다. 2014년 팔레스타인을 폭격해 민간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이스라엘 군의 행위를 응원하는 SNS 글을 올린 것이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고, 레바논에서는 <원더우먼>의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폭격을 옹호하는 갤 가돗이 원더우먼이 되어,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할 수는 없어”라는 대사를 읊고 있는 것을 보면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가 이스라엘 군에서 2년간 복무한 것은 의무라고 할 수 있지만, 비인간적인 행태를 옹호한 것은 현실의 논란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영화를 감상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물론 갤 가돗의 외모와 연기 등의 이미지는 원더우먼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비인간적 폭격을 감행하고 이에 대한 옹호 발언을 했으며 이에 대한 사과나 정정도 하지 않은 배우를 진정한 원더우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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