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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분의 러닝타임은 단순하고 직선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군함도>는일본인/앞잡이 조선인에게 속아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 섬 석탄 탄광에 강제 징용된 이강옥(황정민), 최칠성(소지섭), 오말년(이정현) 등을 비롯한 조선인들이 그곳에 억류된 독립운동가 윤형철(이경영)을구하러 온 광복군 박무영(송중기)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류승완 감독은 이 단순한 이야기를 온갖 스펙터클로 채워낸다. 거대한 군함을 연상시키는 하시마 섬의 전경을 훑고 개미굴 같은 탄광을 비집고 들어가는 카메라, 마이클 베이의 전쟁영화가 연상될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 시퀀스, 재난영화에 가까운 폭격 장면 등은 220억에 달하는 제작비의 용도를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스케일은 일제 강점기 희생자들의 고통을 그저 스펙터클로 소비하는데 그친다. 액션, 전쟁, 첩보 등 여러 장르영화의 요소를 끌어와 군함도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군함도를 단지 배경으로 소비하면서 단순 오락영화로 만들어내는 태도는 역사의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착취한다.



 영화의 첫 액션 시퀀스인 최칠성과 송종구의 목욕탕 격투에서 <군함도>의 액션 스타일이 드러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짝패> 등을 만들어온 류승완 감독이 가장 잘 만드는 액션 시퀀스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영화 속 액션은 서사 속에서 가지는 효과보다 스타일에 치중한다. 애초에 이강옥을 비롯해 최칠성, 오말년 등의 인물이 가진 서사가 빈약하고, 불필요한 플래시백(특히 위안부로 끌려갔었다는 오말년의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과 지루하게 긴 대사로만 인물을 쌓아 올리는 방식은 캐릭터 자체를 납작하게 만든다. 후반부 이강옥, 박무영 등의 입을 통해 나오는 ‘사이다’ 대사를 위해 캐릭터를 움직이게 한다. 강옥의 딸 소희(김수안)는 그저 이강옥을 행동하게 만드는 요소로만 등장하며, 위기를 손쉽게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캐릭터가 작동한다. 액션을 수행하는 캐릭터들이 이렇다 보니, 어떤 액션을 수행하더라도 그저 겉멋 든 스타일을 넣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처절함과 사이다성 대사를 뒤섞은 조연, 단역들의 대사들로 감정선을 보충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지겨워진다. 그렇기에 <군함도>에서 남은 것은 표면적인 액션의 스펙터클 뿐이며, 역사의 희생자를 다시 스크린에 소환해 스펙터클을 위해 다시 한번 소비하는 것은 보통의 역사관과 윤리관으로 포용하는 범위를 벗어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석양의 무법자>의 OST로 사용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The Ecstacy of Gold"가 흘러나오는 액션 하이라이트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같은 액션 활극 스타일의 전쟁영화를 만들고 싶은 자아와, 소재를 진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의식의 자아가 류승완의 머릿속에서 뒤섞여 만들어낸 괴상한 광경이 <군함도>라는 영화를 축약해서 보여준다.



 역시 류승완 감독인 만큼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활용 역시 끔찍한 수준이다. 감독은 아마도 오말년의 캐릭터를 <암살>의 안옥윤과 같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의 머리채를 잡으며 위협하는 최칠성의 성기를 움켜쥐며 대응하는 첫 등장이나, 장총을 들고 일본군을 쏘는 모습 몇 장면을 통해 이를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안옥윤과 같은 캐릭터는 단순히 멋져 보이는 몇 장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말년의 캐릭터는 영화 속 다른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빈약하고 지루한 설명만으로 캐릭터를 쌓아 올리려다 실패하고, 여기서 한술 더 떠 <귀향>의 위안소 부감숏만큼 끔찍한 장면들을 고통의 스펙터클로 전시한다. 캐릭터를 설명한답시고 넣은 불필요한 플래시백은 오히려 불쾌감만 남긴 채 캐릭터를 착취한다. 애초에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이다’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 덩어리인 셈이다. 소희의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그를 연기한 김수안의 연기는 공산품 같은 다른 배우들의 연기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나지만, 그뿐이다. 많은 연출자가 여성 캐릭터와 그를 보호하는 캐릭터를 가장 손쉽게 위기에 빠트리는 방법으로 성폭력을 동원하곤 하는데, <군함도> 역시 이러한 손쉬운 방법을수 차례 반복하는 게으름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군함도>는 좋은 배우들의 공산품 같은 연기와, 때깔은 좋을지언정 하나의 영화로써 매끄럽게 묶이지 못하는 각 시퀀스, 관객들의 흥미를 끌만한 소재 선택으로 조립된 한국 상업영화의 하한점을 보여준다. 그 흔한 국뽕영화나 신파영화만큼의 울림도 제공하지 못하는 상업영화에 상업적 가치가 존재할까? 감독의 개성마저 소거된 100억 원 단위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옥자>의 제작비가 한국 제작사에겐 부담이 되어 넷플릭스와 손잡았다는 봉준호의 선택과 투자를 받지 못해 <도끼>의 제작이 무산된 박찬욱의 모습이 허탈하게만 느껴진다.

*스포일러 포함


 <용서받지 못한 자>로 잊지 못할 데뷔를 한 윤종빈 감독이 <군도: 민란의 시대> 이후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90년대 북한 핵개발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업가로 위장한 안기부 공작원,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박석영(황정민)의 실화를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그가 안기부 공작원으로 스카우트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박석영은 안기부 실장 최학성(조진웅)의 명령에 따라 북한의 외화벌이를 책임지는 당의 간부 리명운(이성민)과 접촉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떠난다. 몇 개월 간의 노력 끝에 리명운과 접촉한 박석영은 광고 사업을 빌미로 북한 곳곳을 돌아다니려 한다. 그가 리명운, 그리고 인민군 장교인 정무택(주지훈)과 함께 사업을 벌이는 동안 1997년 대선이 다가온다. 박성영은 최학성과 여당 정치인들이 대선을 앞두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안기부의 새로운 명령의 따를지, 기존의 공작을 완수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최근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방학 시즌 텐트폴 영화로 떠오르고 있다. <공조>부터 <브이아이피>, <강철비>, 얼마 전 개봉한 <인랑>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떠오른다. 게다가 5월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남북한을 소재로 담은 영화들에 대한 관심 또한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 개봉한 <공작>은 90년대라는 멀지 않은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흑금성이라는 인물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적절한 소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업가로 위장하여 북한에서 남한 기업의 광고 촬영과 금강산 관광을 빌미로 북한에 들어가려다가 결국 대북 사업가가 되어버린 인물이라는 점은 흑금성의 이야기가 통일을 이야기하는 지금과 썩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닐까? 게다가 당시 여당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안기부와 자신이 수행하는 공작 사이에서 고민하는 박석영의 모습은 무엇을 청산하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현재 시점의 상황과도 썩 어울린다.



 이러한 과정에서 악수와 건배라는 제스처는 썩 적절하게 활용된다. 악수는 본래 서로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음을 알려주기 위한 행동이다. 이제는 의례적인 절차이지만 종종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서의 악수가 그렇다. <공작>의 인물들은 쉽게 악수를 건네지 않는다. 그들의 악수는 대부분 의미심장한 표정과 함께한다. 서로를 시험해 보는 순간, 드디어 신뢰를 쌓았을 때, 각자의 신념을 인정하고야 말 때 그들은 악수한다. 이러한 과정은 의심 없이 악수할 수 있을 때가 되어야 공존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건배 또한 그렇다. 박석영은 공작원이 되기 위해 날마다 술을 마셨지만, 흑금성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후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때문에 그는 건배를 하지 않는다. 대신 리명운에게, 심지어 김정일(기주봉)에게 술을 따라주기만 한다. 후반부에 이르러, 그는 리명운과 건배를 한다. 부모님까지 들먹여가며 술을 피하던 그가 건배를 하는 순간은, 각자의 신념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들어있는 건배다. 남북정상회담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의 악수 (직전의 순간) 또한 그렇다.



 다만 <공작>은 영화의 제작사인 사나이픽쳐스의 다른 영화들과 유사한 지점에서 좋아하기엔 어려운 작품이다. 듀나 작가는 <공작>을 보고 최근 한국영화 속 북한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남성성이 남아있는 오아시스” 같다고 이야기했다. 극도로 남성적인 한국영화가 남성성을 마음껏 발현할 새로운 공간인 북한을 찾아낸 것이다. 이것을 액션으로 드러낸 <공조>나 <강철비>, 여성혐오적 범죄로 드러낸 <브이아이피> 등은 이러한 공통점을 가진다. <공작>은 누군가 죽거나 부상당하는 액션이나 범죄 대신 대화라는 전략을 택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긴 하다. 허나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사업가를 연기하는 박석영이나, 공산주의 체제에 있지만 여러모로 (남성화된) 자본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리명운과 정무택의 모습에서 어떤 지겨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박석영과 리명운의 브로맨스로 흐르는 후반부는 한국영화의 어떤 고질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유사한 영화에 겹치기 캐스팅으로 자신들을 소비해버린 배우들의 비주얼에서 느껴지는 기시감도 이러한 지겨움에 한몫한다. 때문에 <공작>은 오랜만에 등장한 웰메이드 한국 상업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영화에 대해 어떠한 갈증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재확인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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