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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카즈오의 1974년 작품 <극사적 에로스>는 하라 카즈오 본인의 전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의 전처인 다케다 미유키는 어느 날 하라 카즈오에게 아기를 데리고 오키나와로 떠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 정말로 떠난다. 아직 미유키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카즈오는 미유키에 대한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다. <극사적 에로스>는 그렇게 하라 카즈오가 몇 차례 오키나와를 방문하면서 촬영된 작품이다. 아마도 이 작품이 이후 하라 카즈오가 만들게 된 작품들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극도로 사적인’ 이 다큐멘터리는 다케다 미유키와 하라 카즈오라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여성이 자신의 신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행동, 가부장적 가족이라는 기존 개념의 해체, 여성과 아이로 구성된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 등을 보여준다.



 다케다 미유키의 행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모습은 여성의 신체인 자신의 몸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선택들이다. 그가 도쿄를 떠나 오키나와로 향하는 모습부터, 다양한 성생활을 즐긴 이야기, 그로 인해 파생되는 남성들 간의 관계에서의 주도권, 오키나와에서 만난 여성들 간의 관계, 임신/출산/육아에 있어서도 자신을 포기하는 대신 둘 다를 취하려는 행동 등이 러닝타임 내내 이어진다. 하라 카즈오는 그저 미유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밖에 없다. 하라 카즈오와 그의 카메라가 망부석처럼 가만히 미유키를 담아낼 수밖에 없었달까? 대신 하라 카즈오는 미유키의 사적인 이야기를 담아내 가장 정치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극사적 에로스>는 다케다 미유키의 극히 사적이고 에로스적인 여정이기도 하지만,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속에서 배제된 육체들이 목소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정치극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 등장하는 미유키의 출산 장면은, 그것이 오로지 미유키 혼자 해낸 것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놀라우며 영화 속에서 가장 정치적이다.



 영화적 스타일은 <극사적 에로스> 직전의 작품이자 하라 카즈오의 데뷔작인 <굿바이 CP>와 유사하다. 흑백의 화면, 종종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마이크, 인터뷰 장면에서 인물의 입모양과 맞지 않는 보이스 등이 등장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미유키의 출산 장면에서 정점에 달한다. 영상과 따로 놀던 보이스는 더 이상 어긋나지 않고, 동시에 촬영자인 하라 카즈오와 마이크를 쥐고 있는 그의 동료의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출산 장면 중간에 하라 카즈오는 내레이션으로 “정작 출산 중인 미유키보다 자신이 더 긴장해 카메라 초점이 나간 줄도 모르고 촬영했다”라고 이야기한다. 카즈오는 중간중간 미유키에게 괜찮냐고 묻는 것 왜에 돌처럼 굳어져 촬영만 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 그러니까 기존의 체제에서 탈출한 여성의 신체가 겪는 극도로 여성적인 상황을 관음증적인 자세가 아닌 자기부정의 자세로 담아내는 하라 카즈오의 태도가 <극사적 에로스>라는 작품이 가능한 이유가 아닐까?

 석면 문제가 내게 가시화된 것은 중고등학교 때였다. 아파트 길 건너 구역의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철거되는 건물에 사용된 자제에서 나온 석면가루가 어린이집과 학교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 흩날리고 있다는 보도를 통해서였다. 때문에 재개발구역 인근 거주자들과 재개발을 주관하는 건설사 사이에 법정공방이 이어졌고, 본래 내가 졸업하기 전 입주가 시작됐어야 할 뉴타운 지역에는 대학교 새내기가 되고 난 이후에야 입주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라는 직관적인 제목을 접하고 나서 저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를 들어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약 6년의 기간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재개발 공사는 석면과 관련된 소송으로 멈춰있었고 어린 시절 친구들이 살던 골목길은 전시의 폐허처럼 변해 멈춰있었다. 하라 카즈오 감독의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의 피해자들이 8년 반 간의 투쟁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위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8년 반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기록한 215분의 기나긴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의 얼굴이다. 피해자의 얼굴. 그들의 가족과 유가족의 얼굴. 변호인단의 얼굴. 연대자의 얼굴. 영화를 찍는 감독의 얼굴.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를 보고 나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들의 얼굴이다. 그들의 얼굴은 그림으로 박제되어 스크린에 등장하기도 하고, 프리즈 프레임과 함께 사망했다는 정보가 제시되기도 하고, 장례식장의 영정과 창백한 시신으로 변한 얼굴로 등장하기도 한다. 원고 측 사망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마무리되는 영화는 그들의 얼굴을 관객의 뇌리 속에 각인시킨다. 석면으로 인한 각종 질병을 앓으며 점점 야위어가고, 코에 산소호흡기 튜브를 끼지 않으면 일상을 이어갈 수 없는 그 얼굴들은 국가가 은폐하려 했던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현장의 얼굴이다. 기나긴 소송의 과정을 담는 하라 카즈오의 카메라는 그들의 얼굴에서 분노, 체념, 인생, 위로, 연대, 승리, 기쁨, 진보를 읽어낸다. 그 얼굴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한반도의 석면 광산에서 일했던 사람의 얼굴도 담겨있다. 이러한 역사적 관계성과 얼마 전까지 한국의 재개발 구역을 비롯한 곳곳에서 벌어지던 석면 문제는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 단지 물 건너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점을 (적어도 한국 관객들에게는) 확실하게 어필한다. 



 이러한 측면만 바라본다면 어쩌면 단순한 투쟁에 대한 기록과 사법체계를 통한 승리의 서사만으로 영화가 구성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하라 카즈오의 카메라는 멈추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의 카메라와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인 것 같다. 영화는 단순히 투쟁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번 인다다큐페스티발에서의 상영에서는 제공되지 않았지만, 영화 속에 삽입된 휴식시간 이후의 분량은 이러한 투쟁과 운동이 지닌 방향성에 대한 확장과 그다음의 전진을 논한다. 대법원의 판결로 원고는 배상을 받았고 후생노동청 장관이 직접 센난을 방문해 사과하기도 했지만,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972년 이후에 노동을 시작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인정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1958년과 1971년 사이의 노동자만 배상 대상에 포함시키는 판결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석면 산업의 피해자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석면 공업지대 인근 지역의 거주자들, 수치에 포함되지 못한 피해자들 등의 문제도 남아있다. 게다가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 남긴 한반도의 석면광산과 산업, 이탈리아와 캐나다 등 해외 여러 국가의 석면문제 등은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시점에서는) 미해결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를 이야기하는 아오키 씨의 말대로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의 결과는 그 자체로 시작이다. 하라 카즈오의 카메라는 그 시발점을 마련하기 위한 투쟁의 방식과 이후 이어질 운동의 방향까지 다가간다. 215분의 기나긴 러닝타임을 지나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 당도한 지점은 또 다른 시발점이자 이를 지속하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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