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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이 MCU에 합류한 이후 소니에서 나온 첫 스파이더맨 캐릭터의 영화 <베놈>이 개봉했다. R등급에서 PG-13으로 등급이 조정됐다느니, 30분가량의 삭제 장면이 존재한다느니 여러 논란이 있었기에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던 작품이다. 영화는 <베놈>이라는 캐릭터의 기원을 다룬다.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에디 브룩(톰 하디)은 변호사인 애인 애니(미셸 윌리엄스)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던 중 거대 제약회사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창립자인 칼튼 드레이크(리즈 아메드)의 비인간적인 행보를 폭로하려다 일자리를 잃게 되고, 덩달아 애니 또한 해고당해 둘은 결별하게 된다. 6개월 뒤 다시 칼튼의 비밀을 폭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에디는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실험실에 잠입했다 외계에서 온 물질 심비오트에 숙주가 된다. ‘베놈’이라는 이름을 가진 심비오트는 그에게 공생을 제안하고, 둘은 함께 베놈이 되어 심비오트를 되찾으려는 칼튼의 계획에 맞서게 된다.



 <베놈>은 아쉽게도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다. R등급의 화끈한 액션과 잔인한 면모를 기대했을 관객에겐 너무 아쉬울 것이고, MCU의 세련됨을 생각한 관객에겐 너무 투박한 작품일 것이다. 그도 그럴게, 이번 작품은 의외로 코미디적인 요소가 많다. 연출자인 루벤 플레셔의 영화 데뷔작이 R등급 좀비 코미디인 <좀비랜드>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톤은 기대와는 다르지만 의외의 재미를 준다. 에디 브룩이 베놈과 결합하기 전까지의 40여분이 조금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둘이 한 몸에서 공생하기 시작한 이후에 펼쳐지는 다양한 액션과 적절한 코미디는 정말 의외의 즐거움이다. 에디와 베놈의 관계는 로맨틱 코미디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인데, 관객이 기대하던 톤은 아닐지라도 (최근 코믹스 속 묘사는 이것에 가깝다고 한다) 당장의 즐거움을 주긴 한다. 에디 브룩-베놈-칼튼 드레이크의 <디스 민즈 워>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놀리는 것 같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충분히 동의할만한 내용이며 꽤나 재미있기까지 하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이나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아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같은 분위기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액션 시퀀스들은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준다. 에디 브룩과 베놈이 공생을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액션들은 근접 격투부터 카체이싱, 촉수를 이용한 활공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10여분 간의 카체이싱 액션에 주목할만하다. 이미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모습 만으로도 이번 영화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장면이었다. 공중에 뜬 베놈이 촉수를 사용해 다시 오토바이에 탑승하는 장면, 오토바이로 달리는 중에 촉수로 적의 차를 충돌시키는 장면 등은 꽤나 완성도 높은 액션을 보여준다. 특히 카체이싱 장면은 샌프란시스코라는 배경 때문에 <앤트맨과 와스프>의 카체이싱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고, 80~90년대 액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투박함이 베놈이라는 캐릭터 혹은 톰 하디라는 배우와 썩 잘 어울린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CG 액션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 대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기에 큰 단점이라 생각되진 않는다.



 <베놈>의 촬영 현장에서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가 목격됐다는 소식 때문에 MCU와 이번 영화가 연계된다는 루머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스파이더맨’ 속 인물이나 회사의 이름 등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인 세계관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MCU보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때의 세계관을 계승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2편으로 마무리된 게 아쉽기만 할 뿐이다. 로튼토마토 등에서의 끔찍한 평가와는 다르게, <베놈>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정도의 재미는 보장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어느 쪽도 실현될 수 어렵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쿠키 영상에서의 의외의 등장인물(그리고 의외의 배우)은 충분히 속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스포일러 포함


 3개의 시간축이 영화를 구성한다. 덩케르크 해변에서 병사들이 보낸 일주일, 영국 본토에서 징발된 배를 끌고 덩케르크로 향한 민간인 도슨(마크 라이런스)의 하루, 덩케르크로 향한 전투기 조종사 피리어(톰 하디)의 한 시간이 교차 편집되며 <덩케르크>는 전개된다. 이렇다 할 주인공 없이, 심지어 영화의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조차 배제된 채 진행되는 영화는 70mm 아이맥스의 1.43:1 화면비를 적극 활용해 관객을 전장의 한복판으로 이동시킨다. 3개의 시간축은 교차편집되며 동시간대에 진행되는 것처럼 스크린에 옮겨진다. 각각 진행되던 시간들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기습과 폭발, 시체와 파편이 난무하는 전장 속에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3개의 축으로 직조해 쌓아 올리는 솜씨는 장인의 위치에 오른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덩케르크>의 영상은 아이맥스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보이는 광활환 바다와 창공, 폐쇄되어 물이 차오르는 전투기와 선실을 오간다. 단순히 많은 정보량을 담기 위해 아이맥스를 사용했던 다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용법을 선보인다. 아이맥스의, 특히 용산 CGV의 1.43:1 비율의 거대한 스크린과 70mm 아이맥스의 질감을 구현할 수 있는 레이저 아이맥스 영사기의 압도되는 사이즈로 담아낸 클로즈업은 광활한 해변과 하늘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그 폐쇄성이 강조된다. 여기에 캐릭터성이 없는인물들은 마치 관객의 아바타가 된 듯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한복판을 누빈다. 막대한 정보량이 영사되는 덩케르크의 전경 속 무력한 개인과 폐쇄된 공간 안에서 죽음을 한 걸음 앞둔 클로즈업이 교차되어 등장하는 순간, 생사의 경계에 선 병사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무력감, 절망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때문에 영화는 감정이입할 캐릭터 없이도(다시 말하지만, <덩케르크>에는 ‘캐릭터’가 배제되어 있다), 이렇다 할 서사 없이도 놀란이 그들에게 품는 연민이 전해진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담은 영화는 아니지만, 그중에 가장 영웅적인 모습을 보이는 피리어가 해변에 불시착한 전투기를 불태우고 마침내 마스크를 벗어 맨얼굴을 보여주고 독일군에 붙잡힌다. 불타는 비행기와 덩케르크에서 탈출한 병사가 기차에 앉아 신문에 실린 처칠의 연설을 읽는 모습과 교차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영국군의 상징적인 전투기 스핏파이어를 불태우는 모습과 집으로 돌아온 어린 병사의 표정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병사들의 목숨을 지키는 철수 또한 위대한 승리라는 처칠의 연설을 106분의 영화로 담아낸다.



 <덩케르크>는 분명 뛰어난 영화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위악적인 이미지들과 <인터스텔라>의 질질 끄는 감정선의 신파도, 장황하게 늘어놓는 설명조의 대사도 없다. 전쟁영화라면 으레 있을법한 군사작전도, 전장에흩뿌려지는 피와 나뒹구는 사지도, 관객이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영웅도 없다. 아이맥스라는 기술을 더하고, 덩케르크 철수를 보여주는데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과감히 빼버린 놀란의 선택은 탁월하게 위대한 철수를 담아낸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파편화된 화면비는 아이맥스의 광활한 스크린에서 영화를 감상하는데 큰 방해가 된다. 가령 도슨이 자신의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향하는 초반부, 영화는 아이맥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1.43:1의 화면비로 진행된다. 그러던 중 1.9:1 화면비로 전환되는 순간이 등장한다. 아직 도슨의 배에서 진행되는 시퀀스임에도 화면비가 전환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관람에 큰 방해가 된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에서 전투 도중 시시각각 변하는 화면비는 멀미가 날 정도였다) 게다가 다른 기종의 카메라로 촬영한 두 화면비는 영상의 질감마저 다르다. 1억 5천만 달러 규모의 블록버스터가 왜 색보정을 통해 영상의 질감을 맞추지 않았는지는 의문이지만 (필름순혈주의자 놀란의 성격상 각 카메라의 필름 질감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놀란의 의도대로 아이맥스 스크린을 찾았을 때 관객의 눈에 거슬리는 화면비 전환은 종종 영화에 대한 집중을 깨트린다.


 

 <덩케르크>가 아이맥스와 관련된 이슈는 화면비 전환만이 아니다. 아이맥스 스크린이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 <덩케르크>는 2.20:1(이 애매한 화면비의 등장 배경은 모르겠다)의 화면비로 상영된다. 이렇게 상영될 경우, 1.43:1의 화면비에서 볼 수 있는 화면의 절반 정보밖에 안 되는 화면만을 보게 된다. 때문에 광활한 바다와 창공, 폐쇄된 선실과 전투기의 대비는 일반관의 스크린으로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화면비 전환으로 관람을 방해받는 일은 없겠지만, 아이맥스 상영을 기본값으로 두고 연출된 <덩케르크>는 일반관에서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작품으로 남게 된다. <덩케르크>가 개봉하기 전부터 용산 CGV의 아이맥스관이 <덩케르크>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상영관으로 홍보되었다. 1.43:1 스크린을 보유한 아이맥스 관은 용산 CGV와 천호 CGV 뿐이고, 그마저도 레이저 아이맥스 영사기를 보유해 70mm 필름으로 촬영된 <덩케르크>를 온전히 상영할 수 있는 곳은 용산 CGV가 유일하다. 아이맥스 관의 높은 가격과 한정된 좌석, 시간표는 절대다수의 관객이 <덩케르크>를 온전히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일반관에서 <덩케르크>를관람한 관객과 아이맥스 관에서 영화를 관람한 관객의 평이 갈리는 것도 이러한 차이에서 기인하다. 이것은‘아이맥스용 영화’로 홍보되던 기존의 다른 영화들, 가령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라이프 오브 파이>, <그래비티>등의 영화를 아이맥스로 상영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가 된다. 기존의 영화들은 아이맥스로 촬영됐더라도 일반관에서 보는 것과 아이맥스 관에서의 감상 자체가 큰 차이로 다가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화가 가진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있어 아이맥스는 +a의 역할을 해왔지, 영화의 형식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기존의 아이맥스 영화들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보는 것의 차이 정도였다면 <덩케르크>는 영화 자체를 온전히 보았는지 그러지 못하였는지의 문제이다. 그러나 <덩케르크>의 많은 부분, 특히 조종간을 잡은 피리어의 시선과 그의 얼굴을 잡는 클로즈업, 창공을 보여주는 풀숏이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부분 등을 1.43:1의 화면비가 아닌 2.20:1의 크롭 된 화면으로 봤다면 지금과 같은 감상을 받았을 수 있을까?



 최근 놀란은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넷플릭스는 극장 영화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기괴한 혐오감을 갖고 있다. 그들은 스트리밍과 극장 상영을 동시에 하는 생각 없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극장 상영에 견딜 수 없는 모델이다. 그들은 거대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라고 넷플릭스를 비판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놀란의 새 영화 <덩케르크>를 온전히 볼 기회를 가질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이맥스 상영관이 있는 지역에 살며, 고가의 티켓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치열한 티켓팅까지 통과해야 <덩케르크>를 온전히 볼 수 있다면, 일반관에서 <덩케르크>를 관람한 관객은 놀란의 연출적 의도를 정당한 표값을 내고서도 관람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덩케르크>는분명 아이맥스라는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기존과는 다른 용법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수작이지만, 그 의도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관객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은 <덩케르크> 이후에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젯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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