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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즈> 등을 연출했던 벤 휘틀리가 액션 영화를 연출했다. 총기 거래를 진행하는 두 갱단이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는 단순한 플롯을 가진 영화 <프리파이어>는 낡은 창고라는 단 하나의 공간과 13명의 등장인물(목소리까지 14명)만이 등장한 간결한 작품이다. 크리스(킬리언 머피), 프랭크(마이클 스마일리), 버니(엔조 실렌티), 스티브(샘 라일리)는 총을 사러 왔고, 버논(샬토 코플리)과 마틴(바부 치세가), 해리(잭 레이너), 고든(노아 테일러)은 총을 팔려하며, 오드(아미 해머)와 저스틴(브리 라슨)은 두 집단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중개인이다. 이들이 낡은 창고에 모여 총기 거래를 진행하던 와중에, 거래 전날 술과 약에 취한 스티브가 해리의 사촌을 공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두 집단 사이에 총알이 오가던 중 어디선가 나타난 호위(패트릭 버긴)와 지미(마크 모네로)가 라이플로 그들을 저격하려 한다.



 <프리파이어>의 기본 세팅은 단순하다. 편 가르기는 단순하고, 총격전의 시발점이 되는 스티브와 해리의 갈등도 깔끔하게 등장하고, 총격전이 시작되자마자 모든 인물의 팔다리에 총알이 한두 방씩 박혀 모두가 땅을 기어 다니게 된다. 크리스, 프랭크, 스티브, 저스틴, 오드, 버논, 해리 등주요 캐릭터들의 성격 역시 총격전 이전의 장면들에서 확실하게 제시된다. 총격전이 시작하기 전까지 10~15분의 준비시간이 지나면, 남은 러닝타임 동안 질질 끄는 시간 없이 총알과 욕설과 대사가 난무하는 난장판이 펼쳐진다. <하이라이즈>의 과시적인, 혹은 늘어지는 디졸브 몽타주 플래시백 같은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상 리얼타임에 가깝게 진행되는 영화는 그저 난장판을 즐길 수 있도록 낡은 창고로 관객을 안내한다. <프리파이어>는 ‘재미’라는 키워드에 아주 충실한 장르영화다. 또한 영화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요소들, 가령 전화라던가 총격전 이후에 창고를 찾은 리어리(톰 데이비스) 등의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가면서 끊임없이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때문에 각자의 이유로 악인이며 서로에게 욕설을 담은 입과 총구를 겨누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싸움과 그 결과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아쉬운 점이라면 여성 캐릭터인 저스틴과 흑인 캐릭터인 마틴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모두가 백인 남성인 <프리파이어>에서 두 인물만이 일종의 소수자성을 띠고 있다. 창고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카메라의 프레임 속에 등장한다. 끊임없이 욕설을 포함한 대사를 뱉어대는 목소리들은 프레임 밖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계속해서 드러낸다. 영화 속 백인 남성들은 잊을만하면 프레임 속으로 들어와 아직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린다. 그러나 저스틴과 마틴은 어느샌가 영화에서 사라진다. 저스틴과의 데이트를 약속한 크리스는 저스틴에게 계속해서 창고 밖으로 도망칠 것을 요구하고, 그녀가 어느 정도 현장에서 벗어난 순간 카메라는 자신의 프레임 속에 그녀를 담지 않는다. 마틴은 총격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에 총격을 당한다. 그는 계속 그렇게 쓰러져 있다. 사실 아직 죽지 않았다며 일어나 상황을 반전시키는 듯했으나 다시 영화에서 퇴장당하고 만다. 저스틴은 영화의 후반부가 되어서야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인물들은 끊임없이 영화 속에 존재했다면, 저스틴과 마틴은 영화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만 프레임 속에 소환된다. 저스틴을 데이트 대상 그 이상도 이하로도 대하지 않는 크리스와 버논의 태도와 더불어, 여성과 흑인 캐릭터를 사용하는 벤 휘틀리의 방식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프리파이어>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90분의 짧은 러닝타임은 그것보다 훨씬 짧게 느껴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흘러간다. 두 차례 흘러나오는 존 덴버의 ‘Annie’s Song’은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시대를 알려줌과 동시에 쓸데없는 센티멘탈함을 집어넣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여성과 흑인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다. 상영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최근의 상업영화들이 이렇다 할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와중에 극악의 상영 환경에 놓인 <프리파이어>는상영관이 적은 게 아쉬운 즐거움을 제공한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자넷(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이 문을 열고 분노에 찬 표정으로 문 앞에 서있는 상대를 바라본다. 무언가 소리를 지르더니 문 뒤에 가려진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겨눈다. 영화는 여기서 몇 시간 전으로 되돌아간다. 영국 보건복지부 예비장관으로 임명된 자넷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자넷은 친구들을 불러 홈파티를 열 계획이다. 그의 헌신적인 남편 빌(티모시 스폴), 자넷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독설가인 에이프릴(패트리샤 클락슨)과 뉴에이지에 빠져있는 그의 독일인 남편 고트프리드(브루노 간츠), 빌의 오랜 친구이자 교수인 레즈비언 마사(체리 존스)와 세 쌍둥이를 임신한 그의 파트너 지니(에밀리 모티머), 그리고 자넷 부부의 친구인 마리온의 남편이자 은행가인 톰(킬리언 머피)이 차례로 도착한다. 파티를 시작하려는 순간 빌이 발표할 것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폭로를 시작으로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각각의 폭로가 이어지며 파티는 아수라장이 된다.



 로만 폴란스키의 <대학살의 신>을 연상시키는 <더 파티>는 영국의 여성 감독 샐리 포터의 신작이다. 브렉시트를 통과한 영국의 현재 상황과 그곳의 정치, 페미니즘과 뉴에이지 사상 등 온갖 재료를 뒤섞어 만들어낸 질펀한 블랙코미디인 <더 파티>는 71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밀도 있게 신랄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상류층 리버럴들의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를 벗겨내고 이를 스크린에 전시하는 블랙코미디 영화는 많지만, <더 파티>만큼 짧고 굵은 영화는 흔치 않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인물 사이의 관계가 코믹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비판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선적인 모습만을 드러냈던 인물들의 모습이 까발려지는 장면에서 묘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7명의 캐릭터가 끊임없이 대사를 뱉어대고 카메라는 계속해서 그들의 뒤를 쫓아간다. 대사를 탁구공처럼 숨 가쁘게 주고받는 와중에 톰이 들고 온 권총은 총알의 행방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를 궁금하게 만들며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71분의 짧은 러닝타임임에도 순식간에 7명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솜씨가 놀라운데, 여러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단연 에이프릴이다. 독설가 캐릭터로 등장하는 에이프릴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통렬한 유머로 다가온다. 몇몇 장면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캐릭터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놀라울 지경이랄까? 동시에 그의 독설이 밉지만은 않게 되는 지점까지 만들어낸다. 위선으로 넘치는 인물들의 관계에서, 유일하게 (에이프릴의 표현을 직접 인용하자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에이프릴과 고트프리드뿐이기도 하다. 가장 냉소적인 인물이 가장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니, 감독의 냉소가 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분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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