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애봇'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데미언 셔젤의 네 번째 장편 <퍼스트 맨>이 개봉했다. 앞선 영화들은 모두 재즈를 기반으로 한 음악영화였지만, <퍼스트 맨>은 닐 암스트롱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전기영화에 가깝다. 영화는 제임스 R. 한센의 책 『퍼스트 맨: 닐 암스트롱의 일생』을 바탕으로 한다. 1961년, 달착륙을 위한 실험인 제미니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1968년 달착륙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다.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와 같은 우주 배경의 하드 SF들과는 전혀 다른 결의, 우주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기보다는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이라는 개인의 심리를 담아내는데 주력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X-15을 타고 대기권 밖으로 나가보는 실험을 하는 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35mm 필름의 거친 질감(아이맥스로 관람할 시 이러한 질감이 극대화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정신없이 이어지고 흔들리는 시점 숏과 기체 내부나 닐의 얼굴을 잡는 클로즈업 숏들은 관객에게 일종의 체험을 제공하려 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닐 암스트롱과 관객을 동기화시키려는 것이다. 닐이 훈련을 받거나 비행을 하는 장면들 모두가 이런 방식으로 촬영되어 관객은 손쉽게 닐의 입장에 몰입할 수 있다. 때문에 닐이 아닌 영화의 등장인물들, 가령 닐의 아내인 재닛(클레어 포이)과 둘의 자식들, 에드(제이슨 클락), 데이브(크리스토퍼 애봇), 엘리엇(패트릭 후짓) 등의 주변 인물들은 닐의 심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한다. 그나마 재닛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달 착륙 장면 직전부터 사라져 버린다. 달 착륙 장면에서의 플래시백은 닐의 모든 주변 인물들을 병으로 죽은 딸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한 거대 프로젝트의 수단으로 환원시킨다. <라라랜드>의 8mm 홈비디오 플래시백에 이은 16mm 홈비디오 플래시백(심지어 아이맥스 비율의 시퀀스에서 등장한다)은 그 투명한 의도 때문에 도리어 거부감이 든다.



 <퍼스트 맨>은 분명 닐 암스트롱이라는 한 사람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주변 인물 모두를 수단화시키는 것은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고독감이라는 감정이 원래 홀로 있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이라지만, <퍼스트 맨>의 묘사는 닐 암스트롱이 스스로 고독 안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결과적으로 가족을 비롯한 닐의 주변 인물, 영화 속에서 짧게 등장하는 냉전시대와 베트남 전쟁이라는 시대적 맥락 등은 영화 안에서 대부분 배제된다. 대부분의 맥락은 닐에게 중압감을 더하는 방향으로 소비되고, 닐의 행적에서 이런저런 맥락들을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퍼스트 맨>은 닐이 지녔을 중압감과 고독감을 알아달라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며, 로켓 발사 때 우주비행사가 느끼는 감각을 충실히 재현한 것 외에 뚜렷한 성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도리어 닐의 심리보다 재닛의 상황과 감정, 희생에 더욱 공감하게 될 지경이다. <위플래시>와 <라라랜드>에서 보여준 응집력이나 능수능란함을 <퍼스트 맨>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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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이것에 걸린 사람들은 피를 토하고 피부에 발진이 일어나며 며칠 만에 사망한다. <잇 컴스 앳 나잇>은 바이러스가 퍼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폴(조엘 에저튼)과 아내인 사라(카르멘 에조고), 아들인 트래비스(캘빈 해리슨 주니어)가 할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있다. 바이러스 증상이 드러난 그를 죽이고 불태운 뒤 땅에 묻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물과 식량을 아껴가며 지내던 어느 날, 누군가 갑자기 문을 두드린다. 가족을 위해 물과 식량을 찾던 윌(크리스토퍼 애봇)이 폴의 집을 빈 집으로 착각해 침입하려 한 것. 폴은 윌을 잡아 두고 대화를 통해 그가 자신의 가족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윌에게 어느 정도의 식량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폴은 윌의 가족과 집을 공유하기로 하고, 그의 아내인 킴(라일리 코프)과 어린 아들이 폴의 집에 도착한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생존해간다. 그러던 중 숲 속으로 달려가 버렸던 트래비스의 개 스탠리가 야밤 중에 돌아오고, 그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잇 컴스 앳 나잇>은 표면적으로는 바이러스라는 재난의 상황과 그 안에 놓인 인간들 사이의 심리를 그린 재난 공포 영화로 보인다. 폴이 장인어른을 쏴 죽이는 오프닝 시퀀스와 밤중에 윌이 집으로 침입을 시도하는 장면 등은 전형적인 장르적 공포 효과를 선보인다. 트래비스의 꿈을 통해 끊임없이 긴장감을 불어넣고 불안감의 분위기를 깔아 두는 방식 또한 평범하지만 효과적이다. <잇 컴스 앳 나잇>이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는 것은 윌의 가족이 폴의 집으로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두 가족이 한 집에서 일상을 만들어가고 교류하는 장면들은 굉장히 화목해 보인다. 윌과 킴은 오랜만에 목욕을 즐기고, 트래비스는 윌에게 장작 패는 법을 배우고, 사라는 킴에게 집을 정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함께 밥을 먹고 사냥과 채집에 나서며, 이런저런 집안일을 함께 해나가며 작은 농담을 주고받는 몽타주는 아름답도록 행복해 보인다. 윌의 가족이 어떤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하며 그들의 방을 몰래 들여다보던 트래비스는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웃는다. 호러 장르에서 만나기 힘든 아름다운 몽타주는 어렵사리 쌓아 올려진 화목함을 담아낸다.



 이러한 화목함, 행복은 폴의 가족과 윌의 가족이 서로 의심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아 두어야 가능하다.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서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폴은 끊임없이 트래비스에게, 사라에게 우리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완전히 믿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기엔 폴과 윌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한 꺼풀 벗겨 보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의심이 드러난다. 앞서 등장한 아름다운 몽타주는 가식으로 의심을 가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가능한 화목함이다. 트래비스의 악몽으로 제시되는 불길함은 그들의 가식 밑에 지울 수 없는 의심이 깔려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드러낸다. 스탠리의 귀환과 함께 표면 위로 떠오르는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은 최소한의 가식마저 차릴 수 없게 인물들을 몰아간다. 그들에게 표면적인 선의를 베풀 여유가 사라진다. 영화 내내 뿌려진 사람들의 의심이라는 씨앗 표피를 뚫고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의 결말은 우리가 표면적인 가식으로 서로에 대한 의심을 감출 최소한의 여유도 없을 때의 사건이다.



 <잇 컴스 앳 나잇>이 담아내는 파국은 어딘가 현실을 닮았다. 최소한의 여유를 가졌을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화목함과 여유를 잃어버렸을 때의 파국은 현실에서 범람하는 혐오범죄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삶에서 여유가 제거될수록 상대방이 나의 안정을 박살내고야 말 것이라는 의심과 불안함은 커져만 간다. 인종적, 젠더적 요소가 갈등의 요소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폴의 가족과 윌의 가족 두 집단이 충돌하는 이야기는 도리어 현실의 혐오범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잇 컴스앳 나잇>이 담아내는 공포는 어떤 질병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아포칼립스적 상상력이 아니다. 비록 그 표면이 가식일지라도, 그 속에 심어진 의심을 가리는 가식을 가질 여유도 잃어버린 사람들의 충돌에서 오는 공포의 상상력을 장르적 상상력과 결합한 작품이다. 때문에 <잇 컴스 앳 나잇>이 담아내는 공포는 굉장히 깊게, 시의성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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