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퍼스'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줄리 앤드류스에게 오스카를 안겨준 작품이자, 60년대 뮤지컬 영화, 디즈니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작품인 <메리 포핀스>의 속편이 55년 만에 개봉했다. 엄밀히 말하면 전작의 플롯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리메이크의 방법을 택했지만, 이야기적으로는 전작에서 25년이 흐른 시점인 1935년 경제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어느덧 어른이 된 마이클(벤 휘쇼)과 제인(에밀리 모티머). 마이클은 결혼하여 애나벨(픽시 데이비스), 존(나다니엘 살레), 조지(조엘 도슨)의 세 남매를 두고 있지만, 1년 전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상태이다. 어느 날 아버지 때부터 살고 있던 집에 은행장 윌킨스(콜린 퍼스)가 발행한 압류 통지서가 붙게 되고, 마이클은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대공황 시기에 일찍 철이 든 애나벨과 존은 가정부 에린(줄리 월터스)과 마이클을 도와 가사를 돕지만, 집을 압류당할 위기에 처한 마이클은 전전긍긍한다. 그러던 중 메리 포핀스(에밀리 블런트)가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제안을 한다. 메리 포핀스와 세 남매는 가로등 점등원인 잭(린-마누엘 미란다)과 함께 톱시(메릴 스트립) 등을 만나는 모험을 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영화는 전작의 플롯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해고-집의 압류의 위기를 겪는 가부장 앞에 아이들을 돌봐 줄 마법의 유모가 나타나고, 아이들은 그림 속(이번엔 도자기의 그림 속)에서 환상적인 모험을 하고, 은행에 가게 됐다가 아버지를 해고의 위험에 빠트리고, 메리 포핀스와 아이들의 여정에 함께하는 의문의 남자가 펼치는 뮤지컬 시퀀스가 이어지며, 결국 가족의 위기가 극복되며 모두가 함께하는 뮤지컬 시퀀스로 마무리되고 메리 포핀스는 다시 떠난다. <애니>, <시카고>, <나인> 등 뮤지컬 영화로 이름을 알린 롭 마샬 감독이 <숲속으로>에 이어 두 번째로 디즈니와 협업한 작품인 만큼, 그의 전공인 뮤지컬과 디즈니의 가족적인 분위기가 결합된 작품이다. 서프러제트였던 전작의 어머니 캐릭터를 노조 활동가인 제인이 이어받는다던가, 1차 대전 직전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영국의 제국주의를 슬그머니 드러냈던 전작의 몇몇 요소가 경제대공황 시대로 옮기면서 누그러지는 등 2018년에 제작된 영화다운 변화가 눈에 띈다. 



 특히 전작에 비해 발전된 기술력을 십분 활용한 뮤지컬 시퀀스들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도자기 위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전작에선 단순히 그림 속으로 들어간 장면이 <스페이스 잼>이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와 같은 실사와 셀 애니메이션의 결합으로 완성되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기존의 방식에 더욱 많은 기술적 첨가가 들어간다. CG를 활용하여 도자기, 팝업북, 애니메이션, 실사의 질감을 뒤섞어버리는 시각적 황홀경을 보여준다. 종종 너무 화려하기에 피로해지기도 하지만, 전작의 애니메이션 시퀀스가 지금의 시각으로는 심심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도리어 후반부 등장하는 잭과 점등원들의 뮤지컬 시퀀스는 전작의 굴뚝 청소부들의 뮤지컬 시퀀스에 비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작이 몽타주와 트릭을 가미하여 시네마틱한 화려함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의 점등원 시퀀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고스란히 촬영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전작의 장점만을 골라, 2018년에 할 수 있는 것들로 훌륭하게 만들어낸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도자기 그림 시퀀스는 물론, CG를 통해 구현된 목욕 시퀀스 등은 뮤지컬 황금기 시기의 영화들이 지닌 화려함을 현재에 걸맞게 다시 구현한다. 여전히 소년성을 지닌 벤 휘쇼가 연기하는 유약한 가부장의 모습과 경제대공황 시기라는 배경은 브렉시트에 직면한 영국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톱시가 등장하는 시퀀스는 배우의 재능이 만들어낸 흥겨움으로 가득한 장면이다. 무엇보다 메리 포핀스를 연기한 에밀리 블런트는 줄리 앤드류스의 오리지널에 (능가하진 못하더라도) 걸맞은 모습을 보여준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라는 제목처럼, 메리 포핀스의 귀환 만으로로 이 작품은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킹스맨이 돌아왔다. 돌아오지 말지 그랬어…… <킹스맨: 골든 서클>은 박수 칠 때 떠나지 못해 탄생한 실패작이다. 해리(콜린 퍼스)가 죽고, 에그시(테런 에저튼)이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으로부터 세상을 구한 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킹스맨 양복점에서 일하는 에그시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킹스맨 시험에서 탈락한 찰리(에드워드 홀크로프트)의 공격을 받는다. 찰리의 공겨과 함께 킹스맨의 본부와 요원들의 거처가 미사일 공습을 당하고, 새로운 아서(마이클 갬본)와 록시(소피 쿡슨)을비롯한 킹스맨 멤버 전원이 사망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멀린(마크 스트롱)과 에그시는 ‘최후의 날’ 프로토콜을 통해 미국의 사설 정보기관인 스테이트맨의 존재를 알게 된다. 켄터키로 넘어간 그들은 테킬라(채닝 테이텀), 진저에일(할 베리), 샴페인(제프 브리지스), 위스키(페드로 파스칼) 등의 코드네임을 가진 요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포피(줄리언 무어)가 이끄는 거대 마약조직인 골든 서클이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스테이트맨의 도움을 받아 생존했지만 기억을 잃었던 해리는 에그시의 도움으로 기억을 회복한다. 에그시와 해리, 멀린은 포피의 골든 서클에 맞선 전투를 준비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전작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쌓은 세계관의 논리는 붕괴된다. 전작은 전세계를 겨냥한 할리우드 상업영화가 지켜야 할 윤리와 그것을 넘었을 때의 카타르시스의 경계를 넘나들며 재미를 주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번 속편은 전작에서 가장 강력하게 비판받았던 마지막 장면(성 안에 갇힌 공주를 구하는 서사에 공주를 성적 대상화하는 대사와 몰래카메라를 연상시키는 앵글을 넣은 것)을 영화의 테마로 삼으려는 것 같다. 관객들이 전작에서 열광했던 부분(가령 신체의 결손을 인상 깊은 무기로 보강한 가젤의 캐릭터나 깔끔하고 화려한 액션, 계층을 넘으며 드러나는 온갖 서브컬처를 동원한 유머 등)은 퇴보하고, 불쾌함을 유발하는 장면들만이 강화되었다. 가령 이미 SNS상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장면-타깃 여성의 성기에 추적장치를 심는 장면의 설정과 묘사-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CG를 동원해가며 여성의 몸을 훑고 성기 내부에 들어간 추적장치를 굳이 카메라가 따라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해당 장면 직전에 나오는 에그시와 틸디 공주(한나 알스트룀, 전편 마지막 장면에 나온 그 공주가 조신한 영국 가정주부가 되어버렸다)의 통화 장면은 ‘대의를 위해서 참아주는/희생하는 여성상이길 간절히 강구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전편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였던 록시를 퇴장시키는 장면의 태도에서 시작해 메튜 본 감독의 머릿속에서만 주체적인 여성상들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영화 속 여성 캐릭터 묘사는 마이클 베이의 대상화된 여성들보다 끔찍하게 다루어진다. 동시에 인종차별적 코드 역시 영화 속에 만연하다. 포피가 동남아의 정글에서 숨어 지낸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시아계 인간은 영화 속에서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으며, 사진으로만 잠시 등장하는 포피의 수하 왕팅펑은 WTF(What The Fuck)을 동양인 이름으로 장난질한 작명이다. 그리고 그 역시 사진으로만 잠시 등장할 뿐 영화 속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메튜 본과 각본가의 머리속에선 여성은 대상화되고 아시아인은 실존하지 않는 놀림거리일 뿐이다.



 영화 속 세계관의 논리가 붕괴되는 지점들은 <킹스맨: 골든 서클>을 모든 의미에서 재미없고 비참한 장면으로 만든다. 가이아 이론까지 끌어오며 인종청소를 이야기하던 발렌타인에 비해 자본주의와 인정 욕구에 목매는 포피의 동기는 퇴행적이고 지루하며, 영국 신사의 일상적인 아이템들을 007스러운 무기들로 탈바꿈시킨 재기발랄함은 일상적으로 휴대하지 않는 아이템(야구 방방이나 야구공 등) 들을 미국적이라는 이유로 욱여넣는 (심지어 기능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한다) 설정들은 관객이 열광했던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낸 뒤 배반한다. 에그시를 연기한 테런 에저튼의 어색한 양복 입은 모습은 워킹클래스의 불량청소년이 하이클래스의 신사로 거듭나는 전작에는 어울렸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첫 등장부터 풍겨오는 어색함이 영화와 전혀 어울리지 못한다. 미국 캔터키와 동남아의 정글에서도 바뀌지 않는 의상은 억지로 킹스맨의 정체성을 밀어붙이려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영화의 액션마저 퇴보했다. 교회에서의 롱테이크 난장 액션에 쾌감을 느꼈던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의 액션에서 크나큰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킹스맨 택시에서의 에그시와 찰리의 액션은 호들갑스러우면서도 지루하다. CG를 동원한 카메라 워킹은 불필요하게 과시적이고, 음악의 활용은 뻔하다 못해 지루하며(영화 전체의 음악 사용이 그렇다), 액션의 리듬감 자체가 파괴되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오프닝 시퀀스만의 문제가 아닌 영화 속 모든 액션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엘 마리아치> 등 레퍼런스가 확실한 액션 시퀀스들은 건조하게 다운그레이드 된 동작들을 반복한다. 특히 교회 난장 액션의 재미를 재현하려고 한 마지막 액션 시퀀스는 불필요하게 과시적이며 지루하다.



 결국 <킹스맨: 골든 서클>은 나오지 말았어야 할 속편을 억지로 쥐어짜 만들어낸 티가 역력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갈피를 잡지 못해 러닝타임만 길어지게 만들고, 새로운 배우의 발견 대신 기성배우들을 긁어 모아 껍데기만 키운 돈지랄은 아무런 장점으로 남지 못한다(엘튼 존으로 출연한 엘튼 존만이 그나마 돈 값을 한다). 여성혐오와 인종차별을 꾹꾹 눌러 담은 유머들은 당연하게도 전혀 기능하지 못할뿐더러 불편함만 유발하며 영화 관람의 기억을 짜증 나는 기억으로 만들어버린다. 전편의 성공 요소를 완벽하게 퇴보시키고, 전편의 불안 요소를 철저하게 강화시킨 <킹스맨: 골든 서클>은 불필요한 속편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무가치한, 철저히 무가치한 속편이다. 전편의 주요 장면들을 멍청하게 재현하는 몇몇 장면들은 덤이다.

<맘마미아!>가 딱 10년 만에 돌아왔다.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전편은 최근 10년 사이 개봉한 뮤지컬 영화 중 가장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한 흥행작이었다. 메릴 스트립을 필두로 한 화려한 캐스팅과 아바(ABBA)의 노래들로 채워진 뮤지컬 넘버들만으로도 황홀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맘마이아! 2>는 프리퀄이면서 동시에 시퀄인 형식을 취한다. 전작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시점, 도나(메릴 스트립)의 죽음 이후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그녀의 소원이었던 호텔을 오픈하려 하고, 세 아빠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오프닝 파티 전 날, 여러모로 심란해진 소피는 도나의 젊은 시절은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영화는 이렇게 젊은 도나(릴리 제임스)가 등장하는 과거와 소피를 비롯한 전작의 주역들이 등장하는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도나가 어떻게 샘(피어스 브로스넌/제레미 어바인), 해리(콜린 퍼스/휴 스키너), 빌(스텔란 스카스가드/조쉬 딜란)을 만났고 어떻게 그리스의 한 섬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소피는 무사히 도나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까, 이번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맘마미아! 2>의 이야기는 확실히 무리수가 많다. 마치 메릴 스트립의 도나가 등장하는 딱 하나의 장면을 미리 정해두고, 이것에 맞춰서 이야기를 쓴 것만 같다.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면 (물론 전작도 그랬지만)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하지만 이번 작품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영화만이 가능한 장점들로 이야기의 부실함을 채운다. 전작이 메릴 스트립과 아바의 노래라는 막강한 두 축으로 영화를 지탱했다면, 이번 작품은 메릴 스트립의 부재를 도나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릴리 제임스와 현재 시점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로 채운다. 특히 릴리 제임스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묘하게 젊은 시절의 메릴 스트립을 연상시키는 외모부터 영화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이끌어가는 노래 실력과 연기를 선보인다. ‘When I Kissed the Teacher’를 부르며 등장하는 젊은 도나를 보고 있으면, 릴리 제임스만큼 이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함께 출연한 다이나모스, 전작에서 각각 크리스틴 바란스키와 줄리 월터스가 연기했던 타냐와 로지의 젊은 모습 또한 더 이상 좋은 캐스팅은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제시카 키나 윈과 알렉사 데이비스가 연기한 젊은 타냐와 로지는 전편의 배우들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이는 것은 물론, 릴리 제임스에 뒤지지 않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비록 젊은 세 아빠를 연기한 배우들의 캐스팅(특히 해리를 연기한 휴 스키너는 완벽한 미스캐스팅이다)이 아쉽지만, 젊은 시절의 도나 앤 다이나모스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러닝타임 내내 즐겁기만 하다. 



‘Dancing Queen’, ‘I Have a Dream’, ‘Super Trooper’ 등 전작에도 등장했던 곡들을 다른 배우들, 혹은 더 많은 배우들이 함께 부르는 광경은 전작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즐길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과거와 현재 시점을 오가는 편집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두 개의 타임라인은 아바의 노래를 통해 꽤나 효과적으로 봉합된다. 연출자가 바뀌었지만 생각보다 매끄럽게 짜인 뮤지컬 시퀀스들은 객석에 조용히 앉아 있어야만 하는 극장 에티켓을 무시하고 뛰어놀고 싶어 질 정도이다. 특히 메릴 스트립이 등장하는 딱 하나의 장면은 산만하게 흩어진 두 개의 타임라인을 완벽하게 봉인한다. 이 정도의 존재감을 지닌 배우만이 가능한 장면이고, 메릴 스트립이 있기에 각본으로 쓰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단 한 장면 만으로 영화의 퀄리티를 바꿔버리는 메릴 스트립의 노래와 연기는 이를 동시대에 개봉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과거와 현재의 배우들이 한데 모여 ‘Super Trooper’를 부르는 영화의 마지막 무대는 영화가 지닌 단점들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이 이상으로 즐거운 속편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엔드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흐르는 메릴 스트립이 부른 ‘The Day Before You Came’을 듣고 있으면, 허술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맺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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