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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가 등장하는 한국영화라는 문구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김기덕의 <대괴수 용가리>, 심형래의 <용가리>와 <디워> 등의 작품들이 있었지만, 오래되어 잊히거나 그 퀄리티가 수준 미달인 상황인 탓에 관객들에게 외면받았다. 봉준호의 <괴물>이라는 걸작이 있었고 이후에 <차우> 등 몇 편의 작품이 나왔지만, 김지훈의 <7광구>가 참혹한 평가와 성적을 내고 명맥이 끊겼었다. 오랜만에 다시 등장한 한국의 괴수영화 <물괴>는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취한다. 조선시대라는 배경(물론 <디워>에서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긴 했지만)이 주는 신선함을 노렸던 것일까? 영화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물러난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중종(박희순)은 왕에 올랐지만, 반정을 주도한 심운(이경영)에게 계속 휘둘리고 있다. 그러던 중 정체불명의 짐승인 물괴가 나타나고, 중종은 허 선전관(최우식)을 시켜 관직에서 물러나 산골에서 살고 있는 윤겸(김명민)과 성한(김인권)을 물괴를 찾는 수색대장으로 임명한다. 윤겸의 양딸인 명(이혜리)도 그들을 따라나선다. 심운의 수하 진용(박성웅)이 그들을 따라나서고, 점점 물괴에 쌓인 음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괴>는 처참하다. 영화는 역병을 지닌 괴물, <괴물>의 하수구처럼 좁고 깊은 바위틈 아래에 있는 괴물의 거처, 괴물의 눈에 꽂히는 괴물, 괴물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 등 여러모로 봉준호의 <괴물>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야기는 설기고, 맥락은 제대로 잡혀있지 못하고, 심지어 물괴를 그려내는 CG 또한 어설프다. 여러모로 <괴물>을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 격이다. 게다가 김명민의 대표작인 <조선명탐정>과 진지한 정통사극을 오가는 영화의 톤은 산만하다. 이쯤 되니 <7광구>와 이 영화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기본적인 대화 장면이나 인서트부터 액션까지 거의 모든 장면의 촬영과 편집도 엉망이고, <곡성>과 TV드라마의 룩 사이를 오가는 영상 자체의 톤도 어딘가 어지럽기까지 하다. 물괴가 물어뜯은 사람의 시체가 전혀 훼손되지 않는 등의 옥에 티 아닌 옥에 티도 꽤나 자주 눈에 띈다. 불필요하게 영화에 마지막에 삽입되는 후일담은 한국영화 시나리오 작법의 고질병을 다시 한번 재확인시켜준다.



 그럼에도 <물괴>의 장점을 착즙 해보자면, 조선시대, 그것도 경복궁 안에 괴수가 등장한다는 상상력과 그것을 어느 정도 이미지화했다는 것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특히 물괴가 경복궁 근정전을 박살내고, 도성 밖의 불길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기대보다 인상적이다. 조선시대에 괴수가 등장한다는 뻥을 치려면 이 정도까지는 막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장면이었다. 다만 그 장면들의 퀄리티가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앞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물인 영화 <창궐>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이 차례로 공개될 텐데, 과연 두 작품이 <물괴>라는 나쁜 선례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스포일러 포함 


 작년 <V.I.P.>가 개봉한 이후 영화 속 여성 묘사에 대해 많은 비판들이 쏟아졌다. 결국 영화는 실패했고, 연출자인 박훈정 감독은 신인 여성배우를 기용해 여성 원톱 액션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박훈정 감독이 언급한 <마녀>가 개봉했다. 꽤나 빠른 시간 안에 영화가 개봉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여성 중심 액션/느와르를 표방하며 공개됐지만 흥행과 평 양측에서 모두 실패한 <악녀>나 <미옥>과는 어떤 차별점을 보여줄지 궁금하여 극장을 찾았다. <마녀>의 등장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부터 최근 <오션스8>까지 이어지는 여성 중심 블록버스터의 흐름과 박훈정 본인이 경험한 비판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악녀>나 <미옥>이 비판받았던 지점들, 가령 불필요하게 등장하는 로맨스, 여성 주인공의 동력으로 모성애만을 강조하는 것 등을 최대한 피해가려 하기도 했다. 영화의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마녀>는 <악녀>나 <미옥>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피칠갑이 된 어느 연구소에서 시작한다. 닥터 백(조민수)의 지시로 미스터 최(박희순)와 부하들은 연구소에 있던 실험체 아이들을 제거하고 있다. 그중 한 아이가 도망치는 데 성공하고, 어느 시골 농가의 노부부에게 발견되어 입양된다. 10년 후, 탈출에 성공했지만 기억을 잃은 자윤(김다미)은 고등학생이 되어 생활하고 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몸이 불편해진 아버지를 도와 농장일과 집안일을 함께 하던 자윤은 단짝친구 명희(고민시)의 제안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 그러자 10년 전에 그를 미처 제거하지 못한 닥터 백의 부하 귀공자(최우식)와 미스터 최가 각각 자윤에게 접근하고, 그들의 공격에 자윤은 잊고 있던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다. 결국 자윤은 닥터 백을 다시 만나게 된다. 닥터 백은 유전자 조작 때문에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자윤에게 한 달 정도 시간을 벌어주는 약을 투약한다. 그러자 모든 것은 조직이 자신을 찾게 만들기 위한 자윤의 계획이었음이 드러나며, 그는 기억도 능력도 잃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자윤은 자신이 찾던 것을 얻었다는 듯이 닥터 백과 미스터 최, 귀공자를 비롯해 건물에 있던 조직을 쓸어버린다. 



 <마녀>의 이야기는 모성과 이성애 관계에 캐릭터가 파묻혀버린 <악녀>나 <미옥>과는 확연히 다르다. 애초에 자윤과 그러한 관계에 놓일 만한 인물이 영화 속에 배치되지 않는다. 명백히 반대의 위치에 선 미스터 최나 귀공자가 자윤과 연애관계로 얽힐 리 만무하고, 괜히 모성애적인 서사로 빠질만한 요소도 없다. 도리어 자윤을 입양한 노부부와 자윤의 관계는 여타 한국영화에 비해 신파적이지도 않고, 절친인 명희와의 관계는 드라마 <제시카 존스>의 제시카와 팻시 같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다만 악역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굉장히 전형적이다. 닥터 백이나 미스터 최는 그야말로 ‘설명충’ 악역의 전형을 따라가고, 귀공자의 캐릭터 또한 어딘가에서 이미 본 것처럼 단조롭기만 하다. 하지만 <악녀>의 신하균이나 <미옥>의 최무성만큼 불쾌하고 끔찍한 악역까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야기보단 영화적 만듦새에 있다. 우선 액션영화를 표방했음에도 제대로 된 액션이 126분의 러닝타임 대부분이 흘러갔을 때야 등장한다는 것은 <마녀>의 가장 큰 약점이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화려한 액션을 선보였던 <악녀>에 비하면 <마녀>의 액션 분량은 처참할 정도로 적다. 물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캐릭터들의 액션을 부족한 예산(60억 원)으로 다양하게 담아내는 것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러닝타임의 2/3 지점에서야 제대로 된 액션이 처음 등장한다는 것은 명백한 실책이다. 다만 예고편을 보고 예상했던 <엑스맨> 풍의 액션보다는 <맨 오브 스틸>에 가까운 초인 액션을 그럭저럭 선보인다는 점은 약간의 만족을 채워준다.  



 <마녀>의 가장 큰 문제는 나쁘지 않은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모든 게 자윤이 꾸민 일이라는 반전을 위해 최대한 정보를 드러내지 않는 전략이었다 해도, 영화의 절반이 지나도록 상황만 제시하는 방식의 전개는 지루하기만 하다. 게다가 관객이 자윤과 함께 혼란스러워 하기에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영화가 절정에 치닫기 전에, 자윤의 반전이 드러나기 전에 이미 그것을 알아차릴 관객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미뤄왔던 이야기들을 후반부 플래시백으로 적당히 땜질하고 넘어가는 방식은 이제 지겹기만 하다. 영화 중간중간 적절히 정보를 뿌리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덜 지루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자윤의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과거는 바로 직후 이어지는 반전으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그야말로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플래시백이 되어버린다. 결국 관객은 126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배우들의 입에서 나올 설명만을 기다리며 이렇다 할 정보 값이 없는 상황들만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한다. 설령 <마녀>의 이야기가 대단히 새로운 것이었다 해도, 이러한 방식으로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박훈정 감독 본인의 색 때문에 <마녀>의 톤이 그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배우들(특히 남성 캐릭터들)이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욕설, 전체적으로 암청색에 맞춰져 있는 미장센, 15세 관람가라기엔 너무나도 많은 피의 향연 등은 <마녀>의 톤이 <신세계>나 <V.I.P.>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박훈정이 여성 원톱의 액션영화를 정말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면, 자신의 영화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녀>는 그렇지 못하다. 쎄보이려고 하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3부작으로 구성된 <마녀>의 속편이 더 나은 완성도를 갖추려면, 박훈정은 제작자의 위치로 물러나고 새로운 연출자를 찾아보는 이 더욱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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