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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패터슨 시에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이 산다. 영화의 첫 장면, 패터슨은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와 함께 침대에서 아침을 맡는다. 그는 잠에서 깨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시계를 차고, 옷을 입고, 시리얼을 먹은 뒤 아내와 강아지 마빈에게 인사하고 출근한다. 버스 드라이버로 일하는 그는 운행을 시작하기 전 잠시, 점심 도시락을 먹으러 폭포수 앞에 앉아 있는 잠시 동안 비밀노트에 시를 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패터슨은 로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먹고, 마빈과 산책을 하고, 항상 가던 바에 들려 맥주를 마신다. 짐 자무쉬의 신작 <패터슨>은 패터슨의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담아낸다. 패터슨은 그러한 일상 속에서 시를 쓴다.



 짐 자무쉬가 주목하는 것은 일상이다. 때문에 분위기와 스타일에 치중했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나 경쾌하고 요란스럽게 스투지스의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오히려 그의 최근작들 보다는 <영원한 휴가>나 <천국보다 낯선>과 같은 초기작들을 떠올리게 된다. 반복되는 하루는 쇼트의 순서까지 유사할 정도로 그 반복성을 강조한다. 하루는 언제나 패터슨과 로라가 함께 누워 있는 침대에서 시작하고, 패터슨의‘마법 알람시계’는 스마트폰도 알람시계도 없는 패터슨을 매일 6시 10~30분 사이에 깨운다. 패터슨은 착실하게 자신의 비밀노트에 시를 쓰고, 버스 승객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항상 같은 자리에 마빈을 묶어둔 채 바로 들어가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맥주를 마신다. 영화는 중간중간 반복되는 일상들을 중첩시킨 디졸브 이미지를 보여준다. 운전하는 패터슨, 그의 손목에 있는 시계, 그가 항상 점심을 먹는 곳의 폭포, 언제나 시의 주인공이 되는 로라 등의 이미지가 뒤섞인다.



 반복되는 일상은 연못이나 호수에 고인 물과도 같다. 잔잔하고, 아침마다 보는 거울처럼 언제나 같은 곳을 비추고 있다. 패터슨이 점심을 먹는 곳은 그러한 물 위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이다. 떨어지는 폭포는 항상 일정하게 같은 것을 비추고 있어야 할 물에 파장을 일으키고, 물거품을 만들어낸다. 패터슨이 버스를 운행하면서 영감을 얻는 것도 비슷하다. 언뜻 보기에 패터슨의 일상은 몇몇 쇼트들이 재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조롭게 반복된다. 하지만 버스에서 들려오는 승객들의 대화가 다르고, 바에서 벌어지는 사랑에 대한 에버렛의 집착도 다르고, 로라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도 다르고, 하물며 매일 아침 인사하는 동료 도니(리즈원 맨지)의 불평도 다르다. 패터슨의 시(극 중 패터슨이 쓰는 시는 론 파젯 시인의 시이다)는 작은 다름들에서 출발한다. 패터슨의 비밀노트는 그가 반복 속에서 발견한 사소한 다름들의 기록이다. 그가 쓰고, 그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단어들은 폭포수가 만들어낸 물거품과도 같다.



 영화 내내 패터슨에서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그곳을 거쳐간 예술가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이름을 딴 공원이 있기도 한 루 코스텔로, 패터슨에서 공연을 한 것으로 언급되는 이기 팝, 뮤지션인 지미 비비노와 플로이드 비비노, 패터슨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프랭크 오하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등의 시인들…… 또한 패터슨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한 명의 예술가로서 등장한다. 패터슨은 시인이고, 그가 산책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래퍼(우탱클랜의 메소드 맨이 아마추어 래퍼로 출연한다)이며, 바에서 소동을 피우는 에버렛(윌리엄 잭슨 하퍼)은 배우이고,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본인(나가세 마사토시) 또한 패터슨처럼 시인이다. 이러한 언급들은 짐 자무쉬는 118분의 러닝타임 동안 패터슨 시를 예술가의 도시처럼 그려내려 하는 것 같다. 아니, 패터슨 의사는 모두가 예술가이며 단조로운 풍경 속에서 발생하는 물거품들을 포착해내는 모두를 예술가라고, 시인이라고 부르려는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일요일에 패터슨은 산책을 나간다. 항상 마빈과 함께 집의 오른쪽으로 향하던 그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왼쪽 방향으로 향한다. 카메라는 처음으로 화면의 왼쪽으로 향하는 트래킹 쇼트를 보여준다. 패터슨은 점심을 먹는 폭포수 앞 벤치에 앉는다. 그에게 다가온 일본인은 패터슨에 살았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프랭크 오하라를 아냐고 묻는다. 일본인은 버스를 운행한다는 패터슨의 말에 그것이 시적이라고 답해준다. 잠시 동안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일본인은 패터슨에게 빈 공책을 꺼낸다. 토요일의 한 사건으로 시 쓰는 것을 잠시 멈췄던 그는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뭔가를 써내려 가려한다. “아하!” 일본인은 패터슨과 대화를 나누다가 종종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가 “아하!”라고 말하는 순간이 패터슨의 디졸브와 같은 순간으로 느껴진다. 다시 월요일로 돌아온 영화의 마지막 쇼트, 패터슨은 일어나 시계를 확인하고 손목에 시계를 찬다. 그러나 영화는 이전처럼 시계 속의 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순한 반복 속에서 드러나는 작은 변주의 순간들을 짐 자무쉬는 놓치지 않는다. <패터슨>은 그런 작은 순간들을 끄집어내고 조립한 작품이다. 패터슨의 시가 그러한 단어들의 배열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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