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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왕’ 주호민의 업적이 추가됐다. 물론 이 리뷰를 쓰는 날이 개봉일(12월 20일)이기 때문에 아직 흥행까지 파괴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주호민의 작품 중 처음으로 영화화된 <신과 함께: 죄와 벌>은 김용화 감독의 히트작인 <미녀는 괴로워>나 <국가대표>가 아닌 <미스터 고>에 가까운 작품이다. 김용화 감독은 한국영화 최초로 CG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전작에이어 저승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영화의 배경으로 내세운다. 영화는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이라는 일곱 가지 지옥에서의 재판을 통과해야 환생할 수 있는 소방관 자홍(차태현)과 이를 돕는 저승차사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의 이야기가 담긴, 3부로 구성된 원작의 ‘저승편’ 파트를 줄거리로 가져온다. 영화는 원작에서 ‘업무상의 과도한 음주로 인한 암’으로 사망해 저승으로 오게 된 자홍의 직업이 소방관으로 바뀌었고, 그의 가족과 연관된 이야기를 영화의 주요 소재로 끌어온다. 때문에 <신과 함께: 죄와 벌>은 원작이 지닌 시크함과 같은 미덕이 거세되고, 천만 관객을 목표로 일일이 각 시퀀스에 별점을 매겨가며 만든 것과 같은 각본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관객의 멱살을 잡고 왜 울지 않냐며 강요하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139분의 시간 동안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올 때까지 뺨을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주호민 작가의 출중한 원작을 싸구려 신파로 각색하는 동안 작업실에 저승귀가 나타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런저런 문제점이 있는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각본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의 각본은 싸구려 신파다. <국제시장>, <해운대>로 대표되는 JK필름의 영화들이나 <7번 방의 선물>과 같은, 어떻게든 관객을 웃기고 울려보겠다고 온갖 스펙터클과 다양한 캐스팅을 동원하면서, 서브플롯은 엉망이고 내러티브의 구심점은 어떻게든 눈물을 뽑아보겠다는 후반부의 몰려있는 각본이다. 차태현, 하정우, 주지훈, 김향기를 비롯해 도경수, 김동욱, 오달수, 임원희, 이정재, 김수안, 이준혁, 장광 등 수많은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이러한 각본 밑에서는 모두가 발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대사가 어색하고 납작한 캐릭터들의 집합이기에 멀티캐스팅에서 흔히 기대할 수 있는 앙상블 연기 같은 미덕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어색하게 어머니만을 부르짖는 차태현과, 조금 이상한 대사처리를 보여주는 하정우, 섬세하게 캐릭터를 다루는 데 실패해 울기만 하는 도경수, 역시 적당히 만들어낸 모습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동욱, ‘판관이 뭐 저따구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재미없는 오달수와 임원희의 캐릭터 등 어색하고 지루한 캐릭터만이 영화 속에 가득하다. 여기에 눈물을 짜내기 위한 설정들, 가령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으로 대상화된 어머니, ‘이등병의 편지’를이상하게 개사해서 부르는 모든 장면(과연 관심병사가 이 따위 가사를 듣고 좋아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등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촬영 역시 각본만큼이나 암담하다. 비가 내리는 하늘에서 아이를 구조하다 건물에서 추락하는 자홍까지 내려오는 영화의 첫 장면은 경박하다 못해 촌스럽다. CG를 대거 사용한 대부분의 영화가 유사한 비판을 받지만, 이렇게 역동적으로 카메라가 움직이는 장면에서 추락하는 자홍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더더욱 촌스럽게만 느껴진다. <신과 함께” 죄와 벌>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액션 시퀀스들이 이와 유사하다. 사실상 액션이라고 부를만한 합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이를 담는 카메라는 너무나도 가볍다. 가령 최근 MCU의 영화나 J.J. 에이브람스의 영화 등에서 종종 등장하는 풀샷에서 줌인하여 어떤 대상에게 집중하는 방식의 촬영(<스타트렉>,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탈출 장면이나 <옥자>의 절벽 장면과 같은)이 <신과 함께: 죄와 벌>에서도 등장한다. 문제는 이 장면들이 어떤 세련됨을 지향하고 있지만, 줌인 이후 대상을 화면의 중심에 놓고 따라간다기 보단 이상하게 다른 방향으로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마치 더블 줌인과 같은 괴상한 기법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상한 촬영들로 가득한 지옥귀와의 싸움을 포함해 모바일 게임 CF와 같은 강림과 원귀의 추격전, 자연재해처럼 표현되는 지옥의 몇몇 장면 등은 소위 ‘블록버스터 판타지 액션 대작’ 같은 타이틀이 붙기엔 어색하다.



 여러모로 단점투성이인 영화이지만, 김용화 감독의 앞선 영화(특히 <미스터 고>)들과 차별화되는 장점은 존재한다. 이제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한 한국의 배우들이 CG로 그려진 배경에 어색하지 않게 자리한다. 물론 괴상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앞에서 모든 게 이상해지기도 하지만, 좀 더 철저한 각본과 앞으로 쌓일 노하우가 더해진다면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극 중에서 묘사되는 일곱 지옥의 모습이나 원귀의 얼굴과 같은 부분의 CG는 흔히 말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앞으로 충무로가 해결해야 될 것은 이를 담아내는 노하우를 쌓는 것이다. 어쨌거나 CG를 비롯한 디지털 특수효과는 영화를 위한 수많은 기법 중 한 가지이다.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 실험을 하기도 하고, 고전적인 대서사시를 새롭게 재해석하기도 한다. 결국 영화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이,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1부와 2부를 합쳐 400억에 가까운 제작비가 투입된 <신과 함께>는 영화를 잘 다루는 사람의 작품이 아니다. 여러모로 천만 관객에게 팔리기를 기대하며 만든, 지루하고 재미없으며 이상한 영화 한 편일 뿐이다. 좀 더 좋은 이야기꾼에게 이러한 대작을 만들 기회가 돌아가길 바란다.

*스포일러 포함


 <용서받지 못한 자>로 잊지 못할 데뷔를 한 윤종빈 감독이 <군도: 민란의 시대> 이후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90년대 북한 핵개발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업가로 위장한 안기부 공작원,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박석영(황정민)의 실화를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그가 안기부 공작원으로 스카우트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박석영은 안기부 실장 최학성(조진웅)의 명령에 따라 북한의 외화벌이를 책임지는 당의 간부 리명운(이성민)과 접촉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떠난다. 몇 개월 간의 노력 끝에 리명운과 접촉한 박석영은 광고 사업을 빌미로 북한 곳곳을 돌아다니려 한다. 그가 리명운, 그리고 인민군 장교인 정무택(주지훈)과 함께 사업을 벌이는 동안 1997년 대선이 다가온다. 박성영은 최학성과 여당 정치인들이 대선을 앞두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안기부의 새로운 명령의 따를지, 기존의 공작을 완수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최근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방학 시즌 텐트폴 영화로 떠오르고 있다. <공조>부터 <브이아이피>, <강철비>, 얼마 전 개봉한 <인랑>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떠오른다. 게다가 5월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남북한을 소재로 담은 영화들에 대한 관심 또한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 개봉한 <공작>은 90년대라는 멀지 않은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흑금성이라는 인물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적절한 소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업가로 위장하여 북한에서 남한 기업의 광고 촬영과 금강산 관광을 빌미로 북한에 들어가려다가 결국 대북 사업가가 되어버린 인물이라는 점은 흑금성의 이야기가 통일을 이야기하는 지금과 썩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닐까? 게다가 당시 여당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안기부와 자신이 수행하는 공작 사이에서 고민하는 박석영의 모습은 무엇을 청산하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현재 시점의 상황과도 썩 어울린다.



 이러한 과정에서 악수와 건배라는 제스처는 썩 적절하게 활용된다. 악수는 본래 서로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음을 알려주기 위한 행동이다. 이제는 의례적인 절차이지만 종종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서의 악수가 그렇다. <공작>의 인물들은 쉽게 악수를 건네지 않는다. 그들의 악수는 대부분 의미심장한 표정과 함께한다. 서로를 시험해 보는 순간, 드디어 신뢰를 쌓았을 때, 각자의 신념을 인정하고야 말 때 그들은 악수한다. 이러한 과정은 의심 없이 악수할 수 있을 때가 되어야 공존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건배 또한 그렇다. 박석영은 공작원이 되기 위해 날마다 술을 마셨지만, 흑금성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후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때문에 그는 건배를 하지 않는다. 대신 리명운에게, 심지어 김정일(기주봉)에게 술을 따라주기만 한다. 후반부에 이르러, 그는 리명운과 건배를 한다. 부모님까지 들먹여가며 술을 피하던 그가 건배를 하는 순간은, 각자의 신념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들어있는 건배다. 남북정상회담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의 악수 (직전의 순간) 또한 그렇다.



 다만 <공작>은 영화의 제작사인 사나이픽쳐스의 다른 영화들과 유사한 지점에서 좋아하기엔 어려운 작품이다. 듀나 작가는 <공작>을 보고 최근 한국영화 속 북한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남성성이 남아있는 오아시스” 같다고 이야기했다. 극도로 남성적인 한국영화가 남성성을 마음껏 발현할 새로운 공간인 북한을 찾아낸 것이다. 이것을 액션으로 드러낸 <공조>나 <강철비>, 여성혐오적 범죄로 드러낸 <브이아이피> 등은 이러한 공통점을 가진다. <공작>은 누군가 죽거나 부상당하는 액션이나 범죄 대신 대화라는 전략을 택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긴 하다. 허나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사업가를 연기하는 박석영이나, 공산주의 체제에 있지만 여러모로 (남성화된) 자본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리명운과 정무택의 모습에서 어떤 지겨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박석영과 리명운의 브로맨스로 흐르는 후반부는 한국영화의 어떤 고질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유사한 영화에 겹치기 캐스팅으로 자신들을 소비해버린 배우들의 비주얼에서 느껴지는 기시감도 이러한 지겨움에 한몫한다. 때문에 <공작>은 오랜만에 등장한 웰메이드 한국 상업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영화에 대해 어떠한 갈증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재확인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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