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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빈 후드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영화화되었다. 이번 작품은 십자군 원정을 다녀온 로빈(테론 에저튼)이 죽은 줄 알고 그의 재산을 갈취한 노팅엄 주 장관(벤 멘델슨)에게 맞서, 전쟁에서 알게 된 존(제이미 폭스)과 함께 싸운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흑인 조력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리들리 스콧의 <로빈 후드>보다는 케빈 코스트너와 모건 프리먼이 출연했던 1991년 작품 <로빈 훗>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영화의 프랜차이즈화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작품이기에,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걸맞은 스케일을 곁들인다. 문제는 이러한 영화의 방식이 제대로 먹혔느냐에 있다.


 영화의 초반부 등장하는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십자군 전투 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과 같은 현대전을 그린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소총이 활이 되고 기관총이 자동 석궁으로 대체되었을 뿐, 전투의 방식과 이를 보여주는 카메라의 구도는 명백히 현대전을 그린 작품들의 방식을 따른다. 이런 방식으로, 중반부 등장하는 마차 추격전 시퀀스는 <벤허>의 전차 장면과 <원티드>의 카체이싱을 적절히 뒤섞은 방식이며, 돈이 든 마차를 탈취하는 장면은 <이탈리안 잡>을, 후반부의 클라이맥스 전투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월가에서 벌어진 경찰과 시위대의 액션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액션들은 화려하긴 하지만 이미 보았던 것들의 활을 내세운 액션들은 그럭저럭 잘 짜여 있지만, 드라마 <애로우> 등에서 이미 익숙해진 액션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더욱 진부하다. 로빈 후드의 이야기 자체가 일종의 전 세계적 클리셰가 된 상태이기에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후드>가 하려는 이야기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 장관이 알고 보니 적을 지원하고 있었다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다. 트럼프 시대에 이러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딱히 의미가 없어 보일 뿐만 아니라,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하비 덴트와 유사한 (심지어 투페이스가 되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장면은 차용이라고 보기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당황스럽다. 후속편에 대한 예고를 분명히 하며 끝나는 영화지만, 지금과 같은 안일한 기획에 머물게 된다면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

베이비(안셀 엘고트)는 드라이버이다. 그의 임무는 은행강도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팀에서 팀원들이 안전하게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운전하는 것이다. 박사(케빈 스페이시)에게 빚을 지게 되어 그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되는 그는 빼어난 운전 실력으로 100%의 성공률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에 이상이 생긴 베이비는 언제나 이어폰을 귀에 꼽고 다닌다. 음악을 들을 때면 청력이 진정되기 때문이다. 베이비는 박사의 범죄계획 위에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덧붙인다. 범죄 이후 도주하는 베이비의 리듬은 그의 아이팟 클래식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간다. 박사에게 진 빚을 청산한 그는 여자 친구 데보라(릴리 제임스)와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 하지만, 박사와 그의 팀 버디(존 햄), 달링(에이사 곤살레스), 그리고 배츠(제이미 폭스)는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 <지구가 끝장나는 날>로 이어지는 블러드 앤 아이스크림 삼부작으로 이름을 알린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신작이다.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에 이어 그가 영국 밖에서 제작한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그를 유명하게 만든 전작들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에드가 라이트의 리드미컬한 편집과 액션,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음악의 사용은 113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뮤지컬 영화이다. 물론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러닝타임 내내 끊이지 않는 음악과 가사를 차용한 수많은 대사들, 노래를 활용해 감정을 속삭이는 베이비와 데보라의 이야기 등은 뮤지컬 영화의 어느 장면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칼라 토마스의 ‘B-A-B-Y’나 티-렉스의 ‘Deborah’, 벡의 ‘Debra’를각각 베이비와 데브라의 테마곡처럼 활용하는 유치한 재치도 돋보인다. 베이비가 버디와 달링, 그리프(존 번탈)를 태우고 도주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베이비 드라이버>가 왜 뮤지컬 액션 영화인지 단박에 알려준다. 팀원들을 보낸 뒤 차에 남은 베이비는 아이팟 클래식을 꺼내고 이어폰을 귀에 꼽은 뒤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펜션의 ‘Bellbottoms’을 듣는다. 립싱크를 하며 리듬을 타는 베이비는 팀원들이 오자 운전을 시작한다. 음악의 러닝타임을 따라 5분 정도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의 카체이싱은 음악의 리듬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경찰차를 따돌리고, 좁은 골목 사이를 180도 회전하며 통과하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긴 카체이싱은 마치 뮤지컬에서 배우가 춤을 추듯 진행된다. 팝/힙합/락/펑크/소울/디스코 등을 가리지 않는 30여 곡의 선곡은 이런 액션 시퀀스와 더불어 박사가 계획을 설명하는 장면, 베이비가 커피 심부름을 하는 평범한 장면에서 까지 뮤지컬 영화 속 장면처럼 그려진다. 주인공이 노래로 대사를 표현하지 않는 넌-버벌(non-verbal) 뮤지컬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때문에 영화의 액션 시퀀스와 코미디 부분들은 세련된 최신의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지지만 (이게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는 개인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베이비와 데보라의 애정씬들은 오래된 로맨스 영화처럼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80~90년대 초 영화들의 대책 없는 낭만을 다시 재현해보려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비치 보이즈, 베리 화이트, 퀸, 런 더 쥬얼스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세대의 뮤지션의 음악이 영화에 동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확실히 <베이비 드라이버>는 에드가 라이트가 영국에서 만들었던 블러드 앤 아이스크림 삼부작이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보다는 아쉽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경쾌한 편집 리듬은 여전하지만, 음악과 액션/코미디를 접목시키기 위해 과하게 밀어붙인 지점들은 조금 피로하게 느껴진다. 호러, 액션, 스릴러, SF, 재난영화 등의 장르 클리셰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캐릭터를 통해 클리셰를 전복시키면서 즐거움을 주었던 영국에서의 작품들과는 달리, <베이비 드라이버>의 인물들은 전형적이기만 해서 아쉽기도 하다. 청각장애가 있는 탈출 전문 드라이버라는 주인공의 캐릭터는 흥미롭고 신선하지만, 전형적인 흑인 갱스터 캐릭터의 클리셰를 끝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배츠, 마찬가지로 낭만에 빠져있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 히스패닉 캐릭터라는 클리셰로 점철되고 이제는 진부해진 대사/액션만을 끌어다 쓴 버디와 달링, 주인공 캐릭터의 로맨스가 진행되어야 하기에 존재한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데보라 등의 캐릭터는 기존의 에드가 라이트 영화에서 관객들을 즐겁게 만든 캐릭터들과는 거리가 있다. 가령 (개인적으로 에드가 라이트의 최고작이라 생각하는) <뜨거운 녀석들>의 엔젤 형사는 판에 박힌듯한 모범경찰이 시골에 내려가 변화한다는 클리셰를 따르는 캐릭터이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서 영화 전체가 따르는 장르 클리셰를 전복시킨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재미있는 캐릭터였다. 반면 <베이비 드라이버>의 캐릭터들은 철저히 장르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이며, 베이비와 박사를 제외하면 기능적으로 소비된다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데보라와 베이비의 양아버지 조셉(CJ 존스)은 캐릭터성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기능적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눈에 띄는 장점과 단점이 맞부딪히는 영화다. 에드가 라이트는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에서 코믹스와 게임의 형식을 차용해 청춘영화의 장르 안에서 재미있는 오락 영화를 만들었었다. <베이비 드라이버>에서는 액션에 뮤지컬을 결합한다. 이러한 시도는 일정 부분 성공하고 재미있다. 그럼에도 전작들처럼 번뜩이는 캐릭터가 부재하고, 장르 클리셰를 끌어오고 뒤엎으며 놀았던 번뜩임은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베이비 드라이버>는 충분히 즐길만한 재미있는 오락영화이지만, 에드가 라이트가 그간 재료로 삼았던 오락영화 장르들과 동일해졌다는 점에서 아쉽다. 그의 장편영화들을 비롯해 <그라인드 하우스>의 페이크 예고편 등을 즐겨왔던 골수팬이라면 <베이비 드라이버>에서의 에드가 라이트가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에드가 라이트에게 가지는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 해야 될까. 그럼에도 올해 여름 극장가에 걸려있는 대다수의 작품에 비해 즐거운 영화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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