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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넘긴 했지만, 2018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좀비가 등장하는 콘텐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산행> 이전에도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는 있었지만, 그 규모와 화제성 면에서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소규모였다. 2018년 <창궐>이나 2019년 초 공개된 넷플릭스의 <킹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한국적인’ 좀비를 보여주기도 했고(물론 한 편은 실패했고 한 편은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테마파크에서 좀비를 테마로 한 호러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민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기묘한 가족>은 좀비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다. 좀비 영화의 하위 장르로써 좀비 코미디는 <좀비 랜드>와 같은 대형 히트작부터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데드 스노우> 시리즈, 최근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까지 인디 장르영화 씬에서도 종종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기존의 좀비 코미디들이 고어의 수위를 높이고 적당한 사회비판이나 좀비라는 틀을 코미디에 사용하는 등에 모습을 보였다면, <기묘한 가족>은 충청도의 어느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지역 특화적인 면모를 선보인다.


 영화는 어느 제약회사의 실험으로 가사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는 뉴스 보도로 시작한다. 시골 마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다 폐업한 만덕(박인환)은 렉카를 운영하는 장남 준걸(정재영)과 며느리 남주(엄지원),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해 돌아온 민걸(김남길), 늦둥이 막내딸 해걸(이수경)과 살고 있다.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좀비(정가람)에게 물린 만덕은 밤 사이 회춘하게 되고, 돈이 궁하던 가족은 좀비에게 ‘쫑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마을의 노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한다. 장사 수단은 쫑비에게 물리면 회춘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쫑비는 언제까지나 좀비, 예정된 혼란이 기묘한 가족에게 닥쳐온다.



 한국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 좀비 코미디에서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기묘한 가족>은 정력에 좋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민간요법적 광기를 중심적인 소재로 차용한다. 또한 전국적인 사건이었던 <부산행>과는 다르게 고립된 시골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는 점, 친구나 가족이 좀비로 변한다는 클리셰를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을 알고 지낼 수밖에 없는 시골이라는 공간으로 확장한다는 점, <시체들의 새벽>에서부터 좀비 영화의 주요한 테마였던 자본주의 비판을 신자유주의 세계관에 걸맞은 방식의 이야기(특히 엔딩)로 드러낸다는 점은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좀비 코미디 사이에서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를 다시 한번 재고하게 한다. <기묘한 가족>이 보여주는 쇠락한 한국 농촌 공동체는 <리틀 포레스트> 등 최근의 한국영화들이 묘사한 ‘그것’들 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민걸이 가족들에게 좀비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유튜브로 <부산행>의 클립을 찾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스스로 <부산행>의 성공으로 인해 제작된 작품임을 감추지 않는다. 도리어 ‘한국적인’ 좀비 영화를 표방하고 나왔음에도, 익숙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신파 서사에서 좀비라는 소재만 차용했을 뿐인 <부산행>보다 더욱 ‘한국적임’을 표방하고 있음을 자신 있게 표현한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 하지만 <기묘한 가족>이 취하고 있는 것들, 가령 좀비에 물린 아버지를 대하는 자식들의 태도, 정력에 대한 중노년 남성들의 광적인 집착, 농촌 노년 남성의 황혼 재혼 등의 요소들은, 비록 표면적으로만 소재를 다룰 뿐이더라도, 한국과 한국 농촌과 한국 농촌의 남성성을 돌아보게 하는 흥미로운 텍스트를 제공한다. 



 물론 아쉬운 지점도 존재한다. <웜 바디스>를 어설프게 따라한 (물론 <웜 바디스>가 좋은 영화인 것도 아니다) 해걸과 쫑비의 러브라인은 따분하고, 코믹한 효과음이나 몇몇 슬랩스틱은 과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초반부 전개를 느릿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후반부에서도 종종 등장하여 극의 진행을 지지부진하게 만든다. 조금 더 깔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등장하는 엔딩은 앞선 아쉬움들을 잊게 만들어준다. 분명 <기묘한 가족>은 영화의 템포라던가 코미디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작품이지만, 엔딩 장면에서의 새로움에는 대부분의 관객이 동의할 것이다. 후반부에서 길을 잃고 무너지는 많은 한국영화들과도 다르게, 예고된 난장판이 펼쳐지는 후반부가 주는 즐거움(특히 12세 관람가라는 한계를 적절하게 활용한 요소들)은 굉장히 즐겁다. 



 어쩌면 <기묘한 가족>이야말로 첫 한국적인 좀비 영화가 아닐까 싶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이라는 틀에 좀비라는 소재를 끼워 넣은 <부산행>과 <창궐>의 아쉬움을 <기묘한 가족>이 일정 부분 해소해준다. 물론 규모의 측면에서 아쉽긴 하지만, 저예산 영화라고 무시하기엔 <기묘한 가족>의 후반부가 제공하는 나름대로의 스펙터클은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창궐>의 야귀들이 스펙터클의 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생각하면, <기묘한 가족>의 좀비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다양한 모습의 좀비들이 등장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기묘한 가족>이 지닌 성취는 한국 장르영화 안에서도 꽤나 기억될만한 것이 아닐까 싶다.

*스포일러 포함


 <북촌방향>과 <다른나라에서>를 시작으로 영화 속 시간에 대한 실험을 이어온 홍상수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통해 이야기 자체의 변화까지 보여줬다. 그러한 변화는 홍상수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를 통해 드러난다. (홍상수 본인을 포함한 것으로 확실시되는) 영화 속 찌질한 남성들의 구애를 받아내는 위치였던 영화 속 여성에게 솔직함을 드러내고(<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그들을 존대하기 시작했다(<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현실 속 여러 논란과 겹치는 이야기를 담은 그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다른나라에서>의 이자벨 위페르가 있지만) 홍상수 영화의 첫 여성 원 톱 주연 영화이다. 홍상수의 페르소나로 느껴진 전작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밤의 해변에서의 혼자>의 주인공 영희(김민희)는 영화 내외적으로 홍상수의 페르소나가 아닌 그의 영화 세계 안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인물이다. 그렇기에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가 조금씩 보여오던 변화가 비로소 완성되고, 새로운 단계의 홍상수를 만날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는 홍상수 영화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손글씨 오프닝 크레딧을 버리면서 시작한다. 타자기로 적당히 친 것 같은 폰트의 오프닝 크레딧은 그의 전작들을 볼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을 주며 영화의 문을 연다. 2부로 구성된 영화의 1부는 영희와 지영(서영화)이 함부르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영희는 함부르크로 찾아올지 아닌지도 모를 불륜관계에 있던 영화감독이자 유부남 상원(문성근)을 기다린다. 영희는 공원에 있는 다리를 건너기 전, 절을 하며 소원을 빈다. 그의 소원은 상원이 오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앞길을 바라는 소원이다. 2부에서는 영희가 준희(송선미)를 만나기 위해 강릉을 찾고, 선배인 천우(권해효)와 명수(정재영) 등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천우, 명수, 준희, 명수의 애인인 도희(박예주)와 함께 하는 술자리와, 우연히 만나게 된 조감독 승희(안재홍)를 통해 만난 상원과 영화 스태프들과의 술자리, 총 두 번의 술자리가 등장한다. 사랑, 관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영희의 대사는, 때로는 현실의 논란이 생각나 실소가 터지기도 하지만, 자리의 다른 인물들을 찍어 누르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의 자기파괴적인 영화이다. 2부의 세 남자 상원, 천우, 명수는 그간 홍상수 영화에 여러 차례 등장했던 배우들을 기용하고, 전작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을 다시 소환해낸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두 차례의 술자리 장면에서 괴력의 연기를 선보이는 김민희의 영희는 홍상수의 남자들을 대사로, 표정으로 찍어 누르고 압도하며 영화를 장악해나간다. 다시 말하자면, 영희는 홍상수의 남자들을 영화 속에서 부수어버린다.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 속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김민희의 연기를 빌어 파괴한다. 손글씨를 버린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원경에서 인물을 잡은 쇼트나 풍경을 잡은 쇼트 등 홍상수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장면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시간을 탐구해온 작가는 조금씩 자신의 변화를 영화 속에 반영시켰고, 이번 영화를 통해 (그리고 현실의 사건을 빌어) 자신을 파괴한 뒤, 그 내면을 영화로 담아낸다. 김민희의 몸을 빌어 진행되는 홍상수의 자기파괴는 김민희에겐 자기 반영으로 느껴진다.



 1부와 2부엔 각각 검은 옷을 입은 의문의 남자가 등장한다. 1부의 남자는 공원에서 난데없이 영희와 지영에게 시간을 묻는다. 모른다는 둘에게 “핸드폰 그런 것도 없어요?”라고 되묻는다. 그리고 1부의 마지막, 남자는 해변에서 김민희를 둘러업고 저 멀리 달려간다. 2부의 남자는 영희의 숙소 베란다 창문을 닦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 방에 있는 영희, 준희, 천우 모두 남자의 존재를 그가 마치 유령인 것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남자는 창문을 닦지만, 깨끗해지기는커녕 여전히 더럽기만 하다. 어느샌가 그는 닦는 것을 포기하고 바다를 바라본다. 박홍열 촬영감독이 연기한 이 남자는 홍상수가 영화 속에 등장한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준다. 누군가의 시간 안에 들어오고, 그를 데려가며, 투명해지려 계속 창을 닦지만 깨끗해지지 못하는 사람. 자기파괴적인 그의 영화에 등장한 (그의 영화 세계에서) 전대미문의 캐릭터는 그의 분신으로써 영화에 끼어든다. 이야기 자체에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지만, 유령으로써 영화 안에 등장하고 다가온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지금까지 조금씩 변화를 보이던 그의 영화가 만든 하나의 결과물이다. 현실과 영화가 뒤섞인 감상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그의 신작은,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보이며 본인의 영화 세계의 새 단계를 연다. 그의 영화를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초기작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만든 영화가 아닐까? 이자벨 위페르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고, 그의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정진영, 어김없이 다시 출연하는 김민희가 뭉친 홍상수의 차기작 <클레어의 카메라>가 기대된다.6/220967125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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