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블랙'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호스텔>로 연출 데뷔하여 <케빈 피버>, <그린 인페르노>, <노크 노크> 등 호러 및 스릴러 장르를 연출해온 일라이 로스가 이번엔 전체관람가 판타지 호러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전작 모두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며, 고어한 장면들로 가득한 영화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그의 선택은 의아하기만 하다. 배우이자 감독인 일라이 로스의 필모그래피를 어느 정도 챙겨본 입장에서도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어떤 작품일지 예측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잭 블랙, 케이트 블란쳇, 카일 맥라클란이라는 배우들의 조합 또한 일라이 로스의 선택만큼이나 독특하다. 심지어 영화의 제작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엠블린 엔터테인먼트가 맡았다. 이쯤 되니 이 영화가 어떻게 기획되었고 일라이 로스는 어디서부터 참여한 것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존 벨리어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루이스(오웬 바카로)가 삼촌 조나단(잭 블랙)과 그의 친구인 플로렌스(케이트 블란쳇)가 사는 집을 찾게 되고, 우연히 악의 길로 빠진 마법사 아이작(카일 맥라클란)이 집 안에 숨긴 마법시계를 통해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막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익숙한 아동용 판타지 영화의 클리셰를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또한 착실하게 따라간다. 가족을 잃은 10대, 살면서 본 적도 없는 친척의 존재, 그 친척이 숨기고 있는 비현실적인 사건과 세계 등은 <나니아 연대기>부터 시작된 익숙한 이야기이다. 일라이 로스는 이러한 익숙한 틀을 깨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의욕은 없었던 것 같다. 대신 클리셰를 충실히 쫓아가며 전체관람가라는 제한 안에서 자신의 색을 조금씩 보여주려 한다. 고어 장면들을 대체하려는 듯이 살아 움직이는 집과 정원의 물건들이 박살 나고, 전체관람가 치고는 상당히 징그러운 장면들 또한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들 대다수가 일라이 로스만의 색이라기 보단, 잭 블랙의 다른 작품인 <구스범스> 같은 영화들, 또는 <그렘린> 같은 작품에서 이미 봐온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아이작을 둘러싼 이야기는 데이빗 린치의 <트윈픽스: 더 리턴>에서 카일 맥라클란이 연기했던 데일 쿠퍼 캐릭터의 이야기를 전체관람가 판타지 호러에 맞춰 차용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이러한 설정은 아동용 판타지 영화의 클리셰에 상쇄되면서 유치해지고, 이 과정에서 영화는 힘을 잃고 만다. 사실 일라이 로스의 영화들은 초기작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화가 내세우는 설정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 채 갈피를 못 잡고 엔딩을 맞이하는 작품들이었다.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은 역시 잭 블랙과 케이트 블란쳇이다. 둘의 필모그래피를 비교해보면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이보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둘의 캐스팅은 놀랍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둘의 합은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언제나 즐거운 코미디를 선보이는 잭 블랙과 그에 맞춰 자신의 연기를 변화시키는 케이트 블란쳇의 조합은 145분의 러닝타임을 적어도 지루하지 않게 끌고 나간다. 둘이 각각 맡은 조나단과 플로렌스라는 캐릭터는 역시 익숙한 클리셰로 가득한 인물들이지만, 두 배우의 색이 더해져 심심하지 않은 캐릭터로 영화 속에 존재한다. 결국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를 지탱하는 것은 배우들의 힘뿐이었다. 일라이 로스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배우들 덕에 지루하지만은 않은 관람이었다.

<쥬만지>가 22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왔다. 제이크 캐스단이 연출을 맡은 <쥬만지: 새로운 세계>는 전작에서 주디(커스틴 던스트)와 피터(브래들리 피어스) 가 버렸던 쥬만지 보드게임을 누군가가 주웠던 1996년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쥬만지를 주운 사람은 알렉스(닉 조나스), 보드게임 대신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그에 맞춰 쥬만지는 비디오 게임으로 변하고, 게임을 플레이 한 알렉스는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20여 년이 지나 방과 후 훈육 교육을 받던 스펜서(알렉스 울프), 배서니(매디슨 아이스먼), 프리지(서더라이스 블레인), 마사(모건 터너)가 학교의 창고에서 쥬만지 게임을 발견한다. 우연히 게임을 켠 그들은 게임 속 쥬만지 정글로 빨려 들어가고, 각자가 선택한 캐릭터인 브레이브스톤(드웨인 존슨), 셸리 오베론(잭 블랙), 무스 핀바(케빈 하트), 루비 라운드하우스(카렌 길런)가 되어 게임을 완료해야 한다.



 보드게임에서 비디오 게임으로 배경을 옮긴 <쥬만지: 새로운 세계>는 전작이 그랬듯 게임이라는 설정을 적극적으로 가져오려 한다. 가령 네 주인공이 선택한 아바타들은 각각의 강점과 약점이 있고, 손목에 있는 세 개의 줄은 게임을 시작할 때 주어지는 세 개의 목숨이며, 정글 속 사람들은 NPC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고, 네 명의 주인공은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듯 정글을 해쳐 나가야 한다. 영화가 지닌 기본적인 세팅은 좋다. 전작이 주사위를 활용한 보드게임이라는 설정을 영화의 전개 방식으로 확장하여 재미를 주었던 방식과 유사하다. 게임 속에서 남은 목숨을 활용하는 방법, 각자의 강점과 약점이 드러나고 활용되는 장면, 각 캐릭터는 현실의 인물이 선택한 아바타라는 개념 등은 영화 속에서 꾸준히 드러나면서 쥬만지라는 세계관이 게임임을 끝없이 납득시키려 한다.



 아쉬운 점은 비디오 게임이라는 형식과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 사이의 괴리감이다. 영화가 소재로 삼는 비디오 게임은 90년대에 상용화되었던 겜보이나 슈퍼패미콤 같은 게임기의 게임과 유사하다. 비디오 게임으로 변한 쥬만지는 CD가 아닌 팩으로 변하고, 알렉스는 그 팩을 게임기에 장착해 게임을 시작한다. 때문에 쥬만지 속에서 묘사되는 게임스러운 설정들은 죄다 그 시절의 느낌을 준다. 세 개뿐인 목숨, 투박한 폰트로 나타나는 각 캐릭터의 특성 등은 당시 유행하던 게임들을 연상시킨다. 동시에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인물들이 겪는 상황들은 당시의 비디오 게임보다는 자유도가 높은 현재의 콘솔게임을 연상시킨다. 때문에 당시의 게임이 가지고 있던 제한성(세 개의 목숨, 강점과 약점 등)과 영화 속 인물들이 가지는 자유도 사이의 어딘가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간 비디오 게임 혹은 아케이드 게임을 영화의 형식으로 활용했던 영화들, 가령 <트론>이나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와 같은 작품들에 비해 <쥬만지: 새로운 세계>는 아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어드벤처 액션 영화로써의 <쥬만지: 새로운 세계>는 무난하다. 드웨인 존슨, 케빈 하트 등의 배우들이 기존에 지닌 특성을 뒤집는 몇몇 장면들과 이를 활용한 유머들, 블록버스터 영화다운스케일 등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적인 특성을 만족시켜준다. 이제는 고인이 된 로빈 윌리암스가 전작에서 맡았던 역할인 알란 패리쉬를 기념하기 위한 장면도 등장하면서 전작에 대한 헌사도 놓치지 않는다. 전작의 악역이었던 사냥꾼 반 펠트의 캐릭터가 이번엔 쥬만지 정글을 정복하려는 침략자 반 펠트(바비 카나베일)로 등장하기도 한다. 도리어 전작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했을 관객이라면, 영화의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보드게임의 모습을 한 쥬만지의 등장에 반가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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