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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인지 자살인지 모호한 사건이 발생한다. 피고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양순호(정우성)는 사건의 목격자를 찾아간다. 유일한 목격자인 임지우(김향기)는 자폐증이 있다. 검사 이희중(이규형)은 지우의 증언을 토대로 피고를 기소했다. 양순호는 지우와의 교감을 통해 지우의 자세한 증언을 얻어내고, 이를 통해 변호를 하려 한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 ‘휴머니즘’적인 색채가 가득한 작품을 만들어온 이한 감독이 <오빠생각>의 부진을 딛고 신작 <증인>으로 돌아왔다. 정우성과 김향기라는 두 스타배우를 내세운 영화는 예상대로의 무난하고 착한 영화였다.


 영화는 민변 출신인 양순호가 대형 로펌에 들어가고, 로펌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지우가 증인으로 서게 될 사건을 맡게 된다. 지우의 증언을 통해 기소가 이루어진 사건에서, 지우를 증인으로 내세워 피고의 무죄를 밝히려 한다는 시놉시스가 흥미롭다.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에 파킨슨병에 걸린 순호 아버지와 순호의 관계, 지우와 등하교를 함께 하는 친구, 이희중 검사의 동생 이야기, 순호가 민변으로 함께 활동했던 대학동기 수현 등의 살을 붙인다. 늘어놓고 보면 산만해 보이지만, 이한 감독은 이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매끄럽게 영화를 이끌어간다. <증인>은 양순호의 뒤를 따라가며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경유하고, 이를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과 소통에 대해 말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증인>이 아주 무난하고 순수한 방식으로만 쌓아 올린 영화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부터 후반부까지의 몇몇 장면들은 전반부의 안정감을 위태롭게 만든다. 접대 여성들이 등장하는 룸 장면, 플롯 트위스트 이후 누군가가 지우를 찾아오는 장면 등 굳이 필요한가 싶은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더욱이 후반부 들어 ‘정상’이라는 단어가 조금 남용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또한 영화 내내 지우가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선, 그러한 지우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혜적인 시선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다만 순호와 지우가 관계를 쌓아가는 방식은 긍정적이었다는 점이 <증인>이 지닌 장점일 것이다. 




 마사지사로 일하고 있는 백상아(한지민)는 추운 겨울날 우연히 골목길에서 혼자 떨고 있는 김지은(김시아)을 발견한다. 상아는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던 지은에게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사주지만, 이내 지은의 보호자라는 주미경(권소현)이 나타나 지은을 데려간다. 지은의 몸에 난 상처와 멍을 보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상아는 미경과 지은의 친부인 백수장(김일곤)의 폭력에서 지은을 구하고자 한다.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은 가정폭력, 아동학대의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다. 성인인 사람이 아동을 구출한다는 점에서 <아저씨> 같은 부류의 영화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영화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익숙한 사서를 지녔지만,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을 만들어 낸 것은 <미쓰백>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영화 전체가 한국영화의 클리셰 안에서 작동하고 있지만, 그 주체가 여성으로 변화했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움을 자아낸다. 특히 백상아를 연기하는 한지민의 모습은 <밀정>, <역린>, <플랜맨> 등의 최근작에서 볼 수 없었던 면모를 보여준다. 그동안 남성 감독의 영화에서 타입화 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면, 여성 감독의 영화인 <미쓰백>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연기를 펼쳐 보인다. 때문에 <미쓰백>은 그녀의 가장 다양한 연기를 만나 볼 수 있으며, 앞으로 한지민의 대표작으로 이 영화가 꼽히지 않을까 싶다. <미쓰백>은 분명 그간 쏟아져 나온 <아저씨>류의 한국영화들, 혹은 남성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들에 비해 취하고 있는 장점이 많다.



 하지만 한국 상업영화 대부분이 공유하는 단점 또한 공유하고 있다. 가령 과도하게 남성적이며 폭력적인 경찰문화와 이를 대변하는 장섭(이희준) 캐릭터, 모성애의 강조, 성노동자의 악마화, 불필요하게 적나라한 폭력 등이 <미쓰백>에도 존재한다. 특히 지은이 폭행당하는 장면들이 굉장히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도가니>나 <귀향> 같은 작품들이 비판받았던 것과 같은 지점에서, 피해사실을 전시한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미쓰백>이 이러한 폭력이나 수난을 전시하려는 태도의 영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은 분명한 단점이다. 장섭 캐릭터의 존재도 아쉽다. 이렇게 남성성을 과시하며, 보조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구원자 자리를 넘보는 캐릭터가 이 서사에 필요한지 의문이다. 여기에 지은의 친부에 대해 더욱 간편하게 악마화 되는 미경의 캐릭터나, 상아가 너무나도 쉽게 용서해버리고 마는 아동폭력의 가해자 상아의 어머니 정명숙(장영남) 캐릭터는 영화가 주제로 삼은 여성 간의 연대를 동정과 연민의 수준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미쓰백>은 분명 완성도가 아쉽고, 영화 자체를 지지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여성 감독, 여성 주연, 여성 서사를 다루고 있는 영화 자체가 희소하기 때문이다. <비밀은 없다>를 비롯한 이경미 감독의 영화나, <마녀>, <악녀>처럼 여성 주연 액션 영화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각자의 이유로 폄하당하거나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미쓰백> 역시 한계점을 가득 안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배우 한지민의 재발견(이라고 쓰지만 이제야 능력을 드러낼 장을 얻은 것이기도 하다)과 백상아라는 캐릭터는 <비밀은 없다>의 연홍이나 <암살>의 안옥윤과 궤를 같이 하며 흥미를 가지고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이런 캐릭터들이 더욱 많이 등장하고 더 많은 영화가 나와야 한국영화의 클리셰라는 지겨운 틀을 깨고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미쓰백>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했으면 좋겠고, 영화 자체를 지지하지는 못해도 영화의 흥행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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