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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홍상수의 21번째 장편영화인 <그 후> 보다 늦게 20번째 장편영화가 국내에 도착했다. 오늘(4월 18)일 언론시사회 및 영화비평독립잡지 필로(FILO)의 창간 기념 상영회를 통해 국내에 첫 상영된 <클레어의 카메라>는 2011년 <다른나라에서> 이후 이자벨 위페르가 다시 한번 홍상수와 함께 작업하는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들의 재회가 가능했던 것은 영화가 2016년 칸 국제영화제 기간에 칸을 배경으로 촬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홍상수와 22번째 작품인 <풀잎들>까지 내리 5작품을 함께하는 중인 김민희는 <아가씨>로, 이자벨 위페르는 폴 버호벤의 <엘르>로 각각 칸을 찾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직접 칸 국제영화제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영화 내내 영화제가 언급되고 칸을 찾은 여러 영화계 종사자들이 등장하기에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영화가 칸 영화제 기간의 칸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익숙한 홍상수의 작품들과 유사하다. 영화제 기간 동안의 업무를 위해 칸을 찾은 영화사 직원 만희(김민희)는 갑작스레 상사인 양혜(장미희)에게 해고당한다. 양혜는 만희가 부정직하다는 이유 외에는 다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얼떨결에 일도 없이 칸에 남게 된 만희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던 중 만희가 만나게 된 클레어(이자벨 위페르)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풍경과 사람들을 찍고 다닌다. 한편 양혜는 영화제에 초청된 완수(정진영)와 함께 영화제 일정을 준비한다. 둘의 대화를 통해 양혜와 완수는 애정관계에 있으며, 완수가 술에 취해 만희와 보낸 하룻밤에 의해 해고된 것임이 밝혀진다. 술과 술자리, 애정문제, 외도 등 익숙한 소재들이 69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이어진다.



 칸에서 <클레어의 카메라>가 촬영되는 동안 국내에서는 홍상수와 김민희의 외도 루머가 등장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김민희와의 협업 이후 그의 외모를 한 여성 캐릭터가 홍상수의 페르소나와도 같은 찌질한 남성 캐릭터들을 찍어 누르는 분열적인 작품이었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선 애정에서 비롯된 존중을 그려내기도 했다. <그 후>는 의외로 장르적인 문법을 (약간) 차용하여 삶과 사랑을 예찬하는 영화였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과한 홍상수의 가장 반박적인 영화인 것으로 느껴진다. 만희와 완수, 기시감이 느껴지는 두 캐릭터의 이름과 영화의 첫 쇼트에서 목격되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포스터는 <클레어의 카메라>가 홍상수의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강하게 본인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요소들이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든 클레어는 칸을 찾은 세 한국인(만희, 양혜, 완수)의 곁을 맴돌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카메라에 담아낸다.



 만희는 클레어에게 “당신은 왜 사진을 찍나요?”라고 묻는다. 클레어는 “왜냐하면 세상 일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만사를 다시 매우 천천히 보는 것이기 때문이지요.”라고 답한다. 관객은 클레어를 따라 세 명의 인물을 바라본다. 클레어는 또한 “사진을 찍힌 사람은 그 전과 다른 사람이 돼요.”라고 말한다. 촬영과 동시에 사진을 인화해내는 클레어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재빠르게 카메라에 담긴 이와 카메라 밖의 존재를 분리한다. 사진에 담긴 이와 이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찍힌 이는 이미 다른 사람이다. 클레어는 이에 의문을 가진 완수와 양혜에게 천천히 자신의 눈을 응시할 것을 요구한다. “느낌이 이상하다.”라고 말하는 완수는 이를 통해 카메라에 찍히기 이전의 자신과 이후의 자신을 분리해낸다. <클레어의 카메라>의 서사 속 시간은 뒤죽박죽이다. 관객은 클레어의 눈을 응시하는 완수처럼 스크린을 응시하며 뒤틀린 시간을 맞춰보려 한다. 만희가 해고당한 당일, 그로부터 3일이 지난 시점, 그리고 그다음 날.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는 극 중 시간에서 클레어의 카메라에 담긴 옥상 위 만희의 시간은 그 위치가 불분명하다. 위선으로 가득한 완수와 양혜가 짜 맞추려는 만희의 시간은 영화 속에서 돌출되어 분리된다. 이러한 분리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라는 기계장치를 통해 즉각적으로 분리되는 개인이라는 감각과 연결된다. 영화는 이러한 개인을 천천히 응시하기를 바란다.



 홍상수는 반복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변주한다. 홍상수라는 개인이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클레어의 카메라>역시 이러한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도리어 스캔들 이후 음모론을 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물어뜯기 가장 좋은 대상이 된다. 그가 한국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촬영한 세번째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홍상수라는 개인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칸 국제영화제 기간에 촬영된 <클레어의 카메라>는 그의 최근 필모그래피 (특히 김민희를 만난 이후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애매한 작품이라 느껴지지만, 동시에 여전한 그의 훌륭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제목인 <클레어의 카메라>는 에릭 로메르의 도덕 이야기 6부작의 <클레어의 무릎>을 연상시킨다. 무척이나 성애적인 관점에서 그려진 <클레어의 무릎>이 지닌 육감적인 감상과 <클레어의 카메라> 속 ‘카메라’라는 기계장치의 이성은 사뭇 대조적이다. 홍상수가 카메라라는 장치를 꺼내 든 것은 영화가 그려내는 개인과 영화를 촬영하는 카메라라는 기계장치가 담아낸 위선을 응시하길 바라는 것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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