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영화'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고려인 출신의 러시아 뮤지션 빅토르 최를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다. 국내엔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스튜던트>를 통해 이름을 알린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연출하고,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빅토르 최를 연기한 <레토>가 그 작품이다. 2018년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빅토르 최가 밴드 키노를 결성하기 이전, 멘토이자 동료인 마이크(로만 발릭)를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많은 관객들이 알고 있는 밴드 키노의 전성기 시절은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데이빗 보위, 이기 팝, 루 리드, 토킹헤즈 등 당시 소련에서 금지된 서구권 음악들의 등장을 통해 빅토르 최와 키노의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다.


 영화는 빅토르 최의 삶을 고스란히 따라가지는 않는다. 빅토르 최와 마이크가 유사한 비중으로 그려지며, 이를 통해 로큰롤 공연장에서도 좌석에 앉아서 관람해야 했던 당시 소련의 강압적인 문화정책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위나 벨벳 골드마인 등 서구권 로큰롤 뮤지션들의 음악을 해적판으로 구하고, 직접 가사를 번역하며 연구하는 모습이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때문에 토킹헤즈의 ‘Psycho Killer’, 루 리드의 ‘Perfect Day’, 이기 팝의 ‘Passenger’ 등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2.76:1 화면비 밖의 레터박스(때문에 영화는 2.39:1 화면비로 상영된다) 밖으로 튀어나오는 애니메이션과 함께 등장하는 뮤지컬 시퀀스는 서구권 음악을 경유하여 자유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된다. 빅토르 최나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셴바움) 등 주요 등장인물 외의 행인들까지 뮤지컬 시퀀스 안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이 장면들은 문화적 탄압 상태에 있는 소련의 당시 상황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레토>의 주제는 ‘자유’라기 보단 ‘낭만’에 가깝다. 종종 등장하는 1:1 화면비의 컬러 영상 등은 당시의 레닌그라드 인디 로큰롤 씬을 적극적으로 낭만화한다. 때문에 <레토>는 빅토르 최나 마이크의 삶을 따라가는 전기영화라기 보단, 이들을 전면에 내세운 시대극으로 읽힌다. 카메라는 빅토르 최, 마이크, 나타샤 세 인물을 분주하게 오가며 영화 속 시간을 어떤 기억으로 만들어내려 한다. 종종 등장하는 뮤지컬 시퀀스마저 이러한 낭만화에 가담한다. 또한 제4의 벽을 깨며 “이것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님”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어떤 인물은 과도한 산만함만을 더할 뿐이다. <레토>가 긴 호흡의 TV 드라마였다면 각 인물들에 충분히 집중하며 지금과 같은 연출법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겠지만, 2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안에서 이들 모두를 시도하는 것은 산만한 기교에 불과하다. 영화를 보고 기억에 남는 것이 빅토르 최나 마이크 등의 레닌그라드 뮤지션들의 음악이 아닌, 토킹헤즈, 이기 팝, 루 리드 등의 음악이라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일생을 담은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했다. 영화는 이민자 가정의 자식으로 태어나 비행기 수화물을 나르는 일을 하던 프레디가 퀸을 결성하고 록스타가 된 뒤 다양한 일을 겪고, 1985년 ‘라이브 에이드’라는 전설적인 공연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라이브 에이드’에서의 20분간의 공연을 재현하기 위해 <보헤미안 랩소디>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에 기대고 있다.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를 비롯한 브라이언 메이(궐림 리), 로저 테일러(벤 하디), 존 디콘(조셉 마젤로) 등의 퀸 멤버, 그리고 프레디의 평생의 동료인 메리(루시 보인턴)가 <보헤미안 랩소디>의 124분을 이끌어 간다.



 사실 영화의 완성도는 최근 개봉한 음악영화인 <스타 이즈 본> 등에 비해서도 아쉽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제목이기도 한 ‘Bohemian Rhapsody’를 비롯해 ‘We Will Rack You’, ‘Another One Bites the Dust’, ‘Love of My Life’ 등의 명곡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때문에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멤버들이라는 인물들에 집중하는 것보다, 퀸이라는 그룹이 겪어온 시간들을 마치 TV 재현 영화처럼 재현해 둔 정도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각 장면들은 중심을 잃고 각각의 에피소드로만 남게 된다. 라미 말렉을 비롯한 훌륭한, 그리고 퀸의 멤버들과 외모적 싱크로율도 높은 배우들의 호연이 가까스로 영화의 중심을 잡아줄 뿐이다. 브라이언 싱어가 중도하차한 것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후반부 ‘라이브 에이드’의 20여분을 통째로 재현한 것을 보면 애초에 영화의 목적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의 재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프레디의 바이섹슈얼 정체성이 등장하기는 하나, 피상적인 부분으로만 그려졌을 뿐이라는 비판은 피해 가기 어려울 것 같다. 결국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물에도, 퀸의 성공과 연관된 음악적, 사회적 맥락에도 집중하지 못한 영화이기에, 결국 <보헤미안 랩소디>에 남은 것은 퀸의 음악뿐이다.



 문제는 퀸의 음악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며 영화적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퀸의 음악은 수많은 영화와 뮤직비디오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언제 들어도 놀라울 정도로 스펙터클한 퀸의 음악은 영화로 재현하기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미 질리도록 들었던 퀸의 음악을 스크린에서 만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발생되어 버리는 것이다. 마치 호러나 액션 장르 영화가 공포와 긴장감, 액션 시퀀스를 통해 발생하는 쾌감을 목적으로 삼는 것처럼, <보헤미안 랩소디>의 목적은 퀸의 공연을 재현하여 관객에게 쾌감을 전달하는 것이다. 비록 초중반부에 등장하는 몇몇 공연 장면에선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퀸 버전으로 울려 퍼지는 20세기 폭스의 로고 음악과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을 보고 있자면 퀸의 음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오늘 관람 때 엔드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모든 관객이 퀸의 음악을 들으며 앉아있었다는 것이 퀸의 음악이 지닌 힘을 증명하는 것만 같다. 퀸의 주옥같은 명곡들과 그들의 공연이 지닌 힘을 느끼고 싶다면, 극장을 찾아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유튜브를 통해 퀸의 실제 라이브를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다.

 1937년 윌리엄 A. 윌먼의 <스타 탄생> 이후 세 번째 리메이크 작품인 <스타 이즈 본>이 개봉했다. 원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을 맡고 비욘세를 주연으로 추진되었던 이 프로젝트는 결국 브래들리 쿠퍼의 연출 데뷔작으로 제작되었다. 주연은 쿠퍼와 함께 레이디 가가가 함께 하게 되었다. 이번 영화는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조연 혹은 카메오로 출연해온 레이디 가가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다. 브래들리 쿠퍼의 <스타 이즈 본>은 할리우드 스타가 아닌 팝스타를 주인공으로 한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웨이트리스 일을 하며 바에서 간간히 공연하는 앨리(레이디 가가)는 우연히 바를 찾은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을 만나게 된다. 앨리의 목소리에 반한 잭슨은 자신의 공연에 앨리를 초대하고, 앨리의 자작곡을 함께 부른다. 공연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자 앨리는 한순간에 스타가 되고, 앨리는 잭슨의 투어에 함께하며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중 앨리의 가능성을 알아본 음반 제작자 레즈(라피 가브론)가 음반 계약을 제안하고, 앨리는 팝스타가 된다.


 할리우드에서 음악계로 무대를 옮긴 선택은 효과적이다. 아마 톱스타의 의해 성공하게 되는 스타의 이야기는 현재의 할리우드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때문에 레이디 가가라는 캐스팅과 의외로 준수한 노래 실력을 보여주는 브래들리 쿠퍼의 조합은 상당한 즐거움을 준다. 게다가 이번이 연출 데뷔작인 브래들리 쿠퍼의 깔끔한 연출은 <스타 이즈 본>이 지닌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를 고전적 영화의 분위기로 담아낸다. 그렇기에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결말을 알아챌 수 있는 뻔한 이야기를 즐겁게 감상하게 된다. 특히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는 장면, 퇴근한 앨리가 노래를 부르며 공연하러 가는 길을 담는 롱테이크 장면은 노련한 고전영화감독의 작품을 보는 것만 같다. 골목길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앨리의 뒤로 등장하는 고전적인 서체의 붉은 ‘A Star Is Born’ 타이틀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번 영화에서 가장 좋은 장면이 아닐까 싶다. 앨리가 공연하는 곳이 드랙 바(드랙 퀸들이 공연하는 공간)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곳곳에서 잭슨을 촬영하는 스마트폰 카메라, 앨리의 공연이 담긴 유튜브와 함께 2018년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앨리가 잭슨과 함께 투어를 돌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드러나는 전반부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잭슨의 불우한 과거사와 알코올 및 약물 중독, 서로 달라지는 음악 성향 등의 문제로 둘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는 후반부는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 느낌이다. 두 배우의 연기는 감정선을 탄탄하게 잡아주지만, 앨리와 잭슨이라는 캐릭터는 기계적으로 갈등과 봉합을 반복할 뿐이다. ‘The Shallows’를 비롯한 영화의 훌륭한 음악들이 없었더라면 굉장히 심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알코올과 약물 중독에 빠진 남성 묘사에 빈번히 등장하는 폭력적인 장면이 배제되었다는 것은 눈여겨볼만한 지점이다. 물론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영화는 아니지만, 타인 혹은 약자를 향한 폭력을 최대한 배제시켰다는 점이 좋았다. 이러한 지점들은 이번 영화를 앞선 영화와의 차별점이 된다. 브래들리 쿠퍼는 이를 통해 영화에 현대적인 감각을 부여하고, 동시에 고전적인 스타일을 놓치지 않으며 기존 <스타 탄생> 영화들의 형식을 따라간다. 영화의 후반부가 썩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두 배우의 연기와 노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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