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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은 계속해서 386세대의 감성, 부채의식, 폭력성 등을 영화에 담아왔다. 데뷔작인 <지구를 지켜라!>와 10년 만에 내놓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폐쇄된 공간을 통해 그의 중요한 테마들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장준환 감독은 이제 직접적으로 80년대의 한국을 담아낸다. <1987>은 영화의 제목 그대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의 죽음까지를 다룬 작품이다. 대공수사처장 박처원(김윤석), 그의 밑에서 일하던 조한경 반장(박희순), 박종철의 부검을 지시한 최환 검사(하정우),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이희준)와 수감되어 있던 이부영(김의성), 영등포 교도소의 간수인 한병용 교도관(유해진)과 안유(최광일), 장세동 안기부장(문성근), 강민창 치안본부장(우현), 김정남(설경구), 김승훈 신부(정인기) 등의 실존인물들이 본명으로 등장한다. (한병용 만이 실존했던 두 인물의 이야기를 하나로 합쳐 만들어낸 캐릭터이다) 그만큼 <1987>은 6월 항쟁이 벌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고 꼼꼼한 고증을 통해 그려낸다. 동시에 연희(김태리)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외부에 있던 개인이 어떻게 6월 항쟁에 동참하게 되는지를 다룬다. 여진구와 강동원이 각각 박종철과 이한열로 특별출연했다. 그간 한국의 상업영화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주조연급 배우들이 모인 작품이기도 하다.



 <1987>은 한 개인에게 집중하여 사건을 보여주는 대신, 사건을 중심에 놓고 이를 따라가는 각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가 개인의 시선을 중심에 놓고 사건을 관찰하듯이 따라가는 작품이었다면, <1987>은 드라마 <제5 공화국>처럼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마치 옴니버스처럼 각 인물들의 면면을 관찰하는 식이다. 비슷한 영화를 찾아보자면용산참사 이후의 재판 과정을 다룬 영화 <소수의견>이 떠오른다. 인물 대신 사건을 중심에 놓고, 악인과 정의로운 누군가, 그 경계 혹은 외부의 인물이 사건을 통해 각성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1987>이 선택한 방식이다. 이러한 선택이 <1987> 안에서 원활하게 작동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영화는 분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중심 사건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은 촘촘하게 129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채운다. 문제는 각 인물들에게 관객이 감정적으로 이입할 여지를 불필요할 정도로 많이 남겨둔다는 것이다. 가령 한병용이 등장할 땐 한병용의 상황에, 연희가 등장할 땐 연희에게, 윤상삼 기자의 이야기에선 그에게 각각 몰입하게 된다. 박처원이나 조한경 반장이 등장할 때면 그들을 향한 분노에 파묻힌다. 때문에 핸드헬드 촬영과 익스트림 클로즈업 샷들로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은 도리어 영화를 산만하게 한다. <1987>이 <택시운전사>처럼 한 인물의 이야기에 집요하게 집중했다면 모를까, <도둑들>이나 <암살>과 같은 앙상블 연기가 아닌 이상 이러한 연출은 패착에 가깝다. 영화는 어떤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인물들을 관찰하고, <레미제라블>과 같은 뮤지컬 시퀀스처럼 연출되는 마지막 집회 장면의 클라이맥스에서 관객을 끓어오르게 해야 했다.



 아무래도 같은 해에 나온 영화이기에 <택시운전사>와 <1987>의 비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처럼 느껴진다. 80년 5월의 광주와 87년의 서울, 그리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지는 촛불혁명을 지켜보고 기억하고 배운 사람들에게 두 편의 영화는 같은 사건과 시기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다른 감정을 가지게 한다. 어찌 보면 두 영화와 관객들은 서로 다른 광장을 유사한 감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른 부분이 있다면 앞서 말한 시선의 차이일 것이다. 관객들은 이미 촛불의 광장을 경험했다. 두 영화에 담긴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의 광장 일지는 몰라도, 시민들이 시청 앞 혹은 광화문을 가득 매운 사진을 봤을 때의 감정은 질적으로 동일하다. <택시운전사>는 체험보단 관찰의 시선으로 광장을 담는다. 외지인과 외국인이라는 설정은 이러한 관찰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설정이다. 아쉽게도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러한 태도가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1987> 역시 관찰의 태도를 보인다. 동시에 연희라는 캐릭터를 통해 관찰을 넘어 참여를 유도한다. 아쉬운 점은 앞서 언급한 산만함이다. 정리되지 못한 감정선은 인물들에 대한 관객의 감정적 동의를 성급하게 이끌어낸다. 분명 클라이맥스가 존재하는 영화이지만, 각 캐릭터의 클라이맥스가 러닝타임 중간중간 등장하기도 하고, 너무나도 다양한 인물과 각 배우의 존재감에 캐릭터 간 비중이 무너지기도 한다. 한 인물의 이야기가 전개될 때 다른 인물은 영화 속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결국 <1987>은 관찰이라는 태도를 유지하는데 실패한다. 대신 영화는 연희로 대표되는 해당 시대정신에 무지한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계몽시키려 한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6월 항쟁과 촛불혁명을 상기시키는데 그친다. 더군다나 각성하게 되는 인물이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캐릭터라고 부를 수 있는 여성인 연희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계몽적인 태도가 더욱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영화가 연희를 다루는 태도는 촛불정국에서 광장으로 나선 여성과 청소년들이 들었던 언어들을 상기시킨다. “여자/청소년이 이런 곳까지 나오다니 기특하다, 장하다” “너희들까지 이런 곳으로 나오게 만들어 미안하다” “이러한 시국에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 러닝타임이 흘러갈수록 변해가는 영화의 태도는 영화 속에 분명히 존재했던 여성과 학생들을 주체의 위치에서 배제시킨다. 어쩌면 누군가는 연희가 어느 남성의 도움을 받아 버스 위에 올라서서 주먹을 치켜드는 장면을 보고, 386세대가 없었다면 연희와 같은 사람들이 각성할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386세대가 다음 세대들에게 손을 뻗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각자의 감상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감상들은 결국 386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지닌 계몽적, 혹은 시혜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결말로 귀결된다. 그렇기에 결국 장준환 감독 또한 그 세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선 두 작품이 386세대의 폐쇄성과 폭력성을 날이 선 태도로 드러내고 일정 부분 비판하는 영화였다면, <1987>의 언어는 위와 앞서 언급한 광장 속에서 여성/청소년들이 들었던 것과 크게 결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스포일러 포함


 서울에서 택시를 모는 김만섭(송강호)은 아내와 사별하고 어린 딸과 단 둘이 생활을 이어간다. 사글세 10만원이 밀려 집주인에게 구박받던 그는 우연히 광주까지 장거리를 뛰면 10만 원을 주겠다는 외국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주워듣는다. 그 외국인은 바로 일본에서 온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동료 기자에게 광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가기 위해 택시를 부른 것이다. 영어도 잘 못하고, 80년 5월 광주의 상황도 잘 알지 못하는 만섭은 10만원만 바라보고 광주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광주에 도착한 만섭과 한츠페터는 계엄군이 포위한 광주의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받는다. <택시운전사>는 서울에서 온 외지인, 해외에서 온 외국인의 시선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담아낸다. 1980년 5월 20일부터 첫 발포가 있던 21일까지의 1박 2일을 다룬 영화는 실제로 처음 광주의 이야기를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와 아직까지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김사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는 굉장히 전형적이다. 소시민적 주인공의 생활이 그려지는 전반부, 5.18을 목격하는 두 주인공을 담아낸 중반부, 만섭 홀로 광주를 빠져나왔다 힌츠페터를 데리러 다시 돌아가는 후반부,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대로 영화는 흘러간다. 택시운전사 김만섭의 소시민적 모습을 그려내는 전반부에서의 만섭은 “데모하려고 대학생 됐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를 움직이는 동기는 어린 딸이며, 둘만의 작지만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택시를 몬다. 넉살 좋은 중년 아저씨로 그려지는 김만섭의 모습은 <변호인>, <괴물>, <효자동 이발사> 등 송강호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여타 소시민적 캐릭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137분의 긴 러닝타임 중에서 40여분의 분량을 차지하기에, 코믹하고 정감 가는 톤으로 그려진 전반부가 조금은 늘어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만섭과 힌츠페터가 광주에 들어가게 되는 중반부는 광주의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던 다른 영화들, <꽃잎>, <화려한 휴가>, <26년>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택시운전사>는 외부인의 눈을 통해 사건과 거리를 두며 그것을 목격하는 형식을 취한다. 힌츠페터는 일본을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온 독일 공영방송의 기자이다. 만섭은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온 서울촌놈이다. 영화는 외국인과 외지인, 두 외부인의 시선으로 5.18을 목격한다. 영화를 촬영하는 카메라-영화 속 외부인인 만섭과 힌츠페터의 눈-기자인 힌츠페터의 카메라라는 이중삼중의 렌즈를 거친 영화의 시선은 효과적으로 사건 자체와 목격자 사이의 거리를 두며 사건을 기록한다. 이러한 거리 두기와 목격의 시선은 관객이 5.18에서 느끼는 부채의식을 자극한다. 만섭과 힌츠페터가 광주역 광장 앞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북을 치고 춤추는 광주시민들을 목격하는 장면은 지난 탄핵정국의 광장의 풍경을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목격은 손님을 태우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만섭과 “김사복의 택시를 타고 변화된 대한민국을 돌아보고 싶다”는 실제 힌츠페터의 인터뷰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의 울림을 더욱 크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택시운전사>에는 중대한 결점이 있다. 만섭과 힌츠페터가 5.18에 직접 개입하게 되는 후반부에서 외부인의 시선이 무너진다는 점이 첫 번째 결점이다. 총에 맞아 쓰러진 시위대를 구하기 위해 택시를 몰고 돌진하는 만섭의 모습이 그려지는 순간 영화가 지켜온 외부인의 시선은 무너지고, 만섭과 힌츠페터 또한 광주의 내부인이 된다. 목격에서 체험으로 만섭의 역할이 전이되어 버리는 순간 영화는 동력을 잃어버린다. 5.18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의 차이점도 사라진다.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데다가 여전히 첨예한 쟁점으로 남아있는 역사적 사건을 목격이 아닌 체험적으로 다루게 될 때, 사건 자체를 영화적 스펙터클로 소비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기 쉬워진다. 영화의 두 번째 큰 결점이 여기서 비롯된다. 만섭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순간 영화는 사건을 스펙터클화 시킨다. 계엄군의 총에서 탄피가 빠져나오는 것을 슬로 모션으로 잡는 장면과 탈출 장면에서 등장하는 카체이싱 두 장면에서 이것이 크게 두드러진다. 학살의 순간에서 탄피는 이미 총탄이 발사되었음을 의미한다. 탄피가 빠져 나오는 쇼트를 슬로 모션으로 먼저 보여주고, 이에 대한 반응 쇼트로 총에 맞아 쓰러지는 시민을 보여주는 것은 희생자의 모습을 영화적 스펙터클로 재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쓰러지는 시민만을 보여줬다면 모를까, 계엄군의 탄피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다. 후반부 택시들과 보안사가 벌이는 카체이싱은 137분의 러닝타임 중 가장 영화적 스펙터클을 강조한 시퀀스이다. 시퀀스의 물리적 분량도 과하게 많을뿐더러, 차에 액션캠을 달아 충돌의 순간을 담아내는 쇼트는 액션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르적 스펙터클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도움과 희생”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장훈 감독의 의도는 느껴지지만, 불필요한 스펙터클은 자칫하면 불쾌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직전에 개봉한 <군함도>가 저지른 끔찍한 실수가 그러했다. 5.18의 모든 것이 남성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님에도 여성은 누군가의 가족이거나 계엄군에 맞아 쓰러지는 희생자로만 등장한다는 점 또한 아쉽다.



 <택시운전사>는 위와 같은 결함을 송강호의 탁월한 연기로 상쇄시킨다. 익숙하고전형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송강호의 연기는 언제나 압도적이다.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부르며 등장한 80년대의 김만섭이 손님을 태우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2003년의 김사복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힘 있게 이끌어간다. 결함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담아내려는 관객의 부채의식이 영화 마지막까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송강호의 역할이 크다. 그와 함께 힌츠페터를 연기한 토마스 크레취만의 연기 역시 목격의 서사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유해진, 류준열 등 여러 조연배우들의 연기 또한 80년의 광주를 그려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내며, 잠시 등장하지만 중요한 지점을 잡아내는 엄태구의 연기는 그의 최근 출연작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목격하는 형식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탄핵정국의 광장을 거친 현재의 관객이 80년 5월 광주의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부채의식을 이야기하는 첫 영화로써 기본적인 만족감은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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