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폴로지'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중국의 차오 할머니,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 세 분의 공통점은 과거 일본군에게 납치된 ‘위안부’라는 것이다. 티파니 슝 감독이 연출한 <어폴로지>는 세 분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이다. 6년이라는 촬영 기간 동안 담아낸 세 할머니의 모습은 인간의 위엄을 보여주면서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숭고와 용기가 돋보이다가도 슬프다. 105분의 러닝타임 동안 눈물을 쏟다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영화는 2010년부터 2016년 최근까지의 세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조금은 다르게 살아가는 세 분의 모습을 보여준다. 길원옥 할머니는 수요시위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일본에 가셔서 시위를 한다. 고향이 평양인 할머니는 중국에서 열리는 남북여성공동회의에 참석해 과거 청산과 자주통일에 대한 연설을 이어간다. 한 명의 인간이 가지는 어떤 위엄과 삶이 할머니에게서 보인다.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는 과거의 이야기를 묻어두려 한다. 자신의 과거로 인해 가족이 파탄 나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아델라 할머니, 일본군에 의해 겪은 피해 때문에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딸을 입양한 차오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고 듣다 보면 어느새 얼굴이 눈물로 가득하다. 가족에게 오랜 기간 품어온 비밀을 고백하고, 그 세월을 함께 받아내려는 할머니와 가족의 모습에서 애정의 크기가 느껴진다.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어폴로지>는 최근 제작된 위안부 소재의 극영화들과는 확실한 차별점을 보여준다.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귀향>과 <눈길>과는 다르다. 할머니들의 입으로 직접 듣는 이야기는 사건의 폭력적인 재현 없이도 그 고통이 충분히 전해진다. 그분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 그분들의 삶이 어떤지 보여주는 방식은 관객의 의식을 즉각적으로 변화시킨다. <어폴로지>는 과거에 머물러 있던 두 영화와는 다르다. 잊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한국의 수요시위를 영상으로 접한 아델라 할머니가 한국의 꼭 오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결국 건강 악화로 돌아가시는 모습 역시 보여준다. 80~90세의 나이가 된 할머니들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길원옥 할머니도 이제 해외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건강 상태가 되었다. 영화의 후반부, 2014년 길원옥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며 UN에 천오백만 명이 서명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해결된 것은 없다.



 영화의 초반부에 1000번째 수요집회 영상이 등장한다. 60대에 수요집회를 시작한 할머니의 나이가 어느새 90을 바라보게 되었다. 1000번째 집회, 1000주 동안 이어진 집회, 그 기간 동안 쌓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 그 장면에서부터 눈물이 흘렀다. 리뷰를 쓰는 오늘(2017년 3월 8일)은 1273차 수요집회가 열리는 날이다. 고령의 할머니들이 더 이상 거리로, 일본 대사관 앞으로 나오지 않아도 될 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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