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태그의 글 목록 :: 영화 보는 영알못

 건설노동자 레고인 에밋(크리스 프랫)이 프레지던트 비즈니스(윌 페럴)를 물리치고 레고 월드에 평화를 되찾은 지 5년, 외계에서 온 듀플로들의 공격으로 인해 브릭스버그는 황폐화된 아포칼립스버그로 변화했다. 어느 날, 시스터 은하계의 지멋대로 여왕(티파니 해디쉬)의 명령을 받은 어마무시 장군(스테파니 비트리즈)이 나타나 루시(엘리자베스 뱅크스), 배트맨(윌 아넷), 유니키티(알리슨 브리) 등 에밋의 친구들을 납치해간다. 에밋은 친구들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고, 우연히 만난 렉스의 도움을 받게 된다. 5년 전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놀라운 완성도를 선보이며 흥행에 성공한 <레고 무비>에 이어 <레고 배트맨 무비>, <레고 닌자고 무비> 등의 스핀오프가 개봉했다. 5년이 지나 개봉한 속편은 전작의 엔딩에 등장했던 듀플로 브릭의 침공으로 시작된다. 전작의 연출자인 크리스 밀러와 필 로드는 제작과 각본으로 물러났고, <트롤>을 연출했던 마이크 미첼이 메가폰을 잡았다. 전작의 성공에 <21 점프 스트리트> 시리즈를 성공시키고,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각본에 참여하기도 했던 크리스 밀러와 필 로드 콤비의 공이 컸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불안한 연출자가 메가폰을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어느 정도 적절했다. 전작은 CG와 레고 스톱모션을 뒤섞은 듯한 비주얼 속에서 펼쳐지는 에밋의 레고 월드 모험기가 현실에서 레고를 가지고 놀던 소년의 머릿속에서 펼쳐졌다는 컨셉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레고의 캐치프레이즈를 영화로 만든 듯, DC 슈퍼히어로,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심지어 <스타 워즈> 등 수많은 영화와 팝컬처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인물들을 레퍼런스 삼아 펼쳐낸 레고 월드는 레고라는 장난감의 목적을 훌륭하게 차용했다. 더욱이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 사이의 이야기로 마무리된 전작은 레고를 가지고 놀았던 모든 이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았다. 하지만 <레고 무비2>는 전작과 같은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할뿐더러, 전작의 장점마저 갉아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상하던 모든 것을 만들기’와 ‘만들어진 것을 부수기’를 대립항으로 두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 자체가 나쁜 아이디어는 아닐지 몰라도, 영화에서 너무 단순하게 다뤄버리고 만다. 특히 레고 월드 또는 시스터 은하계 밖의 인물인 렉스의 캐릭터는 전작의 설정을 붕괴시키는 상황을 초래한다. 더군다나 듀플로나 레고 프렌즈처럼 레고의 파생상품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진입장벽을 느낄 수도 있다. 팝 컬처 레퍼런스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던 전작과는 다르게, 소수의 카메오와 DC 히어로들에게만 국한된 레퍼런스 활용은 지루하게 다가온다.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음’이라는 레고의 컨셉을 제대로 활용한 전작이나, 이러한 점을 잘 활용했던 훌륭한 팬픽인 <레고 배트맨 무비>에 비하면 <레고 무비2>는 단순한 레고 홍보 영화로 느껴지기만 한다. 엄마(마야 루돌프)나 전작의 어린 소년인 핀(제이슨 샌드), 그의 여동생인 비앙카(브루클린 프린스)가 등장하는 장면은 지나치게 교훈적이기만 하다.



 그럼에도 <레고 무비2>는 어느 정도의 만족감과 재미를 보장한다. <레고 무비>와 <레고 배트맨 무비>에 비해 아쉬웠지만 그럭저럭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던 <레고 닌자고 무비>를 떠올려 보면 될 것 같다. 전작과는 다르게 굳이 레고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을법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작보다 다양한 레고의 제품들(팝 컬처 레퍼런스가 아닌 그야말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나, 전작의 개봉 시점 때와는 다르게 슈퍼스타가 된 에밋 목소리의 크리스 프랫의 필모그래피를 활용한 농담 같은 것도 소소한 즐길거리다. <매드맥스> 시리즈 같은 영화에서 보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세계관이 레고로 구현되는 것 또한 <레고 무비2>에서만 볼 수 있는 비주얼이다. <레고 무비2>는 레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들을 마음껏 펼쳐낸다.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전작과 <레고 배트맨 무비>에 비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지만, 107분의 러닝타임 동안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실패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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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용 한국 애니메이션은 대다수가 TV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거나, 장난감 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때문에 영화의 타겟관객인 아동에 맞춰진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인관객을 포함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어느정도 작품성을 지닌)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요구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작품이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언더독>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함께 했던 이춘백 감독과 공동연출하여 제작된 작품이다. 버려진 유기견 뭉치(도경수)가 짱아(박철민) 등이 속한 떠돌이 개 무리, 산에서 살고 있는 밤이(박소담)의 무리와 만나게 되며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선 목소리 캐스팅이 상당히 화려하다. <스윙키즈> 등의 작품을 통해 스크린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고 있는 도경수를 비롯해, 박소담, 박철민, 이준혁 등의 베테랑 배우들과 전숙경 등 전문 성우들이 함께 출연하고 있다. 전문성우가 아닌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언더독>에서 목소리를 맡은 배우들은 모두 자기 몫을 해내고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은 접어도 좋을 것 같다. 2D와 3D를 오가는 연출은 두 감독의 전작 <마당을 나온 암탉>과 유사하다. 전작이 그림책에서 나온 것 같은 비주얼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은 인간에게서 벗어나려는 개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뭉치와 밤이를 비롯한 캐릭터들이 사냥꾼(이준혁)과 벌이는 추격전은 기대보다 훌륭한 액션을 보여주기도 한다.



 <언더독>의 이야기는 좋게 말하면 익숙한 즐거움이고 나쁘게 말하면 진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부한 이야기 속에 펫샵과 강아지공장 같은 동물권 이슈는 물론, 재개발, 외국인 노동자, DMZ 등의 이슈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물론 단순히 언급만 하고 지나가는 수준에 불과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특히나 재개발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영화 속 개들의 상황이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의 상황을 곧바로 연상시키는 지점이 있다. 다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동물친화적인 부부는 조금 과한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한국영화 특유의 (이미 설명이 충분한데도 등장하는) 플래시백, 굳이 욱여넣는 러브라인 등은 진부한 클리셰로만 다가온다. 그럼에도 <언더독>이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와 볼거리를 갖춘, 아동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관객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과 <언더독>, 그 이후를 이을 작품이 계속해서 등장했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미래의 미라이>는 <디지몬 어드벤처>부터 <늑대아이>, <썸머워즈>, <괴물의 아이> 등 최근작까지 우정, 모성애, 가족애, 부성애 등을 다뤘던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이다. 4살 소년 쿤(카미시라이시 모카)은 엄마(아소 쿠미코)와 아빠(호시노 겐)의 관심이 새로 태어난 여동생 미라이에게 쏠리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 그러던 중 쿤은 (의인화된) 반려견 윳코(요시하라 미츠오), 미래에서 온 여동생 미라이(쿠로키 하루), 어린 시절의 엄마(사이카 사쿠라), 젊은 시절의 증조할아버지(후쿠야마 마사하루) 등을 만나는 환상적인 모험 속에서 성장하고, 가족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된다.



 영화는 쿤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넘나드는 여행을 에피소드의 병렬적인 나열 형식으로 담아낸다. 각각의 여행을 통해 여동생 미라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소홀해진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며, 증조부모 때부터 이어진 가족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된다. 다만 이러한 과정이 산만하게 전개되고, 종종 튀는 작화를 보여주는 바람에 산만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더욱이 남아인 쿤이 가족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남자애가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퉁쳐지는 사건들을 통해 촉발된다는 점은 <미래의 미라이>가 강조하고자 하는 지점들을 흐릿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미래의 미라이의 ‘벌 놀이’에 대한 쿤의 반응이나, 2차대전 때 비행기 엔진 공장에서 일했던 증조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장면은 젠더적 관점과 역사적 관점에서 큰 고민 없이 들어갔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전자는 남아의 성적 판타지를 은근슬쩍 드러낸다는 점에서 불쾌하기만 한 장면이고, 후자는 2차대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인물과 그 시절을 낭만화한다. 이러한 두 에피소드에 대한 불쾌함을 제외하더라도, 쿤의 단선적인 성장을 위해 도구화되는 가족들의 면면을 나열하는 방식은 호소다 마모루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그 밀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결국 <미래의 미라이>는 <괴물의 아이>를 보고서 낮아진 호소다 마모루에 대한 기대치를 확정 지어주는 작품에 그치고 말았다.




 샘 레이미의 첫 <스파이더맨> 실사영화가 개봉한 이후 16년 만에 스파이더맨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라는 제목으로 소니가 야심 차게 준비한 이번 영화는, 한 명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 여러 차원에 존재하던 스파이더맨들이 한 차원에 모이게 되어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동시에 이번 영화는 2011년 코믹스에 데뷔한 흑인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샤메익 무어)의 오리진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킹핀(리브 슈라이버)이 차원 이동기를 만들어 내자, 사고로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인 피터 B. 파커(제이크 존슨), 스파이더 그웬(헤일리 스타인필드), 스파이더맨 누아르(니콜라스 케이지), 페니 파커(키미코 글렌), 스파이더 햄(존 멀레이니) 등이 마일즈가 있는 차원으로 오게 된다. 방사능 거미에 물려 이제 막 능력을 갖게 된 마일즈는 이들과 힘을 합쳐 킹핀의 음모를 막고자 한다.



 간단한 감상부터 말하자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와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존 왓츠가 MCU에서 제작한 <스파이더맨: 홈커밍>까지 모든 극장용 스파이더맨 영화를 통틀어 가장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다. 아니, 최근 경쟁적으로 각자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각종 시네마틱 유니버스들과 여러 슈퍼히어로 오리진 영화를 통틀어서도 손꼽을 만하다. 마일즈와 삼촌 애런(마허샬라 알리)의 관계를 통해 스파이더맨과 삼촌의 관계를 새롭게 그려낸 것, 인종과 젠더의 묘사를 자연스럽게 풀어낸 것, 멀티버스라는 설정을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다른 영화들에 비해 훌륭하게 풀어낸 것 등 기존의 영화들이 쉽게 풀어내지 못한 것들을 이번 영화는 훌륭하게 해낸다. 특히 117분의 러닝타임 동안 펼쳐지는 코믹스 스타일의 작화와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자유도를 통해 풀어낸 액션들은 황홀할 지경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앞서 언급한 과제들을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풀어낸다. 이미 많은 관객들이 알고 있을 스파이더맨’들’의 반복되는 오리진 스토리를 쌓여가는 코믹스들의 이미지로 보여준다던가, 이전 실사영화들의 주요 장면들을 코믹스 스타일의 몽타주로 보여주는 방식, MCU가 선택한 실사화의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멀티버스의 묘사 등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특히 마지막 20여분 동안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는 애니메이션이 주는 시각적 자유도를 극한으로 밀어붙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여러 차원이 겹쳐지고, 그 속에서 마일즈를 비롯한 여러 스파이더맨들과 킹핀 일행이 벌이는 액션은 최근 몇 년간 개봉한 여러 편의 슈퍼히어로 영화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액션 시퀀스가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스파이더맨의 소소한 행동들, 가령 벽을 타고 움직이는 장면 등 또한 가장 스파이더맨스럽게 연출된 장면이 아닐까? 경쾌한 발걸음으로 벽을 걷는다거나, 가볍게 주고받는 대화들 사이에서 어떤 실사영화에도 보지 못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스파이더맨의 주변 인물들 묘사도 뛰어나다. 마일스가 자연스럽게 흑인-히스패닉 혼혈임을 드러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사들, 스파이더맨(들)의 조력자로서 활약하는 메이 숙모의 존재, 자연스럽게 속편에 대한 떡밥을 깔아 두는 여러 캐릭터들의 등장, 각자의 사연을 통해 움직이는 피터 B. 파커와 스파이더 그웬을 비롯한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들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지닌 가치를 더욱 올려준다. 이 놀라운 스파이더맨 영화는 현재 마일즈와 그웬의 이야기를 다룬 속편과 그웬을 비롯한 다른 스파이더우먼들이 등장하는 스핀오프가 기획 중이라고 한다. 스파이더맨의 마블로의 귀환을 반기던 팬들에게 소니가 멋진 반격을 한 것이 아닐까? 마블은 마블대로, 소니는 소니대로 각자의 스파이더맨을 계속해서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먼 미래, 지구는 트라그라고 불리는 푸른 빛의 거인들이 지배하고, 그들은 작은 인간들을 옴이라고 부르며 가축이나 애완동물처럼 대한다. 티바라는 트라그는 어린 옴을 구하고 테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티바는 다른 애완 옴처럼 테어에게 목걸이를 걸고 그를 소유하려 하지만, 동시에 테어는 언어를 비롯한 트라그들의 지식들을 티바의 헤드폰을 통해 배우게 된다. 어느 날, 테어는 티바의 헤드폰을 들고 탈출을 감행한다. 탈출에 성공한 테어는 야생의 옴들을 만나 트라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하고 반란을 꾀한다. 이를 알아챈 트라그들은 옴 소탕작전을 세운다. 르네 랄루와 롤랜드 토퍼의 1973년도 애니메이션 영화인 <판타스틱 플래닛>은 일종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와 북유럽 신화가 뒤섞인 듯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싸이키델릭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지구가 멸망하고 새로운 종이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태라면 어떤 이미지든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타스틱 플래닛>은 카툰 네트워크의 <어드벤처 타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드벤처 타임><판타스틱 플래닛>의 영향 하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어드벤처 타임>이 다양한 영상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사를 갖가지 방향으로 뻗쳐 나가는 것에 비해 <판타스틱 플래닛>의 서사는 경직되어 보인다. 익숙한 신화적 서사(출애굽기)를 따르면서 비주얼적인 측면 이외의 상상력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전세계가 냉전체제 하에 있던 70년대 프랑스인의 자의식이 싸이키델릭한 영상과 함께 과장되어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소수자(가령 여성 옴)을 대하는 방식은 지금 시점에서 보기엔 다소 구시대적이다. 여러모로 명성에 비해서 크게 다가오는 것은 없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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