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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데미언 셔젤의 네 번째 장편 <퍼스트 맨>이 개봉했다. 앞선 영화들은 모두 재즈를 기반으로 한 음악영화였지만, <퍼스트 맨>은 닐 암스트롱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전기영화에 가깝다. 영화는 제임스 R. 한센의 책 『퍼스트 맨: 닐 암스트롱의 일생』을 바탕으로 한다. 1961년, 달착륙을 위한 실험인 제미니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1968년 달착륙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다.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와 같은 우주 배경의 하드 SF들과는 전혀 다른 결의, 우주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기보다는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이라는 개인의 심리를 담아내는데 주력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X-15을 타고 대기권 밖으로 나가보는 실험을 하는 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35mm 필름의 거친 질감(아이맥스로 관람할 시 이러한 질감이 극대화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정신없이 이어지고 흔들리는 시점 숏과 기체 내부나 닐의 얼굴을 잡는 클로즈업 숏들은 관객에게 일종의 체험을 제공하려 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닐 암스트롱과 관객을 동기화시키려는 것이다. 닐이 훈련을 받거나 비행을 하는 장면들 모두가 이런 방식으로 촬영되어 관객은 손쉽게 닐의 입장에 몰입할 수 있다. 때문에 닐이 아닌 영화의 등장인물들, 가령 닐의 아내인 재닛(클레어 포이)과 둘의 자식들, 에드(제이슨 클락), 데이브(크리스토퍼 애봇), 엘리엇(패트릭 후짓) 등의 주변 인물들은 닐의 심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한다. 그나마 재닛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달 착륙 장면 직전부터 사라져 버린다. 달 착륙 장면에서의 플래시백은 닐의 모든 주변 인물들을 병으로 죽은 딸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한 거대 프로젝트의 수단으로 환원시킨다. <라라랜드>의 8mm 홈비디오 플래시백에 이은 16mm 홈비디오 플래시백(심지어 아이맥스 비율의 시퀀스에서 등장한다)은 그 투명한 의도 때문에 도리어 거부감이 든다.



 <퍼스트 맨>은 분명 닐 암스트롱이라는 한 사람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주변 인물 모두를 수단화시키는 것은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고독감이라는 감정이 원래 홀로 있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이라지만, <퍼스트 맨>의 묘사는 닐 암스트롱이 스스로 고독 안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결과적으로 가족을 비롯한 닐의 주변 인물, 영화 속에서 짧게 등장하는 냉전시대와 베트남 전쟁이라는 시대적 맥락 등은 영화 안에서 대부분 배제된다. 대부분의 맥락은 닐에게 중압감을 더하는 방향으로 소비되고, 닐의 행적에서 이런저런 맥락들을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퍼스트 맨>은 닐이 지녔을 중압감과 고독감을 알아달라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며, 로켓 발사 때 우주비행사가 느끼는 감각을 충실히 재현한 것 외에 뚜렷한 성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도리어 닐의 심리보다 재닛의 상황과 감정, 희생에 더욱 공감하게 될 지경이다. <위플래시>와 <라라랜드>에서 보여준 응집력이나 능수능란함을 <퍼스트 맨>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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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3개의 시간축이 영화를 구성한다. 덩케르크 해변에서 병사들이 보낸 일주일, 영국 본토에서 징발된 배를 끌고 덩케르크로 향한 민간인 도슨(마크 라이런스)의 하루, 덩케르크로 향한 전투기 조종사 피리어(톰 하디)의 한 시간이 교차 편집되며 <덩케르크>는 전개된다. 이렇다 할 주인공 없이, 심지어 영화의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조차 배제된 채 진행되는 영화는 70mm 아이맥스의 1.43:1 화면비를 적극 활용해 관객을 전장의 한복판으로 이동시킨다. 3개의 시간축은 교차편집되며 동시간대에 진행되는 것처럼 스크린에 옮겨진다. 각각 진행되던 시간들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기습과 폭발, 시체와 파편이 난무하는 전장 속에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3개의 축으로 직조해 쌓아 올리는 솜씨는 장인의 위치에 오른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덩케르크>의 영상은 아이맥스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보이는 광활환 바다와 창공, 폐쇄되어 물이 차오르는 전투기와 선실을 오간다. 단순히 많은 정보량을 담기 위해 아이맥스를 사용했던 다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용법을 선보인다. 아이맥스의, 특히 용산 CGV의 1.43:1 비율의 거대한 스크린과 70mm 아이맥스의 질감을 구현할 수 있는 레이저 아이맥스 영사기의 압도되는 사이즈로 담아낸 클로즈업은 광활한 해변과 하늘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그 폐쇄성이 강조된다. 여기에 캐릭터성이 없는인물들은 마치 관객의 아바타가 된 듯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한복판을 누빈다. 막대한 정보량이 영사되는 덩케르크의 전경 속 무력한 개인과 폐쇄된 공간 안에서 죽음을 한 걸음 앞둔 클로즈업이 교차되어 등장하는 순간, 생사의 경계에 선 병사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무력감, 절망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때문에 영화는 감정이입할 캐릭터 없이도(다시 말하지만, <덩케르크>에는 ‘캐릭터’가 배제되어 있다), 이렇다 할 서사 없이도 놀란이 그들에게 품는 연민이 전해진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담은 영화는 아니지만, 그중에 가장 영웅적인 모습을 보이는 피리어가 해변에 불시착한 전투기를 불태우고 마침내 마스크를 벗어 맨얼굴을 보여주고 독일군에 붙잡힌다. 불타는 비행기와 덩케르크에서 탈출한 병사가 기차에 앉아 신문에 실린 처칠의 연설을 읽는 모습과 교차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영국군의 상징적인 전투기 스핏파이어를 불태우는 모습과 집으로 돌아온 어린 병사의 표정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병사들의 목숨을 지키는 철수 또한 위대한 승리라는 처칠의 연설을 106분의 영화로 담아낸다.



 <덩케르크>는 분명 뛰어난 영화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위악적인 이미지들과 <인터스텔라>의 질질 끄는 감정선의 신파도, 장황하게 늘어놓는 설명조의 대사도 없다. 전쟁영화라면 으레 있을법한 군사작전도, 전장에흩뿌려지는 피와 나뒹구는 사지도, 관객이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영웅도 없다. 아이맥스라는 기술을 더하고, 덩케르크 철수를 보여주는데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과감히 빼버린 놀란의 선택은 탁월하게 위대한 철수를 담아낸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파편화된 화면비는 아이맥스의 광활한 스크린에서 영화를 감상하는데 큰 방해가 된다. 가령 도슨이 자신의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향하는 초반부, 영화는 아이맥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1.43:1의 화면비로 진행된다. 그러던 중 1.9:1 화면비로 전환되는 순간이 등장한다. 아직 도슨의 배에서 진행되는 시퀀스임에도 화면비가 전환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관람에 큰 방해가 된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에서 전투 도중 시시각각 변하는 화면비는 멀미가 날 정도였다) 게다가 다른 기종의 카메라로 촬영한 두 화면비는 영상의 질감마저 다르다. 1억 5천만 달러 규모의 블록버스터가 왜 색보정을 통해 영상의 질감을 맞추지 않았는지는 의문이지만 (필름순혈주의자 놀란의 성격상 각 카메라의 필름 질감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놀란의 의도대로 아이맥스 스크린을 찾았을 때 관객의 눈에 거슬리는 화면비 전환은 종종 영화에 대한 집중을 깨트린다.


 

 <덩케르크>가 아이맥스와 관련된 이슈는 화면비 전환만이 아니다. 아이맥스 스크린이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 <덩케르크>는 2.20:1(이 애매한 화면비의 등장 배경은 모르겠다)의 화면비로 상영된다. 이렇게 상영될 경우, 1.43:1의 화면비에서 볼 수 있는 화면의 절반 정보밖에 안 되는 화면만을 보게 된다. 때문에 광활한 바다와 창공, 폐쇄된 선실과 전투기의 대비는 일반관의 스크린으로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화면비 전환으로 관람을 방해받는 일은 없겠지만, 아이맥스 상영을 기본값으로 두고 연출된 <덩케르크>는 일반관에서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작품으로 남게 된다. <덩케르크>가 개봉하기 전부터 용산 CGV의 아이맥스관이 <덩케르크>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상영관으로 홍보되었다. 1.43:1 스크린을 보유한 아이맥스 관은 용산 CGV와 천호 CGV 뿐이고, 그마저도 레이저 아이맥스 영사기를 보유해 70mm 필름으로 촬영된 <덩케르크>를 온전히 상영할 수 있는 곳은 용산 CGV가 유일하다. 아이맥스 관의 높은 가격과 한정된 좌석, 시간표는 절대다수의 관객이 <덩케르크>를 온전히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일반관에서 <덩케르크>를관람한 관객과 아이맥스 관에서 영화를 관람한 관객의 평이 갈리는 것도 이러한 차이에서 기인하다. 이것은‘아이맥스용 영화’로 홍보되던 기존의 다른 영화들, 가령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라이프 오브 파이>, <그래비티>등의 영화를 아이맥스로 상영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가 된다. 기존의 영화들은 아이맥스로 촬영됐더라도 일반관에서 보는 것과 아이맥스 관에서의 감상 자체가 큰 차이로 다가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화가 가진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있어 아이맥스는 +a의 역할을 해왔지, 영화의 형식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기존의 아이맥스 영화들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보는 것의 차이 정도였다면 <덩케르크>는 영화 자체를 온전히 보았는지 그러지 못하였는지의 문제이다. 그러나 <덩케르크>의 많은 부분, 특히 조종간을 잡은 피리어의 시선과 그의 얼굴을 잡는 클로즈업, 창공을 보여주는 풀숏이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부분 등을 1.43:1의 화면비가 아닌 2.20:1의 크롭 된 화면으로 봤다면 지금과 같은 감상을 받았을 수 있을까?



 최근 놀란은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넷플릭스는 극장 영화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기괴한 혐오감을 갖고 있다. 그들은 스트리밍과 극장 상영을 동시에 하는 생각 없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극장 상영에 견딜 수 없는 모델이다. 그들은 거대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라고 넷플릭스를 비판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놀란의 새 영화 <덩케르크>를 온전히 볼 기회를 가질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이맥스 상영관이 있는 지역에 살며, 고가의 티켓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치열한 티켓팅까지 통과해야 <덩케르크>를 온전히 볼 수 있다면, 일반관에서 <덩케르크>를 관람한 관객은 놀란의 연출적 의도를 정당한 표값을 내고서도 관람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덩케르크>는분명 아이맥스라는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기존과는 다른 용법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수작이지만, 그 의도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관객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은 <덩케르크> 이후에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젯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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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최대한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MCU의 클라이맥스이자 종착점, 혹은 반환점과도 같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마침내 개봉했다. 예상대로 엄청난 숫자의 스크린을 점령하면서 온갖 흥행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스포일러 대란이 일어났고, 박지훈 번역가의 오역 논란은 청와대 청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뭘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인피니티 워> 광풍 속에서, 지난 10년간 즐겁게 MCU 영화를 즐겨왔던 기억과 함께 개봉일 극장을 찾았다. 영화가 시작된 지 채 5분도 안 되어 (드디어) 사망하는 로키(톰 히들스턴), ‘인피니티 워’라는 부제가 공개되었을 때부터 죽음이 예측됐던 비전(폴 베타니)의 (무려 살려내서 다시 한번 죽이는) 죽음, 포스터에 등장한 캐릭터 중 절반 가량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엔딩은 많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줌과 동시에, 올해 6월 말 개봉할 <앤트맨 앤 와스프>, 내년 3월 개봉할 <캡틴 마블>, 그리고 내년 5월에 다시 돌아올 <어벤져스4>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최근 MCU를 보면 볼수록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19편의 영화를 통해 쌓아온 세계관을 즐긴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MCU를 보는 관객이 즐기는 것은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는, 거대한 드라마를 극장에서 개봉하는 성격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앞서 개봉한 <블랙팬서>의 경우 블랙 프라이드를 스크린 위에서 가장 흥미롭게 그려낸 사례이기에 한 편의 영화로서 가치와 흥미를 이끌어내지만, 그 밖의 다른 영화들에는 의문부호만 붙고 있다. 이젠 각 캐릭터들이 데뷔하는 첫 영화(가령 <닥터 스트레인지>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아니고서야 해당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팬덤을 10년 넘게 유지시키면서, 가공할 흥행을 이끌어내는 충성심을 길러냈다는 것이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캐릭터성 밖에 없는 캐릭터 

 <인피니티 워>는 각기 다른 트랙을 달려온 캐릭터들이 하나의 이벤트로 뭉치게 된 MCU라는 드라마 시즌1의 피날레이다. 그도 그럴게, <인피니티 워>에서의 어벤져스 캐릭터 묘사는 전편들을 보지 않았다면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을뿐더러, <인피니티 워> 속의 캐릭터들에겐 제대로 된 기승전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타노스(조쉬 브롤린)의 등장이라는 사건은 여러 슈퍼히어로들을 움직이게 만들지만, 여기서 각 캐릭터들의 동선과 감정선은 타노스의 행동에 대한 리액션일 뿐이다. 앞선 어벤져스 영화들과 비교해 본다면 이러한 단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어벤져스>에서는 로키의 침공에 맞서기 위해 아이언 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블랙위도우(스칼렛 요한슨), 헐크(마크 러파로), 호크아이(제레미 레너) 등 6명이라는 비교적 소수의 캐릭터들이 하나의 팀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어벤져스>에는 캐릭터가 많이 않았기에 각각의 캐릭터들이 소개된 첫 영화들을 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이들을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여기에 <인크레더블 헐크> 이후 헐크 역의 배우가 에드워드 노튼에서 마크 러팔로로 변경되었다는 점은 <어벤져스>가 불가피하게 다시 한번 캐릭터를 소개해야 된다는 과제를 부여하기도 했다. 여기에 블랙위도우, 호크아이 등 개별 영화가 없던 캐릭터들에겐 전사를 부여하면서 캐릭터를 쌓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로키의 헬리캐리어 습격으로 캐릭터들을 흩어 놓은 뒤 뉴욕 전투에서의 협동으로 귀결되는 서사는 어벤져스라는 팀에 단일한 서사를 부여하면서 성공적으로 어벤져스라는 팀을 만들어낸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어벤져스>에서 완성된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퀵실버(애런 테일러 존슨),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비전 등 새로운 캐릭터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각 캐릭터의 서사와 개성을 만들어낸다. 울트론(제임스 스페이더)이라는 빌런의 맹목적인 목표는 새로운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어벤져스라는 팀 캐릭터 속에 스며들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인피니티 워> 역시 로키나 울트론처럼 타노스라는 단일한 적을 통해 20명이 넘는 캐릭터를 하나의 서사로 엮으려 한다. 그러나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된 배경은 그들을 단번에 한 공간으로 모으기 어렵다. 때문에 아이언 맨,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스파이더맨(톰 홀랜드), 스타로드(크리스 프랫), 맨티스(폼 클레멘티에프) 등은 타이탄 행성, 토르, 로켓(브래들리 쿠퍼), 그루트(빈 디젤)를 니다벨리르로 향하는 여정,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세바스찬 스탠), 블랙팬서(채드윅 보스먼), 스칼렛 위치, 블랙 위도우 등이 비전을 지키기 위해 와칸다로 각각 나뉘어 영화가 진행된다. 어벤져스라는 한 팀으로 묶여 단일성을 지닌 한 팀이 아닌,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라는 세 개의 축으로 나뉘어 서사가 진행된다. 때문에 각각의 캐릭터가 지닌 이야기를 풀어낼 시간은 149분의 긴 러닝타임 속에서도 부족하고, 영화는 그저 앞선 영화들에서 보여줬던 캐릭터들을 끌어와 반복한다. 싸움에 임하는 각각의 동기도 다르기 때문에, 이들은 좀처럼 하나의 서사로 묶이지 않는다. 가령 토르는 로키와 아스가르드인들에 대한 복수를 위해 싸우고, 블랙팬서는 단순히 와칸다를 비롯한 지구를 침략한 적에 맞서기 위해, 아이언 맨은 로키의 뉴욕 침공에서부터 쌓인 한을 풀기 위해, 스타로드는 가모라(조 샐디나)의 복수를 하기 위해 타노스에 맞선다. 결국 이들에겐 공통의 적만 있을 뿐 공통의 서사는 없다. <인피니티 워> 속에서 성장, 발전 등 익숙한 슈퍼히어로 서사는 없다. 타락, 추락 등 그 반대로의 서사 또한 없다. 업그레이드된 슈트나 무기가 캐릭터의 성장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20명이 넘는 어벤저들은 각자가 기존의 보여줬던 모습만을 반복하고, 그것은 죽음 또는 상실이라는 결말로 귀결된다. 결국 어벤져스의 서사에는 타노스라는 발단과 죽음/상실이라는 결말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피니티 워>라는 한 편의 영화 안에서 기승전결의 완결되는 서사를 지닌 캐릭터는 타노스 한 명뿐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어벤져스가 아닌 타노스로 생각하고 <인피니티 워>를 이해하면, 이 영화는 타노스라는 주인공이 우주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어벤져스라는 빌런을 상대하는 다크 히어로 영화가 된다. 영화 속 모든 캐릭터의 출연 분량 중 절반 가까이를 타노스가 가져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화의 제목을 <타노스: 인피니티 워>로 바꾸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영화를 연출한 루소 형제는 타노스에게 다양한 서사를 부여하며 그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가령 그의 행성인 타이탄은 인구 과잉과 식량 부족으로 인해 멸망했고, 유일한 생존자인 그는 생명의 절반을 죽이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내거는 순간 타노스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벌처(마이클 키튼) 등의 빌런과 유사한 지위를 가지게 된다. 여기에 소울 스톤을 얻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모라와의 부녀 이야기는 타노스에게 아버지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그의 다양한 면모를 부각하려 한다. 때문에 가모라라는 캐릭터에게 기존 영화들에서 보지 못한 전사가 추가되긴 하지만, 결국 타노스의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타노스에 대한 리액션으로서 가모라의 서사가 구축되는 모양새가 된다. 여기에 타노스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는 가모라의 최후와, 추락하는 가모라와 눈물 흘리는 타노스의 얼굴을 디졸브(심지어 MCU 전체에서 디졸브는 찾아보기 어렵다)로 담는 편집은 타노스의 서사를 위해 가모라라는 캐릭터를 황망하게 희생시켜 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타노스의 캐릭터로 영화가 집중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피니티 워>라는 이벤트를 영화화할 때의 한계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코믹스 이벤트 [인피니티 건틀렛] 또한 타노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MCU는 코믹스가 아니다. 러닝타임이 어찌 됐든, 등장하는 캐릭터가 몇이든, ‘어벤져스’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인피니티 워>는 분명 어벤져스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할 영화이다. 타노스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과도한 분량과 서사를 부여하고, 기존의 캐릭터들을 단순하게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허망하게, 그것도 매우 짜증 나는 방식으로 몇몇 캐릭터를 소비해버린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쩌면 그간 MCU가 받아온, 빌런이 약하다는 지적에 대한 가장 뒤틀린 방식의 대응이 아닌가 싶다. 빌런을 강화하기 위해 전체 비중의 절반 가까이를 할애하고, 캐릭터를 희생시켜가면서 캐릭터를 구축한다. 이러한 방식은 여러모로 효과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강조해야 할 주인공인 어벤져스에 실릴 힘을 앗아간다는 점에서 아쉽기만 하다. 모두가 빌런을 기억하는 여러 영화들, 가령 <다크 나이트>나 <양들의 침묵>은 조커와 한니발의 길지 않은 등장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감을 러닝타임 내내 과시했다. 이는 효과적인 몇몇 장치, 가령 강렬한 오프닝, 여러 조연 캐릭터의 대사, 영화 속 뉴스 등을 이용한 홍보 등을 통해 가능해진다. <인피니티 워>의 타노스는 이러한 장치들의 과잉으로 가득하다.



클로즈업뿐인 액션 

 <인피니티 워>는 과잉의 영화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수부터 앞서 언급한 빌런의 과잉까지,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과 149분 안에 수많은 정보를 담아내야 하는 영화도 버거운 수준이다. 이를 어느 정도 정돈하고, 수많은 정보량이 정리되는 부분이 액션 장면이다. 뉴욕을 시작으로 스코틀랜드, 타노스의 우주선, 타이탄 행성, 와칸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예상대로 수많은 캐릭터들의 협동과 개별적인 캐릭터들의 능력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가령 타이탄 전투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길을 열어주고, 스파이더맨은 거미줄로 타노스를 묶으며, 아이언 맨과 스타로드는 화기를 통해 타노스를 직접 공격하고, 맨티스는 타노스의 정신을 공략한다. <반지의 제왕> 스타일의 백병전으로 진행되는 와칸다 전투는 캐릭터 각각의 전투 방식을 강조한다. 방패를 이용한 캡틴 아메리카, 아크로바틱 한 근접 액션을 선보이는 블랙팬서와 블랙위도우,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공중전을 도맡는 워머신(돈 치들)과 팔콘(안소니 맥키), 염력을 이용하는 스칼렛 위치 등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러한 액션들엔 풀숏이 부족하다. 우리는 여러 캐릭터들과 타노스가 싸우고 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 그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그림 안에서 싸우고 있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어벤져스>의 뉴욕 전투는 비행이 가능한 아이언맨을 통해 멤버들을 잇는 롱테이크를 선보이며 각 캐릭터의 개성과 전체적인 액션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측면은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무너지는 것만 같다. <어벤져스>의 원년멤버들만이 등장하는 오프닝의 하이드라 기지 습격 장면은 전편과 유사한 방식으로 액션의 밑그림을 그리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소코비아 장면은 익스트림 롱샷과 클로즈업만 존재하는 괴상한 구조의 액션 설계로 구성되어 있다. 비슷한 문제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공항 전투 등 비중 있는 캐릭터가 과도하게 많이 등장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홈커밍>의 선상 전투 장면이나 <토르: 라그나로크>의 바이프로스트 전투 등 액션이 주는 타격감보다 캐릭터의 개성을 강조하는 비주얼을 선택하면서 액션 본연의 쾌감이 줄어드는 문제 또한 발생한다. 카메라는 지나치게 가까이 들어가거나 지나치게 자유롭다. 캐릭터와 상대방이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넓은 지역과 많은 캐릭터를 한 번에 다룬다면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뤄야 한다.


 <인피니티 워>는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등장하는 인원이 적은 뉴욕이나 스코틀랜드 액션 장면은 무난하고, 몇몇 부분은 잘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타이탄이나 와칸다 장면으로 넘어가면, 여러 캐릭터들을 자랑하기 위해 근접한 위치에서 그들을 담아낸 쇼트들로 가득할 뿐이다. 특히 와칸다 장면에선 여러 캐릭터가 협동하는 모습마저 제대로 담기지 못한다. 가령 윈터솔저가 로켓을 들고 360도 돌며 근방의 적들을 쏘는 장면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유사한 장면에 비해 답답하게 느껴진다. 어정쩡한 위치에서 둘을 잡는 카메라는 둘의 협동 액션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물론 1.90:1 아이맥스 화면비로 촬영된 이 영화를 2.39:1의 화면비로 상영되는 일반관에서 봤을 때 느껴지는 어정쩡함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아이맥스 관에서 관람하고 나니 애초에 어정쩡하게 촬영된 장면임을 알 수 있었다. 적과 싸우는 스칼렛 위치를 블랙위도우와 오코예가 협동하여 구하는 장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위치가 불분명한 캐릭터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액션을 펼친다는 점이다. 타이탄 장면에서 타노스에 대한 맹공이 쏟아질 때, 어디에 숨어 있던 것인지 알 수 없던 맨티스가 등장해 타노스의 정신을 컨트롤하려 한다. 그전에 마찬가지로 위치가 불분명한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가 어디선가 나와 타노스의 다리를 공격한다. 각 캐릭터들이 타노스를 붙잡고,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이 건틀렛을 벗기려는 장면에서 스타로드의 돌발행동과 함께 맨티스의 정신 공격이 무력화된다. 다시 움직이는 타노스에 의해 캐릭터들이 내동댕이쳐지는데, 앞의 쇼트에서 보이지 않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함께 내동댕이쳐진다. 과연 그는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날아가버린 것인가? 마찬가지로 오코예와 블랙위도우의 합동 액션에서, 그들의 구출 대상이었지만 외화면으로 실종되어 버린 스칼렛 위치가 난데없이 적을 날려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인피니티 워>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이렇게 갑툭튀 시키는 방식으로 후반부 액션들을 전개해나간다.  


누구를 위한 아이맥스인가 

 <인피니티 워>는 영화 전체가 아이맥스로 촬영된 최초의 블록버스터이다. 아리 알렉사 아이맥스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이 영화는 1.90:1의 위아래로 넓은 화면비를 자랑한다. 기존의 영화들, 가령 <블랙팬서>나 <시빌 워> 같은 작품들 역시 아이맥스로 촬영되었지만 영화의 몇몇 부분뿐이었다. 이렇게 일부분만 아이맥스로 촬영된 작품들은 일반관과 아이맥스관에서 동일하게 본래의 화면비(2.39:1)로 상영되고, 아이맥스로 촬영 혹은 컨버팅 된 장면들에서 컷이 넘어가거나 위아래가 슬그머니 늘어나면서 1.90:1의 화면비로 변경된다. 때문에 전체적인 영화 속 쇼트의 구성들은 2.39:1의 화면비에 맞춰지게 되고, 1.90:1 화면비의 화면은 일종에 보너스 같은 개념이 된다. 


 반면 <인피니티 워>는 모든 쇼트가 1.90:1의 화면비로 촬영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같은 화면비를 소화할 수 있는 상영관은 아이맥스관뿐이다. 일반적인 상영관에서 <인피니티 워>는 2.39:1의 화면비로 상영된다. 이러한 선택은 본래 화면의 위아래를 크롭한 판본이 일반관에서 상영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1.90:1의 화면비를 기반으로 쇼트의 구도와 스케일을 맞춘 <인피니티 워>의 영상들은 일반관에서 온전히 감상할 수 없다. 많은 장면에서 화면의 위아래가 잘림으로써 발생하는 어정쩡함을 느낄 수 있는데, 가령 블랙오더가 탄 우주선이 뉴욕에 도착하는 장면이나, 대화 장면에서 타노스를 미디엄숏으로 잡는 장면, 모르도르 행성에서 소울 스톤을 구하는 장면 등이다. 아이맥스 화면비에서 온전하게 그려지던 이 장면들은, 일반관에서 상영되는 화면비에선 블랙오더의 우주선은 절반 가량이 화면에서 잘려나가고, 타노스를 잡는 미디엄숏에서 타노스의 이마가 잘려나가고, 소울 스톤이 숨겨져 있는 제단과 같은 장소는 그 스케일이 온전히 담기지 못한다. 이 장면들뿐만 아니라 여러 액션 장면, 몸집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타노스와 다른 캐릭터들의 대화 장면, 보르미르 비롯해 타이탄, 노웨어, 니다벨리르 등의 거대한 우주공간과 와칸다 등 광활한 지역을 담아내는 많은 숏은 일반관에서 온전히 즐길 수 없다. 작년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이 선보인 1.43:1 화면비를 일반관에서 경험할 수 없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모든 관객이 아이맥스 관에서 <인피니티 워>를 관람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답은 불가능에 가깝다. 국내 18개 관 밖에 없는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지금처럼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인피니티 워>의 관객들을 소화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영관의 숫자도 적을뿐더러, 높은 가격(이번 가격 인상으로 인해 평일 저녁 아이맥스관 가격은 18000원으로 올랐다), 지역적 한계 때문에 극도로 접근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조조부터 심야까지 매진사례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으로써 아이맥스 관에서의 <인피니티 워> 관람은 더더욱 어렵기만 하다. 이러한 상영에서 영화 전체를 아이맥스로 촬영하고, 숏의 구도를 그 화면비에 맞추어 일반관에서의 관람을 온전하지 못한 경험으로 남기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에 의문이 든다. 1.43:1과 2.20:1의 극단적인 화면비 차이를 보인 <덩케르크> 또한 관객의 관람 경험을 질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영화였다. <인피니티 워>의 경우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5월 2일) <인피니티 워>를 관람한 625만의 관객 중 아이맥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은 24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관람객의 25분의 1 정도만이 아이맥스를 통한 온전한 <인피니티 워> 관람을 한 것이다. 결국 <덩케르크>나 <인피니티 워>가 취하고 있는 아이맥스라는 포맷은, 그것이 지닌 영화적 효과와 성취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다수의 대중이 아닌 예매 전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관객을 위할 뿐이다.



 그래서 <인피니티 워>는 관객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강력한 충격요법은 앞으로 개봉이 예정되어 있는 세 편의 MCU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었고, (어벤져스의 입장에서) 미완성의 서사로 끝나버린 영화는 관객들이 하염없이 1년을 기다리게 만든다. 관객들이 MCU에 가지고 있는 충성도는 이제 폭발 상태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피니티 워>는 MCU의 세계관이 점점 거대해지고,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발생하는 한계점을 여실 없이 드러내는 작품으로 느껴졌다. 물론 <인피니티 워>는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자, 10년간 MCU를 지켜봐 온 오랜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이벤트이긴 하다. 그러나 서사적으로, 수많은 캐릭터를 온전히 그려낼 수 없다는 측면에서, 안일하게 만들어지는 액션의 모습에서 일정 부분 한계점에 봉착해있다. <인피니티 워> 직전에 개봉한 <블랙팬서>는 같은 세계관 안에서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지 시도하고 일정 부분 성공한 작품이었다. <인피니티 워>는 “우주는 유한하다”는 타노스의 대사처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확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어벤져스의 절반을 먼지로 만들어버린 엔딩을 보고 있자면, 절반을 죽여 균형을 맞춘다는 아이디어는 타노스만의 것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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